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방북 이후의 한반도 정세전망과 대응방향

 

박경순(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2.13합의 이행의 발목을 잡았던 BDA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은 BDA 동결자금이 러시아 중앙은행에 입금되자마자 IAEA(국제원자력기구) 실무대표단을 공식 초청했고,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으로 달려갔다.

 

이에 뒤질세라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양제츠 외교부장이 핵 폐기 문제를 의제로 안고 내달 2-4일 평양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2.13합의 미 이행을 이유로 거부했던 쌀 차관 제공을 다시 하겠다고 밝혔다.

 

북미 양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은 2.13합의 이행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적 대결전으로 들어갔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해 보고, 향후 정세전망과 우리의 대응방향을 밝혀 본다.


 

1. BDA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정치적 대결전


 

BDA 문제가 드디어 풀렸다. 탐팍웬 마카오 경제재정사 사장(경제부총리 격)은 14일 “BDA에 예치된 북한 자금이 오늘 오후 마카오를 떠나 미국으로 송금됐다”고 밝혔다. 이 돈은 미국의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산하 뉴욕 연방 준비은행을 거쳐 러시아 중앙은행으로 이체된 뒤 러시아 극동 상업은행에 있는 조선무역은행 명의의 북한계좌로 송금됨으로서 3개월 동안 질질 끌었던 BDA 문제가 해결됐다.


그동안 미국은 그 어떠한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순수 기술적 장애 때문에 BDA 문제 해결이 지연됐다고 밝혀왔는데, 송금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어떠한 기술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 어떤 기술적 장애가 있었다면, 아무런 법적 제도적 장치를 변경 없이 순조롭게 송금이 이뤄질 수 없었을 텐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러한 과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송금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BDA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은 그 어떤 기술적 장애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금융제재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며, 그 상징적 사건이 바로 BDA 문제이다.

 

따라서 BDA 문제야말로 미국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에 따라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북미관계정상화에 나설 정책적 결단을 내렸는가를 실물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잣대로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BDA 문제 해결을 2.13합의 이행의 기본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BDA 문제 해결에 매달렸던 것이다.


반면에 미국 내 강경대결세력들은 대북적대정책의 수정을 달가워하지 않고, BDA 문제 해결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했다. 특히 금융제재수단을 고안하고 집행했던 미 재무부내 강경 대결세력들이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BDA 문제 해결이 약속시한보다 3개월이나 지연됐다.


미재무부의 네오콘(강경대결세력)들은 사악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금융제재를 고안해 냈고, 북한을 그 첫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들은 국제정치군사관계의 본질에는 무지한 채 자신들이 고안한 금융제재 방식을 절대적으로 신봉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산은 빗나갔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그 얄팍한 금융제재로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답변했다. 북한의 핵실험에 깜짝 놀란 부시 행정부의 핵심세력들은 대북적대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북한의 금융제재 해제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재무부내 네오콘들을 중심으로 한 강경대결세력들은 부시 행정부의 태도변화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금융제재의 칼날을 내려놓기를 거부했고, 이들의 반발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BDA 문제 해결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만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협상파들은 강경대결세력들의 사보타지에 참다못해 직접 나서 와코비아 은행을 설득했으나, 그에 반발한 강경대결세력들의 고춧가루 뿌리기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다.


와코비아 은행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후 부시 행정부로서는 더 이상 기술적 문제라는 핑계를 대고 BDA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고, 급기야는 국책은행을 직접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강경대결세력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게 되었고, 드디어 BDA 문제가 해결되기에 이르렀다.


BDA 문제 해결은 북 핵실험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당파싸움이 대북협상파의 승리로 귀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싸움에서 대북협상파가 승리함으로서 향후 북미관계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정상화라는 방향으로 확고히 물꼬를 틀게 됐다.

 

미국의 대표적인 네오콘인 졸 볼턴 전 유엔 대리대사는 BDA 문제 해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지 않은 채 BDA 자금을 돌려받고 다른 양보만 얻어냈다. 북한의 외교전략이 성공한 것이다”고 부시 행정부를 비난했다.


 

2. 크리스토퍼 힐 평양방문의 의미와 성과


 

부시 행정부가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책은행까지 내세워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미 행정부 내부의 당파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데에는 부시 대통령 스스로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동요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이런 부시 행정부가 국책은행을 앞세워 BDA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은 기존의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새로운 대북 관여정책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미행정부의 정치적 결단에 대해 북한은 IAEA 대표단 초청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조선신보는 “조선은 미국의 금융제재를 《적대시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으로 지목하고 BDA 문제의 해결방식에서 원칙적 입장을 일관하게 견지하여 왔다. BDA 문제를 둘러싼 지난 수개월간의 경위에 비추어보면 조선이 동결자금의 해제과정이 완료되기 전에, 그것이 마무리단계에 있다는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IAEA 실무대표단을 초청한 것은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신속한 대응에 이어 미국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차관보는 6자회담 당사국들을 순회 방문하면서 6자회담 재개문제를 협의했고, 급기야는 평양을 전격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힐 차관보의 평양방문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6자회담이 재개된 이후인 7월 중순이후 방북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 이렇게 빨리 전광석화처럼 방북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힐 차관보는 1박 2일 짧은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6자회담 재개에 관련된 협의를 갖고, 박의춘 외무상을 접견해 환담을 나누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평양 출발 직전 APTN과의 인터뷰를 통해 "6자회담 진전을 위한 만족할 만한 논의(good discussion)를 가졌다"고 밝혔다. 또한 회담의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꺼려했지만, "6자회담 과정의 모든 측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힐 차관보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평양방문 결과를 설명했다. 여기에서 그는 이번 회담을 구체적, 실질적이었으며 유용한 회의였다고 총평하고, “북한과 우리는 2.13합의의 완전한 이행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영변핵시설 즉각 폐쇄 ▲다음 단계의 불능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 6자 수석대표 회담 개최 ▲6자 외무장관회담 문제들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또한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다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체적 답변을 회피하면서도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포괄적 리스트를 논의할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힘으로서 우회적으로 시인하였다.


힐 차관보의 전격적인 평양방문은 2002년 제임스 켈리의 평양방문 이후 이루어진 첫 고위급 방북으로, 여러 측면에서 서로 비교된다. 2002년 제임스 켈리의 평양방문은 북미 핵 대결전의 문을 여는 방북이었다면, 이번 힐 차관보의 평양방문은 북미 핵 대결전을 끝내고, 북미평화공존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문을 여는 방북이다.

 

즉 하나는 대결을 위한 방북이고, 다른 하나는 대화와 협상을 촉진시키기 위한 방북이다. 힐 차관은 2002년 제임스 켈리가 지펴 논 지독한 상호 불신과 전면적 대결의 시대의 끝을 선언하고, 상호신뢰와 전면적 협력의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로 평양을 방북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이번 힐 차관의 방북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22일자 기사를 통해, “힐 차관보의 조선 방문을 계기로 조미관계의 진전과 6자회담의 합의 이행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조선은 현상유지를 바라지 않고 있고 목표 달성을 위한 합의 이행을 일부러 미루고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힐 차관보의 방북이 “조.미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말하고 “미국은 위협과 압력의 강화가 아니라 6자회담의 재개를 선택했고 미국이 종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3. 변화된 미국의 대북정책의 의의와 한계


 

10.9 북 핵실험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실험은 대북적대정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더 이상 기존의 정책으로는 그 어떠한 정책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격렬한 반발만을 초래했고, 급기야는 대북군사적 봉쇄망마저 무력화되고 말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기존의 대북적대정책을 더 이상 밀고 나갈 수 없게 됐고,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지배집단은 대북적대정책을 대북관여정책으로 바꾸는 새로운 대북전략을 모색했고, 중국을 중재자로 내세운 북미비밀협상을 통해 금융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임기 내에 종전 선언을 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완료하고 북미관계정상화를 실현할 의지가 있음을 공공연히 내비쳤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2.13합의로 결속되었다.


하지만 이미 낡은 기존 정책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강경대결세력들이 북미대화와 협상흐름을 못마땅해 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강력히 저항했다.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밀린 부시 대통령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함으로서 BDA 문제 해결이 벽에 부딪히면서 2.13합의 이행이 잠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북한은 금융제재야말로 대북적대정책의 집중적 표현이라고 보고, BDA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합의이행도 하지 않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강경대결세력들의 대안 없는 막가파식 저항은 시대의 흐름과 북미 힘의 역관계의 변화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저항으로 동요하던 부시 대통령이 새로운 대북정책노선에 손을 들어줌으로서 표류하던 BDA 문제가 해결되고, 2.13합의 이행의 물꼬가 트이게 됐다. 사태가 이렇게 정리됨으로서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은 이제 확고한 것을 굳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의 새로운 북미관계를 모색하는 것으로, 이를 대북 관여정책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관여정책이란 외교 군사 정치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압박과 공갈이 아니라 대상국과의 교류를 광범하게 증진시킴으로서 대상국가의 정치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으로 주체국과 대상국간의 상호협력을 증진시켜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정책인데, 이것을 포용정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영어로 engagement policy(관여정책)로 번역된다. 결국 관여정책과 포용정책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대북관여정책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은 기존의 대북적대정책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대북적대정책은 힘을 앞세운 위협과 공갈, 고립 압박을 통해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책으로서 대립과 충돌을 불러온다. 반면에 대북관여정책은 평화공존과 상호존중에 기초해 대화와 협상, 상호 협력과 관계정상화를 추구한다.


미국이 대북관여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게 되면, 2.13합의 이행과정에 여러 가지 난관과 장애가 발생한다하더라도 그것이 대립과 충돌 전면적 대결로 발전하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해결의 길이 열리게 됨으로서, 2.13합의 이행이 중단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게 되면서 새로운 북미관계의 형성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향후 한반도 정세는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상당기간 대화와 협상국면이 지속되고, 북미관계정상화와 한반도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되어 가면서 북미국교정상화에 기초한 새로운 한반도 질서가 수립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미국이 대북관여정책을 충실히 견지한다면 비핵화 문제는 사실상 핵심적 쟁점에서 빗겨날 것이다.

 

북핵문제란 것이 대북적대정책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북적대정책이 파기된다면 북핵문제도 역시 사멸할 것이다(미국의 세계전략의 하나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정책의 측면에서 북핵문제는 여전히 유효한 쟁점이지만, 그것이 관계정상화를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로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북정책(대북 관여정책)의 문제점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관여정책으로 돌아섰다 해도, 그것이 노리는 목표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을 유지 온존시키고, 강화하는 데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즉 대북관여정책을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의 포기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판이다. 우리들은 미국이 최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크게 떠벌이면서 종전 선언, 종전협정을 할 용의가 있다고 크게 떠벌리고 있는 진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현재 미국이 떠벌이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 주한미군 영구주둔과 유엔사 유지, 한미군사동맹을 전제로 하는 기만적인 평화체제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아직까지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대한 정치군사적 경제적 지배력과 영향력을 확대하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더 이상 쓸모없는 낡은 적대시정책을 버리고,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 유지를 전제로 한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것은 사실상 기만적인 유화정책에 불과하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다면 한반도 분단이 영구화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4.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자


 

미국의 새로운 대북관여정책은 지난 시기 대북적대정책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평화 지향적이며, 긍정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바람직하며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긍정성과 함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긍정성을 극대화하되, 위험성을 극소화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와 함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현재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여정책이 고정불변한 정책이라고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거나 북미역량관계, 또는 국제정세의 새로운 변화가 도래한다면 대북관여정책을 언제라도 대북적대정책으로 바꿀 수 있는 게 미국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조성된 유리한 국면을 최대한 활용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현 정세에서 우리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미국의 분단고착형 평화체제 수립의도를 좌절시키고,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분단고착형 평화체제란 한미군사동맹, 주한미군, 유엔사 문제를 배제하고 분단의 평화적 관리만을 목표로 하는 기만적인 평화체제를 말하며, 그렇게 될 경우 일시적 평화는 있을 지라도, 대립과 갈등, 전쟁을 낳은 근원으로 되고 있는 한반도 분단이 영구화됨으로서 공고한 평화는 요원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통일지향적 평화체제란 분단의 평화적 관리가 아닌 분단체제의 극복을 통해 갈등과 대립, 전쟁의 근원을 제거함으로서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말한다.


분단고착형 평화체제가 아닌 통일지향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기만적 종전 협정이 아닌 한반도 평화협정 즉각 체결을 요구하는 한편, 종속적 한미동맹 재편을 저지해야 한다.


최근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 임기 전 핵 폐기를 완료하고, 그 대가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완료하자는 주장을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 기지 평택이전, 유엔사 강화, 주한미군 전력 증강 등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 모순적인 행동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미국으로서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미국으로서 그 양자는 모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필수불가결안 요소인 것이다.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유엔사를 해체하고 한미군사동맹을 해체하는 평화체제가 아니다.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평화체제란 분단구조를 고수하면서 한미군사동맹을 강화해 한반도에 대한 정치군사적 영향력과 지배력을 유지 고수하는 한편 북한과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에 기초한 관계정상화(북미수교)를 실현함으로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평화체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체제는 일시적 평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전쟁과 대결의 근본원인인 한반도 분단과 미국의 한반도 지배구조가 온존됨으로서 쉽게 깨져버릴 수 있는 불완전한 평화체제인 것이다.

 

기만적 평화체제가 아니라 공고한 평화체제를 실현하려면, 미국의 이러한 의도를 분쇄하여야 한다. 미국의 이러한 의도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의도를 광범한 대중들에게 널리 폭로하고, 바람직한 평화체제의 상과 실현방도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만적 종전 협정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종전협정이 아닌 한반도 평화협정의 즉각적인 체결을 요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한미동맹 재편 시도를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저지해야 한다. 즉 주한미군기지 평택이전 반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반대, 전시작전지휘권 즉각적 반환, 유엔사 즉각 해체, 주한미군 전력증강 즉각 중단, 종속적 한미군사동맹 반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요구를 내걸고 적극적인 투쟁을 펼쳐야 한다.

 

둘째, 선 평화 후 통일론을 분쇄하고,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화해야 한다.


분단고착형 평화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지향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관여정책 채택으로 활짝 열린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남북의 자주적 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통일을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한반도 평화실현 투쟁과 자주통일운동을 밀접히 결합시켜 병행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정부의 핵문제와 남북관계 연계론은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종속시킴으로서 미국의 분단고착형 평화체제 전략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미국은 북미협상 국면으로 열린 공간을 활용해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해 통일로 나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미협상 국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묶어 놓기 위해 내놓은 전략이 바로 선 평화체제 후 통일론이다. 이것은 평화체제 구축 과정이 남북관계의 급속한 발전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고, 남북분단을 영구화하기 위한 교활한 술책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북미 대화와 협상국면은 남북관계 발전의 유리한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공간을 잘 활용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게 되면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화해협력구조가 정착되면서 한반도 평화 실현의 매우 유리한 국면이 창출된다. 한마디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체제 구축과정이 상호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연계정책을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동시병행 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여기서 동시병행정책이란 상호 연계정책에 반대되는 정책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문제 해결을 연계시키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상호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병행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운동 세력과 통일운동세력들은 선평화 후통일론을 분쇄하고,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떨쳐나서야 한다.

 

셋째, 한반도 평화실현에 유리한 국내정치적 지반을 확대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정은 수없이 많은 난관과 장애를 돌파해야 하는 힘겨운 과제이며, 따라서 단기간 내에 해결되기 어렵다. 핵시설 폐쇄와 북미수교에 이르는 과정만 하더라도 최소한 일 년 이상은 훨씬 더 걸린다.


이러한 과정이 순탄히 전개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세력에게 유리한 환경과 조건이 요구되며, 이러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특히 한국의 국내정치적 환경과 조건은 매우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실현에 유리한 국내정치적 지반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냉전적 법과 제도를 해체함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지향세력들의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지향세력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 대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세력과 평화세력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개척된다. 전쟁세력과 평화세력의 역량관계에 따라 한반도 평화실현의 폭과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한반도 평화세력, 통일세력들을 결집시켜, 단결단합을 실현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에 매우 유리한 기회가 열린 지금의 시점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결정적 돌파구를 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평화세력 통일세력들의 대동단결을 실현해야 한다.

 

단결과 투쟁만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줄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세력과 개인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기치아래 대동단결하여 단합된 힘으로 강력한 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 (2007.06.23)

 

* 이 글은 인터넷언론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