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를 잘 알자 (1)

2007년 2월  대한민국선군정치연구위원회

 

  최근년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선군정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선군정치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설글, 소개글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나 북한에서 선군의 위력이 거대하게 과시된 2006년 10월의 핵시험이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서곡이자 우리 민족이 통일강성국대국으로 나가는 주요 전기로 되었다고 할 때 북한의 선군정치를 잘 아는 것은 더 중요한 문제로 되고 있다. 
 이런 요구를 반영해 선군정치에 대한 해설과 소개를 해보려는 것이 이번 글의 취지이다. 

1. 선군정치란 무엇인가

 북한에서는 선군정치를 '군사를 제일 국사로 내세우고 인민군대의 혁명적 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 사회주의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나가는 혁명령도방식이며 사회주의 정치방식'이라고 정식화하고 있다.
 이렇게 정식화된 정의에 기초하여 선군정치가 무엇인지를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군사를 제일 국사로 내세우는 것이 선군정치이다.

 인류역사를 보면 한 국가의 흥망과 성쇠는 그 나라의 정치경제력, 군사력에 달려 있다.
 특히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시대에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진보민주진영이 파쇼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정치군사 역량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프랑스 혁명과 독일통합도 그런 사례의 하나로 들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 봉건세력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국왕을 처단하여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이런 프랑스 혁명이 민중혁명인 파리꼬뮌의 승리로 나가지 못하고 부르조아 혁명으로 그치고 말았는데 그것은 부르조아 세력의 무장력 우세 때문이었다. 여러 지역에 할거하던 소국들을 병합하여 민족국가를 형성한 독일통합도 강력한 군력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선군정치는 이런 인류역사의 경험과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에서 시작된 혁명과 건설의 역사적 전통에 기초한 것이다. 항일무장투쟁에서부터 시원을 찾는 북한의 혁명과 건설에는, 총대로 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총대로 혁명을 지키며 강력한 총대 위에 민족의 번영이 있다는 총대중시 사상이 일관되게 관통되어 있다. 
 이처럼 군사를 앞세우는 것만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지킬 수 있고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킬 수 있다는 투철한 인식에 기반하여 군사를 제일 국사로 내세우는 것이 선군정치이다. 
 한편 북한의 선군정치는 군사의 의미를 군력에 한정짓지 않고 전체 사회를 이끌고 선도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기에 정치체제도 국방위원회를 앞세워 군사 중심의 정치체제를 세웠고 경제건설에도 국방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건설노선을 세웠다. 즉 군대가 곧 당이자 인민이자 국가라는 인식에 기반하여 군사를 제일의 중심고리로 보고 여기에 힘을 집중하는 정치방식이 선군정치이다. 선군정치가 가지는 독창성, 정치방식으로의 독특한 특질은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혁명군대의 혁명적 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는 것이 선군정치이다. 

 군력은 단순한 물리적 힘이 아니라 정치군사적 힘이며 군대의 힘도 정치사상적 위력에서 나온다는 것이 군대에 대한 북한의 사상이다. 그러기에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는 것은 자연스럽게 인민군대의 혁명적 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민군대는 북한에서 반제계급전선의 최일선을 담당하는 주력부대라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계속되어온 미국의 대북압살, 전쟁책동에 맞서 군사적 대결 특히 핵전쟁 태세를 갖추어온 북한에게 혁명군대는 그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제일선 투사들이다.
 특히 90년대 고난의 행군 동안 북한의 혁명군대는 당과 국가를 지키는 제일 전초병들이었다.
 바로 이런 혁명군대에 의하여 창조되는 혁명적 기질, 전투력이야말로 제일 높은 자주성과 창조성을 실현하고 있으며 이들의 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는 것이 선군정치이다.
 북한에서 혁명군대는 수령과 당, 국가와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다바쳐 투쟁하는 혁명적, 전투적 집단이다. 미군의 작전지휘를 받으며 국민들을 학살하고, 내심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남한의 군대와는 전혀 다른 군대라고 할 수 있다.
 수령을 결사옹위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대는 자폭정신을 발휘하며 당의 명령을 무조건 결사관철하는 것이 북한의 혁명군대의 모습니다. 북한의 혁명군대는 안변청년발전소(일명 금강산 발전소)와 같은 어려운 건설장의 지하 막장에서 청춘을 바친 노동으로 경제건설의 돌파구를 열어냈다. 그리고 북한의 혁명군대 안에서는 영웅적 희생주의 정신으로 동지들을 지킨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북한에서 군인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새로운 형의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군정치는 이런 혁명군대가 가장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 뜨거운 선군동지애, 높은 규율성과 계급적 원칙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이들의 혁명적 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이끌어 가는 정치방식인 것이다.  

 다음으로 위의 내용에 근거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나가는 것이 선군정치이다.

 군사를 앞세우며 혁명군대의 힘으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는 것이 선군정치이다. 어떤 국가라도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막아내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정치, 경제, 문화를 창조하는 국가나 민족이 있다고 하여도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면 생존자체를 장담할 수 없다. 정의는 지켜져야 하며 그것은 바로 막강한 군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선군정치는 바로 이런 인식에 기초하여 군력으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는 정치방식이다.
 2006년 북한에서 미사일 발사, 핵시험을 연이어 진행, 성공을 거둔 것은 미국의 핵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핵억제력을 구축한 것으로 군력에 의거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지키겠다는 북한 선군정치의 결실이라고 하겠다.
 선군정치는 또한 군력으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는데서 나아가 전반적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쳐 나간다.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강성대국건설론으로 혁명군대가 조국보위만이 아니라 경제건설의 어려운 귀퉁이를 맡아서 전반적 경제건설의 양양을 일으키는데 앞장선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2년 실리 위주로 경제관리개선조처를 취하고 정보통신분야, 생명공학분야, 나노공학분야를 미래 역점산업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경제 발전 전략은 군력으로 경제건설에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면서 높은 군사과학기술을 산업기술로 전환시켜 경제 분야에서 일대 비약을 이루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2. 선군정치, 사상의 출현 배경

 모든 정치방식은 자기의 고유한 출현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선군정치 역시 그렇다.
 선군정치에는 뿌리깊은 역사적 전통이 있고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는 실천과정이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요구가 담겨 있다. 

 선군정치는 깊은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에서 민족적 정통성을 찾고 있는데 항일무장투쟁 자체가 바로 총대중시사상에 기초한다. 일제의 극악한 식민 파쇼통치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무장이다, 발톱까지 무장한 적은 무장으로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이 당시 항일무장투쟁의 총대중시사상이었다. 일제와 만주군경의 토벌을 물리치고 만주벌판과 산악밀림의 엄혹한 자연환경을 이겨낸 항일유격대는 전민족통일전선조직인 조국광복회를 조직하고 보천보를 쳐 일제를 경악케 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8.15해방의 주역으로 부상하였다.
 해방 이후 복잡한 정세에서도 김일성 주석은 군 건설에 박차를 가해 6.25전쟁 전에는 정규무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건설된 지 2년여밖에 되지 않는 그 정규무력이 6.25 전쟁에서 세계군사강국 미국과 당당히 맞서고 자주권과 존엄을 지켜낸 승리를 이루어 내게 된다.
 이후 북한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공업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도 미국에 의한 핵전쟁위협은 계속되었다. 북한이 60년대에 국가시책으로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을 함께 밀고가는 병진노선과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고 90년대에는 국방위원회를 새로 내놓은 것은 이런 미국의 핵전쟁위협에 맞서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이처럼 북한의 역사 자체가 총대중시사상의 실천이었다. 그러기에 북한의 혁명군대는 북한 사회의 기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군정치는 또한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는 실천과정에서 정립되었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은 미국의 악랄한 대북고립봉쇄전략,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 김일성 주석의 서거, 홍수, 가뭄 등 연속되는 자연재해 등으로 국가의 생존자체가 위협받은 95-98년 즈음을 의미한다.
 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이 핵동결을 하는 대가로 미국은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은 내심 북한이 3년 이내에 붕괴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당시 남한의 친미민간독재정권이었던 김영삼정권도 북한의 붕괴는 시간 문제라며 대북봉쇄전략이네 무슨 급변사태네를 떠들어대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친미세력의 이런 헛된 바램은 한갓 춘몽으로 그치고 만다. 98년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로 건재함을 과시할 뿐 아니라 더 강력한 정치, 군사, 경제력을 갖춰가고 있음을 선포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90년대 고난의 행군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미국의 고립, 압살책동과 자연재해로 공장이 멈추고 식량이 부족하여 풀뿌리도 먹어야 했으며 맨 손과 정만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했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북한은 자신의 존엄과 중공업토대를 버리고 식량을 얻는데 매달린 것이 아니라, 선군의 기치를 들고 중공업토대와 국방공업을 강화하고 군력을 강화하는데 총 매진한다. 북한은 군력을 약화시키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가는 모든 것이 거덜나고 만다, 그러기에 군력 강화로 제국주의의 봉쇄환을 뚫고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며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였다.  
 막강한 군력을 갖추면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경제건설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을 버리면 결국 미국에게 먹히고 만다는 것이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민들의 투철한 신념이었던 것이다. 
 북한은 바로 그 투철한 신념으로 단결하여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했고 결국 막강한 군력으로 미국과 친미세력들의 반북공세를 물리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제꼈다. 북한에서 이런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힘과 원천을 정식화한 것이 바로 선군정치이다. 

 선군정치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나왔다.

 선군정치는 선군사상으로도 불리는데 그것은 선군정치가 자주성의 시대를 지키고 개척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세계는 앞으로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논란이 분분했다. 냉전이 해소되고 협력의 시대로 나갈 것이라는 환상적인 견해도 있었고 미국의 일극체제가 완성되었다는 제국주의자들의 환호성도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이후 세계는, 제국주의자들의 강권과 전횡이 판을 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펼쳐지는 조건에서 민중들이 군력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자주성을 지키고 실현하여 가는 선군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구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자신들의 일극지배체제의 완성으로 보고 과거에는 손도 대지 못했던 이라크와 유고를 침략해 자신들의 군사패권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세계 시장 곳곳에서 초국적 자본들은 초과이윤을 창출한다. 그 결과 미국이 주요 전략지역으로 찍은 곳의 힘없는 국가나 민족은 처참한 전쟁의 참화에 휘말리게 되었고, 세계적 차원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어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부도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류역사가 야만의 시대, 약육강식의 시대로 된 것이다. 
 이런 시대상은 한반도에도 그대로 미쳐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고립과 압박, 전쟁책동을 어느 때보다 강화했고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자주성을 지향하며 자주롭고 평화로운 새세계를 건설하려는 진보적 인류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막강한 군력만이 미국의 패권과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자각이 싹트고 선군의 기치 든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선군시대이다. 그리고 그 선군시대를 제일 먼저 인식하고 열어낸 것이 북한의 선군정치이다. 그러기에 북한의 선군정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낸 시대의 지도적 정치방식이자 노선, 사상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시대, 선군시대라고 할 때 그것은 민중이 인류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자주 시대의 새로운 단계, 새시대로 봐야 한다. 그것은 선군정치, 선군사상의 종국적 목적이 결국 민족, 민중의 자주성 실현에 있으며 그 출현도 바로 변화되는 시대 환경에 맞게 자주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생결단의 투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3. 선군정치의 뿌리

 시대의 지도적 정치방식과 사상은 그 뿌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선군도 역시 그러하다. 선군은 항일무장투쟁에서부터 시작된 김일성 주석의 총대중시사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영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군정치, 선군사상은 김일성 주석의 총대중시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항일무장투쟁의 빨치산 대장으로 널리 알려진 군사의 대가이다. 김일성 주석은 1930년대 "무장은 생명이다. 무장에는 무장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국가적 후방도 외부의 지원도 없이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반일인민유격대와 조선혁명군을 내오고 15년 간 일제의 관동군과 위만군, 조선주둔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항일운동을 고양시켜 광복의 주역이 되었다. 
 무장으로 항일을 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사상은 총대중시사상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총대중시사상이 북한의 혁명과 건설에도 일관되게 관철된다.  김형직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원의 사상과 권총 두 자루, 동지사랑. 바로 그것이 혁명밑천이었다고 김일성 주석은 회고록에서 회상했다. 항일 혁명 당시 당조직도 통일전선도 혁명군대의 군사활동에 기반하여 조직되었고 혁명군대의 엄호 하에 장성, 강화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해방 후에도 정규무력을 건설하는 사업에 모를 박아 1948년에는 지금의 조선인민군 즉 정규군을 창설하고 현대적인 병종을 갖춘 육, 해, 공군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해방 후 민주개혁과 당 건설,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민족적 과제가 나서고 있고, 미군정과 이승만의 노골적인 북침전쟁 도발이 계속되는 속에서 강력한 정규무력 건설만이 당면한 난관을 돌파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6.25 전쟁은 김일성 주석의 총대중시사상의 진가를 보여준 전쟁이었다. 북한은 청소한 무력이었지만 사상과 전술의 우세로 양적, 군사기술적 열세를 극복하여 기적을 창조했다. 이런 북한의 군사전략은 이후 사상에 기초한 총대에 영활한 전략, 전술과 현대적 과학기술을 결합하여 승리를 쟁취한다는 내용으로 발전하게 된다.    
 6.25 전쟁 후에도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계속되는 속에서 소련에서 수정주의가 대두되고 중소분쟁이 발생하는 등 국제정세가 복잡하여졌다. 당시의 국제정세는 북한이 철저히 자신의 힘으로 자위적 국방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의 정세적 요구를 반영하여 북한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 노선, 4대 군사노선이 정립되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관철되는 북한의 자위적 국방력 강화 노선이 되고 있다.  
 북한과 같이 경제규모가 크지 않는 나라에서 현대적 국방공업을 갖추기 위한 국방건설을 경제건설과 병진해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를 전략노선으로 채택하고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 지금은 탱크와 함선, 전투기와 미사일 그리고 핵무기까지 자체로 만들어내는 강력한 국방공업을 갖추게 되었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이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로 국방공업을 꼽는 것은 그만큼 많은 피와 땀이 들어갔고 위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의 총대중시사상은 후계 문제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김일성 주석은 11살 나이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만경대 가문의 권총을 넘겨주며 강력한 총대, 혁명군대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뜻을 심어주었다. 선군 총대의 뜻을 이어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0년대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며 1974년 2월에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추대되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80년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91년 12월에는 조선인민군총사령관이 되었다. 새로 내온 국방위원회에서는 제1부위원장으로 1990년 5월에 선출되었으며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1993년 4월에 추대되었다. 결국 후계의 핵은 총대의 계승이었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전군 지휘관들에게 권총을 수여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무조건 복종, 충실할 것을 당부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김일성 주석의 총대중시 사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선군정치, 선군사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영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11살의 나이에 만경대 가문의 권총을 물려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활동, 영도활동 역시 선군의 뿌리로, 전통으로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치활동을 시작한 첫 시기부터 군사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독창적인 영도 활동을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학시절 발표한 논문 중에서 군사관련 논문을 찾아 볼 수 있으며 학창시절 어은동 야영군사훈련에서는 당시 지휘관들도 놀라게 한 군사적 안목과 지휘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최초로 군부대를 방문하여 현지 지도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0년 8월 25일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 방문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본격적인 선군영도활동이 이 시기부터 시작하였다고 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영도는 장장 47년에 걸친 것이라고 하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사지휘관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은 푸에블로호를 제압하여 나포한 뒤 미국과 대결하여 승리를 이끄는 과정에서도 드러났으며, 1993년 준전시상태 선포와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 1994년 완강한 군사외교전을 벌여 클린턴 행정부를 무릎굻린데서 뚜렷이 보여졌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대북전쟁계획을 실행단계까지 진입시켰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활한 군사외교전에 밀려 결국 94년 북미제네바합의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한반도 정세는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또한 94년 이듬해부터 시작된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그 승리 과정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영도실력을 뚜렷이 보여준다. 고난의 행군 기간 나라와 국가의 존망은 바로 군력에 달려 있다는 필사의 의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영도가 펼쳐졌다. 그 결과 북한은 선군정치로 자주권과 존엄을 지켜냈을뿐아니라 막강한 군력과 경제발전의 도약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을 통해 선군정치방식, 선군사상이 정식화되고 북한 사회를 관통하는 지도적 사상, 노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선군정치의 활력에 힘입어 지금은 세계 각국도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영도는 군부대 시찰을 통해 많이 이루어지는데 고난의 행군 첫 발길을 다박솔 초소로 향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며 2001년 한해만도 3만리 노정에 현지시찰한 군부대단위가 130개에 이른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현지시찰은 혁명군대가 최고사령관과 혼연일체를 강화하고 전투력을 높이는데 결정적 작용을 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인들을 나의 아들딸들이라며 아무리 어렵고 험난한 초소도 마다하지 않고 들르고 있으며 군인들의 공연도 보아주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육친적인 단결을 실현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장에서 전투력 태세를 점검하고 대책을 세움으로써 군대를 한손에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는 영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는 돈과 명령, 채찍으로 유지된다. 참모급 지휘관들이 현장에 나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것으로 지휘관들은 거짓정보에 둘러싸여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병사들은 자신들의 군사임무에 회의를 느끼고 정신병에 걸리기도 한다.
 북한의 군대는 이런 자본주의 군대와 다르게 정치사상적 대, 계급적 원칙이 강하고 최고사령관과 선군동지애로 뭉쳐있다. 그리고 군민일치가 실현되어 높은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것이 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부대시찰의 결과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또한 군인들을 사회주의 건설의 어려운 귀퉁이를 맡김으로써 그들이 혁명과 건설의 주역이 되게 하고 있다. 안변청년발전소(일명 금강산 발전소) 건설, 금륭2동굴 건설, 구월산 유원지 건설은 최고사령관의 군사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막강한 국방공업을 건설하여 미국이 독점하려고 하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서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북한에서 선군정치, 선군사상은 뿌리와 전통이 굳세며 온 사회를 하나로 단결시켜 핵폭탄보다 위력한 힘을 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