3단계 통일방안에서 진보적 통일정책으로

 

 

<차례>
1. 연합제와 연방제의 갈림길
2. 국가연합기구는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하지 않는다
3. 평화공존과 경제재건이라는 속임수
4. 3단계 통일방안은 허구적 관념이다
5. 국가연합기구와 민족통일기구의 공통성과 이질성
6.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느슨한 연방제
7. 진보정당의 새로운 통일정책

1. 연합제와 연방제의 갈림길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게 된다. 그 역사적인 사변을 가리켜, 남측에서는 남북정상들이 만나는 정상회담이라고 부르고, 북측에서는 북남수뇌들이 만나는 최고위급회담이라고 부른다. 6.15 공동선언에서 남측은 정상회담이라고 적었고 북측은 최고위급회담이라고 적었다. 나는 정상회담이라는 말은 그릇된 말이고 최고위급회담이라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이 글에서는 최고정치회담이라는 제3의 용어를 쓴다.

주목하는 것은, 남측과 북측에서 각각 정상회담과 최고위급회담이라고 다르게 부르는 것이 분단시대의 언어습관에서 생겨난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두 종류의 말속에는 남측과 북측이 하나의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커다란 인식차이가 들어있다. 그 인식차이는 서로 다른 정책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명백하게도, 남북(북남)관계는 두 나라로 갈라진 국제관계가 아니라 아직 일국체제로 되지 못한 민족내부의 특수관계이다. 그래서 남북(북남)관계에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제사회에서 쓰는 나라이름을 쓰지 않고 남측과 북측이라는 민족내부관계에서 쓰는 특수명칭을 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만나는 최고정치회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정상들이 국제관계에서 만나는 회담이 아니라, 남측과 북측의 최고지도자들이 민족내부관계에서 만나는 회담이다. 원래 정상회담(summit talks)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나라의 정상들이 만나 중대현안을 협의하는 국제관계의 외교정치행위를 가리키는 말인데, 남측 정부가 민족내부관계의 최고정치회담을 국제관계의 정상회담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남측에서는 이를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굳어져버렸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남측 정부가 민족내부관계와 국제관계를 구분하지 못해서 정상회담이라는 말을 잘못 쓰는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남측 정부가 민족내부관계의 최고정치회담을 정상회담이라고 굳이 부르는 까닭은, 민족내부관계를 두 나라로 갈라진 국제관계로 변질시키려는 정치적 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측과 북측은 최고정치회담을 가리키는 통일적 용어를 끝내 합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남북(북남)관계는 두 나라로 갈라진 국제관계가 아니라 일국체제가 분단체제로 비정상화된 민족내부관계이다. 그런데 남측 정부의 정치적 의사에 따라 만일 분단체제로 비정상화된 민족내부관계를 두 나라로 갈라진 국제관계로 '정상화'하면, 그것은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더 한층 비정상화하여 분단체제를 정당화, 합법화하는 치명적 사태를 불러오게 된다.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는, 분단체제로 비정상화된 민족내부관계를 한 나라로 통일된 일국체제로 정상화하는 것이지 두 나라로 갈라진 양국체제로 '정상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하지 않는 한, 남북(북남)관계는 결코 정상화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측 역대 정부들의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심각성은, 두 나라로 갈라진 국제관계로는 결코 '정상화'될 수 없는 남북(북남)관계를 국제관계로 '정상화'하려는 정치적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는 데 있다.

남측에서 남북(북남)관계를 두 나라로 갈라진 국제관계로 '정상화'하려는 정치적 의사를 나름대로 논리적 체계를 가진 정책으로 제시하였으니, 그것이 국가연합제이다. 국가연합(confederation)이란 역내의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이 정치, 군사, 외교, 경제부문 등에서 서로 교류협력하는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는 것이다. 국가연합기구는 입법권, 국방권, 외교권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주권국가의 정부가 아니며, 역내 나라들이 국가연합기구에 가입하는 것이나 거기에서 탈퇴하는 것이 자유로운 만큼, 국가연합기구의 통합력은 매우 느슨하다. 국가연합기구에 가입한 역내 국가들의 교류협력이 자국민들을 서로 내국인으로 대우할 만큼 높아졌다고 해도 국가연합기구는 국가연합기구일 뿐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는 아니다.

그러한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국가연합안은 통일방안의 범주에서 배제된다. 국가연합안은 통일방안이 아니다. 국가연합안을 담은 정책은 대북정책이지 통일정책이 아니며, 그러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부서는 대북사업부이지 통일부가 아니다.

국가연합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정부를 가진 연방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민족내부관계로 규정하는 통일방안이 북측의 연방제안이다. 연방제란 통일정부를 가진 연방국가의 체제와 제도를 뜻하는 말이다. 비록 두 개의 서로 다른 사회체제가 존재해도 연방제를 실시하면 그것은 통일정부를 가진 연방국가이지 여러 나라들이 가입한 국가연합기구는 아니다.

2. 국가연합기구는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하지 않는다

남측과 북측이 합의하여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고 긴밀히 교류협력하다보면 국가연합기구가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되리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론적, 실증적 근거가 없는 막연한 공상이다. 네 가지 논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면 남측과 북측의 교류협력이 이전보다 더 강화, 발전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연합 안에서 교류협력이 실현되면, 그것은 오늘 진행되는 남측과 북측의 교류협력과는 전혀 다른 법적 지위와 성격을 갖게 된다. 그것은 민족내부관계의 교류협력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제적 교류협력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국제적 교류협력은 그것이 아무리 확대, 발전된다고 해도 통일정부를 가진 연방국가 건설을 촉진하는 요인으로는 될 수 없다. 국가연합에서는 국제적 교류협력이 영구히 이어질 뿐, 통일정부를 가진 연방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은 100년이 지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둘째, 국가연합기구가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하려면, 국가연합기구에 가입한 나라들이 스스로 나라이기를 포기하고 연방국가를 세우는 정치적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연합기구가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서는 핵심문제는, 국가연합기구에 가입한 나라들이 스스로 나라이기를 포기하고 연방국가를 세우려는 정치적 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남측의 요구대로 남측과 북측이 합의하여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 기구에 가입하였다고 상상할 때, 국가연합을 상당기간 동안 운영한 뒤에 대한민국이 스스로 대한민국이기를 포기하고 연방국가를 세울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셋째, 국가연합기구는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않는 일종의 국제협력기구이므로 그 기구에 가입한 나라는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다. 만일 남측과 북측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국가연합기구에 가입하여 교류협력을 발전시킨다 해도, 사상과 체제가 서로 다른 두 나라가 언제 어떠한 갈등과 불화를 일으킬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사상과 체제의 이질성이 갈등과 불화를 일으켜 어느 한 나라가 국가연합기구에서 탈퇴하는 날, 국가연합은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과 체제의 이질성을 가진 두 나라가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의미하다. 사상과 체제의 이질성을 가진 남측과 북측은 두 나라로 갈라서서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할 것이 아니라 통일정부를 가진 연방국가를 건설해야, 사상과 체제의 이질성에서 생겨날 수 있는 갈등과 불화를 원만히 극복하고 통일을 유지할 수 있다.

넷째, 남측 정부가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려는 진정한 목적은, 교류협력을 지금보다 더 강화, 발전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그 기구를 전화, 발전시켜 장차 통일정부를 내오고 연방국가를 세우려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남측 정부가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려는 진정한 목적은, 남측과 북측의 교류협력을 민족내부관계에서 끌어내어 국제관계로 옮겨놓고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독점자본들과 함께 북측의 중요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바꾸려는 것이다. 두 나라로 갈라서서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의 평화통일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시장경제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시장경제화란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약화, 소멸시켜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점진적 체제변화, 점진적 흡수통합을 뜻한다.

3. 평화공존과 경제재건이라는 속임수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요즈음 남측 정부는 남북(북남)관계의 미래를 논할 때 국가연합 또는 남북연합이라는 말을 되도록 쓰지 않는 대신 평화와 경제라는 두 가지 개념을 앞에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대중의 이해력에 성큼 다가서지 않는 국가연합이라는 말을 접어두고 평화공존과 경제재건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남북(북남)관계를 바라보는 대중의식을 포섭하려는 수법으로 보인다. '평화경제'라는 신조어가 나돌기도 한다.

첫째, 평화공존이란 남측과 북측이 창설한 국가연합기구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가입하여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것은 속임수이다. 한(조선)반도에 전쟁위험을 몰고 오는 제국주의전쟁기제를 그대로 두고 국가연합기구나 창설한다고 평화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다. 한(조선)반도의 평화는 주한미국군과 핵우산 공약이라는 제국주의전쟁기제를 불능화할 때만이 실현될 수 있다. 제국주의전쟁기제의 불능화와 무관하게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평화공존을 실현할 수조차 없으며, 심지어는 제국주의전쟁기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재건이란 남측의 투자로 북측의 경제를 재건한다는 뜻이다. 최고정치회담을 앞두고 통일부 장관은 "남측의 투자가 북측의 경제발전을 이끌고 결국에는 남측 경제발전의 신동력으로 이어지는 남북상생의 구조를 창출"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남측이 투자하여 북측의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발상을 대북정책으로 다듬어놓은 것이 '남북경제공동체' 창설이다. 2007년 8월 15일 최고정치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경제공동체' 창설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였다. 남측 정부안에서 '남북한 자유무역협정(FTA)' 또는 '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나 "북한을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해 노동력과 상품의 이동을 통제하고 20-30년에 걸친 자체 성장으로 유도하는 점진적 경제통합방식"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남북경제공동체'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북측에 들여가서 북측을 개방개혁으로 떠밀고 체제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개념이다.

그러나 '남북경제공동체'는 실현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그것을 고안해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한낱 공상적 관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남북경제공동체'가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경제공동체'가 실현될 수 없는 까닭은, 북측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북측의 인민대중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반대하고 조선로동당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포기한다면 북측이 자본주의시장경제로 통합되겠지만, 그러한 사태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북측 인민들 속에서 사회주의계획경제를 거부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고, 조선로동당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포기하려는 어떠한 조짐도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정반대이다. 죽을 먹으면서 '고난의 행군'을 강행하였던 엄청난 시련 속에서, 다른 나라의 인민들 같으면 식량폭동이나 반정부시위로 붕괴위기를 심화시켰겠지만 북측 인민들은 폭동이나 시위 같은 말조차 모른 채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수호하려는 집단적 의지를 안고 역경과 난관을 이겨냈다. 그들이 시련 속에서도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변함없이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조선로동당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수호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그들에게 실천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북측의 경제적 어려움이 북측 인민들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반대하게 만들 요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오판이다.

지난 시기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나라들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포기하였던 까닭은 그 나라들이 경제난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련이나 동유럽의 사회주의집권당들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포기할 때, 그 나라 인민들이 식량난이나 에너지난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오늘 중국,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나라들도 식량난이나 에너지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 물러선 것이 아니다. 지난 시기 사회주의나라들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포기하거나 오늘 사회주의나라들이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 물러선 까닭은, 그들이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추진동력을 찾지 못하고 사회주의계획경제의 발전전망을 내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계획경제를 포기하느냐 수호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 경제를 제도화한 사회주의나라가 경제난을 겪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추진동력과 발전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데 있다.

북측은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실패한 원인이 그것의 추진동력과 발전전망을 갖지 못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으며,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추진동력을 찾고 그것의 발전전망을 내올 수 있는 길도 알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겪은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남달리 힘써왔다.

사회주의계획경제는 국가기구가 공장, 기업, 농장에 내려 먹이는 관료주의적 집행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혁명적 열의가 발동된 자발적인 경제활동으로 성장, 발전되는 것이다. 원래 사회주의는 그 어떤 강제와 강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시기에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실패한 원인은, 생산현장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혁명적 열의를 발동시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대중적 자발성을 이끌어 내지 못하였다는 데 있었다.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국가기구의 관료주의적 집행은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실패한 원인이 아니라 그 경제가 대중적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데서 실패하여 생긴 결과이다. 북측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혁명적 열의를 발동시키는 정치사업, 그리하여 그들 속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경제정책을 시행해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로동당과 인민대중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결합시키는 주체사상을 국가경영과 사회통합의 지도사상으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글의 서술범위가 제한적이어서 논할 수 없지만, 북측에서 주체사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혁명적 열의를 발동시키는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사상적 기초로 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성패가 경제지표의 높낮이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성패는 사상의식의 높낮이에 달려있다.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는 경제활동이 사상의식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집권당이 집단주의사상교양으로 인민대중의 사상의식을 개조하고, 집단주의적으로 개조된 사상의식으로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밀고 나가는 것이다.

둘째, '남북경제공동체'가 실현될 수 없는 까닭은,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신식민주의경제파탄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세계화는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대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지배력과 수탈범위를 전면적으로 확장시켰으며, 그로써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대량실업과 비정규직 확산, 직장폐쇄와 연쇄파산, 물가인상과 투기폭증, 실질임금 하락과 생존권 박탈, 가정해체와 흉악범죄 급증 같은 견디기 힘든 재앙을 겪는 중이다. '남북경제공동체'를 창설하는 것은 남측의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을 북측에까지 확장한다는 뜻이 아닌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침탈을 배격하고 자립경제노선을 추구해온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기생하는 남측의 신식민주의예속자본과 결합하여 그 무슨 경제공동체를 창설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의미하다. 개성공업단지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내부의 경제협력은 앞으로도 강화, 발전되겠지만,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남측의 신식민주의예속자본과 결합하여 경제공동체를 창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4. 3단계 통일방안은 허구적 관념이다

남측에서 진행되어온 각양각색의 통일론은 한결같이 3단계 통일방안이라는 낡은 도식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통일방안이라면 당연히 3단계 통일방안을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으로 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로 이어지는 3단계로 되어있다. 1995년에 발표된 김대중의 '통일방안'은 남북연합, 연방국가, 완전통일로 이어지는 3단계로 되어있다. 2006년 4월 9일 박근혜가 내놓은 '통일방안'은 평화정착, 경제통일, 정치통일로 이어지는 3단계로 되어있다. 2006년 6월 17일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방안은 경제통합, 문화통합, 정치통합으로 이어지는 3단계로 되어있다. 2007년 5월 23일 이해찬이 내놓은 '통일방안'은 평화체제, 남북경제공동체(KEC), 남북연합, 남북합중국으로 이어지는 4단계이다.

3단계 통일방안의 핵심내용은 국가연합 또는 남북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설정한 것이다. 국가연합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연합이 최종단계가 아니라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중간단계라고 주장하면서 국가연합안이 통일국가 건설을 최종단계로 상정하고 있으니 국가연합안이 통일방안이라고 강변하지만, 그것은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소리이다.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는 목적은 국가연합을 거쳐서 통일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변질시키기 위해서이다. 국가연합이라는 중간단계는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로 유도하는 체제통합단계이지 연방제를 실현하는 통일실현단계가 아니다.

남측 정부의 국가연합안은 약 30년의 기간을 두고 북측의 사회주의체제를 점진적으로 시장경제화시켜 흡수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국가연합안은 점진적 흡수통합안이다. 이처럼 국가연합안은 통일방안이 아니므로 국가연합기구를 점진적으로 전화, 발전시켜 통일정부를 내오고 연방국가를 세울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통일방안이 아닌 국가연합안을 중간단계로 설정한 3단계 통일방안은 국가연합안이라는 비통일방안과 연방제안이라는 통일방안을 억지로 짜맞추어놓은 허구적 관념이다. 3단계 통일방안은 연방국가 건설이 아니라 국가연합기구 창설을 사실상의 최종목적으로 삼은 국가연합안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주목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세 단계를 거쳐서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계(stage)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상태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과정을 굳이 단계로 구분한다면 준비단계와 실현단계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통일을 준비하는 상태와 통일을 실현하는 상태는 질적 차이가 아니라 양적 차이 곧 수준(level)의 차이이므로, 단계적 통일방안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 그런 뜻에서,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단계적 통일이 아니다. 6.15 공동선언에 나오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개념도 연방제를 실현하는 수준의 차이를 뜻하는 것이지 연방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이질적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영어로 번역할 때는 낮은 단계(low stage)가 아니라 낮은 수준(low level)이라는 말을 쓴다.

통일방안을 실현하려면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정치회의를 열고 정치협의체를 창설하면 되는 것이지, 3단계 통일방안처럼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할 필요는 없다. 만일 남북(북남)관계를 두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로 바꿔놓는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면, 통일정부를 내오고 연방국가를 세우는 통일과정이 가로막힐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일반대중의 통일의식을 혼란에 빠뜨리는 3단계 통일방안이라는 허구적 관념은 하루빨리 폐기되어야 한다.

5. 국가연합기구와 민족통일기구의 공통성과 이질성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는 "남측의 연합제안(commonwealth system)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low-level federation)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 선언에 나오는 연합제안은 국가연합안과 같은 말인데,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인정하지 않는 북측이 선언문 작성과정에서 국가라는 말을 빼고 연합제안이라고 적은 것으로 보인다.

양자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는 말은 이질성도 있다는 뜻이다. 만일 국가연합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이질성을 갖지 않고 똑같은 것이라면 굳이 공통성이 있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목하는 문제는, 국가연합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먼저 양자의 공통성부터 논하려면, 북측이 6.15 공동선언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개념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돐 기념 평양시 보고회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해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의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가지게 하고 그 우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연방제라고 밝혔다.

위의 해설을 다시 정리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남측 정부와 북측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행사하는 조건에서 그 두 정부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고 그 기구가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에 비해, 높은 단계의 연방제란 민족통일기구가 남북(북남)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함으로써 통일정부를 내오고 통일정부가 남측 정부와 북측 정부로부터 정치, 군사, 외교권을 모두 넘겨받은 상태를 뜻한다. 북측의 해설은 연방제가 내적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간략하게 언급한 것인데, 그 과정을 요약하면 연방제는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는 낮은 단계에서 출발해서 그 기구를 전화, 발전시켜 통일정부를 내오는 높은 단계로 발전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연방제의 내적 발전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그 다음으로 논하는 것은, 국가연합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이다.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는 국가연합안이나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모두 남측 정부와 북측 정부를 그대로 둔다는 점에서, 그리고 교류협력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그렇지만 그 공통성은 어디까지나 형식적 공통성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더 중시하는 것은, 양자 사이의 형식적 공통성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내용적 이질성이다.

첫째, 민족통일기구는 남측과 북측이 민족내부관계에서 정치적으로 연합함으로써 성립되지만, 국가연합기구는 남측과 북측이 각각 별개의 주권국가로 가입함으로서 성립된다.

둘째, 민족통일기구의 법적 지위는 남측 정부와 북측 정부의 법적 지위보다 높은 반면, 국가연합기구의 법적 지위는 남측 정부와 북측 정부의 법적 지위보다 낮다.

셋째, 민족통일기구는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여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하는 반면, 국가연합기구는 국제적 교류협력을 확대할 뿐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하지 않는다.

넷째, 민족통일기구는 서로 다른 두 체제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보장하는 반면, 국가연합기구는 한(조선)반도의 시장경제화라는 체제변화와 흡수통합을 목표로 삼는다.

6.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느슨한 연방제

6.15 공동선언에 처음으로 나온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개념은 이전에 나왔던 느슨한 연방제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느슨한 연방제는 북측에서 쓰는 말이 아니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느슨한 연방제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은, 1991년 1월 1일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신년사에서 련방제 방식의 통일방안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련방제 방식의 통일방안은 198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과 조금 다르다. 신년사에서 김일성 주석은 련방제 방식의 통일방안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우리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이 민족적 합의의 기초로 될 수 있는 공명정대한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으로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잠정적으로는 련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나가는 방향에서 련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습니다."

1980년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과 1991년의 련방제 방식의 통일방안의 차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2000년 10월 6일 안경호 서기국장이 보고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해설한 내용을 가지고서는 민족통일기구와 연방국가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기 힘들지만, 김일성 주석의 1991년도 신년사를 읽어보면 그 관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신년사에 따르면, 연방국가 안에서 민족통일기구와 두 지역정부가 공존, 협력하는데, 지역정부가 민족통일기구보다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정부를 아직 내오지 못했고 두 지역정부들과 민족통일기구만 존재하는 조건에서 연방국가를 건설한 상태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일정부를 아직 내오지 못했는데도 연방국가를 건설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나는 두 지역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행사하고, 민족통일기구가 두 지역정부의 통치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절해나간다면, 비록 통일정부를 내오기 전이라도 연방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지역정부의 통치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절해나가는 민족통일기구는 아직 통일정부는 아니지만 통일정부의 조절기능을 이미 수행하는 것이다.

민족통일기구와 두 지역정부가 공존, 협력하는 낮은 수준의 연방국가의 상을 이해하려면, 비록 연방국가는 아니지만 연방국가 수준에 근접한 유럽연합의 현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들의 정치, 군사, 외교권을 조절하는 유럽평의회(European Council)와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가 있으며, 통일적으로 조절된 정치, 군사, 외교권을 행사하는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있으며, 유럽위원회 의장을 유럽연합 전체를 대표하는 수반으로 두고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또는 느슨한 연방제는, 남측과 북측에 지역정부만 있고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는 아직 내오지 못한 상태를 규정하는 정체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낮은 수준의 연방국가를 건설한 두 지역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민족통일기구에게 차츰 넘겨줌으로써 그 기구를 명실공히 통일정부로 전화, 발전시키는 내적 발전과정을 규정한 역동적 개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또는 느슨한 연방제는 낮은 수준의 연방국가를 건설한 두 지역정부가 어떻게 민족통일기구를 전화, 발전시켜 통일정부를 내오느냐 하는 문제를 규정하는 개념인 것이다.

둘째, 김일성 주석은 1991년도 신년사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이 공명정대한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임 확인하면서, 그 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좀더 쉽게 이끌어내기 위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그로부터 9년 뒤인 2000년 6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최고정치회담에서 연방제안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좀더 쉽게 이끌어내기 위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9년 전에 김일성 주석이 천명한 정치적 의사를 9년 뒤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행에 옮긴 것을 보면, 북측이 통일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개념을 6.15 공동선언에 넣은 것은, 연방제안을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으로 합의하지 않으려는 김대중 대통령과 최고정치회담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만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방제안을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으로 인정하는 남측의 진보정당 대표와 만났다면, 구태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까지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의 진보정당 대표와 만나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는 연방제안이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임을 함께 확인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연방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합의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진보정당의 통일정책에서는 연방제를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로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연방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밝히면 될 것이다.

7. 진보정당의 새로운 통일정책

위에서 그 허구성을 지적한 3단계 통일방안은 국가연합안에 매달려있는 정당들끼리 논하는 것이지, 연방제안을 실현하려는 진보정당이 논할 필요는 없다. 진보정당은 연방제안 이외에 어떤 다른 통일방안을 내오려고 고심할 필요도 없고, 절충할 수 없는 연방제안과 국가연합안을 절충하려고 고심할 필요도 없다.

오늘 진보정당에게 요구되는 것은 통일방안을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연방제안을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으로 인정한 바탕 위에서 연방제를 실현하는 통일정책을 내오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진보정당이 수행할 당면임무는 연방제안에 따라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진보적인 통일정책을 내오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통일정책은 진보정당의 집권전략을 기본으로 하여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방도와 경로를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진보정당의 집권전략이 들어있지 않은 통일정책은 진보적인 통일정책이 아니며, 진보정당의 통일정책으로 될 수도 없다.

진보정당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는 네 갈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국가연합안에 따라 '남북경제공동체'를 창설하려는 대북정책에 맞서서, 연방제안에 따라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범민족정치협의체를 내오기 위한 통일정책을 개발하고 그 정책의 정당성과 실현가능성을 공론화하는 것이다. 범민족정치협의체는 남측과 북측의 정부당국, 정당들, 사회단체들로 성립된다. 이번에 평양에서 열리는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그러한 정치협의체를 내오기로 합의하는 것을 진보정당이 요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둘째,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하고 통일을 실현하려는 행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통일촉진법을 제정하는 통일정책을 개발하고 그 정책의 정당성과 실현가능성을 공론화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선거공약에는 통일촉진법을 제정한다는 공약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셋째, 국가연합안에 매달려있는 정당들이 의회정치를 장악한 조건에서, 진보정당이 원내활동만으로 범민족정치협의체를 내오고 통일촉진법을 제정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보정당의 통일정책은 역시 대중운동에서 추진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진보정당의 통일정책이 대중운동전략과 직접적으로 맞물려야 함을 뜻한다. 진보정당은 자기의 통일정책을 대중운동전략과 맞물리게 하는 정책연구와 정치사업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넷째, 진보정당은 자신이 집권한 뒤에 어떻게 범민족정치협의체를 강화, 발전시켜 통일정부를 내올 것인가 하는 방도와 경로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민족통일기구 창설의 관계를 해명하는 연구과제일 것이며, 민주주의혁명과 조국통일의 관계문제를 밝히는 연구과제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약 10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대로, 국가연합안을 고집하는 세력이 남측에서 집권하는 한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을 합의하려는 과정에서는 소모적 논쟁만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무력통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평화통일이므로 남측 정부가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끝내 기피하거나 거부한다고 해도 북측 정부가 남측 정부에게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05년 9월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경제에 하나의 활로, 베트남 특수, 중동 특수보다 볼륨이 더 클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북방투자라고 인식하는 것이 사실에 맞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본가들의 군침을 돌게 하는 '북방투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북측의 개방개혁과 남북(북남)의 교류협력을 동시에 추진하려는 남측 정부는, 조미관계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추종하면서 '북한경제재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남측 정부는 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회담에 관심을 둘 리 없으며, 통일방안을 실현하는 범민족정치협의체를 내오는 문제는 아예 입에도 담지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최고정치회담을 해마다 정기적으로 갖는다고 해도, 남측 정부는 남북(북남)의 교류협력을 통해서 북측을 개방개혁으로 유도하려는 대북정책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고 끝내 국가연합안을 고집할 것이다.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과정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을 북측과 합의할 수 있고, 그 방안에 따른 통일정책을 밀고 나갈 정치적 주체는 여러 갈래의 진보변혁세력들이 결집한 진보정당밖에 없다. 이것은 남측의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여야 평화통일의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진보정당이 집권해야 북측과 합의하여 전민족정치협의체를 내올 수 있고, 남측과 북측이 합의하여 전민족정치협의체를 내와야 연방국가를 건설할 수 있고 한(조선)민족의 최대숙원인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북측의 연방제안에는 남측 진보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김일성 주석이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였던 1980년의 한(조선)반도 정세는 매우 복잡하였다. 광주민중항쟁을 잔혹하게 짓밟은 '신군부세력'은 석 달 뒤인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을 열고 학살원흉을 대통령 자리에 앉힘으로써 양민학살의 피가 흐르는 손으로 정권을 틀어쥐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보수야당의 정치인마저 극형에 처하려고 날뛰었던 정치암흑기였으므로 진보정당을 창당할 가능성은 없었고,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여러 갈래의 민주화운동세력들이 연립정부 형태로 집권할 가능성만이, 그것도 실낱같은 가능성으로 남아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북측의 연방제안에는 남측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반영될 수 없었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2000년 6월은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고 여섯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처음에 불과 수천 명 당원이 창당하였으니, 이전에 부침을 거듭하였던 진보정당들처럼 얼마 뒤에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자기 존재를 유지할 것인지 당시로서는 그 앞날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6.15 공동선언 제2항은 민주노동당과 조선로동당이 합의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상대로 하여 합의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조선로동당과 통일방안을 합의하였다면 6.15 공동선언 제2항과는 다른 내용의 정치적 합의가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진보정당이 6.15 공동선언 제2항의 정치적 합의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적 합의를 상정한 새로운 통일정책을 내올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비핵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되면서 한(조선)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조미관계 정상화가 성큼 다가온 지금, 집권전략을 반영한 진보적인 통일정책을 내오는 것은 진보정당이 수행해야 할 시급하고 중대한 임무로 되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진보정당은 허구적인 3단계 통일방안 주변을 맴돌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집권전략을 반영한 새롭고, 독창적이며, 진보적인 통일정책을 내와야 한다. 진보정당이 새롭고, 독창적이며, 진보적인 통일정책을 내올 때, 집권전략을 반영한 진보정당의 통일정책과 북측의 통일정책이 결합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연방제안은 더욱 풍부해지고 심화, 발전된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으로 완성될 것이다. (2007년 9월 9일 작성)

* 이 글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 2007년 9월호에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