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최신무기가 되어 돌아온 권용목

e뉴라이트 노동운동f은 노동운동 와해 전술

이석철
2006년 11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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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파괴f에서 e길들이기f로

미국의 진보적 작가 잭 런던은 대표작인 e강철군화f에서 1930년대 미국 자본가들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허물어 버리기 위해 어떤 방식을 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시의 자본가들은 직업적인 e노조 파괴자f를 고용해 노조 지도자들을 회유․협박하거나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테러를 가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빼앗기고 짓밟힌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일에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손쉽고 익숙한 수단이었다. 한때 거리와 공장마다 최루탄과 e백골단f, e구사대f와 식칼테러가 난무하고 노조 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수배․구속 사태가 끊이지 않았던 우리의 눈에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의 자본가들이 폭력에 의존한 탄압 방식의 한계를 절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e공식적인f 테러와 e합법적인f 처형은 노동자들의 영웅을 길러낼 뿐이었고 노조 지도자 한 사람을 제거하면 열 사람, 백 사람의 새로운 지도자들이 뒤이어 나타났다. 자본과 권력이 폭력을 휘두를수록 그것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누가 적이고 누가 자기들 편인지 확실하게 가려보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 자본가들은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노동운동을 말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노동조합 상층부 인사들과 e친분f을 맺고 그들을 정치적․재정적으로 e후원f하며 e타협f을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한다. 오늘 미국 노조의 고위층 인물들은 자본가들이 제공하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니고 초호화 유람선 여행으로 휴가를 즐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노동조합들은 자본가들을 e타도 대상f으로 규정하지 않으며 e회사에 대한 협조f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임금 인상이나 복지 확대와 같은 e권익 확충f에만 힘쓴다. 때로는 노동조합 스스로 e회사를 위한 희생f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동자 대중은 e전투 의지f를 상실하고 자신의 e대리인f인 노조가 자본가들로부터 얻어다주는 약간의 e혜택f에 감지덕지할 뿐이다. 자본가들은 노조 파괴가 아니라 e길들이기f에서 더 큰 e효율성f을 찾은 것이다.

진보하는 노동운동 와해 수법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공권력의 단순․무식한 폭력보다는 더욱 치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길들이려는 시도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e먹칠하기f와 e흔들기f 수법이 대표적이다. 일부 노조 간부의 비리를 들춰내거나 민주노조들의 활동에 e좌경f e폭력f e불법f e이기주의f의 이미지를 덧칠하는 것은 전자에 해당한다. 이런 e먹칠하기f가 노리는 목적은 사회 전체에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고 노조원들의 자신감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e흔들기f 수법은 e먹칠하기f에 비해 훨씬 교묘하고 폐해도 더 크다. 노동운동이 근거를 두고 있는 이념이나 이론을 비틀거나 괴상한 논리(?)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기, 운동의 정책이나 노선 차이를 부풀려 내부 갈등을 조장하기, e회색f 또는 e백색f 조직을 만들어 노동자 대중을 분열시키기 같은 것들이 e흔들기f에 속한다. 이것은 노동운동의 이론적 및 조직적 바탕 자체를 허물어 노동조합의 존립 기반을 제거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e악랄하다f고 평할 만하다.
한국의 자본과 권력이, 또는 그 e배후 조종자f들이 e보다 개선된 수법f으로 민중운동 역량을 와해시키기 위해 시도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기에는 유치하고 치졸한 수법으로 역효과만 내던 그들이 e진일보한 성과f를 얻기 시작한 것은 냉전 해체 시기부터이다. 그들은 사회주의권의 연쇄 붕괴를 기화로 일부에서 이념적 동요가 일어나고 운동세력이 자기 혁신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빈틈을 파고들어 제법 e짭짤한f 재미를 봤다. 1990년대 초․중반, 그들의 손에서 e사상전향자f, e제도권 진입자f들이 양산됐고 운동진영 내부에는 e사고의 전환f과 e타협f을 표방하는 흐름이 스며들었다. 과거에 비해 힘이 크게 약해진 지금의 학생운동은,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e먹칠하기f와 e흔들기f 작전이 거둔 대표적 e성과f다.
학생운동 약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know-how)는 노동운동 와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노동운동 와해 작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담근 그들은 폭력 진압과 여론몰이를 계속 강화하는 한편으로 다양한 e흔들기f 공략을 펴고 있다. e유명한 노동운동가를 내세우고, 노동운동 이념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뒤집으며, 친(e) 자본적인 단체를 만들어 노동운동세력을 분열시킨다f는 게 그들의 작업 공식이다. e전투적 노조운동의 상징적 존재f이며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는 권용목 같은 인물은 그런 공식에 딱 들어맞는다.

e자본의 첨단무기f로 변신한 권용목

천안 공고를 나와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권용목은 1980년대 후반 민주노조운동의 폭발적 확대기에 거물급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전형적인 인물이다. 1987년 노조위원장이 된 그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강경 투쟁을 이끌고 네 차례의 투옥과 수배 시절을 보내면서 노동운동계의 대표적 존재로 떠올랐다. 이런 상징성은 그로 하여금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의 초대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해주었다. 지방 공고 출신의 평범한 노동자에서 민주노총 사무총장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밑바탕에 동료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지지와 성원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그가 10년이 지난 오늘, e뉴라이트 노동운동f의 총대(?)를 메고 돌아왔다. 1997년 홀연히 노동운동을 떠났던 그는 얼마 전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융숭한 환대를 받으며 다시 등장해 e새로운 노동운동f을 꺼내놓더니 지난 9월23일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신노련)을 띄웠다. 현재 e신노련f의 대표로 활동중인 그는 앞으로 e제3의 노총f을 만들겠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이 앞다퉈 띄워주고 있는 그의 e새로운 이론f을 살펴보면 그간 자본과 권력이 펼쳐온 주장과 완전히 똑같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자본과 권력이 하고 싶은 말을 권용목의 입을 빌어 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가와 권력자들이 아무리 말해봐야 호응을 얻지 못하니까 e전직 노동운동가f의 목소리에 실어 세간의 관심을 끌어 보자는 것이다.
<월간 조선> 9월호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권용목은 노동운동계를 떠난 뒤 g2003년까지 주로 러시아․중국 등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돌아다녔다h고 한다. 이어지는 인터뷰는 사회주의를 포기한 나라들의 e참상f을 부각시키고 북한을 e망해 가는 나라f로 깎아 내린 뒤, e경제 성장을 이룩했다f며 박정희에 대한 칭송으로 나아간다. e사회주의를 지향하면 망한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우월하다. 우리는 박정희가 있었기에 이만큼 산다f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세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되풀이해온 닳고닳은 레퍼토리의 재탕이다.
권용목은 e숭고한 자본주의f를 예찬한 데 이어 g현 시대는 e세계화f와 e무한경쟁f의 시대h라고 규정한다. 자본 이동과 시장의 확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 자유화로 g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h는 것이다. 그가 e경쟁의 심화f를 강조하는 이유는 g세계를 휩쓸고 있는 무한경쟁에서 이기려면 기업을 살려야 하고,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사는 것이니,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e기업 살리기f에 나서야 한다h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권용목은 g노동자들 스스로 나서서 e세계 일류 공장f과 e세계 일류 상품f을 만들어내자h고 자못 결연하게 선언한다. 이 말을 들으며 흐뭇한 웃음을 지을 자본가들이 보이는 듯하다.
권용목이 핏대를 세우며 늘어놓는 주장의 반(”½) 노동자적 입장은 g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h이라고 위협하면서 g노동계는 e착취와 수탈f의 세계관, e노동해방f의 사상을 버려라h고 하고, g경제가 성장하면 가장 큰 덕을 보는 것은 노동자들h이라고 단정짓는 대목에서 확연해진다. 
과거의 e노동해방 투사f가 보는 오늘의 세상에는 경제 규모가 커져도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직자가 끊임없이 양산되는 현실은 없으며, 사회적 위기를 부채질하는 빈부 격차의 심화 및 세습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대 정권의 무책임한 e신자유주의f 정책과 사회적 책무를 외면한 재벌그룹의 취약한 구조가 불러온 eIMF 사태f도 g노동조합의 투쟁 때문h이고, 경제 성장의 열매는 상위계층이 독차지하고 대다수 근로대중은 실업과 빈곤의 위협에 깔려 신음하는 현실도 g노동조합 때문h이란다. 그래서 지금은 노동자들이 g눈물나게 고마운 일자리 하나h를 얻으려고 g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하는h 시대란다.

g배신자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h

스스로 고백했듯 권용목은 확실한 신념이나 이론도 없으면서 e우연히f 노동운동계의 거물이 되어버린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를 목격하고 혼란에 빠진 e일부 운동권 인사들f이 흔들릴 때 덩달아 방황하다가 변화된 시대 상황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노총 상층사업에 적응하지도 못해 결국 운동판을 떠났다. e절이 싫어 중이 떠난f 셈이다. 운동을 포기한 뒤 2000년 4․13 총선 때 집권여당의 울산 중구 조직책을 맡는 등 정치권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출마를 포기했다고 한다.
의혹을 자아내는 것은 운동을 이탈한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 재등장하기까지 10년 가까운 세월의 행적이 불분명한 점이다. g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상을 돌아보았다h고 하는데 그 기간에 친(e) 자본적 세계관과 e새로운 노동운동f의 입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두 달도 아니고 몇 년씩이나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다녔다는데 여행 경비와 언어 문제, 생계 문제는 누가 해결해준 것이며 e새로운 견해f를 세우도록 도와준 것은 과연 누구일까.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배신한 변절자가 권용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노동운동사에는 가슴아프지만, 동료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얻어진 명성을 자신의 영달과 치부를 위해 팔아먹은 수준 이하의 망종들이 적지 않게 있어 왔다.
그럼에도 권용목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가 변절을 합리화하는 변명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옛 동지들과 동료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칼질을 서슴지 않으면서 선심이나 쓰듯이 e변신f을 촉구하는 e훈계f를 늘어놓기 때문이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단결을 깨뜨리고 분열시키는 e자본의 이중대f에 불과할 e제3의 노총f을 만들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을 수 없는 증오와 저주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권용목이 g e배신자f e변절자f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고h 실행에 옮기려는 e새로운 노동운동f이란 철저히 자본과 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는 반(”½) 노동 활동이며 그가 꿈꾸는 e제3의 노총f은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한국노총에도 비견될 수 없는 반(”½) 노동 단체일 뿐이다. 그는 과거의 전력과 명성을 팔아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동료였던 노동자들을 자본가들의 굶주린 입 속에 통째로 던져주려는 것이다.
양의 탈을 썼다고 해서 늑대가 양이 되는 법은 없다. 어떤 궤변으로 치장을 하고 사람들을 홀리는 e향기f를 피운다 해도 변절자는 변절자이고 배신자는 배신자일 뿐이다.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고 동료들을 팔아먹은 자가 갈 곳은 더 큰 변절과 극단적인 배신의 길밖에 없다. 지금 권용목이 노동자와 국민들을 현혹하기 위해 던지고 있는 달콤한 유혹의 덫은 결국 자신을 겨냥한 화살이 되어 되돌아오고야 말 것이다. 그가 e비극적 최후f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린내 나는 입을 다물고 그냥 조용히 살아주는 것이다.
노동운동 진영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교활해지는 자본과 권력의 공세에 소극적 방어가 아니라 적극적 반격으로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념․이론 분야에 대한 흔들기에는 진리와 진실을 무기로 맞서고, 조직 와해 전술에는 더욱 공고한 단결로 대처해야 한다. 무엇보다 치열한 사색과 실천으로만 증명되는 진정성을 놓치지 않을 때 노동자 대중과 절대다수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