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중항쟁의 사회변혁적 의의에 대하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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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생존권 사수에서 저항권 행사로
2. 정치적 실천으로 넘어야 할 한계들
3.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무엇에 맞서 싸우는가


1. 생존권 사수에서 저항권 행사로 

2006년 11월 22일.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가슴속에 덧쌓여온 분노와 원한이 마침내 폭발하였다. 민주노총 조합원 20만 명이 총파업투쟁으로, 근로농민 7만 명과 각계각층 8만 명이 시위투쟁으로 대중항쟁의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날 서울을 비롯한 11개 광역시도청 소재지들에서 대중항쟁에 참가한 인원은 15만 명이었다.
공장과 기업의 문을 박차고 달려나온 노동자들, 논밭에서 일손을 멈추고 모여든 농민들, 강의실로 향하던 길을 돌이켜 거리에 나선 대학생들, 교단을 비우고 달려나온 교사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각계각층 대중이 거대한 투쟁대오를 형성하고 투쟁구호를 외치며 도심에 진출하였다. 피묻은 진압봉과 날선 방패 따위의 폭력도구로 무장한 경찰병력이 완강하게 막아선 저지선을 무너뜨리며 그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노동기본권 쟁취하자! 사회양극화 해소하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하자! 이것이 15만 명의 함성으로 울려 퍼진 투쟁구호였다. 총파업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 20만 명은 노동법 개악 저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를 투쟁구호로 외쳤고, 서울에서 열린 대중집회에서는 전쟁위협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강요하는 미국을 반대한다, 민생을 파탄시키고 노동기본권을 말살하는 노무현정권을 심판한다는 투쟁구호가 나왔다.
15만 명이 궐기하여 대중항쟁을 일으키자 당황망조한 노무현정권은 항쟁을 이끈 지도성원 100여 명에게 긴급체포령을 발동하고, 각 지역에서 투쟁거점들을 침탈하는 광적인 탄압으로 맞섰지만, 11월 29일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10만 명이 제2차 대중항쟁을 일으켰다.
노무현정권과 수구언론은 추잡한 목소리를 높여 대중항쟁을 폭력시위, 불법시위, 난동이라고 줄곧 중상, 비방하였다. 하지만 11월 대중항쟁은 그들의 비난공세와 상관없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역사 한복판에서 그 장엄한 역사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밀고 나간 대사변이다. 사회변혁에 대한 무지와 둔감을 걷어내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주체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때 비로소 11월 대중항쟁의 의의가 뚜렷이 시야에 들어온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은 15만 명이 참가한 대중항쟁을 일으킴으로써 자기의 피땀을 쥐어짜고 숨통을 조여온 낡고 썩은 세상을 뒤집으려는 사회변혁의 이정표를 세웠나니, 11월 대중항쟁이 가지는 의의는 거기에 있다. 
11월 대중항쟁이 사회변혁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그 뜻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피땀을 흘리며 헤쳐온 투쟁역사 속에서 헤아려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헤쳐온 투쟁역사에서 획기적 의의를 가지는 세 차례의 투쟁경험을 기억에 되살릴 필요가 있다. 1987년 6월항쟁, 1996-97년 총파업투쟁, 2002년 농민상경투쟁의 경험이다. 그 세 차례 투쟁경험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주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1987년 6월항쟁은 일반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이었고, 1996-97년 총파업투쟁과 2002년 농민상경투쟁은 각각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의 생존권을 사수하는 투쟁들이었다. 
보통선거,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와 같은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반민주주의는, 반동적 지배계급을 제외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계급계층적 차이를 넘어서 기본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사회정치적 가치이다. 그러므로 1987년 6월항쟁에서 제기된 일반민주주의의 요구는 남(한국)사회의 구성원 전체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직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항쟁의 정치적 주도권은 이른바 '재야세력'이 정치적으로 대표한 도시중산층에게 주어졌고, 그 항쟁의 현장투쟁력은 나중에 '386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대학생계층에게서 분출되었다. 그 항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도시중산층과 대학생계층의 자생적인 공조가 실현되었으나,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는 것보다 자기의 생존권을 사수하는 것을 더 절실하게 요구하였던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은 1987년 6월항쟁에 나서지 않았다. 
1987년 6월항쟁은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이 거대한 투쟁동력을 발동시키지 않은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폭발하였으며, 결국 도시중산층이 요구하였던 일반민주주의의 과업도 완수하지 못한 채 대통령직선제 실현이라는 초보적 수준에서 맴돌다가 혼란스러운 대선열풍 속에서 막을 내렸다. 도시중산층과 대학생계층의 자생적 공조역량이 주도한 6월항쟁이 그처럼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사회계층이 애초에 자기의 투쟁에서 사회변혁의 발전전망을 배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중산층과 대학생계층의 자생적 공조는 '6.29선언'이라는 지배계급의 반격이 시작되자 우왕좌왕 동요하다가 우르르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에 비해서, 1996-97년 총파업투쟁은 정권의 법적, 제도적 보장에 의해서 강화된 자본계급의 계급적 착취에 맞서 싸운 노동계급의 격렬한 투쟁이었다. 그 투쟁이 가지는 의의는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일어났던 총파업투쟁에서 시작되어 10년 동안 강화, 발전되어온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조직되고 단련된 노동계급이 총파업투쟁의 깃발 아래 단결하여 계급적 이익을 쟁취하는 생존권사수투쟁을 전면적으로, 조직적으로 일으켰다는 것이오, 둘째는 노동계급이야말로 계급독재의 억압과 폭력에 맞서 가장 격렬하게 투쟁하는 사회계급이라는 점을 현실로 입증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6-97년 총파업투쟁은 노동계급이 농민, 빈민, 도시중산층 같은 각계각층 근로대중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폭발하였으며, 결국 노동계급의 계급역량만으로는 반동적 계급독재의 억압과 폭력을 물리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채 '노사정 3자타협'으로 막을 내렸다. 노동계급의 격렬한 총파업투쟁이 그처럼 타협으로 막을 내린 까닭은, 총파업투쟁이 반동적 계급독재를 청산하는 사회변혁의 발전전망을 갖지 못한 채 노동계급의 직접적 이익을 쟁취하는 생존권사수투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2002년 남(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반대하여 일어난 농민상경투쟁은 농축산물시장의 지속적인 개방으로 생존권을 빼앗기고 있는 근로농민이 서울에 집결하여 총궐기한 격렬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2002년 농민상경투쟁은 노동계급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지 못하고, 빈민과 도시중산층 같은 각계각층 근로대중과도 정치적으로 연대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폭발하였으며, 시위투쟁을 야만적으로 진압하려는 경찰폭력에 가로막힌 채 막을 내렸다. 농민상경투쟁 역시 반동적 계급독재를 청산하는 사회변혁의 발전전망을 갖지 못한 채 근로농민의 직접적 이익을 쟁취하는 생존권사수투쟁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1987년 6월항쟁으로부터 20년, 1996-97년 총파업투쟁으로부터 10년, 그리고 2002년 농민상경투쟁으로부터 4년이 지난 오늘, 서울을 비롯하여 남(한국) 대도시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11월 대중항쟁은 어떠한가? 그 항쟁에서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얻은 성과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1)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의 총파업투쟁이 생존권사수투쟁의 단계를 넘어서 계급독재의 억압과 폭력에 맞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단계로 전진하였다. 
지난 시기 산발적으로 벌어지다가 지배계급의 억압 또는 회유에 밀려 이내 주저앉곤 하였던 생존권사수투쟁의 한계를 한 걸음에 훌쩍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11월 대중항쟁의 성과는 소중하다는 평범한 표현에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의 총파업투쟁은 이제 생존권 사수에서 저항권 행사에로 전진하였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정치적 진전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 시작하여 20년 동안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이 피땀 어린 투쟁을 밀고 나가 기어이 쟁취해낸 성과이다. 
1-2)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공동의 투쟁목표에 합의하고, 거대한 투쟁대오를 형성하고, 결집된 힘을 집중하여 마침내 전선형 대중투쟁을 일으켰다. 
여기서 말하는 전선형 대중투쟁이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고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하나의 깃발 아래 결집시킨 투쟁을 뜻한다. 남(한국)에서 대중투쟁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지만, 이번에 전선형 대중투쟁이 일어난 것은 한국(조선)전쟁 이후 처음 있는 역사적 사변이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반동적 계급독재에 맞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투쟁은 그들이 광범위하게 결집한 전선형 투쟁에 의해서, 오직 그 투쟁에 의해서만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으로 강화, 발전되는 것이다. 
1-3)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은 사회변혁의 당면요구에 맞게 투쟁목표를 설정하였다.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생존권사수투쟁은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직접적 이해관계에서 제기된 다양한 요구들을 투쟁목표로 들지만, 그것이 가지는 결정적인 약점은 노동계급의 경우 '기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기업별로 분산된 요구로 흩어져버리며,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경우 역시 지역과 부문의 간격을 넘지 못하고 지역별, 부문별로 분산된 요구로 흩어져버린다는 것이다. 분산된 요구를 제각기 다른 투쟁목표로 들게 되므로 투쟁역량을 한 곳으로 집결, 집중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직접적 이해관계는 기업별, 지역별, 부문별로 다양하고 그래서 생존권사수투쟁은 불가피하게 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들의 근본적 이해관계는 단일하고 그래서 계급투쟁은 통일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들의 근본적 이해관계가 제기하는 요구는 통일적이며, 그 요구에 기초하여 성립되는 투쟁목표도 통일적이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정치적 연대는 바로 그러한 통일성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11월 대중항쟁은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정치적 연대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11월 대중항쟁은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정치적 연대를 요구하는 현 단계 사회변혁의 요구에 맞게 투쟁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이전의 대중항쟁보다 한층 더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었다. 
1-4)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결집한 투쟁대오에 민주노동당이 참가하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대중항쟁의 한 주체로 나선 것은 그 항쟁의 정치적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은 진보정당을 통해서, 오직 진보정당을 통해서만이 자신을 정치세력화할 수 있으며, 진보정당은 대중항쟁을 통해서, 오직 대중항쟁을 통해서만이 자신을 집권세력화할 수 있다. 11월 대중항쟁은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정치세력화, 그리고 진보정당의 집권세력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한국(조선)전쟁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변이다. 
위와 같은 성과들은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더욱 강화, 발전시켜야 할 정치적 도약대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 그리고 진보정당이 11월 대중항쟁의 성과를 쌓아놓은 정치적 도약대 위에서 함께 손잡고 힘껏 몸을 솟구쳐 뛰어오를 때, 낡고 썩은 세상을 뒤집으려는 사회변혁의 함성은 승리의 미래를 성큼 앞당길 것이다. 

2. 정치적 실천으로 넘어야 할 한계들

11월 대중항쟁은 이처럼 중대한 성과를 내왔지만, 아직 넘어서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한계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며, 정치적 실천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 11월 대중항쟁의 한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2-1) 2005년 현재 84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에 결합하지 못하였다. 11월 대중항쟁에서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고 비정규직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을 쟁취하자는 투쟁구호를 들었는데도 노동기본권을 짓밟히는 최대 피해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대오에 나서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들이 수많은 중소기업, 영세기업들에 흩어져서 미조직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남(한국)의 현재 노조조직율은 10%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나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갈라져있으므로,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에 산하 조합원이 모두 참가한다고 해도 전체 노동자들 가운데 5%밖에 되지 않게 된다. 민주노총이 5%의 한계를 뚫고 전진할 수 있는 돌파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에 있다.
2003년 현재 1-49명을 고용한 영세기업의 노동자는 노동계급 전체의 69.3%이고, 2004년 현재 1-49명을 고용한 영세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500명 이상을 고용한 대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에 비해 58.2%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계급의 착취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혹한 계급착취는 약 70%를 차지하는 영세기업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혹하게 착취를 당한다고 해서 자연발생적으로 투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관한 통계자료는 가혹한 착취 속에서도 절망과 고통의 악순환을 참고 견디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임을 말해준다. 오직 조직화된 노동계급만이 자기들에게 거대한 힘이 있음을 깨닫고 투쟁의 주체로 나설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이끌어 내기 위한 비상한 전략이 요구된다.
노동계급의 전면적 총파업투쟁에 비정규직 노동자대오가 동참하는 것은, 양대노총으로 갈라짐으로써 반분, 축소된 역량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면적 총파업투쟁의 전략적 승패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로 된다.
2-2) 도시중산층과 대학생계층이 대중항쟁에 전면적으로 결합하지 않았다. 20년 전, 6월 항쟁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던 도시중산층은 오늘 사회양극화의 재앙을 뒤집어쓰고 속속 빈민계층으로 전락하면서 노무현정권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사회계층이다. 대학생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휴학 중이라는 통계에서 보듯이, 대학생계층도 청년실업이 폭증하면서 사회적 불만을 키우고 있는 사회계층이다. 최근 노무현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끝없이 추락한 것은 도시중산층의 반감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11월 대중항쟁에서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라는 투쟁구호를 들었는데도 도시중산층은 사태를 관망하면서 투쟁대오에 나서지 않았고, 다만 일부 시민단체들이 참가하였을 뿐이다. 그 까닭은, 추상적으로 들리는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라는 투쟁구호가 도시중산층의 대중심리를 움직일 만큼 선동적 침투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의 총파업투쟁이 아직 노무현정권을 위협할 만큼 위력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도시중산층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항쟁은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의 총파업투쟁이 주도하지만, 사회계급계층이 다양하게 형성된 오늘의 남(한국)사회에서 대중항쟁의 투쟁구호에 공감하는 각계각층의 지지자, 동정자 대오를 확대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각계각층의 지지자, 동정자 대오를 확대하는 전략은 무엇보다도 도시중산층과 대학생계층에게 집중된다.
2-3) 지방도시에서 벌어진 투쟁이 서울에서 벌어진 투쟁보다 훨씬 더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 까닭은 현장의 투쟁력을 형성한 계급적 조건에서 지방도시와 서울이 일정한 차이를 지녔기 때문이다. 지방도시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이 투쟁현장에서 중심동력을 형성하였던 것에 비해, 서울에서 벌어진 투쟁에 참가한 사회계급구성은 매우 복잡하였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도시중산층과 대학생계층이 나서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전략지역에서 투쟁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두말할 나위 없이, 서울은 대중항쟁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고전략지역이다. 서울에서 대중항쟁이 기폭제적 사건을 통해 폭발해야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이 일어나는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전략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지방도시와 달리 서울에서 벌어지는 투쟁대오에 노동계급과 근로농민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투쟁대오에는 빈민, 도시중산층, 대학생계층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계급계층이 결합된다. 전선의 중심역량은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 물론이지만, 실제로 전선은 매우 복잡한 사회계급계층의 역량에 의해서 그 외연을 확장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급과 근로농민의 총파업투쟁이 빈민, 도시중산층, 대학생계층을 비롯한 각계각층 대중의 연대투쟁과 결합되어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으로 강화, 발전되는 것은 현 단계 사회변혁운동의 필수적 요구이다.
2-4)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공동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단일한 투쟁으로 결집시키려면, 매우 복잡하게 분화되어 있는 사회계급계층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계급계층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수렴하는 통로는,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이 결집한 진보정당이다. 진보정당이 아니고서는 그러한 정치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시키는 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치사업은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정치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만한 힘을 아직 갖지 못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11월 대중항쟁의 한계는 곧 민주노동당의 한계이기도 하다.
2-5) 모든 형태의 정치사업에는 반드시 지도체계가 존재하는 법이다. 수십 만 명이 움직이는 대중항쟁과 같은 고도의 정치사업일수록 강력하고, 권위 있고, 정연한 지도체계가 세워져 있어야 한다. 발전된 지도체계일수록 정파적 차이를 앞세우지 않고, 지도활동 전반을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대표자를 추대하는 법이다. 모든 형태의 정치투쟁은 대표자를 중심으로 단결된 지도체계에 의해서 전개되는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흔히 항쟁지도부라고도 부르는 대중항쟁의 지도체계는 11월 대중항쟁을 통해서 차츰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체계가 세워져 있지 않은 대중항쟁은 패배의 연속일 뿐이다.
11월 대중항쟁은 위와 같이 몇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투쟁의 깃발 아래 결집한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은 앞으로 그들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그들의 투쟁을 멈출 수 있는 요인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987년 6월항쟁을 주저앉힌 것은 '6.29 선언'이었고, 1996-97년 총파업투쟁을 멈추게 한 것은 '노사정 3자타협'이었다. 도시중산층과 대학생계층의 자생적 공조는 '6.29 선언'이라는 정치사기극에 속아넘어가 항쟁의 막을 내렸고, 총파업투쟁에 나선 노동계급은 3자타협에 휘말려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그러나 오늘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일으킨 대중항쟁은 어설픈 정치사기극을 벌이거나 3자타협을 추진한다고 해서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만과 회유가 '효력'을 상실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1980년대에는 '6.29 선언'이라는 정치사기극이 먹혀들었으나 이제는 그 따위 기만술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까닭, 그리고 지난 시기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이 성사되었으나 오늘에는 그러한 회유술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까닭은, 현 시기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민생파탄이 전면화, 극단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었던 2006년 11월 30일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야합하여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를 꺾고 비정규직 법안을 채택하였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한다는 신자유주의정책이 남(한국)에 밀려오기 시작한 1997년으로부터 10년만에 기간제법, 파견근로자법, 노동위원회법으로 구성된 비정규직 3대 법안이 국회에서 의결됨으로써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으로 법제화하는 신자유주의정책이 완성되고 말았다. 그것은 이미 전체 노동계급의 70%에 이른 비정규직의 범위를 더 확대함으로써 아무런 기본권도 주어지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땀을 가혹하게 쥐어짜는 절대적 착취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장해준 반동적 폭거이다. 
84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 비정규직으로 밀려날지 모르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피땀을 가혹하게 쥐어짜는 절대적 착취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장해준 노무현정권과 한나라당과 자본계급의 반동적 계급독재를 타격하는 대중항쟁으로 그들의 폭거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착취하고 수탈함으로써 생기는 전면적이고 극단적인 민생파탄은 오직 하나의 해결방법만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이 대중항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무현정권도 그러한 사정을 간파하고 있다. 노무현정권이 대중항쟁에 맞서는 방도는 야만적 폭력의 사용이다. 언제라도 폭력기구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올 15만3천 명의 경찰병력이 저들의 출동명령을 대기하는 중이다. 이제 저들에게 다른 방도는 없으며, 폭력진압과 대량검거만이 유일한 선택이다. 이것은 11월 대중항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명백하게 입증되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노무현정권이 폭력진압과 대량검거로 대중항쟁을 짓누르려고 덤벼들수록 항쟁의 열기가 식어가기는커녕 더 뜨겁게 분출한다는 점이다. 수 십 년 동안 덧쌓인 분노와 원한은 너무도 깊어 그것이 일단 분출하기 시작하면 그 어떤 폭력으로도 막을 수 없게 된다. 한 사람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 열 사람, 백 사람의 분노와 원한이 폭발하게 되고, 한 사람을 철창으로 끌어가면 열 사람, 백 사람이 투쟁대오에 들어서게 된다. 역사적 경험은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투쟁이 어떻게 확산되고 증폭되어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으로 폭발하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3.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무엇에 맞서 싸우는가

나라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전반적으로 민생파탄에 빠져든 현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한때 자랑했던 남(한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생파탄이 전면화되고 극단화된 현실은, 이전에 있었던 민생파탄의 현실과 구분되는 것이다. 
1997년 11월에 외환고갈로 일어난 경제위기와 국제통화기금의 금융지배라는 미증유의 사태 이후 남(한국)사회의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둔화되면서 침체의 늪에 빠져든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무현정권과 국내독점자본이 급격한 성장둔화와 경기침체가 몰고 오는 막대한 피해를 전적으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떠넘김으로써 민생파탄을 전면화, 극단화한 원인이다. 그 원인은, 과잉생산, 과잉투자, 과잉신용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신자유주의정책을 마구 밀어붙이면서 남(한국)의 신식민주의체제에 대한 대량수탈, 대량착취를 가중시키는데 있다. 남(한국)의 신식민주의체제에 대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 대량착취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과 노동법 개악으로 한층 더 가혹해진다.
명백하게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을 짓밟는 것은 미국의 지배계급이 주무르는 제국주의세계체제, 그리고 그것에 수직적으로 편입, 예속된 노무현정권과 국내독점자본이 상호결합된 반동적 계급독재이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정권과 국내독점자본이 상호결합된 반동적 계급독재가 독자적으로 존립하지 못하고, 미국의 지배계급이 주무르는 제국주의세계체제에 수직적으로 편입, 예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반동적 계급독재와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수직적으로 결합시킨 것이 신식민주의체제인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신자유주의는 사회체제가 아니라 신식민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반동적인 정책이고, 신식민주의는 정책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정책이 실현되는 가장 반동적인 사회체제인 것이다. 신식민주의체제는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남(한국)의 사회현실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대로, 신식민주의체제를 유지하는 신자유주의정책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대량수탈과 대량착취의 올가미로 마구 옥죄어 그들의 삶을 실업과 빈궁, 비정규직과 고용불안, 절망과 고통, 범죄와 자살로 내몰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언론에 보도되는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겪는 온갖 불행과 참상은 신식민주의체제와 그것을 유지하는 신자유주의정책의 범죄적 산물,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주택공급수량은 73만2천호가 남아도는데, 지하방, 옥탑방, 쪽방, 판잣집, 비닐집, 움막, 동굴에서 사는 인구가 16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는, 50년 전 전후복구시기에나 있었던 민생파탄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다. 
신식민주의체제와 그것을 유지하는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서 끊임없이 저질러지는 야만과 폭력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만 단선적으로 집중되지 않는다. 다른 한쪽에서 그것은 경제봉쇄와 침략전쟁위협으로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반사회주의공세로 전개되는 중이다.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도 없이, 그러한 반사회주의공세에 미쳐 날뛰는 것은 부쉬를 우두머리로 하는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정책을 파탄시키는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투쟁은 불가피하게 북(조선)에 대한 경제봉쇄와 침략전쟁위협을 자행하는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과 맞서 싸우는 반제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경제봉쇄와 침략전쟁위협으로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반사회주의공세에 맞서 싸우는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들어야 할 반제투쟁의 당면구호는 반전평화 실현으로 집약될 수 있다. 지금 남(한국)에서 반전평화를 실현하려는 투쟁의 당면목표는 대북(조선)제재를 반대하고 평택 미국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11월 대중항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를 설득하지 못하여 반전평화 실현이라는 투쟁구호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못하였다. 일부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중산층의 정치의식을 지닌 일부세력이 11월 대중항쟁에 참가하면서도 반전평화 실현이라는 투쟁구호에 동의하지 않은 까닭은, 반전평화 실현을 절실한 요구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제의식이 배제된 그들의 협소한 시야에는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집요한 음모와 책동이 한(조선)반도 전역에 파괴력을 미치고 있는 현 정세의 긴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 속에서 반제의식은 불균등하게 형성, 발전하기 때문에 현 시기 남(한국)사회에서 반제투쟁의 구호를 내건 대중항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직 가능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반제투쟁은 계급투쟁과 결합되어야 대중항쟁의 동력으로 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소수의 선진역량이 이끄는 반제투쟁이 계급투쟁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대중항쟁에 반드시 결합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11월 대중항쟁에서 반전평화 실현이라는 투쟁구호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했다고 해서 11월 대중항쟁의 의의가 삭감되는 것은 아니다. 반전평화 실현이라는 투쟁구호에 집착한 나머지, 그 구호에 동의하지 않는 중산층세력을 투쟁대오에 동참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중산층세력과 연대하는 정치사업에서 신축성 있게 대처하여 그 세력을 투쟁대오에 동참시키는 것이 비할 바 없이 더 중요하다. 반전평화 실현이라는 투쟁구호는 그것을 공식구호로 채택되지 못했더라도 투쟁현장에서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으며, 앞으로 대중항쟁이 강화, 발전되는 역동적 과정에서 전면에 제기할 수 있다.
현 시기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해야 하는 역사적 임무는 노무현정권과 국내독점자본이 상호결합된 반동적 계급독재와 미국의 지배계급이 주무르는 제국주의세계체제를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결합시켜놓은 신식민주의체제를 집중적으로 타격하여 그 체제를 완전하게, 재생할 수 없게, 비타협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한 타격이 신자유주의정책을 파탄시키는 계급투쟁과 동일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같이 신식민주의체제와 신자유주의정책의 맞물림을 정확하게 인식하면,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반제투쟁과 신자유주의정책을 파탄시키는 계급투쟁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명백한 오류이며, 따라서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절대로 분리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로 된다.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반제투쟁, 신자유주의정책을 파탄시키는 계급투쟁이 결합되면서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이 폭발하는 것을 민주주의혁명이라 한다.  
생존권을 짓밟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은, 노무현정권과 국내독점자본이 상호결합된 계급독재에 맞서 싸우는 계급투쟁이며, 동시에 그 계급독재가 수직적으로 편입, 예속된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맞서 싸우는 반제투쟁이다.
노동기본권 말살, 사회양극화의 무한정한 확대, 한미자유무역협정 강행은 신자유주의정책의 핵심내용이며, 신식민주의체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그러므로 11월 대중항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양극화 해소,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를 투쟁구호로 내걸고 싸운 것은 민주주의혁명의 당면요구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은 11월 대중항쟁을 통해서 생존권 사수에서 저항권 행사로 투쟁의 깃발을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머지 않아 그들은 저항권(right of resistance)을 행사하는 단계에서 혁명권(right of revolution)을 행사하는 단계로 나아가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고 신자유주의정책을 파탄시키는 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2006년 11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