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의 사회주의평화강령을 말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손도끼에 얽힌 추억

1985년 2월부터 1990년 5월까지 여섯 해 동안 나는 청년운동단체에 소속되어 상근활동가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있었던 사연 하나를 이야기하련다. 
뉴욕에서 시작했던 3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중단하고 대학원 기숙사에서 나온 나는 입국사증을 갱신할 수 없었던 탓에 이른바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고 숙식을 해결할 거처마저 없었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운동단체 사무실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면서 살았다. 거의 모든 운동단체들이 그러한 것처럼, 당시 내가 소속된 운동단체 역시 재정이 쪼들려 상근활동가들의 생활비를 한 푼도 주지 못하였다. 생활비 보장에 대한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먹고 자는 생계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크게 만족하였다. 
나는 사무실 한 쪽에 칸을 막아 설치한 간이조리대에서 끼니를 때웠고, 사무실 탁자 위에서 잠을 잤다. 전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어느새 시궁쥐들이 기어 나와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긴 탁자를 서너 개 붙여놓고 그 위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는 밖으로 통하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어서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사무실이 자리잡은 잭슨하이츠라는 지역은 우범지대여서, 밤에 길거리를 걸어다니기가 어려웠다. 사무실 창문 밖에서 조직폭력배들끼리 맞붙은 총격전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처럼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자연히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으나, 나는 조국에서 내 또래 동지들이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궁핍과 고생을 달게 여겼다. 사회변혁과 조국통일을 향한 열망과 투지가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때 겪었던 고된 체험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던 나를 강인하게 단련시켰으며, 대적투쟁에서 물러서지 않는 전투의지를 키워주었다. 여느 활동가들처럼, 나에게도 그러한 피끓는 청춘시절이 있었던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뉴욕의 후덥지근한 늦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은 1989년 9월 초순 어느 평범한 날.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에 사무실에 모여들었던 단체성원들이 뿔뿔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 자정을 훌쩍 넘기고서야, 나는 일과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달카닥 하는 쇳소리에 퍼뜩 잠이 깨어 사방을 둘러보니,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기어드는 게 아닌가. 
온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무엇인가 손에 움켜쥐려고 어둠 속을 더듬었는데, 아뿔싸 손에 잡힌 것은 머리맡에 놓아둔 손전등이었다. 침입자가 창문 안쪽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손전등 불빛을 비추면서 그 놈에게 벽력같이 고함을 내질렀다. 어둠 속에서 느닷없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불빛이 비치자 침입자는 멈칫거리더니 황망히 물러섰다.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가서 간이조리대 위에 놓아둔 큼지막한 식칼을 손에 틀어쥐었다. 본능적 방어행동이 무엇인지 나는 그때 실감하였다. 
창밖에 드리운 가로등 불빛에 정체를 드러낸 침입자는 험상궂은 얼굴에 키가 큰 중남미계 사내였다. 그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뉴욕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열어놓은 창문을 보고 범행을 기도했으리라. 식칼을 움켜쥔 내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내 눈빛과 그의 눈빛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마주쳤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침입자의 영상이 눈에 어른거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나는 호신용으로 쓸 물건을 찾으려고 사무실 창고를 뒤지다가, 몇 해 전에 장승을 깎아 세울 때 썼던 손도끼 한 자루를 찾아냈다. 손도끼를 움켜쥐었을 때, 손마디에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은 위험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안도감 그 자체였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의 살육만행을 피해 흩어진 민중들이 예비군 무기고로 달려가 총을 움켜쥐었을 때, 이젠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는 현장기록의 한 대목이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그날부터 나는 손도끼를 머리맡에 두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침입자가 다시 들이닥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며 밤을 맞곤 하던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던 손도끼 한 자루.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폭력흉기가 아니라, 내 삶을 지켜주는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언제 미사일을 쏘아댈지 알 수 없는 전쟁위험 속에서 살아온 북(조선)인민들이 핵실험 소식을 듣고 왜 만세를 불렀는지 나는 안다. 손도끼를 움켜쥐고 안도감을 느꼈던 지난날의 경험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나는 그들의 절실하고 솔직한 심정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기를 지켜주는 손도끼 한 자루를 믿음직한 동반자로 여기며 사는 사람에게 그런 흉기를 가지고 있으면 폭력이 폭력을 부를 터이니 내다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를 폭력의 구렁텅이에 떠밀어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손에 총을 잡고서야 안도감을 느낀 광주민중항쟁의 투사들에게 총을 버리라고 명령하는 것은 그들을 계엄군의 살육만행으로 내모는 잔인한 행동이다. '평화'의 이름으로 정당방어의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행위는, 포악한 침입자가 휘두르는 폭력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2. 사회주의평화강령의 이해를 위하여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활동가들 속에서, 평화의 의미를 전쟁과 폭력에 대한 도덕률로 이해하려는 낡은 인본주의(humanism)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있다. 내 눈에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적, 계급적 평화관이 확고하게 서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체제에 따라 인권개념이 다른 것처럼, 평화개념 역시 같은 것이 아니다. 평화관은 정치적으로, 계급적으로 예리하게 갈라선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떠드는 평화개념과 진보정치세력이 말하는 평화개념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평화개념을 하나의 단일한 개념으로 규정하는 견해야말로 부르주아관념론의 극치이다. 
여기서 나서는 문제는, 어떠한 평화관이 올바른 평화관인가 하는 것이다. 평화를 교살하고 파괴하면서 '평화'를 떠드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의 '평화관'을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이상자일 것이다. 
평화를 실현하는 주체는 사회구성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요구하는 평화만이 참된 평화이다. 평화는 오로지 그들의 것이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무력봉쇄와 전쟁위협을 받고있는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요구하는 평화는 반드시 반제적이고 계급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이것은 필연이다. 
그러나 인본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화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무력봉쇄와 전쟁위협을 절박한 현실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국주의전쟁위협을 선언적 의미로만 이해하는 관념의 세계에서 노닐면서 여유작작하게 논하는 '장밋빛 평화',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평화이다. 그래서 그들이 설교하는 평화는 언제나 '지당한 말씀'처럼 들리지만, 현실성을 상실한 공허한 메아리로 흩날리는 법이다. 제국주의전쟁광들과 맞서 싸워야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평화가 인본주의자들이 설교하는 평화와 갈라서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적, 계급적 평화관은 사회주의평화강령(socialist peace program)의 기초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신의 반제적, 계급적 평화관 위에 사회주의평화강령을 일으켜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간다.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적, 계급적 평화관을 굳게 지닐 때, 그때 비로소 북(조선)이 말하는 사회주의평화강령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북(조선)이 말하는 사회주의평화강령은 도덕주의(moralism)에서 우러나오는 고상한 도덕관념이 아니다. 그 강령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무력봉쇄와 전쟁위협에 맞서 싸우는 사회주의반제혁명의 격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지켜야 하고, 또 지킬 수 있는 평화를 말한다. 그리하여 사회주의평화강령은 도덕적인 평화강령이 아니라 전투적인 평화강령이다.
사회주의평화강령은 사회주의체제의 혁명적 억지력(revolutionary deterrence)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 강령은 사회주의체제의 혁명적 억지력을 내포한다. 사회주의체제는 고상한 도덕관념이 아니라 혁명적 억지력으로 보위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주의평화강령은 혁명적 억지력을 가짐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사회주의체제가 혁명적 억지력을 갖지 못하면, 악착스럽게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반동적 폭력을 막아낼 수 없으며, 그들의 반동적 폭력을 뚫고 사회주의의 혁명과 건설을 한 걸음도 진전시킬 수 없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휘두르는 반동적 폭력 앞에서 북(조선)이 자기의 사상과 체제를 지키기 위한 혁명적 억지력을 가지는 것은, 그들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북(조선)의 핵무기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위협하려는 반동적 폭력이 아니라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반동적 폭력을 막아내고 제거하는 혁명적 억지력이다. 첨단군사기술로 핵무장을 한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덤벼들 때도, 만일 북(조선)이 끝내 핵무장을 하지 않고 재래식 무장으로 맞선다면, 그것은 제국주의침략전쟁에 대해 도덕적으로 승리하였다는 평가를 인본주의자들로부터 받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조선)반도의 군사정세는 그러한 도덕적 승리를 논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여기서 나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격돌이 벌어지는 오늘의 한(조선)반도 군사정세를 과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정세에서 드러난 제국주의전쟁위험에 대해서는 내가 이전에 발표한 여러 글들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에 밝혀진 한 가지 사실을 더 첨부하려 한다. 
『워싱턴타임스』 2006년 11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북(조선)의 핵시설을 기습적으로 공격, 파괴하려는 여러 종류의 침공작전계획을 세워놓고 부쉬의 공격명령을 기다리면서 북침공격작전을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제3국이나 테러집단에게 이전할 때, 북침공격작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조선)에게 금융제재를 가하기 위해서 북(조선)이 위폐를 제조하고 유통한 것처럼 사건을 날조하였던 부쉬정부의 음흉한 행동에서 드러났듯이, 북침공격작전을 개시하기 위해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제3국이나 테러집단에게 이전한 것처럼 부쉬정부가 얼마든지 사건을 날조할 수 있다는 데서 한(조선)반도 군사정세의 위급함이 드러난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작전배치해두고 북(조선)의 핵시설을 노리는 수백 기의 전술핵무기들은 절대로 장식물이 아니다.
인본주의자들이 지적하듯이, 제국주의전쟁광들이 핵공격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극악한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핵무장을 한 사회주의체제가 혁명적 억지력으로 수많은 목숨을 지키는 것은, 핵무장을 하지 못한 사회주의체제가 제국주의전쟁광들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아 끔찍한 재앙을 입는 것보다 수천 수만 배 더 인륜적이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의 핵무장이 반인륜적이므로, 북(조선)의 핵무장도 똑같이 반인륜적이라고 비난하는 인본주의자들의 억지논리를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수없이 실시해오는 핵실험에 대해는 분노하지 않던 인본주의자들이 제국주의전쟁광들에게 맞서기 위해 실시한 북(조선)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반인륜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언어도단이다. 핵무기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포악한 침입자들에 대해서는 핵무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서라도 맞서 싸워야 하고 기어이 물리쳐야 한다. 
사회주의평화강령을 알지 못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제국주의침략전쟁에 맨주먹으로 맞서 싸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비무장항쟁에 도덕적 승리라는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는 있겠지만, 그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도덕적 승리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저지른 살육과 파괴의 참상, 그리고 점령과 약탈의 재앙 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반동적 폭력을 혁명적 억지력으로 막아내지 못하여 결국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또는 사회주의체제가 파괴된 뒤에 도덕적 승리라는 평가를 얻은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본주의자들이 내놓은 고상한 도덕관념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무력봉쇄와 전쟁위협 앞에서 시나브로 무능과 절망에 빠지게 된다. 
나는 북(조선)이 핵무장을 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비핵국가로 남아있어야 제국주의전쟁광들에게 핵위협을 중단하라는 도덕적 요구를 들이댈 수 있다고 말하는 반핵교조주의자들의 억지논리를 거부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도덕적 비폭력이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반동적 폭력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폭력을 이기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이라고 가르치는 공상적 평화주의자들의 설교를 거부한다.
반핵교조주의의 논리적 함정에 빠진 인본주의자들이 북(조선)의 핵실험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무슨 '우려'니 '불용'이니 하는 따위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을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적, 계급적 평화관을 옹호하는 진보정치세력은 북(조선)의 사회주의평화강령이 사회주의체제의 혁명적 핵억지력을 용인할 뿐 아니라 그것을 절실하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북(조선)의 혁명적 핵억지력은 사회주의의 혁명과 건설을 보위하는 물리적 수단이다.

3. 평화는 현상유지가 아니다.

인본주의자들은 평화를 전쟁 없는 평온한 상태라고 이해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류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신식민주의체제 아래서 순응과 굴종을 강요받으면서 묵묵히 일만 하고, 착취와 수탈을 겪으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현상태(status quo)를 유지하면 그것을 평화라 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평화는 현상유지가 아니다.
제국주의세력과 국내반동세력은 평화가 신식민주의체제의 현상태를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여 선전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전하는 평화는 '노예의 침묵'일 것이다. 진보정치세력은, 참된 평화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신식민주의체제를 깨뜨리고 쟁취하여야 할 혁명적 가치로 이해한다. 평화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투쟁, 계급투쟁 속에서 실현되는 혁명적 가치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투쟁, 계급투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참된 평화도 알 수 없으며, 제국주의세력과 국내반동세력이 던져준 사이비 평화에 속아넘어가서 '노예의 침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사이비 평화는 현상유지의 평화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의 은밀한 전쟁책동을 위장하는 '핵우산의 평화'이며, 국내반동세력의 은밀한 계급적 착취를 은폐하는 '노사관계의 평화'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평화강령에서 말하는 평화가 현상유지의 평화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 평화강령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이 한(조선)반도에 들씌운 '핵우산의 평화'를 현상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물리적으로 깨뜨려버리고 참된 평화를 쟁취하는 전투적 평화강령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평화강령은 제국주의핵우산을 철거할 때 평화가 실현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북(조선)의 사회주의평화강령은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이 제시한 비핵화강령과 일치한다.
북(조선)의 사회주의평화강령은 핵실험 직후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 담화는 "전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위대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우리의 최종목표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내 판단으로는, 그 한 줄 문장 속에 눈여겨보아야 할 의미심장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조선)의 공식문건에서 '조선반도'가 아니라 '전조선반도'라는 표현을 쓰는 일은 매우 드물다. '전조선반도'라는 말속에는 북(조선)만이 아니라 남(한국)까지 포함한다는 뜻이 강조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평화강령에서 추구하는 비핵화는 북(조선)의 비핵화는 물론, 남(한국)의 비핵화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남(한국)은 핵무기를 갖지 못했는데, 남(한국)의 비핵화를 실현한다니 그 말은 무슨 뜻일까? 명백하게도, 그것은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남(한국)에 설치해놓은 핵전쟁체계를 물리적으로, 완전하게, 돌이킬 수 없게 해체한다는 뜻이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은 교활하게도 남(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해두지 않으면서도 남(한국)에 자기들의 핵전쟁체계를 만들어놓았다. 이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주한미국군과 주일미국군을 재편하고 재배치하면서 최첨단 통신정보체계와 최첨단 전술지휘통제체계를 들여와 '전략적 유연성'을 극도로 강화하는 것, 그에 따라 평택에 세계 최대의 신속기동군 전략기지를 건설하는 것, 괌을 세계 최대의 핵공격 전진기지로 보강하는 것,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군사령부가 지휘하는 방대한 전투력을 북(조선)을 노리는 선제공격전략에 맞게 개편하고 증강하는 것, 미국 본토에 있는 전략군사령부의 장거리 및 정밀유도 핵타격력을 증강하여 북(조선)을 지구 반대편에서 위협하는 것 등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남(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해두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남(한국)에 핵전쟁체계를 만들어놓을 수 있음을 입증한 사건들이다. 
따라서 제국주의핵공격기지로 전락한 남(한국)을 '해방'하지 않으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무의미하며, 결코 실현될 수도 없다는 것이 북(조선)의 전략적 판단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전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비핵화의 전국적 의의를 한층 강조한 것이다.
둘째, '전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는 점이다. 북(조선)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예로부터 한국(조선)민족은 부모나 스승이 남긴 유언을 따르는 것을 최상의 의리로 여겨왔다. 비록 부모나 스승의 생전에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았더라도 유언은 성심껏 따르는 것이 한국(조선)민족의 오랜 전통이다. 
더구나 '혁명적 의리'를 지키는 것을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것처럼 여기는 사회주의도덕관을 중시하는 북(조선)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이 가로막아도 반드시 실현하여야 하는 지상명령이다. '전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말은, 우리 세대에 반드시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상명령이라는 뜻이다. 비핵화 실현을 향한 백절불굴의 의지와 들놀지 않는 결심이 돋보인다. 
셋째, '전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북(조선)의 최종목표라고 지적한 것이다. 최종목표라는 말은 당면목표라는 말에 상응하는 것이다. 북(조선)의 당면목표는 무엇일까? 그 문서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북(조선)의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 포기를 공약한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미국의 적대정책을 포기시키고 조미사이에 신뢰를 조성하여 북(조선)이 미국의 위협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란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의 제국주의핵우산 철거를 뜻한다.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의 이름으로 작성된 핵정책문서 '핵태세검토(Nuclear Posture Review)'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핵우산'을 남침방어용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핵우산'을 들씌워놓고 적대정책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북(조선)의 핵무장 포기와 미국의 '핵우산' 철거를 맞바꿈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평화강령은 그것을 요구한다. 
만일 북(조선)의 핵무장 포기와 미국의 '핵우산' 철거를 맞바꿈으로써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방도가 아닌 그 어떤 다른 방도가 있다면, 북(조선)은 수십 억 달러를 들여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누군가 그 다른 방도를 혹시 알고 있다면, 밝혀주기 바란다. 만일 그런 '신묘한 지략'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적극 옹호, 지지할 것이다.

4. 생억지를 짓누르고 비핵화의 길로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하여 핵무장을 현실로 입증했는데도, 부쉬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북(조선)의 핵실험이 부분적으로만 성공했다는 왜곡선전을 한동안 퍼뜨리더니,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북(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떠들고 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부쉬정부가 북(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되면,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 사이의 핵군축회담, 다시 말해서 조미양자회담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종래의 6자회담은 위축되거나 부차적인 회담으로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핵군축회담이 진행되면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장을 자진포기하는 것에 따라서 남(한국)에 들씌운 자기의 제국주의핵우산을 자진철거하여야 한다. 제국주의핵우산을 틀어쥐고 북(조선)에게 무력봉쇄와 전쟁위협을 가하면서 남(한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에게 '핵우산' 철거는 완전하고 영원한 패배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저들은 북(조선)의 핵실험이 부분적으로 성공하였다는 왜곡선전을 퍼뜨리면서, 북(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핵보유국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은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제멋대로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핵실험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저들이 북(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억지를 부리면서 제국주의핵우산 철거를 조미정치회담의 의제로 채택하기를 끝내 거부할 경우, 북(조선)은 핵보유국임을 더욱 확실하게 입증하는 제2차 핵실험을 실시하는 준비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6자회담은 중단되고 정세는 다시 긴장될 것이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조선)은 사회주의평화강령에 따라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 물론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한사코 반대하고 회피하고 지연시키면서 제국주의핵우산을 유지하려는 온갖 비열한 책동을 벌일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가야할 길은 멀다.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들고일어나, 미국의 핵우산 철거와 북(조선)의 핵무장 포기를 동시에 추진하라는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목을 조이기 위해 힘껏 싸워야 할 때가 되었다. 비핵화강령을 들고 투쟁하는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과 사회주의평화강령을 들고 투쟁하는 북(조선)의 사회주의정치세력이 힘을 합하여 제국주의전쟁광들의 제국주의핵우산 증강책동을 저지, 파탄시키고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하루빨리 실현해야 할 것이다. 민족적 단결과 전선적 투쟁만이 한(조선)민족에게 주어진 유일한 해결방도이다. (2006년 11월 3일 작성)

* 이 글은 www.international21.com에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