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변혁운동에서 현장활동가의 임무와 역할은 무엇인가?

-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경로 및 당과 전선 관계를 중심으로 -


 

 

<< 차   례 >>

 

1. 글을 시작하며

2. 한국변혁운동의 성격과 방향

  1) 한국변혁운동의 성격

  2) 한국변혁운동의 과제

  3) 한국변혁운동의 목표와 역량 편성

3. 자주적 민주정부의 모습

  1) 자주적 민주정부에서 정권의 성격

  2) 실현된 자주적 민주정부의 사회 모습

4.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

  1) 민중투쟁의 역사 속에서 발전해 온 실천경로

  2) ‘전민항쟁을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실천경로

  3) ‘선거를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실천경로

  4) 올바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

  5) 실천경로에 따르는 중장기 전망과 계획

5. 통일전선과 정당의 관계

  1) 통일전선운동에 대한 이해

  2) 정당운동에 대한 이해

  3) 대중조직에 대한 이해

  4) 통일전선과 합법대중정당 관계

6. 다른 나라 변혁운동 사례로 살펴 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

  1) 선거를 통한 자주적 정권 수립의 사례

  2) 선거가 아닌 경로를 통한 자주적 정권 수립의 사례

7. 변혁운동에서 현장활동가의 임무와 역할

  1) 현장조직운동의 전개 과정과 역할

  2) 사회변혁을 위한 현장활동가의 임무와 역할


 

 1. 글을 시작하며

 이 땅에서 노동자민중이 열망하는 자주ㆍ민주ㆍ통일세상은 구호나 주장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실천투쟁의 문제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고 생존과 고용의 위협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민중 속에서 실천하고 투쟁하고 있는 현장활동가들에게 이것은 더욱 절박한 문제이다.

 급변하는 정세와 노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상황은 현장활동가들에게 현장중심, 변혁지향의 활동방향과 원칙을 더욱 분명하게 움켜 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철저하게 바탕을 둔 과학적인 변혁운동 사상으로 새롭게 무장하고, 이를 자신과 조직의 노선과 방침으로 구체화하여 대중투쟁이라는 실천과정을 통해 실현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천투쟁 과정에서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음으로써 변혁운동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 시기 현장활동가들이 올바른 실천활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시급하게 규명해야 하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사회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한국변혁운동의 성격과 과제 그리고 목표를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즉 사회변혁의 영도세력인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이 변혁운동의 승리를 위한 활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변혁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갖는 문제이다.

 둘째, 한국변혁운동의 당면 전략목표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는 무엇이고, 실현된 자주적 민주정부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이다.

 이것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로 제기되는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가 우리 사회에서 현실 가능한 실천경로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올바른 실천경로를 갖는 문제이다.

 셋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전략적 무기인 통일전선과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합법대중정당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이것은 통일전선과 합법대중정당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정하여 노동운동을 비롯한 전체 운동이 통일된 방향에서 변혁운동 승리의 길로 올바르게 전진할 수 있게 하는 문제이다.

 넷째, 변혁운동에서 대중조직의 지위와 역할은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고, 대중조직과 통일전선 그리고 대중조직과 합법대중정당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이다.

 이것은 변혁운동의 토대인 대중조직운동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실천방도를 내오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규명과 함께 여러 정치조직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이다.

 다섯째, 변화된 정세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주체역량에 근거하여 올바른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급변하는 정세에서 다가올 결정적 국면을 어떻게 준비해 나가야 하는가?”라는 실천과제를 주체역량 강화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세우는 문제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체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운동, 특히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는 지금 무엇을 중심에 두고 활동해야 하는가?”라는 현 시기 노동운동과 현장활동의 중심방향을 세우는 일이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대중적 논의가 시급히 필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합법대중정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최근의 새로운 연대연합체를 건설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게 규명하지 않고는 변혁운동의 최종 승리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변혁운동을 위한 실천활동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올바르게 규명하고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을 비롯한 각급 대중조직운동 또한 제대로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논의를 시작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이론체계를 세우는 과정이 아니라, 백여 년 넘게 이 땅에서 계속되어 온 우리 민중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피어린 투쟁의 역사와 세계 민중들의 변혁운동 경험을 한국 노동자계급이라는 주체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과 권력은 물론 외세의 지배와 착취로부터 노동자계급과 전체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의 무기를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회변혁의 주인은 민중 자신이며 민중의 자주성과 투쟁이 전제되지 않는 변혁운동은 결코 승리를 가져올 수 없음은 변혁운동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 현장활동가들이 변혁운동 승리에 복무하는 길에서 노동자계급과 전체 민중을 위해 어떻게 헌신하고, 민중의 자주성을 어떻게 발동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변혁운동의 전망을 세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이 글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와 그에 따르는 전선운동과 정당운동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활동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해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노동현장에서부터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의 글이기도 하다. 문제 제기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변혁운동의 주체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이다. 머지않아 우리 앞에 다가올 결전의 시기에 대비하여 우리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은 그리고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들은 지금 이 순간 어떤 방향과 내용을 가지고 실천하고 투쟁하면서 준비해 나갈 것인가이다.

 

 2. 한국변혁운동의 성격과 방향

1) 한국변혁운동의 성격

 ① 우리 사회의 성격


 미국은 자신의 대리정권을 세워 반세기 넘게 한국을 정치적으로 지배해 왔다. 이승만을 내세워 식민지 대리통치를 시작한 미국은 군사독재정권은 물론 민간정권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세우면서 한국 정치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경제에서도 미국은 한국을 자기 나라의 경제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을 밟아왔다. 1945년 미군정 시기부터 적산불하와 잉여농산물 분배(원조), 차관, 직접투자의 과정을 통해 자기 나라의 이익에 맞게 자본주의 경제체계를 만들어 왔다. 즉 자본주의이긴 하나 정상적인 자본주의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결탁한 예속적인 자본가계급과 반동적 관료집단을 지배세력으로 육성하여 이들로 하여금 미국의 이익과 경제수탈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중들을 2중, 3중으로 착취하게 하는 철저하게 예속화되고 기형적으로 발달해 온 자본주의이다.

 그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억압하고 분단체제를 더욱 고착화하는 정책을 통해 친미사대주의를 강요하고, 민족대결을 조장하는 사회분위기를 유지하고 강화해 왔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미국에 의해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철저하게 지배되고 예속된 식민지사회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이 생존권을 비롯해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박탈당하고 있는 것도 바로 자본과 권력은 물론 실제 지배력을 쥐고 있는 미국에 의해 2중, 3중의 억압과 착취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외에도 농민, 빈민, 청년학생, 중소상인과 같이 소수의 친미사대세력을 제외한 대다수 민중들이 고통 받고 있는 근본 원인은 바로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고, 이로 인해 우리 민족과 민중들이 당해야 하는 고통은 배가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민족관계로 보면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사회이고, 계급관계로 보면 천박하고 기형화된 예속자본주의사회이다. 여기서 식민지라는 성격과 자본주의라는 성격은 동시에 하나로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성격 중에서 근본적으로 상대를 규제하는 것은 식민지 성격이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성장 과정부터 식민지 종주국인 미국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를 바꿔가며 자기나라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는 체계로 변화시켜 왔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성격은 결국 미국의 의도에 따라 규정되고 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 성격의 본질은 식민지사회이다. 이에 덧붙여 외세에 의해 국토와 민족이 분단되었고, 계속되는 분단체제 때문에 인해 수많은 착취와 억압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는 사회이다.

 

 ② 한국변혁운동의 성격


 한국변혁운동의 성격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한국사회 성격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우리 사회를 올바로 바꾸기 위한 운동인 한국변혁운동의 기본 성격은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민족자주 변혁운동이다.

 여기에 예속자본주의사회의 착취와 억압 구조를 청산하고 근로대중의 이해와 요구가 실현되는 사회민주화를 쟁취하는 민주주의 변혁운동으로서 성격이 결합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사회에서 전체 민족의 자주권과 대단결을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민족적 과업인 조국통일을 완성시켜 나가는 변혁운동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이처럼 민족자주 민주주의 변혁의 성격을 갖는 한국변혁운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제국주의 미국과 추종세력을 몰아내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되찾는 반제국주의 변혁운동이다.

 둘째로 착취와 수탈의 근원을 없애고 일하는 민중이 참다운 주인이 되는 새 사회를 세우기 위한 계급해방 변혁운동이다.

 셋째로 남과 북의 민족자주세력은 물론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중이 절실한 이해를 갖고 참가하는 변혁운동이다.

 넷째로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서 여기에 계급해방 과제를 밀접히 결합시켜 나가는 변혁운동이다.

 다섯째로 분단된 민족의 최고 가치인 조국통일을 지향하고 이를 완성해 나가는 변혁운동이다.

 

2) 한국변혁운동의 과제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사회에서 민중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요인에는 민족문제와 계급문제가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우리사회의 중심 과제는 민족문제이다. 우리나라에 기형적인 자본주의가 생겨난 것도 식민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한 한국변혁운동은 노동자민중이 열망하는 자주화, 민주화, 조국통일이라는 세 가지 변혁 과제를 가진다.

 

 첫째,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나서는 자주화는 식민지사회라는 사회성격으로부터 나온다. 자주화는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자주권을 회복하는 반미자주화를 기본 내용으로 하며, 이것은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높여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 주한미군과 군사기지의 철수,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2.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롯한 예속적 조약과 협정 폐기, 3. 미국의 내정간섭 종식들이다.

 

 둘째,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 성격, 특히 외세에 의해 기형적 구조로 발전해 온 예속자본주의라는 성격에서 나오는 과제이다. 새로운 사회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민주화란 사회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분배의 평등을 전제로 하여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인 민중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경제적 민주화이다. 즉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한 지배기구의 역할을 하는 국가권력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비롯해 기층민중의 생존권을 확보하고 정치사회적 민주주의 권리들을 획득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1. 분배의 민주화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민중들의 생존권 확보, 2. 재벌의 경제력 집중 축소, 세제개혁 등 경제생활의 민주화, 3. 국가보안법, 노동악법 등 악법을 없애고 여성의 평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법 제정 등 법과 제도를 인권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민주적으로 뒷받침하는 개혁, 4.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군사독재정권의 잔재 청산과 사회 전 부문에 걸친 민주주주의 실현 등이다. 이런 민주화의 과제는 민주적인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셋째, 조국통일은 분단체제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현실로부터 나오는 과제이다. 조국통일은 우리 민족이 갖는 최고의 목표이지만 전 민족이 민족자주권을 실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조국통일의 과정은 분단의 원인이자 통일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외세의 지배와 개입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힘으로 자주권을 회복하고, 사회민주화를 이루는 것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남과 북 민중들이 통일에 대한 열망을 모아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에서 밝힌 것대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 속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하면서 남북이 신뢰를 쌓아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남북이 합의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으로 자주적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 그리고 남과 북 민중들의 생존권 확보를 보장하는 방안과 동시에 민족자립경제의 토대를 튼튼하게 하는 역할로서 조국통일은 우리 민중에게 절실한 것이다. 

 

3) 한국변혁운동의 목표와 역량 편성

 ① 한국변혁운동의 전략적 목표


 우리 사회에서 위와 같은 사회변혁의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야 할 당면 목표는 무엇인가? 현 시기 한국변혁운동의 전략 목표는 바로 자주적 민주정부의 수립이다. 반세기가 넘는 미국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 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고,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주의적 권리 확보를 위해 시급하게 나서는 문제가 바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치권력을 세우지 못한다면 민중이 그토록 열망하는 자주화와 민주화는 물론 우리 겨레의 최고 가치인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한국변혁운동에서 민족의 자주권과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주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민중이 자신의 정치권력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1945년 한국 강점 이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3년 동안의 군정을 통한 직접통치 이후에는 대리정권을 내세워 지배하는 간접통치 방법으로 해 왔다. 즉 미국은 주한미군을 비롯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리정권을 간섭하고 조종하면서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온 것이다.

 따라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이란 미국이 움직이는 예속적인 대리정권을 민족자주정권으로 바꿔내고 민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 전제는 미국이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행사해 온 지배와 개입을 단절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대리정권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해 온 주한미군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가지고 있는 한국군의 지휘권을 되찾아 한국 민중과 민족을 위한 군대로 바꿔내는 것과 함께 진행된다.

 그리고 미국의 이익이 아닌 우리 민족과 민중의 이익을 위해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당당하게 행사하는 정권을 만드는 과정이다. 아무리 민주와 개혁을 내세우는 정권이라 하더라도 미국으로부터 자주성을 갖지 못하면, 결국 종주국인 미국의 이익을 위해 자기 나라의 민중을 탄압하는 반민중적 정권으로, 민족공조가 아닌 외세공조를 앞세우는 반민족  정권으로 떨어질 수 없음은 지난 김영삼 정권부터 지금의 노무현 정권까지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다.

 

 ② 한국변혁운동의 역량 편성


 가. 한국변혁운동의 동력과 대상

 변혁운동에서 이해를 같이하는 모든 계급과 계층의 힘을 결집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며, 특히 식민지 변혁운동에서는 승리의 유일한 길이다. 민족자주민주주의 변혁운동에서 민족자주권 쟁취와 민주주의 변혁을 위해 싸우는 세력이 동력이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대상이다.

 한 사회의 변혁운동에서 동력과 대상은 그 변혁운동의 성격과 임무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한국변혁운동의 동력과 대상이 지난날의 유럽 국가들의 변혁운동과 같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당면한 전략 목표인 자주적 민주정부를 달성하고 난 이후 단계에서는 동력 가운데 중심 역량과 보조역량의 편성도 이전과 달라진다. 변혁운동은 구체적인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고, 방향과 내용도 그 사회의 발전 정도에 따라 다른 목표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한국변혁운동의 동력 중 중심역량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이며 보조역량은 지식인, 중소상공인, 종교인, 애국군인들이다. 즉 변혁운동 동력 중 중심역량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이고, 이 중에서 노동자계급의 책임과 역할이 가장 크다. 그리고 지식인, 중소상공인, 종교인, 애국군인들도 변혁운동의 동력이 된다.

 변혁운동에서 대상이라 함은 특정 계급계층 또는 세력이 그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없애는 것으로, 이는 개별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변혁운동의 대상은 현재의 지배체제로부터 기득권을 유지해 온 미국과 매판재벌, 보수관료들이다. 이러한 대상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력은 한국사회의 변혁에서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로 작용하는 미국이 된다.


 나. 한국변혁운동의 중심역량과 보조역량

 변혁운동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기본 요건은 변혁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계급계층을 나서게 할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그것은 참가 정도와 적극성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투쟁에 참가하는 계급계층의 대중이 많을수록, 적극적일수록 주체역량의 힘은 그만큼 커진다.

 변혁운동의 중심역량과 보조역량 관계에서 중심역량이 투쟁을 주동적으로 조직하여 전개해 나가는 주력군이라면, 보조역량은 주력군을 지지 엄호해 주며 힘의 관계를 변혁의 편에 유리하게 만드는 지원군이다. 따라서 변혁운동 과정에서 중심역량이 없다면 보조역량 자체도 만들어질 수 없으며, 보조역량이 없다면 중심역량 또한 힘있게 강화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중심역량을 강화하는데 우선하면서도 보조역량을 결집하는 사업을 잘 결합시켜야 한다.


 변혁운동에서 중심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사활적인 문제이다. 중심역량이 튼튼히 세워져야 중간 계급계층의 동요를 막아내 그들을 변혁의 편으로 견인할 수 있다. 중간계급은 변혁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계급적 한계 때문에 정세가 변하고 반변혁세력의 공세가 강화되면 승리에 대한 신념을 잃고 동요하게 되며 변혁운동을 외면하거나 심지어는 적의 편으로 넘어갈 수 있다. 결국 강력한 주력군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중간층과의 연대연합은 튼튼하게 지속될 수 없다.

 보조역량을 폭넓고 튼튼히 꾸려 중간층 세력을 변혁의 편에 서게 하는 것은 주체역량을 강화시켜 주는 것과 함께 반변혁세력의 힘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양 세력의 힘 관계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계급계층 구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는 한국변혁운동은 가장 광범위한 각계각층 민중을 그 동력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계급 사업에서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이 갖고 있는 변혁지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적극 전개해야 한다. 민족의 자주권을 귀중히 여기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통일을 바라는 중산층을 비롯해 각 정당정파, 각계 인사들을 그의 이념과 정견, 신앙과 재산의 유무, 과거 경력을 따지지 말고 조직적으로 결집해야 하며 단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 여성, 사회단체를 비롯한 중간 계급계층의 다양한 대중조직들을 만들어 그들을 결집시켜 내는 것이 필요하다.

 

 3. 자주적 민주정부의 모습

1) 자주적 민주정부에서 정권의 성격

 

 한 국가의 정치권력 성격, 즉 정권의 성격은 군대와 경찰을 비롯한 국가의 지배기구를 어떤 계급계층과 세력이 장악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권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예속정권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정권들은 제국주의 미국과 매판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에 반해 자주적 민주정부는 민중이 열망하는 자주화, 민주화, 조국통일이라는 변혁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민중이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여 세우는 정권이다. 즉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청년학생을 비롯해 민족자주와 민주주의개혁에 이해를 같이하는 지식인, 중소상공인, 종교인 등 광범한 계급계층이 참가하여 수립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는 각계각층의 이해를 포괄적으로 대변하는 통일전선에 의거하는 정권이다.

 따라서 자주적 민주정부는 노동자계급이 정권의 장악을 위해 일시적으로 다른 계급계층과 동맹 또는 연대연합하는 전술 차원에서 수립되는 정권이 아니라, 정권수립 과정을 물론 정권수립 후에도 더 높은 단계의 사회변혁을 위해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정권의 담당주체 세력으로 함께 나아가는 전략 차원에서 수립되는 정권이다.

 

2) 실현된 자주적 민주정부의 사회 모습

 

 그렇다면 노동자 민중이 정치권력의 주체가 되어 수립하는 자주적 민주정부의 사회 모습은 어떤 것인가?

 자주적 민주정부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회의 모습은 정치와 군사의 자주권을 비롯해 경제, 군사, 문화 등 사회 모든 부문에서 주권국가에 걸맞게 민족의 자주성을 중심으로 민족 전체의 이익에 맞게 처리해 나가는 사회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기층민중의 생존권과 정치 사회적 요구를 실현해 나가는 사회이다.


 먼저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에 강탈당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되찾고 식민지 지배의 물리적 기반인 주한미군을 철거시키는 것이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롯해 미국에 의해 불평등하게 체결된 모든 협정과 제도를 폐기해서 반세기 넘게 구축되어 온 미국의 식민지배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치외교에 있어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당당하게 행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방에 있어 자주국방체제를 수립하고, 군의 정치적 중립이 철저히 담보되고 병역제도와 군 내부질서의 민주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민중의 민주주의적 권리들을 보장하는 정치를 실시하는 것이다. 그 동안 민중의 민주주의 권리를 제약해 온 법과 제도를 민중의 이익에 맞게 새롭게 바꿔내 민중의 생존권과 정치적 권리가 보장된다. 특히 국가보안법, 노동악법 등 민중의 권리를 탄압해 온 악법들을 폐기하고,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한 민중탄압의 정보정치가 없어지게 된다. 또한 정치범과 양심수에 대한 석방과 고문 등 국가기구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가 없어지고 노동자와 여성을 비롯해 소수자들의 권리가 법과 제도로 보장받게 된다. 그리고 정치제도에 대한 민주적 개혁을 통해 정치, 사상의 자유는 물론 민중들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가 보장된다.


 경제는 외세 예속과 매판자본가 중심의 식민지 경제체제에서 민중 중심, 민족 중심의 자립적인 경제체제를 새롭게 구축하는 된다. 이것은 경제정책과 제도에서 노동자, 농민 등 절대 다수의 민중의 이익에 맞게 바꾸어 운영하고, 통일 이후의 통일민족경제를 대비하는 민족 중심의 경제체제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기간산업이나 주요 은행 그리고 농업과 같이 국가경제에 영향이 큰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가 직접 장악하여 그 지위와 역할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일시에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업과 공기업은 물론 외국기업까지 병존하는 경제체제 속에서 그 경제주체들의 재산권과 이들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보장된다. 다만 재벌 중심의 경제운영을 변화시켜 재벌의 매판성과 독점적 지위를 법과 제도로 견제하는 한편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민족산업을 육성하여 발전시키는 경제구조의 체질 변화가 이루어지게 한다.

 자주적 민주정부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민중의 기본생존권을 확고히 보장함으로써 국민생활을 안정되게 하는 것을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가져간다.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주택, 의료, 교육, 실업 등 국민복지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해서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간다. 이를 위해 부의 편중현상을 분배정책을 강화하고 조세와 사회복지에 관한 제도와 정책을 기층민중에 유리하게 개혁하고 사회복지재정을 대폭적으로 늘여 나간다.

 대외경제 관계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한다. 이에 따라 한미ㆍ한일 투자협정이나 세계무역기구협약 등 경제주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는 조약이나 협정들이 폐기하고, 세계화의 이름을 앞세운 제국주의 초국적 자본의 교묘한 경제적 침탈이나 투기적 국제금융자본의 침투와 그 활동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실시하여 민주적 경제체제와 민족자본을 보호하고 성장시켜 나간다.

 또한 북과의 관계에서는 자립적인 통일민족경제 건설을 지향하여 남북 사이의 경제협력을 제도화, 정례화하고 단절된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며 항구들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교육과 문화면에서는 숭미반공 중심의 교육제도를 바꾸고 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정책을 강화해 사대주의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정기를 높여내고 올바른 인재들을 양성하게 된다. 부패하고 타락한 양키문화는 물론 소수 특권층을 위한 퇴폐적인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바꿔내 건강한 사회기풍이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다.

 또한 민족문화를 장려함과 동시에 시대와 민중의 요구에 맞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문화주권이 지켜지는 민족문화체계와 기층민중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이 문화의 주체로 참여하는 민주주의 문화체제로 나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주적 민주정부에서는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원칙을 가지고 외세의 개입을 막아 내면서, 남북 사이에 정부와 민간 차원의 다양한 교류협력을 기본으로 해서 조국통일의 토대를 튼튼히 만들어 나간다.

 또한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바대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방안으로 조국통일을 이루기 위한 과도기로 남북이 합의해 참여하는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조국통일을 실현해 나가게 된다.

 

 4.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

 

 우리 사회에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실천경로의 문제는 제국주의 세력과 우리 민중간의 대결에서 민중이 승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밝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경로는 유럽의 변혁운동과도 다르고 남미, 아프리카, 중동의 여러 나라의 변혁운동과도 다르다. 또한 농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봉건제 성격을 갖는 사회에서 변혁운동을 전개한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와도 같을 수 없다.

 이것은 식민지라는 우리 사회의 성격에 따른 민족모순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기형화된 자본주의체제에서 나오는 계급모순과 분단체제라는 특수성에서 발행하는 모순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사회라는 점에서 그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경로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정권 수립의 실천경로, 즉 실제로 민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해 나가는 방법은 우리 사회의 객관적인 상황과 정세는 물론 주체역량의 준비정도가 어떤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라는 구체적인 현실에 가장 맞는 방법으로 변혁운동의 주체인 민중의 힘을 어떻게 발동하는가에 따라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성패와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실천경로를 크게 구분하면 1.선거절차를 통한 방법, 2.무장투쟁을 통한 방법, 3.시위, 파업 등을 포함한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통한 경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정권을 수립하는 전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경로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 변혁운동의 역사에서 확인되듯이, 사회를 변혁하는 과정은 그 사회가 처한 주객관적인 조건과 정세에 따라 하나의 방법만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방법이 결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의 세 가지 주요한 실천경로 중에서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천경로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민중투쟁의 역사 속에서 검증된 바 있는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민항쟁을 통한 정권수립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된 정세 속에서 새롭게 모색되고 시도되는 ‘선거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이다.

 

1) 민중투쟁의 역사 속에서 발전해 온 실천경로

 

 우리 민중은 멀리는 일제시대부터, 가까이는 해방을 맞이한 1945년부터 자주적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계속해 왔다. 해방 직후 지배세력인 일본제국주의가 쫓겨 가고 열려진 정치공간에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민중은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의 열망을 가지고 투쟁으로 떨쳐나섰지만, 안타깝게도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좌절당하고 말았다.

 자주적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은 미군정에 맞서 전국적인 민중봉기와 무장투쟁으로 전개되었지만,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애국민중들이 희생되고 탄압 받으면서 민족자주역량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그 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은 어려움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해방으로 열려진 공간에서 전개했던 수많은 투쟁의 역사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서 전개했던 투쟁들의 패배 경험은 한국사회에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뼈아픈 교훈으로 남겨 주었다. 특히 분단이 고착화되고 남과 북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사회체제와 정치 상황이 반세기 넘게 계속되면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조국의 통일을 완성하는 투쟁은 더욱 복잡한 실천경로를 요구받게 되었다.


 4.19민중항쟁으로 짧은 기간이나마 활기를 띠었던 민중투쟁은 미국에 의해 세워진 군사독재정권에서 또다시 어려운 상황을 맞아야 했다. 최소한의 정치경제적 권리마저도 박탈당한 상태에서 합법적인 방법은 불가능했기에 우리 민중은 반합법, 비합법 방법으로 생존권을 지키고 사회를 민주화시키는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처럼 줄기차게 전개해 온 민중들의 투쟁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졌고,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1980년 광주민중항쟁은 비록 승리를 안아 오지는 못했지만, 한국사회에서 자주적 민주정부가 어떠한 실천 경로로 거쳐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투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대중 속에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반미자주화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회민주화나 조국통일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과 전국적 규모로 전민중이 함께하는 투쟁, 즉 ‘전민항쟁’으로 지배세력을 압도하지 않으면 변혁운동의 승리는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민중들의 강고한 투쟁 속에서 ‘전민항쟁을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경로가 한국변혁운동의 실천경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투쟁 과정에서 미국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면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는 반미감정이 대중 속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반미감정은 이후 계속된 미국의 경제침탈 저지투쟁, 매향리투쟁을 비롯한 미군기지 철거투쟁, 여중생 촛불투쟁과 불평등한 SOFA개정투쟁들을 거치면서 반미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2000년의 역사적인 남북최고위급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이 미국의 식민지지배를 강화하는 데 악용되었던 분단체제의 토대를 밑으로부터 허물어뜨리고 반세기에 걸친 남북대결의식을 민족대단결의식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즉 우리 민족의 힘으로 자주적 통일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미국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민족대단결의식이 높아졌고, 이것은 반미자주화투쟁과 조국통일투쟁을 동시에 대중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민중들의 계속되는 투쟁을 통해 군사정권에서는 원천적으로 막혀 있던 합법공간들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고 확대되어 왔다. 비록 친미라는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틀 안에서지만 대중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형식적인 정권교체가 미국의 개입과 간섭 아래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1987년 6월항쟁으로 폭발한 민중의 힘에 밀린 미국은 군사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형식적으로나마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정치활동도 합법공간이 조금씩 열리면서 진보이념을 지향하는 정당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많은 제약이 따르기는 하지만 합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경로에서 기존의 ‘전민항쟁을 통한 정권수립 경로’와 다른 합법적 방법, 즉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가 새롭게 제기되고 현실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1980년대 말 민중당으로부터 시작되어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 등 민중운동진영에서 전개된 다양한 형태의 이른바 진보정당운동이 그것이다.

 물론 이 시기 진보정당운동은 대중 속에서 변혁운동의 토대를 튼튼하게 꾸리지 못하고, 올바른 이념과 노선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변화된 정세를 중심으로 급진적인 일부 활동가들이 조급하게 합법정당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예상된 대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로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는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에 바탕을 두고 건설된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이후 새로운 정치적 대안세력을 갈망하는 노동자민중의 열망에 힘입어 지속적인 발전을 해왔다. 2002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선전하고, 2004년 총선에서는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켜 원내정당으로 진입하는 약진이 그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우리 변혁운동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우리 민중들의 투쟁은 제국주의와 대리정권의 탄압으로 패배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객관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주체역량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투쟁 속에서 한국변혁운동은 우리 사회 현실에 맞는 올바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경로를 구체화하면서 발전시켜 왔다.

 

2) ‘전민항쟁을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실천경로

 

 ① ‘전민항쟁을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경로의 근거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최소한의 합법공간마저 원천적으로 막혀 있던 지난 시기에는 우리 민중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방법은 분명했다. 즉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물리적 기반인 군사적 토대를 허물지 않으면 새로운 정권은 불가능했고, 그것은 선거절차를 거치는 식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이승만 정권 때의 진보당 활동이나 4.19민중항쟁 이후의 합법정당 활동과 같이 합법적 실천경로가 시도되었지만, 모두 지배세력의 무력 진압과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당시 한국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유일한 실천경로는 이른바 ‘전민항쟁’이라고 부르는 무장력에 기초한 민중봉기를 통한 정권수립 방식이었다.


 그 후에 일제식민지에서 전개한 항일무장투쟁을 비롯한 수많은 투쟁 경험과 다른 나라 변혁운동의 경험들이 전달되고, 한국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더해지면서 전민항쟁의 내용도 더욱 풍부하게 되었다.

 한국사회를 변혁하는 데서 나서는 과제가 민족자주화, 사회민주화,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또한 한국변혁운동의 성격은 유럽 국가들의 변혁운동 경로인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변혁이 아니라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고통 받는 광범위한 계급계층의 민중이 변혁의 주체로 나서고 민족자주 실현을 목표로 하는 민족자주민주주의 사회변혁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에 따라 당면한 변혁운동의 전략목표는 민족의 자주권과 민중의 이익을 실현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며, 그 실천경로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농민, 도시빈민, 청년학생,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이 반미자주화전선으로 결집하여 폭발적인 대중투쟁으로서 지배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세우는 과정으로 정립되었다.


 이와 같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가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사회에서 정권교체를 가져오게 했던 민중투쟁들, 즉 해방 직후의 민중봉기부터 시작하여 4.19항쟁과 광주민중항쟁을 거쳐 6월민중항쟁으로 이어져 온 자랑스러운 민중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② ‘전민항쟁을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경로에서 나서는 문제점


 

 제국주의 지배를 받는 대다수 식민지나라에서 자주적 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은 지배세력의 물리적 기반인 군사력을 허물기 위해 변혁운동세력이 독자적으로 무장력을 가지고 전개하는 무장투쟁을 전제로 한다. 이는 쿠바, 니카라과, 베트남과 같은 다른 나라의 경험이나 일제시대 항일무장투쟁의 전례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서도 경험하였다.

 그러나 전민항쟁을 통한 정권 수립에서 반드시 독자적인 무장력을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는 변혁운동이 전개되는 각 나라의 객관적 조건과 주체역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에서 전민항쟁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조건과 변혁운동 과정의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국변혁운동에서 전민항쟁의 내용은 크게 보면 1987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즉 6월항쟁이라는 민중투쟁의 성과로 보통선거를 통해 합법적 방법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한 상황이 조성되면서 민중들의 인식은 물론이고 변혁운동세력에서도 전민항쟁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대중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들을 건설하면서 대중운동이 활성화되고 조직운동역량이 강화된 것도 전민항쟁의 내용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또한 전국을 관통하는 교통과 통신망을 비롯해서 경제성장에 따라 사회의 전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생긴 것도 전민항쟁의 내용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영향으로 1987년 이전의 경우가 합법적 정권교체가 전무한 상황에서 지배세력의 군사력에 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무장력 확보가 중요하게 나선 반면에 이후에는 무장봉기 대신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총파업투쟁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조직화된 역량에 기초한 전국적이고 폭발적인 대중투쟁이 더욱 중요하게 나서게 되었다. 


 이처럼 전민항쟁을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경로에서 중심이 되는 내용은 제국주의에 맞서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가장 광범위한 민중들이 주체로 나서는 대중투쟁이다. 이 투쟁은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전개되며 특정 계급을 넘어 전체 민중이 참여하는 투쟁이며, 변혁운동의 전략전술에 입각한 지도구심에 의해 지도되고 각급 조직들이 참여하는 조직된 투쟁이다.

 

3) ‘선거를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실천경로

 

 ① ‘선거를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경로의 근거 


 

 해방 직후부터 한국사회에서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방법의 정권수립 경로를 시도한 경험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한국사회에서 합법정당운동의 경험은 길지 않았고 실패를 거듭한 역사였기 때문에 합법정당운동은 활동의 성과가 축적되기 어려웠고 계승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오랜 군사정권의 암흑기를 거쳐 1987년 이후부터 조금씩 열리는 합법공간의 틈새를 비집고 합법정당운동에 대한 논의, 즉 ‘선거를 통한 합법적 방법의 정권수립 경로’가 다시 논의되고 대중 속에서 실천되었다. 특히 1997년 민주노총의 결의에 기초하여 건설된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의 활동은 이런 논의를 대중 속에 확산시켜 나가는 현실적 근거가 되었다.

 이와 함께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변화된 정세는 수십 년간 한국사회를 짓눌러 왔던 반공, 반북의식을 허물어뜨리면서 진보적 지향을 갖는 정당의 합법공간을 넓혀 주었다. 이와 동시에 북미대결의 결과가 몰고 올 새로운 변화, 즉 주한미군이 철거되는 것을 비롯해 미국의 지배력이 빠르게 약화되는 상황이가 예상되면서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가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경로’는 1987년 이후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새롭게 모색된 경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로의 근거는 주장하는 주체에 따라 다양하고, 그 편차도 매우 크다. 이 경로가 올바른 실천경로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정세의 변화와 주체역량의 발전에 비추어 볼 때, 한국사회에서 선거에서 합법정당의 후보가 나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장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정권장악의 주체가 되어 대중투쟁과 의회투쟁을 결합하는 정치활동을 통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 주된 요지이다.


 ② ‘선거를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경로에서 나서는 문제점


 

 보통의 경우 기존 집권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합법 절차가 보장되어 있으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수립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기준은 최고 집권자를 선출하는 보통선거가 실시되고 있고, 그 과정에 대중들의 자유로운 선거참여가 보장되느냐이다.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는 지난 10여 년간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야당이 여당으로 되는 정권교체에 익숙하게 된 한국사회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를 주장하는 이들이 실천활동에서 변화된 상황을 적극 반영하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실천경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심각한 한계와 오류가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 성격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올바르지 않거나 정세인식에서 주관적이거나 현상적인 대중의 정서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 정세의 변화를 주관적으로 바라보면서 합법대중정당의 역할을 과도하게 규정하고 있다.

 먼저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는 정세분석에 있어서 6.15공동선언으로 열려진 공간이란 점과 앞으로도 북미대결의 결과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가 예상되는 대사변기 상황에서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되어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합법적이고 평화적 방법으로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주적 민주정부의 모습에 대한 인식이나 실천경로에서 변혁지향성을 상실한 합법주의나 선거혁명론의 경향으로 나타나는데, 그 주된 원인은 주관적인 정세 판단과 함께 활동가들이 갖는 조급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세를 분석하고 그 변화를 예상하는데서 주체역량 강화의 관점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정세를 변화시키고 유리하게 바꿔내는 힘도 바로 주체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에서 가장 중요하게 나서는 과제는 광범위한 대중을 반미자주화라는 단일전선으로 묶어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의 주체역량의 준비정도를 타산해 볼 때, 가장 우선되는 것은 모든 운동의 기초가 되는 대중조직운동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각계각층의 대중을 가장 크게 담아내는 그릇인 통일전선조직을 튼튼하게 세워내는 일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주체역량 상태에서 합법대중정당을 강화하고 역할을 높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곧 합법대중정당을 중심으로 변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논리로 비약되는 것이 옳지 않다.


 한편 합법대중정당도 정권장악을 조직활동의 기본 목표로 하는 정당의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이념을 갖는다.  합법대중정당이 대중 획득에서 합법성이라는 강점을 갖는다고 해도, 정당의 정치이념인 정강정책에 동의하고 정치적 활동을 결단한 사람들만이 당에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전선조직만큼 광범위한 대중을 담아낼 수는 없다. 이것은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 결의를 통해 민주노동당 가입을 결의했어도 결국 당 가입은 조직이 아닌 정치적 지향을 가진 개인의 판단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그리고 선거에서 합법대중정당이 후보를 내더라도 이를 당선시키는 과정은 후보를 낸 특정 정당만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대중조직과 단체, 정당들의 힘을 집결시켜 대중적인 선거투쟁으로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광범위한 대중을 가장 크게 모으는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것을 중심방향으로 하는 것이 맞다.


 나. 합법 절차와 공간이 넓어진 것이 곧 합법정당의 정권장악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대중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통선거가 이루어지고 있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진보 지향의 합법정당의 참여도 일정하게 보장받고 있다. 이러한 합법 공간이나 절차는 우리 민중들이 투쟁으로 쟁취해 온 것이고 앞으로도 더욱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합법 공간과 절차가 보장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주적 정권을 수립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즉 한국사회에서 현재 허용될 수 있는 합법공간은 실제 지배세력인 미국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미국의 식민지배가 계속되는 한 현 지배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자주적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순순히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우리나라 합법정당운동의 경험이나 다른 나라 식민지 변혁운동의 경험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민중의 힘이 제국주의 세력을 압도한다면 사정이 다르다. 이 경우도 민중의 힘이라는 것은 어느 후보를 얼마의 표로 지지하느냐의 힘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 나가는 각 계급과 계층, 부문과 지역별로 조직된 투쟁역량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합법절차와 합법공간은 적극 활용되어야 하지만, 지배체계의 근본을 바꾸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아직 식민지 지배가 계속되고 있고, 조직된 민족자주역량이 제국주의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주관적이다.


 다. 선거를 통한 대통령 당선이 곧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거를 통한 정권장악의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선거에서 다수의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곧 변혁운동의 전략목표인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인가 하는 것인데,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변혁운동의 전략적 목표가 대통령 당선, 즉 수평적 정권 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열망하는 민족자주와 사회민주화, 그리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주적 민주정부를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사회에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은 제국주의 지배세력으로부터 자주권을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자본가들을 비롯한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구축한 지배체계를 민중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합법정당이 선거에서 다수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 정권 장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자주적 민주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존 집권세력이 선거에 져서 정권을 내준다고 해도 그들은 여러 방법으로 다시 정권을 되찾기 위해 반격할 것이다. 제국주의는 선거로 집권한 정권이 자주성을 분명히 해 나간다면, 선거 자체를 무효화하거나 칠레,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경우처럼 집권 후에라도 구 집권세력을 동원해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거나 반정부군을 조직하고 지원하거나 경제적 제재조치를 통해 반격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선거로 대통령을 당선시킨다고 해도 당선 이후에 예상되는 지배세력의 반격에 대응할 수 있는 튼튼한 조직역량을 갖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자주적 민주정부로 이행할 수 없다.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라 하더라도 식민지라는 한국사회에서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전민항쟁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일 전민항쟁의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제시되는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는 결국 선거만능주의나 합법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라. 대중이 쉽게 받아들인다고 그것이 곧 올바른 실천경로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 군사독재정권 때와 달리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되면서 민중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인물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양김으로 표현된 보수정치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민중들은 이들이 진정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진보적인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으로 바꿔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보수정치의 뿌리가 깊은 우리 사회에서 대세가 되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 같은 우리 현실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경로가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당연하다. 김영삼에서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경험한 199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에서 대중들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교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대중이 상식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것이 곧 현실에서 실제로 실천 가능한 경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많은 대중들에게 한국사회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닌 주권국가이고, 미국과 주한미군은 우리의 동맹국가와 군대이므로 철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고 그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정치권력이 보통선거라는 형식적 절차에 의해 바꿔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분명하게 인식되고 있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편 대중들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방법이 정권수립 과정에서 혼란과 희생을 줄일 수 있고, 쉽고 빠르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해방 직후 정부수립 과정의 이념 대결, 한국전쟁, 몇 번에 걸친 민중항쟁과 군사쿠데타를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 선거가 아닌 다른 방법에 의한 정권교체는 사회혼란이라는 등식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다 분단체제에 따른 피해의식이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정권수립이 불필요한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강하다.

 그러나 혼란은 대중이 원하지 않는다고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이 한국사회에서 반세기 넘게 계속되어 온 지배세력으로부터 정치권력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세력간, 계급간 사활을 건 치열한 투쟁이다. 그렇기에 정권수립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상정하고 그것을 대비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앞에서 말한 칠레,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경험은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여중생 촛불투쟁의 와중에서 개혁적 이미지를 앞세워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과 지배세력들이 유발시킨 사회혼란과 2004년의 탄핵과 같은 정국혼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혼란과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수립하는 경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대중적 설득력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런 설득력이 실제로 현실에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담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정권의 물적 기반인 군대를 포함한 국가기구를 우리 민중이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변혁운동으로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제국주의나 이전의 지배세력에 의해 제거되거나 자주적 정권수립이 좌절되었던 수많은 나라의 변혁운동에서 확인되고 있다.

 

4) 올바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합법정당이 중심이 되어 선거를 통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경로는 한국변혁운동에서 중심이 되는 실천경로가 될 수 없다. 선거 때 표를 얻어 정권을 수립하는 실천경로는 우리 사회에서 실현 가능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이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법정당이 목표로 하는 정권장악이란 것도 민중이 주체로 나서는 광범위한 대중투쟁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한미군이라는 제국주의 세력의 강력한 물리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민족 전체의 자주역량의 힘으로 주한미군을 철거시킨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즉 지배세력을 지탱시켜 주는 주한미군이 없어지고 난 후의 정세는 엄청나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민중의 사회변혁 요구는 폭발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과정이 선거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합법과 비합법, 대중투쟁과 민중봉기, 각 계급과 부문, 지역과 전국 투쟁들이 결합되고 그 형태도 폭발적이고 전면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예상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은 1945년 일본제국주의가 물러간 후 맞은 해방 정국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경로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점은 한국사회가 식민지 사회라는 점이다. 특히 제국주의 미국이 자국의 군대를 현지에 주둔시키며 한국군의 통수권을 가지고 정치, 군사는 물론 경제, 문화 등 사회 전 부분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배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민족자주 민주주의 변혁의 성격을 갖는 한국변혁운동에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절대다수 민중의 반미투쟁이 전제되지 않으면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우리 민중과 제국주의 세력간에 벌이는 판갈이 투쟁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광범위한 민중의 폭발적인 정치투쟁이자 전면적이고 전국적인 반미자주화투쟁으로 제국주의와 그 추종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기구와 체제를 바꿔내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근로대중의 정권을 수립하는 전민항쟁 경로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올바른 실천경로이다.

 올바른 정치사상으로 무장한 정치적 대표조직에 의한 지도가 관철되는 가운데 제국주의 세력에 반대하는 투쟁에 이해를 같이하는 모든 계급계층과 세력의 힘을 반미자주화라는 단일한 전선으로 결집하고, 이런 광범위한 대중의 힘에 기초한 강력한 정치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방향을 갖는다.

 그리고 이것은 변혁세력의 조직적 무기이자 자주적 민주정부의 모체가 되는 강력한 통일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기에 합법대중정당을 비롯하여 다양한 합법역량이 밀접하게 결합되는 과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5) 실천경로에 따르는 중장기 전망과 계획


 한국변혁운동에서 결정적 시기 또는 결정적 국면이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광범위한 민중들이 반미전선으로 결집해 압도적인 힘으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전면에 나서는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결정적 시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주체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시기를 준비기라 한다.

 결정적 국면은 변혁운동을 둘러싸고 있는 주객관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중에서도 주체역량의 조건, 즉 주체역량의 준비정도가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실천경로에서 지금의 준비기를 거쳐 결정적 국면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전망과 실천계획을 내와야 하는가?


 ① 결정적 국면에 대한 전망


 한국변혁운동에서 결정적 국면이 열려지는 시기는 주체역량의 조건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국면 전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로 전망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정치군사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물러가게 되는 때이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북미간 정치군사 대결과 함께 민족자주역량의 힘으로 주한미군철수를 압박하는 대중투쟁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북미간 대결에서 북이 승리하여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 된다면, 한국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반도는 전쟁이라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엄청나게 다른 국면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시기는 북이 미국에 대해 결단을 촉구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의 경우 계속 시간을 끄는 형국이어서 여러 변수가 있지만 어떻게 결론이 나든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한미군 철수투쟁과 관련하여 현재 우리의 민족자주역량은 대중들의 의식 발전에 걸맞는 조직운동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개혁을 외치지만 본질에서는 친미사대를 기본으로 하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중간층에서 이탈이 생기면서 각계각층의 대중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광범위한 반미투쟁들이 주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간 대결의 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겠지만, 결국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기층민중이 어떻게 얼마만큼 반미자주화 투쟁전선에서 중심역량으로 나서느냐에 따라 결정적 국면이 열리는 시기가 달라질 것이다.


 둘째는 한국경제가 처해 있는 구조적인 위기가 더욱 심화되면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민중들이 생존을 위협받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현 지배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위력적인 대중투쟁으로 폭발하는 시기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초국적자본의 손에 경제의 결정권이 넘어가 버렸다. 제국주의 세력의 경제침략은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층민중의 생존은 더욱 위협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악몽은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

 특히 본격화되고 있는 한미, 한일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의 경제침략 앞에서 모든 민중들은 생사를 건 투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미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신탁체제에서 제국주의의 본질과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뼈저리게 절감한 민중들은 전면적인 투쟁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 따른 대규모 민중투쟁은 주체역량을 조직화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며, 민족자주의식과 결합되면서 국면은 빠르게 상승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노동자, 농민의 조직역량을 집중해 전국적이고 위력적인 연대투쟁을 전개하고 그 성과를 모아 민중투쟁의 지도구심체로서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을 내올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가 결정적 국면의 시기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셋째는 합법 공간이 넓어지고 민중들의 정치의식과 정치세력화의 요구가 높아진 상태에서 각 계급과 세력간 전면적인 대결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선거 시기이다.

 물론 이것은 민주자주역량의 주도적인 역할이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라는 열려진 공간에서 여중생 촛불시위를 통해 반미자주투쟁의 역동성과 폭발성을 경험한 바 있다. 지난 2002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서 정치세력의 이제 반미자주냐, 친미예속이냐가 그 기준으로 되어가고 있고, 이런 흐름은 민족자주세력의 힘이 더 커질수록 더욱 분명해 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거 시기, 특히 2007년과 2012년 대통령선거는 선거라는 열린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주체역량의 힘으로 국면을 주동적으로 열어 나갈 수 있는 시기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낸 지난 2004년 4월 총선은 현실 정치의 합법공간에서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하나로 결집하여 열어나갈 수 있게 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선거 시기의 열린 공간을 결정적 국면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느냐의 여부는 변혁운동세력이 민중들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으로서 필요한 정치역량을 갖출 수 있느냐에 의해 달라질 것이다.

 

 ② 결정적 국면의 전망에 따른 중장기 계획


 가. 결정적 국면이 전개되는 모습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변혁운동에서 결정적 국면의 시기는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변수에 의해 달라질 것이다. 특히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 중 어떤 요인이 더 전면적이고 큰 힘을 발휘하는가에 따라 구체적인 시기와 국면의 전개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 요인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다른 요인들이 서로 중첩되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주체역량이 정세 변화에 주동적인 역할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결정적 국면이 열린다고 해도 승리를 안아 올 수 없다. 따라서 주체역량의 기본이 되는 대중의 의식화, 조직화 그리고 대중투쟁 정도에 따라 굴곡이 있겠지만, 결정적 국면은 상승하고 발전하면서 머지않아 열릴 것이다.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본 결정적 국면의 시기에서 더욱 전면적이고 본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주한미군의 철수와 경제적 위기상황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경우는 구체적인 시기를 정해 그에 따른 실천계획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 무리해서 그 시기를 정하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본질적 요인을 고려하되, 그 시기가 구체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전망과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실천적인 태도일 것이다.


 나. 대통령선거를 중심으로 한 계획   

 먼저 2007년은 12월에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해이다. 이 시기는 현재의 북미대결 결과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으며, 그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서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주체역량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는 민족자주세력이 민중들에게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목표는 무엇보다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함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민중운동 역량을 결집하여 건설하고 활동해 온 민중연대를 한 단계 높은 새로운 질의 통일전선조직체를 만들어 내는 과제와 직결되어 있다. 즉 현재의 상설공동투쟁체인 민중연대를 확대하여 재편하는 방식이거나 민중연대 역량을 기초로 하되 통일, 환경, 여성, 시민사회를 비롯하여 광범위한 각계각층을 포괄하여 밑으로부터 전면적으로 새로운 조직체를 건설하는 방식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민중연대를 비롯한 여러 연대연합체의 조건을 고려할 때, 전면적으로 새로운 틀의 조직체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동안 연대연합체 활동에서 나타난 활동방향과 사업방식의 문제점을 바꾸지 않은 채 형식만을 바꾸거나 준비정도와 무관하게 일정을 잡아 조직을 건설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각계각층의 대중이 주체로 참여하는 공동의 사업과 투쟁을 통해 각 지역별로 밑으로부터의 동지적 관계를 만드는 내는 실질적인 연대연합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진영이 주도적인 역할을 얼마만큼 하느냐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이렇게 건설된 통일전선조직이 전개하는 대중투쟁을 기본으로 하면서,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공개적인 정치공간에서 위력적인 선거투쟁을 전개해 나간다. 이 때 통일전선조직과 합법대중정당은 밀접하게 결합하면서도 지위와 역할에 따라 각각의 영역에서 정치활동과 대중투쟁을 전개하며 선거라는 열려진 공간에서 통일시켜 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2012년은 강화된 대중운동역량을 바탕으로 하여 지도조직과 통일전선조직, 그리고 합법정당이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통일된 방향성 속에서 대중투쟁을 통해 축적한 조직역량을 대통령선거라는 정치공간을 통해 검증 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 과정은 민중투쟁의 조직구심으로서 분명하게 자리하는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대중들이 참여하는 정치투쟁을 기본으로 한다. 즉 반미자주화라는 중심방향을 틀어쥔 통일전선조직을 통해 위력적인 정치투쟁이 전개되는 한편으로 합법대중정당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사업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각 계급계층과 지역과 현장 속에 변혁운동의 튼튼한 진지를 구축해 나간다.

 이처럼 의식화, 조직화와 대중투쟁을 통해 각계각층의 대중 속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해 온 통일전선은 합법대중정당을 통해 2012년 대통령선거라는 정치공간에서 독자적 후보전술로서 집권을 위한 통일적인 선거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을 갖게 될 것이다.

 

 5. 전선운동과 정당운동

1) 통일전선운동에 대한 이해

 ① 통일전선운동의 개념과 필요성


 사회변혁운동은 변혁세력과 반변혁세력간에 생사를 걸고 전개하는 투쟁이다. 따라서 사회변혁운동의 승리는 변혁세력이 반변혁세력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힘을 가질 때 이루어진다. 여기서 변혁세력의 힘의 정도는 변혁에 이해를 같이하는 대중들을 얼마나 많이 조직된 힘으로 결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모든 계급계층과 정당, 사회단체는 물론 개인까지를 포함한 가장 광범위한 계급계층의 대중을 변혁의 편으로 결집하여 사회변혁운동에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한 목적의식적 운동을 통일전선 또는 전선운동이나 통일전선운동이라 한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대중을 사회변혁을 위한 하나의 정치역량으로 결집시킨 조직체를 전선조직이나 통일전선조직 또는 통일전선조직체라고 한다.


 세계변혁운동 역사에서 통일전선은 노동자들이 계급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세력과 손을 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즉 처음에는 농민과 노농동맹을 실현하는 전술을 구사하였고 점차로 여러 계급계층이나 세력과 제휴, 연대하는 전략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제휴하여 정권을 교체한 후에 그 대상을 고립시키고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전술 측면에서 시도되었다. 그 후 당면한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승리하여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더 높은 사회변혁의 과제도 함께 해결해 간다는 동지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전략적인 관점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에서는 통일전선이 변혁운동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전략적 문제로 되었다. 즉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근로대중을 민족해방운동의 대열에 결집시키는 조직임과 동시에 장차 새롭게 수립할 정치권력의 모체로서 역할과 정권 수립 이후의 변혁과정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전략적 연합체로서 통일전선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현 시기는 광범위한 민중들이 자주성을 높이기 위해 변혁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각계각층의 대중이 변혁의 중심주체로 서는 것이 중요한데, 통일전선조직은 이와 같이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대중을 하나의 정치역량으로 모아 위력적인 투쟁의 주체로 나서게 함으로써 변혁운동의 승리를 확실하게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에서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을 건설 강화하는 일은 변혁운동의 사활을 결정하는 핵심문제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② 통일전선의 종류


 통일전선은 각계각층의 연합과 공동행동을 실현하는 것을 중심 활동으로 하는 것이며, 통일전선조직은 이런 연합과 공동행동을 위한 조직적 틀이다. 통일전선이 대중 속에서 지지 기반을 넓혀 나가는 것은 통일전선에 참여하는 단체와 조직, 정당들 사이의 연합과 공동행동을 강화해 나가는 다양한 방법과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통일전선은 이와 같이 연대연합의 성격과 형태, 그리고 대상과 방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가. 조직형태에 따른 2개의 전선 - 단일전선적 통일전선과 연합전선적 통일전선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대중들 속에서 연대연합을 만들어 가는 통일전선은 조직형태를 기준으로 하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여러 계급계층의 대중들이 개별로 가입하는 형태인 단일전선적 통일전선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각계각층의 대중조직과 단체, 정당이 참여하는 형태인 연합전선적 통일전선조직이다.

 두 가지 형태 중에서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통일전선의 형태는 연합전선적 통일전선조직이다. 연합전선적 통일전선조직은 반미자주를 기본으로 민주주의 개혁을 지향하는 정당, 정파, 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을 망라하는 모든 계급계층의 조직은 물론 지역과 부문조직, 진보적 사회시민운동단체와 진보적 종교단체를 모두 포괄하는 형태이다. 심지어 제도정치권 안의 자주적, 진보적 성향의 개별인사들까지 하나로 결집하는 대규모 조직형태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 포괄하는 대상과 범위가 크면 클수록 큰 힘을 갖게 된다.


 나. 연대연합의 대상에 따른 2개의 전선 - 상층통일전선과 하층통일전선

 통일전선은 연대연합의 대상을 기준으로 보면 상층통일전선과 하층통일전선으로 구분한다. 상층통일전선은 정당이나 단체에서 지도적 인물이나 명망 있는 개인에 대한 연대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반면에 하층통일전선은 정당이나 단체와 조직의 다수를 구성하는 기본 대중들에 대한 연대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전선이다.

 이것은 통일전선이 대상으로 하는 각 정당과 단체들이 상층과 하층에 따라 계급 구성이 다르고 변혁에 대한 태도와 입장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제도권의 단체나 정당들은 상층은 보수적이며 심한 경우에는 수구반동적인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에 하층을 차지하는 대중들은 사회변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크다.

 통일전선운동에서 기본이자 중심이 되는 것은 하층통일전선이다. 그렇다고 상층통일전선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며, 단체나 정당의 상층은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만큼 상층통일전선은 통일전선의 폭을 넓혀 힘을 크게 발휘하게 함으로써 통일전선운동을 확대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정세와 조건에 따라 하층통일전선을 먼저 할 수도 있고, 상층통일전선을 먼저 할 수도 있겠지만, 통일전선의 기본 방향이 광범위한 기본대중을 더 많이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하층통일전선을 위주로 하면서 여기에 상층통일전선을 결합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다. 성격과 주체에 따른 2개의 전선 - 민족민주전선과 조국통일전선

 대다수 식민지나라의 변혁운동이 민족해방이라는 기본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일전선임에 반해 한국변혁운동은 분단체제라는 현실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특수성으로부터 또 하나의 통일전선이 나서게 된다.

 두 가지 통일전선은 전선의 성격과 주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하나는 민족민주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조국통일전선 또는 조국통일범민족전선이다. 민족민주전선은 한국사회에서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변혁을 수행하기 위한 통일전선이며, 조국통일전선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통일전선이다.

 우선 이 두 가지 전선은 변혁운동의 시기에 따라 범위가 달라진다. 민족민주전선은 이남에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변혁과제에 대한 지향을 기준으로 하는 전선이다. 반면에 조국통일전선은 남과 북, 해외동포를 포함한 민족 전체 범위에서 조국통일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자주ㆍ민족대단결ㆍ평화통일이라는 민족통일의 3대 원칙에 기초하고 6.15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민족민주전선에서는 함께 할 수 없는 보수세력이나 척결 대상까지도 민족통일전선에서는 조국통일에 동의하면 민족의 이익 앞에서 단결하게 되는 것도 두 가지 전선이 갖는 성격 차이 때문이다.

 민족민주전선은 민족자주와 민주주의변혁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기층민중을 중심으로 중간세력이 함께 하는 통일전선으로서 예속정권의 지배계급과 정당, 단체와 함께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국통일전선은 정세와 조건에 따라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은 물론 지배계급의 정당, 단체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것은 외세공조를 반대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사회변혁의 대상까지도 과거를 불문하고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민주전선은 목표인 자주적 정권이 수립되더라도 이후 정권의 내용을 변화 발전시키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는 반면에 조국통일전선은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조국통일이 완성되고 나면 자기 역할을 끝마치게 된다.

 이처럼 한국변혁운동에서 나서는 두 가지 통일전선은 하나의 길로 통하는 것이지만, 그 진행에 있어서는 편차를 가지고 전개되는 것이다.

 

 ③ 통일전선운동을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문제


 가. 통일전선운동의 현실

 한국변혁운동에서 통일전선운동은 대중투쟁과 대중운동 발전에 힘입어 과거에 비해 많은 발전이 있었으며, 이를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토대들도 만들어져 가고 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청년학생 등 기본 계급계층들은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대중조직들을 조직해 왔으며 중간층에서도 다양한 대중단체들을 만들었다. 또한 다양한 정치적 지향과 요구를 갖는 여러 연대연합 단체들도 생겨났다.

 이처럼 수많은 대중조직과 단체는 물론 민중연대를 비롯해 다양한 연대연합 단체들이 있다. 이 밖에도 6.15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많은 단체가 참여하는 통일연대와 남, 북, 해외의 3자연대체로서 2005년 결성된 6.15(민족)공동위원회들이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합법대중정당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조직들은 모두 연대연합운동의 소중한 성과들이지만, 통일전선조직으로 직결되기에는 여러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할 주체적 준비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다.

 우선 무엇보다 현재의 대중조직들이 각 계급계층의 대중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1,50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계급의 경우 한국노총 포함하여 조직화된 대중은 겨우 10%에 이르는 실정이다. 그리고 기층민중의 대중조직들은 현 시기 사회변혁을 위한 강령적 요구와 투쟁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대중투쟁을 올바른 방향으로 통일적으로 지휘해 나가는 정치적 구심이 튼튼히 꾸려져 있지 못하다. 전위정당이 합법성을 가질 수 없는 한국사회 현실에서 합법적으로 정치적 대표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합법정당이 정치적 지도를 수행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각급 조직에서 전선운동을 이끌어갈 튼튼한 지도간부 역량이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변혁운동세력이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하여 광범위한 중간층을 힘있게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이후 성장한 시민운동이 독자성과 영향력을 높여가는 현실에서 변혁운동세력의 전략적 연대 노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 통일전선조직 건설의 전제

 통일전선조직 건설에서 우선으로 나서는 대중적 토대 구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대중조직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통일전선조직이 자기 목적에 맞게 각계각층의 대중들을 가장 광범위하게 결집시키기 위한 기본 전제인 동시에 대중들의 지지와 엄호 속에서 가장 튼튼하게 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동자를 중심으로 기본계급 속에서 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대중의 신뢰를 받는 핵심간부 대오를 내오고, 이들이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고 강화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들은 올바른 지도력을 발휘하여 대중조직들이 통일전선의 토대를 강화하는데 복무하도록 하는 역할과 함께 연대연합단체와 합법대중정당 속에서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다양한 정치사업을 전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합법대중정당를 비롯한 합법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통일전선을 강화하고 각계각층의 대중들을 반미전선으로 결집시키는데 있어서 합법대중정당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합법대중정당은 의회와 선거 같은 합법 공간을 적극 활용해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대중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대안세력으로서 가능성을 실제 보여줌으로써 민중들의 정치의식과 정치역량을 한 단계 높여내고 각계각층의 대중을 정치역량으로 묶어내 전선운동을 강화하는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의 모습과 건설 방법

 그러면 변혁운동의 승리를 위한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방법으로 건설해 나갈 것인가?

 한국변혁운동에서 요구되는 통일전선조직은 모든 계급과 계층, 부문과 지역을 포괄하는 통일적이고 전국적인 조직이다. 그리고 사안별, 한시적 공동투쟁체의 성격을 넘어 민족민주운동진영의 공고한 정치연합 토대 위에서 사회변혁을 대중투쟁을 주동적으로 조직하고 지도하는 상설적인 전략적 연합체 성격을 갖는 조직이다.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과 같은 기본계급의 대중조직들을 어떻게 결집해 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자계급이 통일전선의 중심역량으로 자기 역할을 해 나갈 때 비로소 현재의 다른 계급계층과의 연대연합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혈연적 동맹관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은 과제를 힘있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대중조직 속에서 통일전선조직 건설을 목적의식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지도구심이 분명히 서야 한다. 노동자대중을 바탕으로 실천활동을 전개하는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들이 통일전선조직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 통일전선조직 건설에서 가져야 할 관점과 원칙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음은 그 동안의 변혁운동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대중 속에 뿌리내린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통일전선운동의 올바른 관점과 원칙을 가져야 한다.


 먼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기본 계급계층을 결집하는 원칙 위에서 광범위한 중간층을 결집해 나가는 관점이다.

 통일전선운동을 강화하는데서 사회변혁의 영도세력인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지향을 실현한다는 계급적 원칙을 확고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본 계급계층의 연대연합을 강화해서 이들이 변혁운동에서 갖는 역할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만약 기층계급 속에서 튼튼하게 뿌리박지 못한 통일전선조직은 탄압에 견디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소시민적 편향과 오류를 막을 수 없고 변혁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으로 발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범위한 중간층에 대해서 적극 연대연합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시민단체와 사회단체 등 중간층이 계급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대연합을 통해 변혁의 편에 서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하층통일전선을 중심으로 해서 상층통일전선을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통일전선운동이 각계각층의 대중을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정치적 역량으로 결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광범위한 대중을 변혁의 편에 서게 하는 하층통일전선을 강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하층통일전선을 중심으로 해야 상층통일전선도 튼튼한 기초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즉 대중의 힘으로 진보적 상층은 함께하게 만들고, 보수적인 상층은 압박해서 협력하게 하고, 수구반동적인 상층은 고립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상층통일전선도 빠르고 힘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상층통일전선은 광범위한 대중을 변혁의 편에 서게 하는 유리한 여건을 마련해 준다. 정당과 단체들을 움직이는 상층까지 쟁취해야 통일전선의 폭을 실제로 넓힐 수 있으며,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튼튼한 단결을 이루어내야 통일전선의 위력을 힘으로 보여줄 수 있다.


 끝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중심에 두고 단결과 투쟁을 밀접히 결합해 나가야 한다.

 통일전선 사업에서 연대연합하는 상호간에서는 서로의 정견을 존중하고 자기의 정견을 상대에게 관철시키려는 행위를 삼가 해야 한다. 또 상대의 계급적 이해 관계와 그 조직 활동을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통일전선은 서로의 차이를 철저히 존중하고 그 역할을 극대화하고 이 과정에서 신뢰를 가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시적인 제휴나 연합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사상의식을 바꾸는 풍부한 정치사업을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연합 과정에서 단결과 투쟁을 밀접하게 결합해야 한다. 단결을 기본으로 하고 단결의 목적에 맞게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의 투쟁 과정을 통해 단결을 더욱 높여내는 것이다.

 

2) 정당운동에 대한 이해


 ① 개념 정립이 필요한 이유


 민주노동당이 건설되고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합법대중정당에 대한 지위와 역할에 논의가 현장활동가들은 물론이고 많은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실천의 문제로 다양하게 제기해 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위와 역할에 대한 견해가 각기 다르고, 개념에 있어서도 진보정당, 통일전선체적 합법정당, 민족민주정당과 같이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강조하는 내용도 서로 달라서 많은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전위적 역할까지 부여하는가 하면, 일반민주주의 실현과 개혁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민주주의정당 수준에 맞춰져 있기도 하다.

 한국변혁운동에서 합법대중정당의 지위와 역할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식민지 사회에서 변혁운동의 실천경로로 역사에서 검증된 바 있는 ‘폭발적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민항쟁’의 경로에서 합법대중정당이 어떤 지위와 역할을 갖는지가 올바로 해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합법대중정당은 식민지 변혁운동의 전략적 무기인 통일전선과는 어떤 관계로 설정되어야 하는가가 명확하게 해명되어야 한다.

 변혁운동에서 합법대중정당의 의미를 브라질 노동당자당의 사례를 들어 절대화하는 태도나 칠레 아옌데정권 사례를 들어 전면 부정하는 태도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이다. 합법정당운동 역사가 깊지 못한 한국변혁운동에서 변화된 정세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함께 합법정당운동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② 정당과 관련한 기초 개념


 가. 당과 전위조직

 근대 정치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간의 날카로운 정치투쟁, 계급투쟁의 선두에는 그 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있어 왔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자본가계급의 당과 노동자계급의 당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계급계층의 당들이 출현하였다.

 인류 역사에서 계급과 무관한 당, 즉 계급적 이해를 초월한 만인을 위한 당이란 있어 본 적이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착취계급의 정당들은 말로는 “전 국민의 복리, 민중의 복리를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본가, 지주계급의 권익을 옹호하는 당들인 것이다. 이런 정당들은 기존의 반동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민중을 억누르고 변혁을 가로막아 나선다.

 반면에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지향은 초기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계급의 당으로, 러시아 혁명시기에는 노동자농민의 당으로,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근로대중의 당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당은 특정 계급의 이익을 지키고 요구와 지향을 실현하기 위하여 공통된 정치이념과 노선에 입각하여 투쟁하는 계급의 선봉대이자 정치적 결사체이다. 정당은 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부대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며, 여러 정치조직 중 정치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여 정치활동을 해 나가는 조직이다.

 

 한편 변혁운동에서 올바른 사상과 정치이념을 가지고 투쟁 속에서 단련된 선진적 운동가들이 결집해 변혁운동의 전 과정을 지도해 나가는 정치부대를 전위조직이라 한다. 전위조직은 초기에는 노동자계급의 당으로 출발했지만, 민중의 자주성이 높아진 새로운 시대로 오면서 통일전선 형태의 전위조직이 나타났다. 즉 노동자계급의 독자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이념에 기초하여 각 계급계층의 이익을 옹호하고 민족 단위에서 제국주의 세력과 싸우는 정치부대가 되는 것이다.

 

 나. 노동자 당과 근로대중의 당

 당은 처음에는 지배계급간의 이해에 따라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결성하는 정치그룹의 형태였으나, 근대적 의미의 당으로는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시작한 영국에서 1830년경에 기존의 지주계급과 귀족들의 이해를 대표하는 보수당과 신흥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표하는 자유당이 만들어진 것이 최초이다.

 노동자계급의 당은 독일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1869년 사회민주노동당이 만들어졌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과 노동단체, 사회주의단체들이 연합하여 1900년 노동자대표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것이 노동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변혁운동을 총 지휘하는 전위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의 당이 처음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은 러시아혁명 전인 1903년 레닌에 의해 주도되어 창건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었다. 이 당은 직업적 혁명가로 구성되고 강고한 지하투쟁을 통해 강철 같은 조직체계를 가졌으며,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대이자 지도조직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 러시아혁명을 성공시켰다.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계급의 당은 노동자를 기반으로 해서 건설되고 주로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에 근거해 활동하는 노동자계급의 전위대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이후 새롭게 건설되는 당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근로대중의 당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정예인자만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중심으로 하되 근로농민과 근로인텔리의 선진적인 역량을 포함해 조직되는 근로대중의 선봉대이다. 따라서 이 당은 노동계급뿐 아니라 전체 근로대중의 권익을 지키면서 그들의 투쟁을 통일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정치적 지도부가 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당이 근로대중의 당으로 되는 것은 운동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새롭게 변화된 시대는 지난 시대와는 달리 노동계급과 함께 광범한 근로대중이 인간의 자주성과 민족의 자주권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고 있으며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을 반대하는 강력한 역량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자계급의 당이 근로대중의 당으로 되는 것은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받는 식민지 나라들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선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노동자계급은 물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각계각층의 민중들도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의 착취로 고통 받으며, 민족적 억압과 멸시 속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변혁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동자계급의 당이 변혁과 건설을 성과 있게 추진해 나가자면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광범한 근로대중을 쟁취하고 이들의 힘을 발동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당 자체가 광범위한 근로대중 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대중적 당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근로대중의 당이 기반하고 있는 계급적 성격으로부터 당이 목표로 하는 정치권력도 사회주의정권이 아닌 민족 자주정권이 되는 것이다.


 ② 성격과 내용에 따른 정당 개념


 가. 전위정당과 대중정당

 전위정당은 변혁운동 역사에서 보이는 것처럼 전위조직의 지위와 역할을 갖는 정당을 말한다. 즉 노동자계급의 변혁지향을 분명히 하면서 전체 변혁운동의 전위적 지도역할을 자임하는 당이다. 따라서 전위정당은 변혁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훈련된 소수의 선진적 부문을 당의 구성원으로 한다. 전위정당은 통일전선조직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대중조직 속에서 지도적 내용을 관철해 나가며 최종적으로 변혁운동의 승리를 가져 오는 역할과 임무를 갖는다.

 이에 반해 대중정당은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계급계층에서 일정한 정치이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직하는 정당으로서 전위정당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지는 정당들의 대부분이 대중정당을 표방하는 것은 이전의 계급정당과는 달리 다양한 계급계층이 모두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계급에 따라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정치적 지향과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 대중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전위정당과 대중정당은 정치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전위정당이 변혁운동에서 전위조직으로서 자기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당원 가입이나 당 활동 목적에서 계급적 당파성과 변혁성을 분명히 하는 반면에 대중정당은 개인의 정치적 지향과 의사를 중심으로 당원 가입이 폭넓게 허용되고 정당 내에서 다양한 개별적 활동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대중정당도 정당인 이상 정치적 이념과 노선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대중을 다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전위정당과 대중정당의 구분은 노동계급의 변혁적 지향을 분명히 하면서 전위조직으로서 임무와 역할을 자임하고 수행하는 정당인지, 그리고 이에 따라 당원 가입 등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가에 따라 나누어진다. 


 나. 합법정당과 비합법ㆍ반합법정당

 합법조직이란 현 체제에서 지배세력이 정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조직이고, 비합법조직이란 법적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활동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반합법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는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어서 법을 이유로 탄압하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반합법조직이란 비합법조직 가운데 일부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법과 제도가 계급 또는 세력간 힘의 관계에서 정해지는 것이므로, 합법과 비합법의 기준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과 세력 사이의 역량 관계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다.


 일제시대나 군사정권과 같이 무력으로 지배하는 노골적인 폭압 사회에서는 지배체제를 변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변혁 지향의 정당은 합법화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중의 투쟁으로 합법성의 범위는 조금씩 넓혀져 왔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정당 건설의 자유가 확보되었고,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이 1998년 없어지면서 노동자들도 정당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공무원, 군인 등의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진보적 지향을 갖는 정당에게는 불리한 여러 가지 법률과 제도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남아있고 자유로운 사상과 이념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식민지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변혁의 내용을 강령으로 하는 변혁 지향의 정당이 합법화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진보 성향의 정당이 합법화가 되고 폭이 넓혀져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라도 불법으로 규정하여 탄압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정당의 활동조차도 미국이라는 지배세력에 의해 규정되는 법과 제도라는 틀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변혁운동의 지도구심의 역할을 수행하는 전위정당은 비합법 형태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변혁운동에서 볼 때, 합법정당과 비합법정당이 구분되는 것은 법률적 문제의 차이가 아니라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서로 다르게 정해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원론적으로는 현 체제를 유지하며 혁신적인 사상과 대립하여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강과 정책을 가지는 정당을 보수정당이라고 하였다. 즉 보수정당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18세기 영국에서 신흥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최초의 정당이었던 휘그당에 대항해서 귀족과 지주의 이해를 대변한 토리당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토리당은 이후 보수당으로 명칭을 바꾸어 계속되었다. 이처럼 보수정당은 급격한 변화를 배제하며 점진적인 개혁을 선호하는데, 시대와 국가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19세기 말 무렵부터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 정당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느냐,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보수정당과 혁신정당으로 불렸다. 보수정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정당을 뜻하게 되었으며, 각국의 사회당이나 공산당은 혁신정당이라 불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보수정당도 사회복지, 사회보장 정책 등에 관여하기 시작하고, 유럽 각국에서 혁신정당과 보수정당의 연립정권이 성립되기도 함으로써 현재는 보수정당과 혁신정당의 구분이 과거처럼 명확하지는 않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진보정당은 일반적으로 위의 혁신정당과 같은 의미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지향을 갖는 정당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진보나 진보정당의 개념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가지고 있어서 과학적, 역사적 개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분단체제라는 우리 사회에서 현실 사회주의체제인 북을 대하는 입장에 따라 같은 진보진영이나 진보정당이라 하더라도 입장의 차이는 매우 크다. 청년진보당이 명칭을 바꾼 사회당의 경우를 보면 이런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③ 합법정당운동의 역사


 해방 직후 열려진 공간에서 진행된 한국의 합법정당의 활동은 곧바로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되면서 합법정당운동은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1956년 진보당의 조봉암후보가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이것 역시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1960년 4.19항쟁 이후 활발하게 분출한 민중들의 변혁의 열망을 바탕으로 불과 몇 달 사이에 사회대중당을 비롯해 사회당, 통일사회당 등 혁신정당을 표방하는 합법정당들이 여럿 생겨났지만, 그 해 7월 내각제 총선에서 모두 참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진보 성향을 가진 합법정당들이 민중들의 사회변혁에 대한 요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식민지사회의 변혁운동이라는 분명한 관점과 올바른 전략전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튼튼한 대중적 토대 없이 단지 대중의 변화에 대한 열망에 의존하여 선거라는 국면에서 선거운동에만 주력했던 것이 결국 선거에도 패배한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대중운동에 튼튼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건설되고 전개된 합법정당운동은 조직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국주의 세력의 탄압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오랜 군사정권 시기의 암흑기를 거쳐 합법정당운동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7년 6월 민중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였다. 민중들의 투쟁으로 확보한 약간의 합법공간에서 1988년의 민중의당과 한겨레민주당, 1990년의 민중당이라는 진보 지향을 갖는 합법정당이 생겨났지만, 의미 있는 득표나 대중 기반도 획득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1992년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비롯한 일련의 창당 시도들도 수포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실패 후에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합법정당운동은 1997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의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합법정당운동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합법정당운동의 가능성을 보이며 현실정치에서 실험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 밖의 합법정당운동은 모두가 실패하였다. 이전의 합법정당운동이 실패한 것은 먼저 한국변혁운동의 정당 건설에서 주체적 관점을 세우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정치조직인 정당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정책과 노선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대중운동의 토대도 없이 일부 활동가들에 의해 조급하게 추진되었다. 이것은 대중운동, 특히 변혁운동의 주력군인 노동자계급의 대중운동이 발전하지 않고는 정당운동이 튼튼히 뿌리내릴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반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여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명실상부하게 변혁운동에 복무하는 합법적 대중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④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합법대중정당운동의 현실

 현재 진보 지향을 갖는 합법대중정당으로는 민주노동당 외에 사회당이 있다. 그리고 가까이는 2004년 총선에서 한국노총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던 녹색사민당이 있었다. 이러한 합법대중정당 중에서 민주노동당을 제외하면 활동경험도 짧은 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에서 대중적으로 검증되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합법정당운동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가. 민주노동당의 건설과 발전 과정

 1995년 건설된 노동자계급의 대표적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은 1997년 7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선거에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후보를 추대하고, 전국연합과 진보정치연합을 비롯한 정치조직과 민중단체들과 함께 선거연합체인 ‘국민승리 21’을 그해 9월 결성하였다. 그러나 선거에서 얻은 득표수는 30만 6천 26표(1.2%)라는 저조한 결과였다.

 그 후 30년 넘게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해 온 조항이 1998년 개정되면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된 ‘국민승리 21’은 본격적으로 진보적 합법정당을 건설할 것을 결정하고 1998년 2월의 지방선거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 선거에서 기초의원에 40명이 출마하여 18명이 당선되었으며, 광역의원에 6명이 출마하여 2명, 기초단체장에 3명이 출마하여 3명이 모두 당선되는 성과를 낳았다.

 민주노동당의 창당 준비는 두 차례에 걸친 ‘진보정당창당 원탁회의’를 개최하여 노동, 농민, 빈민, 지식인, 여성, 청년, 학생 등 각 부문 진보진영의 참여를 추진하고, 각 지역과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에서 창당 발기인을 조직하면서 진행되었다. 1999년 8월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데 이어, 2000년 1월 30일 전국 40여 개의 지부와 9천여 명의 당원으로 창당되었다. 2005년 6월 현재 민주노동당의 당원 수는 약 6만5천 명에 이르고, 2004년 말 기준으로 지역위원회가 150여개, 분회는 1,2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창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정당비례대표에서 1백34만3백76표(8.13%)를 득표하고, 기초단체장 2명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32명 등 총 46명을 당선시켰다. 2002년 대선에서는 95만7천1백48표(3.9%)을 득표했다, 이것은 지난 15대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이 얻은 30만6천26표보다 세 배를 넘는 득표를 한 것이다. 대선 과정은 전체 민족민주운동진영이 민주노동당의 독자후보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함께 전개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04년 4월 총선에서는 지역득표는 4.3%에 그쳤지만, 정당지지율 13.1%로 지역구 의원 2명을 포함하여 총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제3당으로 원내진출에 성공함으로써 대중 속에서 지지 기반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높아진 정치세력화 요구와 함께 민족민주진영이 합법정당운동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민주노동당으로 힘을 집중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나. 민주노동당의 현재 모습

 이와 같이 10여 년에 걸친 민주노동당의 발전 과정은 현실정치에서 합법대중정당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변혁운동에서 통일전선운동을 강화하는 주체로 나서기에는 극복해야 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첫째, 당이 광범위한 대중 속에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계급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 내에서 당원 가입이나 지지는 아직 확고하지 못하고 당사업도 힘있게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즉 노동자의 경우 이미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 간부들의 대부분과 많은 현장활동가들이 민주노동당에 가입되어 있지만 활동에 있어서 여전히 당사업의 주체로 서있지 못하고, 노동현장에 맞는 당의 일상적 정치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대공장의 경우 활동가들의 조직인 현장조직과 당 분회의 관계가 분명하지 설정되지 못한 상태이며, 중소사업장의 경우 노동조합 임원회의와 당원 모임이 같이 진행되는 등 사실상 당 활동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당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선거 때 후보로 나서거나 특별당비를 내고 선거운동에 일부 조합원이 결합하는 정도이다. 아직은 민주노동당이 노동자계급 속에서 튼튼하게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변혁운동의 중심역량인 농민의 경우도 역시 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농민당원의 수가 2006년 2월 현재 2,000명을 갓 넘을 정도로 당 활동에 조직적 참여가 활발하지 못하다. 또 한국 보수정치의 뿌리인 지역주의 영향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농민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영향력은 아직 미약하다.

 그 원인으로는 한국사회와 한국변혁운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고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을 노동자계급의 정당으로 이해하고 강화하려는 당 내부의 잘못된 계급주의적 흐름 때문이다. 한국변혁운동이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변혁에 이해를 같이하는 광범위한 계급계층을 가장 크게 결집시키지 못하면 당이 목표로 하는 정권장악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이것은 시급하게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 잘못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농민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대중들이 당의 주체로 나서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이 선거라는 합법적 경로를 통한 정권장악의 정치적 주체임을 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조직으로서 가져야 할 지도이념과 정책노선을 분명히 갖지 못하고 있다. 자주ㆍ민주ㆍ통일이라는 우리 사회의 변혁과제가 당의 강령과 정책으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고, 당원 가입과 당 활동에서도 정치조직으로서 가져야 할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당 사업에 있어서 정책과 방침의 부재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지도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정당의 생명인 정치사상적 통일성이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2004년에 원내진출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여기에 그동안 당이 안고 있던 여러 가지 조직적 문제와 맞물리면서 조직적 혼란과 지지 세력이 이탈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로 결국 2005년 10월 보궐선거의 패배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를 구성하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셋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민주노동당이 올바른 지도이념과 정책노선을 분명히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통일전선과의 관계 정립에서 많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은 한국변혁운동에서 통일전선과는 분명히 다른 지위와 역할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통일전선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부정하는 노선과 입장이 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을 노동자계급당으로 바라보는 계급주의와 맞물려 있다. 한편 그 의미를 인정한다고 해도 통일전선과의 관계에서 합법대중정당의 지위와 역할을 주관적으로 과도하게 규정하는 흐름과 경향이 그것이다. 이것은 ‘통일전선적 합법정당’과 같은 주장으로 나타나는데, 본질에 있어서는 선거혁명론이나 합법만능주의와 맞물려 있다.


 넷째, 합법대중정당과 대중조직의 관계가 올바르게 설정되지 않음으로써 조직의 강화와 확대에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즉 정당은 정강정책으로 대표되는 특정 정치이념과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조직인 반면에 대중조직은 정치적 견해를 불문하고 계급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면 모두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원론적인 관계 설정부터 철저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정치조직인 민주노동당이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에 대해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오히려 민주노총에 의존하고 나아가 그 결정에 좌우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당원의 힘에 기초해 자립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으며,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 외의 정당 선택을 제약받으면서 조직 내부의 혼란이 발생하면서 결국 민주노총의 조직역량이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⑤ 합법대중정당의 지위와 역할


 한국변혁운동에서 합법대중정당은 전위정당과 다르게 합법, 공개 영역에서 대중들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고 수행하는 정치조직으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즉 합법대중정당은 대중에 대한 정치사업을 전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정치조직 중에서 정치권력 장악을 자기 목표로 하는 정당의 형태를 가진 조직이며 현실 정치에서 합법적 지위를 가진 조직이다.

 따라서 합법대중정당은 의회와 선거를 중심으로 한 합법, 공개 공간에서 정치활동의 주요한 주체가 된다. 또한 통일전선조직의 성원이자 통일전선운동 강화에 복무하는 주체로서 지위를 갖는다. 이와 같은 지위를 갖는 합법대중정당은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합법대중정당은 무엇보다도 대중의식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합법대중정당은 비합법 전위조직이나 반합법적인 통일전선조직이나 정치조직과 달리 합법적 수단과 방법을 통해 광범위한 대중을 의식화 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즉 합법대중정당은 대중의식화에서 중요한 수단인 방송사, 신문사, 출판사, 교육기관들을 일상적인 정당활동과 선전활동에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또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는 선거에 참여하거나 확보된 의회 공간을 통해 다의 강령과 정책을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선전, 교양할 수 있다.


 둘째, 합법대중정당은 대중을 조직화하고 대중투쟁을 확대하는데 적극 기여할 수 있다.

 합법대중정당은 당원을 대중조직이나 통일전선조직체에 파견하거나 반대로 대중조직의 지도역량을 당원으로 가입시켜 당의 대중적 기반을 강화함과 동시에 광범위한 대중을 대중조직과 통일전선조직에 결집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합법대중정당은 중간계급계층을 묶는데 커다란 장점이 있다. 합법성과 대중성을 활용해 중간 계급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을 결집시키고, 여러 정당들과 제휴하고 연대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역할을 통해 변혁운동에서 통일전선운동을 강화하는데 합법적인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합법대중정당은 합법공간을 활용하여 각계각층 대중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 엄호하고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앞장섬으로써 투쟁전선을 민중 전체로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합법대중정당은 민중이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쉽게 다가서게 할 수 있다.

 현실의 정치공간에서 선거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이를 통해 정권수립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⑥ 합법대중정당의 활동 방향


 합법대중정당은 대중투쟁과 의회투쟁 중 어느 하나만 절대화하고 다른 투쟁형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을 위주로 하면서 여기에 선거투쟁을 비롯한 의회투쟁을 밀접하게 결합하는 방법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합법대중정당의 의회 진출은 그 자체가 합법정당운동의 당면 목표이자 동시에 주요한 수단이다. 합법대중정당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진출시켜 공개적인 의회정치를 펼쳐 나가야 자신들의 목표를 현실정치 속에서 실현시킬 수 있다. 만약 의회 진출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합법정당운동이 가지는 생명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변혁운동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듯이, 대중투쟁을 소홀히 하면서 매 선거에 결합하는 선거활동만을 통해서 자주적 정권을 수립한 예는 없다. 브라질의 노동자당의 경우를 보더라도 1978년~79년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 승리가 당 결성의 토대가 되었고, 무토지 농민들의 농지개혁투쟁과 1989년 2천만 명이 참여하는 총파업투쟁을 실제 주도하면서 대중의 지지 기반을 넓혀 낼 수 있었다. 또한 당이 현실정치에 진출한 이후에도 1984년 반군부독재투쟁, 직선제개헌투쟁이나 1992년 콜로르대통령에 대한 탄핵투쟁을 의회투쟁으로 국한하지 않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전개함으로써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합법정당이라고 해서 합법영역이나 선거만을 중심에 두고 활동하는 것은 필연코 변혁성을 상실한 개량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변혁운동의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만일 합법대중정당이 대중투쟁이 빠진 선거활동으로도 정권수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민중은 자신의 절박한 계급계층의 이해를 실제로 실천투쟁으로 대변하지 않는 정치세력을 결코 자신들의 정치적 대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합법대중정당은 변혁운동의 관점을 분명히 하면서 정치조직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정치이념과 정책노선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럴 때에만 합법대중정당이 자주ㆍ민주ㆍ통일이라는 우리 사회의 변혁과제 실현에 복무하는 조직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지역 대중 속에서 생활적으로 결합하여 다양한 정치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을 통해 당의 진지를 지역 속에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합법정당운동에서 나타나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점을 시급히 극복해 나가야 한다.

 우선 기존의 이론을 기계적으로 빌려와 합법대중정당의 성격과 정치적 이념을 계급정당과 사회주의로 규정하는 잘못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통일전선이라는 변혁운동 전략에 복무하는 합법대중정당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올바르게 세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변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정당 활동을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대하는 개량주의, 출세주의 경향을 단절시켜 정당이 개량화 되는 것을 막고 변혁운동에 복무하는 정당으로서 가져야 할 변혁성과 계급중심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3) 대중조직에 대한 이해

 

 ① 변혁운동에서 대중조직의 지위와 역할


 대중조직이란 각 계급계층이 자신들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조직으로서 대중의 자주성을 기본으로 한다.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조합원은 물론 전체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높여내는 활동을 하는 조직이다. 농민의 대중조직인 농민회는 농사에서 상부상조는 물론 농민의 경제적 이익과 농업 정책을 통해 농민의 권익을 실현하는 조직이다. 또한 학생들의 대중조직인 학생회는 학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학생대중의 자주적이고 생활적 요구를 기본사업을 한다.


 그러나 대중조직이 자신의 생활적 요구와 경제적 요구를 위한 투쟁을 기본으로 한다고 해서 사회변혁의 본질인 정치적 요구와 정치투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중조직이 포괄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대중들은 가장 초보적인 생존권적 요구를 위해서도 정치적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자본과 권력 그리고 외세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착취와 억압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초보적인 요구조차도 정치적으로 맞물려 있는 한국사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② 대중조직은 통일전선과 합법대중정당의 물적 토대이다.


 대중조직은 모든 사회운동에서 가장 기초가 된다. 대부분의 대중조직이 자신의 계급계층의 이익을 위한 활동으로부터 시작하지만 투쟁을 통해 자기 계급계층의 이익이 다른 계급계층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다른 계급계층과 연대와 공동투쟁으로 나아가게 된다.

 바로 대중조직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투쟁들을 통해 통일전선의 한 부분으로 참여해 나가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중조직은 합법대중정당에 직접 참여할 수 없지만 합법정당을 강화 확대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대중적 토대이다.


 현재 한국변혁운동의 실천과정에서 가장 먼저 힘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 바로 대중조직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일이다. 통일전선운동과 합법정당운동을 대중적 토대 위에서 튼튼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대중 속에 튼튼히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대중조직들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중조직 중에서도 우선 노동자를 비롯한 농민, 빈민 등 기본계급의 대중조직을 튼튼하게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계급을 비롯한 계급계층별 대중조직은 대중의 생활적 요구를 바탕으로 하고, 정치조직과 달리 합법성을 쉽게 가질 수 있는 만큼 계급적 이해를 같이하는 가장 광범위한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각 계급계층의 대중조직이 일상생활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활동을 기본으로 하면서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는 투쟁에 대중 자신이 주체로 나서도록 하는 의식화, 조직화와 대중투쟁을 적극 전개하는 것이 전선운동과 정당운동을 강화하는 전제이다. 특히 주체역량 강화가 시급히 요구되는 준비기의 한국변혁운동에서 대중조직운동을 강화 발전시키는 일이 사활적 과제로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③ 한국변혁운동에서 민주노총의 지위와 역할


 가.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민주노총은 위에서 말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전국조직이다. 노동자계급의 또 다른 전국 단위 대중조직으로 한국노총이 있지만 뿌리 깊은 어용성과 개량주의적 성격 때문에 실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대중조직이 바로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면서도 착취와 억압으로 고통 받기 때문에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이 높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대중조직이라는 점에서 다른 계급계층의 대중조직보다 한국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높다.


 1987년 노동자들의 투쟁과 이후 계속된 전국적인 총파업투쟁은 노동자계급과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높여 왔다. 그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은 민중연대, 통일연대 사업과 민주노동당 사업을 비롯하여 여러 민중연대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역량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해 나가는 조직으로서 많은 한계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전체 1,500만 노동자 중에서 민주노총의 조합원은 최근의 공무원노조 가입으로 약 80만 명에 이를 뿐이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는 민주노총에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850여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또 조합원의 경제적, 계급적 이익을 위한 활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기 한국변혁운동에서 민주노총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당면 목표를 실현하는 투쟁에서 현재의 역할을 더욱 높여낼 것을 요구받고 있다.


 나. 변혁운동에서 민주노총이 요구받고 있는 역할

 우선 민주노총 자체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변혁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민주노총 조직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민주노총이 현장대중의 힘에 기초하고 민주적인 조직운영과 투쟁하는 조직으로 내부를 혁신시켜 내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과 미조직, 실업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로 민주노총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화사업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산별노조 건설강화 사업을 실속 있고 힘있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나아가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와 전 민중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투쟁을 전개하여 노동자계급은 물론 전체 민중의 투쟁구심체로서 신뢰와 지도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노동자들이 사회변혁의 투쟁주체로 나서도록 안내하고 조직하는 역할이다. 즉 민주노총이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노동자 해방세상 건설이라는 변혁운동과 노동운동의 전망을 분명히 제시하고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사업을 통해 변혁운동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에서부터 노동자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다양한 수준과 형식의 정치사업을 배치하고, 일상적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제되고 자본과 정권이 앞장서고 있는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한 생존권 위협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체 민중의 투쟁으로 집중시켜 내고 나아가 고통의 근본을 제거하는 사회변혁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일전선운동과 합법정당운동에서 민주노총이 책임있게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다. 우선 계급계층과의 연대연합 사업에서 민주노총이 명확한 변혁운동 관점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이 주도하여 노동자들이 농민, 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의 연대연합 활동을 강화하는 일은 사활적인 문제로 나선다. 이것은 통일전선조직의 대중적 토대를 밑으로부터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도 단위에서부터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지역농민회를 중심으로 공동투쟁과 연대사업을 강화해서 지역별 연대연합조직체를 건설하고 강화해야 한다.


 물론 이런 역할은 조직 규모도 크지 않고 대중조직의 성격을 갖는 민주노총으로서는 쉽지 않은 역할이지만, 정치조직이 튼튼하게 서 있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의 중심역량으로서 높아진 사회적 위상에 걸맞게 사회변혁이란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전 민중적, 전 민족적 이해를 실현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이처럼 한국변혁운동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이 변혁운동의 승리를 위해 가장 먼저 민주노총을 올바로 세우는 일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통일전선과 정당의 관계

 

 ① 통일전선과 전위정당ㆍ합법대중정당의 관계


 변혁운동에서 정당운동은 지난 시기에는 노동자계급의 전위조직으로서 당운동, 즉 전위정당운동을 의미했다. 그러나 식민지사회에서 정당운동은 각자가 갖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비합법전위정당과 함께 합법대중정당으로서 나누어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변혁운동에서 통일전선과 정당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가. 통일전선과 전위정당의 관계

 원론적으로 보면 통일전선을 건설하고 강화하는데서 구심역할을 하는 주체는 전위조직으로서 전위정당이다. 그러나 식민지사회에서 가지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비합법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전위정당은 통일전선은 물론 합법대중정당과 대중조직을 통해 조직적 지도를 관철시켜 나간다. 이처럼 전위정당은 변혁운동을 승리로 이끌어 나가는 전략적 당으로서 지위를 갖는다.

 전위조직과 통일전선의 관계는 사람 몸에서 행동을 지휘하는 뇌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전위조직이라면, 신체 각 부분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통일전선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전위조직은 정치사상적 지도력을 가지고 각계각층 대중역량을 의식화, 조직화하면서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스스로 통일전선은 물론 대중조직 속에 녹아 들어가서 겉으로는 전혀 눈에 띄지 않지만, 내용적 지도를 관철시킴으로써 통일전선을 올바른 변혁의 길로 움직여 나가게 한다.


 나. 통일전선과 합법대중정당의 관계

 이에 반해 합법대중정당은 변혁운동의 당면 과제를 대중적이고 합법적인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각계각층의 대중운동에 제기하고 앞장서 실천해 나간다. 합법대중정당은 통일전선에 참여하는 각 계급계층운동에 깊이 들어가서 정치사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통일전선의 한 주체로서 합법 영역의 구심 역할을 해 나가는 전술적 당으로서 지위를 갖는다.


 통일전선과 합법대중정당과의 관계에서 합법대중정당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전략적 무기인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고 강화하는데 복무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즉 합법대중정당은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고 강화하는 일에서 중심주체를 세우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변혁운동에서 요구되는 합법대중정당은 각계각층의 대중조직이나 통일전선과는 그 지위와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변혁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는 만큼 서로 긴밀히 연대연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합법대중정당이 각계각층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대중정당임과 동시에 통일전선을 이루는 구성 주체라는 점에서 대중조직은 물론이고 통일전선조직과의 관계를 유기적이고 통일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예상되는 제국주의 세력의 탄압에서도 합법대중정당이 계속 전진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바로 각계각층의 대중조직과 통일전선조직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합법대중정당은 통일전선조직의 구성하는 주체인 동시에 통일전선운동을 강화하고 확대해 나가는 활동의 주체로서 자기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합법대중정당은 현 시기 한국사회의 변혁과제인 자주ㆍ민주ㆍ통일 실현을 자기 강령으로 하면서도 광범위한 각계각층과 모든 세력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대중적 정당이어야 한다.

 

 ② 베트남 변혁운동 경험으로 살펴 본 통일전선과 정당의 관계


 우리 민족과 같이 사회체제가 다른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베트남에서 전개한 변혁운동의 사례는 통일전선과 정당의 관계 설정에서 유익한 참고가 된다.

 제국주의의 지배하의 남베트남에서 반미민족해방투쟁을 수행하는 변혁운동의 조직적 구심은 통일전선조직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었다. 남베트남에서 호찌민 노선을 따르는 전위조직인 ‘인민혁명당’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계급, 지역, 정당 조직 편재에 있어서 여러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정당조직의 하나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민혁명당’은 여타의 정당들은 물론 각 계급계층조직과 지역조직을 내용적으로 지도하며,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중앙에 대해서도 지도를 관철시킨다. 여기서 ‘인민혁명당’ 자체는 소수 전위로 구성된 당으로서 수적으로는 다른 정당보다 작지만, 각 당원들은 핵심 단위와 조직, 그리고 핵심적인 사람들 속에서 전위적 지도를 수행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전위정당인 ‘인민혁명당’은 강력한 지도역량을 가지고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③ ‘통일전선적 합법정당’ 주장에 대한 반론


 가. ‘통일전선적 합법정당’ 주장의 주요 내용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대해 ‘통일전선적 합법정당’이라는 개념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는 주장이 있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즉 “통일전선적 합법정당은 여러 정당, 단체들의 연합전선과 같은 강력한 통일전선조직이 될 수 없으나, 광범한 민중을 결집시키는데 유리한 통일전선의 합리적인 조직형태이다. 통일전선적 합법정당은 계급계층별 조직과는 달리 공동의 구호, 통일전선적인 강령에 기초하여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종교인, 민족자본가, 중소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을 포괄한다. 나아가서 여러 정당이나 정치단체들과 연합전선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합법적인 주체세력으로도 될 수 있다. 통일전선적인 합법정당은 당면한 자주ㆍ민주ㆍ통일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그 과정에서 각 정당, 정파, 단체, 개별인사들과 제휴 합작하고 보수정당 내의 개혁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큰 틀의 연대연합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한데, 이것은 합법정당이 통일전선조직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나. ‘통일전선전 합법정당’ 주장의 문제점

 이와 같은 ‘통일전선적 합법정당’ 주장은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대중정당으로서 광범위한 각계각층을 담아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기하는 것이란 점은 이해되지만, 통일전선운동과 합법대중정당의 관계를 올바르게 규명하고 정립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정당과 통일전선의 차이를 모호하게 하여 정당과 통일전선이 갖는 고유의 성격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즉 통일전선은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대중들을 변혁대열로 이끌기 위한 조직형태이다. 이에 반해 정당은 아무리 낮은 수준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계급적 지향을 가질 수밖에 없고, 정치조직의 본질상 정치적 이념에 동의하는 대중이 정당 활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를 간과하고 합법정당이 대중조직과 단체 그리고 정당들까지 함께 하는 형태의 통일전선조직과 같다고 보는 것은 과학적 개념이 될 수 없다.

 식민지 변혁운동에서 합법대중정당이 광범위한 각계각층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옳지만, 이것은 통일전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의 대중적 기반과 영향력을 폭넓게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다음으로 ‘통일전선적 합법정당’의 주장은 결국 현재의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합법대중정당이 대중정당으로서 자기 지위와 역할을 넘어서 전위정당이 수행하는 전위조직의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주장으로서 실천 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무리하게 ‘통일전선체적 합법정당’ 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가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는 책임주체가 되고,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이 통일전선의 역할까지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결국 이 주장은 합법대중정당을 통일전선 및 전위조직과 유기적이고 통일적인 관계로 바라보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한국변혁운동에서 통일전선과 전위조직의 역할을 부정하고 전술적 당의 지위를 갖는 합법대중정당의 역할을 과도하게 규정하면서, 합법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변혁운동의 모든 역할을 다 수행할 수 있다고 바라보는 잘못된 주장인 것이다.

 

 6. 다른 나라 변혁운동 사례로 살펴 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실천경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실천경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다른 나라 변혁운동의 경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 남미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회변혁운동의 사례들은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브라질 노동자당의 사회변혁 경로는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되는 ‘선거를 통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경로’의 유력한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가 다른 나라의 경험과 사례를 참고하는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 관점을 분명히 갖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험과 사례가 한국변혁운동에서 또 하나의 교조를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제국주의의 식민지 또는 그 지배 하에서 전개해 온 사회변혁운동의 여러 사례 중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수립한 경로에 해당되는 사례와 이와 다른 경로로 정권을 수립한 사례로 나누어 간략하게 살펴본다.

 

1) 선거를 통한 자주적 정권 수립의 사례


 ① 브라질 - 노동자당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오랫동안 식민지로 있다가 1822년 독립을 쟁취하였는데, 1889년 대지주인 농장주들의 쿠데타로 군주제가 철폐되고 연방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64년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체제가 유지되어 오다가 1985년 민간정부가 들어섰다.

 브라질은 정치, 경제적으로 여전히 제국주의 지배에 놓여 있다. 다국적기업이 브라질 자동차공업의 60%, 광물자원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2000년 현재 2천3백억 달러의 외채를 지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빈부 격차, 도시농촌의 격차가 심하고 성인문맹률은 17%에 이르고 있다.

 브라질은 사상과 이념에 대한 통제가 우리처럼 심각하지 않고, 좌우갈등이나 전쟁으로 이념 반공이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지 않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국민의 약 85%가 믿는 종교로서 사실상 브라질의 국교인 카톨릭이 진보세력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진보진영이 상당한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정권 때의 탄압으로 인해 민중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가진 비합법 전위조직은 없다.

 

 브라질에는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정당으로서 노동자당과 함께 공산당, 사회당, 민주운동당 등이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브라질 사회변혁에서 중심 역할을 해 온 것이 바로 브라질 노동자당(PT당)이다. 노동자당은 진보적인 합법정당으로서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초하여 1980년 2월에 당을 결성하여 20여년 만인 2002년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노동자당은 1998년 선거를 통하여 상원의석 81석 가운데서 7석을, 하원의석 513석 가운데서 60석을 각각 차지하였다. 그리고 2001년 현재 약 190개 시에서 집권하고 있다. 인구 1억6천만 명인 브라질에서 노동자당의 당원 수는 약 3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1978년~79년 금속노동자들의 파업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파업투쟁 승리의 경험 속에서 노동자들이 정치주체로 나서야 하는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금속노동자들과 노조지도자였던 룰라가 있었다.


 브라질에서 이와 같이 노동계급에 기반하는 노동자당이 결성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정당 결성이 허용된 법적 변화와 함께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당을 건설하는 주체로서 파업투쟁을 비롯한 수많은 투쟁 속에서 대중들로부터 지도력을 인정받은 룰라를 비롯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있었다. 브라질에서 1964년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대부분의 변혁운동가들을 제거하였고, 노동조합활동에 대해서도 강력히 통제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신노조운동의 중심에서 투쟁들을 지도했던 룰라는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둘째로 노동운동 지도자를 당의 지도부로 가진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 속에 기반을 튼튼히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카톨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전개된 교회기초공동체와 같은 지역주민운동과 학생운동은 1978년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연대지원하면서 노동자당의 대중기반을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셋째로 사회변혁을 위해 활동해 온 다양한 입장을 가진 좌익조직들은 건설 과정에서 많은 혼란도 주었지만, 각 지역별로 진행된 당의 조직건설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다.

 넷째로 군사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옮겨가는 사회민주화 과정에서 활동했던 제도권 정치가들이 노동자당에 참여함으로써 당의 대중기반이 확대될 수 있었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 정당의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많은 의회 지도자들을 당으로 끌어들였는데, 이것은 노동자당이 빠른 속도로 대규모로 당원을 가입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노동자당과 노동운동의 관계는 초기 브라질 노동자당 건설 과정에서는 “당보다 노조가 우선이며, 당의 활동은 노동운동에 더 좋은 여건을 마련하는데 있지, 노동운동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란 점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1981년, 1983년 파업을 거치면서 전국적 노동운동 조직체인 노동자중앙연합회(CUT)를 건설하여 1989년에는 2천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총파업을 조직하였다. 그 후 노동자당과 노동자중앙연합회는 사회운동의 중심역할을 해 나갔다.

 당시 브라질 공산당과 노동당(PTB)은 노동운동을 당에 종속되는 관계로 생각한 반면에 노동자당은 노동운동에 당이 종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노동자당이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건설되었던 것에 비춰보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당과 노동조합 관계에 대한 많은 혼란이 계속되어 왔다.

 이후 많은 논의를 거쳐 두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즉 “노동조합은 정당이 아니므로,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당의 기초는 많은 부분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당이 집권한다면 노동자중앙연합회는 노동자당과 대립할 수도 있다. 노동자중앙연합회는 당으로부터 독립되어 정치적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당은 당 결성 목적을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 경제적 변혁을 이루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념상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웠다. 그러면서도 당은 교조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브라질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을 지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당은 합법정당으로서 합법적 방법만을 강조하는 세력과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전위적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 양쪽 모두를 견제하면서 대중정당으로 성격을 탈바꿈해 갔다.

 이를 위해 당 조직체계에서 누끄레오(핵심세포)라는 조직을 도입하고, 전당대회에 앞서 예비대회 제도를 만들어 당 지도부 선출제도를 대중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대중정당으로서 토대를 쌓아갔다. 특히 누끄레오는 지역주민, 직업 범위, 작업장, 사회운동 등에 따라 조직되는 당원의 일차적 정치활동 영역이자, 당원들이 당 문제에 대해 의사를 표현하고 토론하는 단위로서 당과 사회운동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당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당은 노동운동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을 가졌던 노동자당이 1982년 이후 계속된 몇 차례의 선거에 참여하면서 얻은 활동경험들은 당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런 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사회의 각 조직 속에 더욱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며, 노동자계급에만 기반하는 것을 넘어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전술을 갖게 되었다. 이런 방향 전환은 기존의 당의 개념을 노동자당의 개념에서 시민사회대중정당으로 바뀌게 하였다.

 1982년 선거 이후 당이 의회와 지방자치단체에 진출하면서 제도정치에 대한 참여 형식과 방법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노동자당은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1982년 디아데마, 1985년 포스탈레자, 1988년 상파울루에서 노동자당이 집권하는 경험을 통해 현실정치에서 자율적 대중조직을 기초로 하는 통치방식을 찾게 되었다. 노동자당은 대중 속에서 영향력이 확대되자 당의 후보를 내 대통령선거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네 번째 만인 2002년 당 후보인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당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2002년 이후 보여주는 모습은 사회변혁을 위한 자주적 민주정부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즉 노동자당 정권은 브라질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세력과 자본가, 지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기존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경제정책 책임자들을 신자유주의자들로 임명하고, 연금과 세제, 사회보장 면에서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노동정책에서도 노사정 사회협약을 제안하며 연금지급 축소, 임금인상 중단과 최저임금 인상 연기, 노동조합 재정 약화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관료적 지도부들을 정부 요직에 임명해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한편 노동자 민중에 대해서는 참고 기다려 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룰라정부는 이와 같은 정책으로 제국주의와 국내 지배세력의 묵인 속에서 2005년에는 브라질 역사상 최고의 무역수지 흑자와 사상최대의 외환 보유고를 기록하고 IMF 채무를 조기상환 하는 등의 수치적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당과 룰라정부의 절대적인 지지기반인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기층민중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노동자당이 집권 이후 보여준 변화는 노동자당과 룰라를 지지했던 노동자민중이 바라는 진정한 사회변혁의 길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집권 후반기인 2005년에 불거진 룰라 행정부와 노동자당이 관련된 대규모 뇌물파동은 지지기반의 이탈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작용을 했다.


 20여 년에 걸친 브라질 노동자당의 경험은 유력한 전위조직을 갖지 못한 민중들이 사회변혁을 승리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계급, 노동운동이 중심이 되어 합법정당을 만들고 투쟁과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는 데까지 모범적인 사례로 이해되었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수많은 지역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한데 이어, 2002년 선거를 통해 중앙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것은 노동자당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2002년 10월 룰라의 대통령 당선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은 제국주의 영향을 받는 사회에서 선거라는 합법적 수단을 통한 정권장악이 자주적 정권 수립과 진정한 사회변혁으로 가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우리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② 베네수엘라 - 혁명 볼리바르-200


 

 약 2,600만 명(2003년 기준)의 인구를 가진 베네수엘라는 대부분의 중남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석유자본은 미국 자본가들이 쥐고 있었다. 이것은 과거 군사쿠데타로 들어서 군사독재정권들이 자신의 권력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석유채굴권을 비롯해 석유산업에 관한 이권을 미국에 넘긴 결과이다.

 1958년 군사독재정권이 민중봉기로 무너지고 이후에는 민주행동당과 그리스도교사회당의 양대 보수정당 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왔으나, 1989년 민주행동당의 페레스대통령이 IMF의 지도를 받아들여 금리자유화, 공공요금 인상 등 긴축정책을 도입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고, 1992년 2월과 11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대통령이 부패사건으로 퇴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998 선거를 통해 40여 간의 양당체제를 끝내고 휴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베네수엘라 정치에 파란이 일기 시작했다.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열렬히 지지하는 차베스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입학해 1975년 임관했으며, 1982년 ‘혁명볼리바르 운동-200(MBR-200)’이란 조직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공수부대장 출신인 차베스는 1992년 4월 군대 내 조직원을 중심으로 천명의 군인들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2년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출감 후 정치조직인 ‘제5공화국 운동(MVR)’을 결성하고 제도정치권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제5공화국 운동(MVR)’은 선거를 위해 급조되어 차베스의 인기를 이용하려는 출세주의자나 기회주의자들이 다수 참여한 정당이었기 때문에 이후 개혁 과정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차베스는 1998년 대통령선거에서 빈곤과 부정부패 추방,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56%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차베스는 당선되자마자 공약으로 내걸었던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소환제를 포함한 수많은 권리를 민중들에게 부여하는 ‘볼리바리안 헌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에 의해 실시된 2000년 대선에서 차베스는 좌파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함께 실시된 국회의원, 주지사 선거에서도 압승하고 사법부도 새로 구성함으로써 의회와 행정부, 사법부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차베스는 국가 전 분야에 걸쳐 개혁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개혁법안 제정을 추진하였으나 집권당의 문제로 인해서 제대로 되지 않자, 2001년 헌법이 보장한 비상대권을 이용하여 개혁법안을 통과시키고 개혁작업을 진행하였다.


 차베스가 개혁작업을 실시해 나가자 반대세력의 반발이 거셌고, 이에 대해 차베스는 군대를 동원해 강경하게 맞섰다. 그 과정에서 연립정권 세력이 이탈하고, 지지 세력이었던 노동조합도 반정부세력의 중심으로 나섰다. 특히 노동조합은 국영석유회사에 차베스의 측근이 임명되자 총파업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이를 틈타 일부 군인들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차베스가 대통령직에서 사퇴하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여기에는 차베스 정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화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차베스가 대통령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반미의 길로 나가자 미국의 태도는 달라졌다. 특히 2001년 차베스 대통령이 석유수출 로열티를 외국 기업에 높게 물리는 새로운 석유법을 마련하자, 미국은 반격을 결정하고 반차베스 연합세력을 사주하여 2002년 4월 12일 독재에 항거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자본가와 다국적기업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반차베스 세력은 차베스 퇴진과 조기 대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하였고, 차베스에 반대하는 일부 군인들을 동원해 군사쿠데타를 시도하여 차베스를 대통령궁에서 몰아내고 오르칠라섬에 구금시켰다. 차베스 퇴진으로 친미자본가세력이 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을 맡으면서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개혁입법을 모두 폐지하고 의회마저 해산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임시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반발한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빈민층이 군부 내의 변혁세력과 노조와 힘을 합쳐 쿠데타세력을 몰아내고 섬에 갇힌 차베스를 구출해 옴으로써 그는 3일 만에 대통령직에 돌아왔다.


 차베스가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지만 반변혁 세력은 정권을 되찾기 위한 반격을 계속했다. 국영석유회사 노조를 중심으로 친미세력과 결탁한 어용노조 세력인 노동자연맹이 전국적 총파업을 벌이며 차베스퇴진을 압박하였으나, 두 달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반대세력들은 헌법의 대통령소환제를 이용하여 차베스 소환을 위한 국민투표를 조직하는 공세를 벌였으나, 2004년 8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소환이 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중들은 차베스의 개혁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스스로 ‘볼리바리안 서클’을 비롯해 각 지역 차원의 자발적인 민중조직들을 결성하고, 그 힘으로 반변혁세력의 공세를 막아냈다.


 차베스는 이와 같은 민중의 힘에 기초하여 2005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사회주의 선언을 하면서 일련의 변혁조치들을 취해 나갔다. 즉 석유, 천연가스, 광업 등의 국가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은행에 대해서는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공식화 하였다. 그리고 토지개혁법에 입각해서 전체 농지의 80%를 유상 및 무상으로 몰수해서 빈농 중심의 협동농장에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 교육과 의료에 있어서도 개혁정책을 실시하여 그 결과로 빈곤층에 대한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쿠바로부터 1만 명의 의사를 지원받아 빈곤층의 의료사업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변혁을 위한 사업에 들어가는 재원은 국가가 장악한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

 나아가 차베스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사회변혁 과정에서 획득한 지지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정치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남미 전체 민중의 투쟁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남미에 절대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 미국에 맞서 남미 민중들이 단결하여 진정한 해방을 쟁취해 나간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베네수엘라 사회변혁운동이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민중들이 사회변혁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스스로 조직화 되었다는 점이다. 정권장악 후 집권세력인 제5공화국운동(MVR)이 우경화되자,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결성하게 하였고, 그 힘으로 변혁운동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1998년 집권 이후 계속된 반변혁세력의 쿠데타, 총파업, 대통령 소환투표라는 세 번에 걸친 위기를 돌파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민중들의 자발적인 조직이었다.

 다음으로 정권을 수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사회변혁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어 나갔다. 칠레 변혁운동의 실패를 거울삼아 사회변혁이 대통령 당선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변혁을 실제 수행할 수 있는 물적 토대, 즉 의회와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기관 전체를 처음부터 장악해야 한다는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헌의회 소집을 비롯해 국가기관을 접수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밟아 나갔다. 

 끝으로 베네수엘라라는 구체적인 사회현실에 근거하여 변혁운동에서 핵심이 되는 주체역량을 확고하게 갖추었다. 특히 군부 내에 튼튼한 변혁운동역량을 갖춤으로써 반변혁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했을 때, 민중들과 힘을 합쳐 막아낼 수 있었다. 차베스대통령 자신이 군인 시절에 ‘혁명볼리바르 운동-200(MBR-200)’ 이라는 조직을 건설하였으며, 그 역량이 계속하여 변혁운동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더 높은 사회변혁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웃 나라인 브라질과는 다른 토대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에 따라 그 모습은 많이 다르다. 현재 진행형인 베네수엘라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평가를 지금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베네수엘라 변혁운동세력의 노력은 우리가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③ 칠레 - 인민연합


  세계변혁운동 역사에서 제국주의 세력과 친미예속정권을 반대하여 투쟁해 온 민중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사례가 바로 칠레의 아옌데정권이다. 1970년 10월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는 사회당, 공산당, 급진당과 기독교민주당의 일부로 구성된 인민연합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818년에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칠레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처럼 미국에 의한 국가경제 지배와 극심한 빈부격차로 절대다수의 민중은 소수의 자본가와 지주에 의해 고통 받았다. 미국의 30대 다국적 기업 가운데 24개가 칠레에 진출해 있었고, 은행을 제외한 18대 칠레 기업이 미국의 자회사였다.

특히 1964년 자본가정권인 프레이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의 실패로 치솟는 인플레와 파업 등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나빠졌다. 1968년 초 칠레 노동조합연맹은 프레이의 파업금지령에 맞서 전국적인 파업을 단행했다. 이 파업의 승리에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들은 투쟁을 더욱 확산시켰다. 1969년에는 파업 1,939건에 참가자 23만 725명, 1970년에는 파업 5,295건에 참가자 31만 6,280명으로 늘어났다. 인민연합은 이와 같은 노동자계급의 투쟁 물결 속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옌데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로 잡고, 계급간의 심화된 갈등구조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이 중심이 된 다국적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던 탄광, 구리광산을 국유화하고, 노조의 활동을 강화시키는 개혁을 시도했다. 미국은 이러한 아옌데정권의 개혁정책이 칠레의 구리광산을 비롯한 여러 산업을 독점해 온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해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리고 쿠바에 이어 칠레에서 수립된 정권 영향으로 사회주의혁명이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옌데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적극 나섰다.

 한 방법은 칠레경제를 마비시켜 새 정권을 어렵게 하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군대를 통해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미국은 칠레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구리의 국제시장 교란을 목적으로 미국 내에 비축하고 있던 구리를 국제시장에 내놓았고, 그 결과 국제시장에서 구리의 가격은 15.7%나 하락하였다. 그 결과로 칠레는 1973년 상반기에만 300%에 이르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맞게 되었으며, 개혁정책으로 기득권을 빼앗기게 될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파업을 일으키게 하거나, 트럭업자들이 스스로 운행을 중단함으로써 물자운송을 정지시키는 등 전국적으로 자본가, 지주에 의한 대대적인 반격이 전개되었다.

 또한 야당은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으며 개혁을 저지했다. 한편으로는 미국은 8백만 달러의 자금을 들여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그러나 칠레 민중은 아옌데를 믿었고, 1973년 3월 의회선거에서 아옌데의 인민연합에 과반이 넘는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보여주었다. 이후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은 아옌데의 개혁은 힘을 얻었고 본격적인 개혁에 시작하기 전에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다. 바로 그 투표를 하려고 했던 날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칠레에서 선거를 통해 수립된 자주적 정권이 추진한 사회변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 원인의 몇 가지를 들면,

첫째, 식민지사회에서 변혁이 아닌 점진적인 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아옌데와 인민연합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의회를 장악했지만, 칠레의 경제, 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여전히 미국과 구 지배세력이 가지고 있었다. 의회에서 새로운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그들은 외화를 해외로 반출하거나, 실업률을 높이거나, 파업을 유도하고 상품의 매점매석을 추진하는 등 개혁을 저지하는 여러 행동들을 취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오히려 새 정권에게 돌렸다.


 둘째, 정권의 물적 기반인 국가기구, 특히 공권력을 장악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공권력에 의해 전복되었다. 원칙상 군대나 경찰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 수반과 국회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 그들에 대한 결정권은 직업군인들이었다. 식민지사회에서 직업군인들은 대부분 미국에 의해 발굴되어 육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은 제국주의와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명령에 수행하지 않았다. 실제 칠레에서 아옌데정권 3년 동안 군대와 경찰은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때가 무르익었을 때 아옌데정권을 전복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선거로 집권한 아옌데정권이 민중의 이익을 실현하고 정당성을 가진 정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자본가들의 반격에 맞서려고 했을 때 움직일 수 있는 국가기구는 전혀 없었다.


 셋째, 아옌데정권은 정권의 기반인 민중의 요구와 힘을 적극 추동하지 못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아옌데정권이 표방한 민중을 위한 사회변혁은 지지부진했고, 거기에 미국의 방해공작이 강화되면서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민중들은 아옌데정권이 실질적이고 변혁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인민연합은 의회정치라는 정치구조 속에서 노동자, 중간계급, 일부 자본가 등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조정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득권 세력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노동자 민중들은 자신들의 투쟁으로 세운 자주적 민주정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자본가와 지주들의 사보타지에 맞서 노동자들의 공장 장악, 학생들의 시위, 농업노동자들의 토지 점거로 대항했다. 그러나 인민연합은 칠레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군부와 타협하였고, 그 결과로 군부는 더욱 큰 힘을 갖고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탄압하게 되었다.

 이처럼 인민연합정권은 선거에서 절대적 민중의 지지로 집권하여 사회변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의회정치라는 틀 속에서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추진하다가 결국 제국주의와 지배세력의 반격을 받아 집권 3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2) 선거가 아닌 경로를 통한 자주적 정권 수립의 사례

 

 ① 니카라과 -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니카라과에서 50여 년에 걸친 소모사 친미예속정권을 타도하고 1979년 7월 19일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운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청년애국단을 비롯한 몇몇 소규모 무장조직들이 통합하여 1962년에 결성되었다. 1927년~34년에 미군 주둔에 항거하며 게릴라전을 벌이다가 암살당한 산디니스타의 전통을 계승하여 1960년대부터 소모사정권에 반대하여 게릴라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결성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변혁운동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위당적 조직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소모사정권의 탄압으로 무장조직 활동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여러 무장조직 사이의 노선논쟁을 거치며 변혁노선을 분명히 하였다. 즉 “사회주의혁명에 앞서 자본가까지를 포함시킨 민족연합전선을 구축하고 민중봉기를 통해 소모사정권을 신속하게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독자적으로 신속한 민중봉기와 민족연합전선’이라는 두 가지 방침을 내세웠다.

 

 그 후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노선에 의하여 연합전선이 구축되어 갔다. 즉 자유주의적 야당세력과 노동조합연맹의 동맹체인 민주주의해방연합과 연합하여 총저항전선을 결성하고, 니카라과 국민들 사이에 영향력이 지대한 명망가 집단인 ‘12인 그룹’까지 포괄해 통일전선의 토대를 만들어갔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이렇게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분열되었던 여러 조직들을 통합하고 이들에 대해 지도력을 획득해 나간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1979년 민족애국전선을 결성하여 그 해 6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지도로 소모사정권에 대해 총공세를 개시할 수 있게 된다. 정권에 대한 공세는 단순한 군사공격 뿐만 아니라 전술적인 민중봉기와 총파업으로 국가방위군 병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해 생산을 일시에 정지시킴으로써 소모사정권의 물질적 토대를 일격에 붕괴시킨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소모사정권은 1971년 이후 의회를 해산하고 1973년 1월에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였고, 1974년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자 야당 지도자와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1978년 1월 소모사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라 프렌사 신문의 챠모르 사주가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사모사정권 퇴진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한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우선 소모사정권을 축출시키는 데 총력을 집중하고, 자주적 정권 수립 후 즉각적인 반미투쟁을 수행하는 방식에 따라 변혁운동이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전략이 나올 수 있었던 니카라과의 조건을 보면, 첫째로 이미 상당한 지역에서 무장투쟁으로 확보한 해방구들이 있었으며, 둘째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중남미의 국가들과 연대 지원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미국의 군사개입이 쉽지 않은 상태였고, 셋째, 소모사정권 폭압정치의 잔학성이 세계적으로도 알려져 규탄의 대상이 될 정도로 소모사정권이 고립되어 있었고, 넷째, 니카라과 변혁운동의 결과로 대중들의 반미의식은 흔들리지 않을 만한 수준이라는 판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총공세 개시 49일 만인 1979년 7월 19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수도 마나구어에 입성하여 임시혁명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자주적 정권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즉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1979년 6월 정부위원회를 중심으로 ‘12인 위원회’, ‘반정부 확대전선’, ‘통일인민운동’, ‘전국애국전선’과 같은 정치단체와 함께 ‘니카라과 국가재건정부’를 설립하여 정권을 장악해 나간다. 결국 1979년 7월 19일 소모사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하고,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한다.

 이후 국가재건정부는 행정권을 장악하고, 1979년 5월 47명으로 조직된 국가평의회와 함께 입법권을 함께 장악한다. 그리고 설탕분배의 국유화를 포함한 경제계획과 농업협동조합의 국가관리, 산업국유화에 따른 제한정책, 토지개혁정책 등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소모사 가문의 50년 독재정권을 끝내고 니카라과에 자주적 민주정권이 들어섰으나,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순탄하지 않았다. 즉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군대를 비롯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함과 동시에 국가정책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선명하게 내세우고 쿠바, 소련 등과 가까워지는 등 사회주의 성격을 분명히 하자, 미국은 옛 소모사정권 때의 군대를 중심으로 ‘콘트라반군’을 창설하여 군사적 지원과 배후에서 조종하여 자주적 민주정부를 전복하려고 하였다. 그 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과 ‘콘트라반군’ 사이에 치열한 내전이 계속되었다.

 양측은 1988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유엔 감시 하에 자유선거를 치르는 것에 합의하여 내전은 끝났으나, 1990년 2월의 선거에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미국의 절대적 지원을 받은 친미자본가, 지주세력의 연립정당인 민족재야세력연맹에게 패함으로써 자주적 정권을 수립한 지 11년 만에 정권을 내놓고 말았다.


 이처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자주적 정권을 수립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제국주의의 정치, 군사, 경제적 공세 앞에서 사회변혁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와의 타협은 결국 선거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친미세력에게 합법적으로 정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물론 이와 같은 객관적인 원인 외에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자신의 집권 시기 동안 민중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을 갖게 하는데 실패했던 정치역량이 지적되어야 한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친미자본가정권에서 군부를 장악한 제1야당으로서 선거를 통한 재집권을 시도하였지만, 1996년과 2002년 계속해서 미국의 절대적 지원을 등에 업은 친미자본가 세력에 패배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1995년 차모로정권의 경제안정화 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문제로 분열되는 등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내부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② 베트남 -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남 변혁운동 역사는 1930년 호치민에 의해 홍콩에서 결성된 ‘인도차이나 공산당’으로 시작하며, 그 후 여러 대중조직들을 흡수하여 1941년 ‘베트남 독립독맹’을 결성하고 반프랑스, 반제반파시스트운동을 주도하여 1945년 9월 하노이에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고 제국주의 프랑스에 맞서 1954년까지 전쟁을 전개했다. 전쟁 승리로 1954년 제네바협정 체결되었으나, 남베트남에 친미예속정권인 고딘디엠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단이 굳어지자 남베트남 민중들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반정권, 반미투쟁을 전개했다.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은 1961년 처음으로 미국 정규군을 파견해 특수전쟁을 전개한데 이어 1964년의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이를 빌미로 미군을 직접 전투에 참가시켰고, 1965년에는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개시해 미국과 베트남 민중의 군사전쟁이 진행되었다. 결국 1975년 4월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주하고 북베트남과 베트남남부임시혁명정부가 사이공을 점령함으로써 30여 년의 전쟁을 끝내고 남베트남에 자주적 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1976년 남북이 합친 통일국가를 선포하였다.


 남베트남의 변혁운동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1959년부터 남베트남에 거점을 두고 자율적으로 게릴라활동을 전개하던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일명 베트콩)이 중심이 되어 1960년 각계 대표 100여명이 모여 비밀리에 결성한 것이었다. 남베트남 정부의 타도와 민족민주연합정부의 수립, 독립과 자주경제 건설, 남북관계 정상화와 평화적 재통일 등 10개 항의 정치 강령을 채택하였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결성 1년 만에 해방구를 전 영토의 20%까지 확대하고, 군사조직도 만들어 1962년 2월경에는 무장병력이 1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다. 그 후 남으로 이주한 북베트남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하였고, 북베트남과 동맹적 관계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1962년 ‘베트남 노동당’의 남부지부로 ‘남베트남 인민혁명당’을 결성하였고 1969년에는 ‘민족평화연합․민족민주연합전선’들과 협력하여 ‘남베트남공화국 임시혁명정부’를 수립하는 등 변혁운동에서 중심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76년 베트남이 통일되자 ‘베트남 공산당’을 비롯한 다른 단체와 함께 ‘베트남 민족통일전선’으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통일전선조직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함께 전위조직으로는 1962년 결성된 ‘인민혁명당’이 있었다. ‘인민혁명당’은 소수 전위로 구성된 당이지만, 활동은 남베트남의 여러 정당 중의 하나인 형태로 하였다. ‘인민혁명당’은 전위당으로서 당원들이 각 계급과 지역, 정당에 들어가서 전위적 지도력을 관철하였고,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도 실제 지도해 나갔다. 남베트남변혁운동에서 정치활동은 통일전선조직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통해 진행되었고, 전위조직인 ‘인민혁명당’은 많은 정당 중의 하나로 존재하면서 각 조직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실질적인 전위조직으로서 지도력을 행사한 것이다.

 ‘인민혁명당’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군사조직인 ‘인민해방군’과 식민지에서 자주적 정권의 역할을 수행한 임시혁명정부에 대해서도 지도력을 발휘했다. 즉 군사조직과 별개의 명령체계를 가진 ‘인민혁명당’의 정치장교들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군사위원회와 군사행동작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조직을 이끌어 나갔다. 임시혁명정부 역시 ‘인민혁명당’ 내의 중앙행정위원회의 지도를 받아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


 한편 자주적 민주정권에 해당하는 ‘베트남남부공화국 임시혁명정부’는 ‘인민혁명당’의 지도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중추세력이 되어 1969년 수립이 선포되었다. 그 전인 1968년에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참가하지 않은 개인과 정당들을 결집해 ‘민족민주평화세력연합’을 결성하여 같이 참여하였으며, 그 후 베트남 민중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국제사회에서 남베트남의 2개의 정치적 실체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다. 또 베트남 평화에 관한 확대파리회담에 참가하고,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성립된 ‘베트남에서의 전쟁종결과 평화회복에 관한 협력’에 조인함으로써 남베트남에서 총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관할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결국 남베트남에서 티우 정권이 붕괴되자, ‘베트남남부공화국 임시혁명정부’는 남베트남에서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후 1976년 7월 제6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 ‘베트남 공화국’과 함께 통일국가인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흡수되었다.

 

 ③ 쿠바 - 7월 26일 운동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는 1902년 독립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토지가 미국 자본과 쿠바인 대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민중은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독재정권의 부패도 심해져서 여러 차례 민중봉기가 일어났지만 미국에 의해 진압되었다. 1933년 직간접으로 쿠바의 정치를 좌우해온 바티스타는 195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쿠데타로 취소된 1952년 선거에 대통령으로 출마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1953년 7월 156명의 대원과 함께 산티아고에 있는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 게릴라전을 포함해 소모사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무장공격노선을 가진 ‘7월 26일 운동’이 결성되었다.

 1955년 특사로 풀려나 멕시코로 망명한 카스트로의 주도로 1956년 체 게바라를 비롯한 82명이 쿠바에 상륙, 마에스트라산맥을 중심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인 끝에 1959년 1월 바티스타정권을 축출하고 자주적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자주적 정권 수립 초기에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등 민주주의 변혁의 성격을 띠었으나, 1960년 후반 이후부터는 사회주의 변혁의 성격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데 이어 미국기업의 국유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단행하였다. 이후 5월 사회주의적 성격을 선언하고 ‘쿠바 사회주의혁명통일당’을 결성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망명 쿠바인들로 하여금 1961년 4월 쿠바로 진격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또한 미국은 1962년 10월에는 소련 중거리 미사일의 쿠바 반입을 이유로 쿠바 해상을 봉쇄했고, 1964년에는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강화하는 조치와 함께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들에게 쿠바와 국교를 단절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쿠바에서 자주적 정권수립은 게릴라전을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전국적인 민중봉기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지배정권과 지배체제를 일거에 전복하고 수립되었다. 그 후 미국의 숱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변혁을 거쳐 사회주의 변혁의 길로 이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 변혁운동에서 현장활동가의 임무와 역할

1) 현장조직운동의 전개 과정과 역할

 ① 현장조직운동의 전개 과정


 현장조직 또는 현장조직운동은 지난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현장에서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노조민주화추진위(노민추)의 성격으로 건설되었고, 오늘의 민주노조운동이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각 사업장의 현장조직들은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역할과 함께 노동조합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할을 함께 수행했다.

 즉 현장조직은 변혁운동에 대한 학습과 연구, 강고한 실천투쟁을 통해 활동가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에서 계급성과 정치사상을 획득함으로써 사회변혁의 지향 속에서 활동들을 다양한 전개했다. 이처럼 현장조직은 사업장 내 현장활동을 기본으로 지역과 전국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대로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많은 현장조직들이 단위사업장의 임단협투쟁이나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활동하는 것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현장조직의 기본임무라 할 수 있는 현장조직력을 높여내는 활동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업장을 뛰어넘어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등 노동자계급 전체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활동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빠르게 자주ㆍ민주ㆍ통일로 발전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장조직운동이 이를 올바르게 안내하고 조직하여 노동자들을 정치세력화의 주체로 세우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즉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이 사회변혁의 중심역량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변혁에 대한 실천적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현장대중의 힘으로 뒷받침하는 현장조직의 자기임무를 충실히 전개하지 못했다. 그 결과로 민주노조운동은 변화된 정세와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적극 실현하고 사회변혁의 길로 힘있게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② 현 시기 현장조직운동의 역할


 현장조직운동은 노동현장에서 대중투쟁을 통해 현장투쟁력을 복원하는 일에서부터 올바른 정세인식에 기초한 노동운동의 정책과 노선을 마련하고 노동자계급이 변혁운동의 주체로 서게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현재 현장조직운동이 한국변혁운동에서 요구받고 있는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장조직운동은 노동조합활동과 민주노조운동을 강화하는 활동에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일상 현장활동을 통해 현장조직력을 강화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임단협 시기에 머무르는 실천활동이 아니라 제국주의 경제침략의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로 강화되고 있는 현장의 노동통제를 막아내는 것을 비롯해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활동을 적극 벌여나가야 한다.

 어용노조 사업장 경우에는 민주노조를 세워내고 이를 민주노조운동으로 집중시키는 활동은 물론 비정규직을 비롯한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활동에도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활동은 민주노조운동 강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기업별 의식을 현장에서부터 극복하는 것이고, 당면한 산별노조사업을 현장 노동자들의 힘에 기초해 전개하는 활동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현장조직은 더 많은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노동조합 활동의 내용을 발전시켜, 조합원대중의 의식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간부역량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실천활동으로 노동운동과 변혁운동의 물적 토대인 현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들 속에서 정치투쟁을 안내하고 조직하는 주체로서 현장조직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자주통일투쟁을 비롯한 정치투쟁은 일상적 경제투쟁과는 다르게 많은 조합원들을 참여하게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올바른 정치사상으로 무장하고 실천투쟁 속에서 단련된 현장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현장에서부터 각성된 선진부대를 조직하는 한편으로 노동조합 차원에서 대중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정치활동을 통해 현장에서 크고 작은 정치투쟁의 모범들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광범위한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정치총파업이 가능하다. 조합원들의 경제적 요구와 결합하여 조합원들이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정치적 실천투쟁에 나서게 안내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당면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도 현장 내 일상투쟁 속에서 노동자대중이 정치적으로 자각하고 정치활동의 주체로 나서야만 위력적인 힘을 발휘될 수 있다. 현장조직은 조직의 정치역량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현장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수준과 방식의 정치적 실천사업을 내오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 민주노조운동 이념과 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실천투쟁의 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의 발전과 급변하는 정세는 민주노조운동이 사회변혁운동의 영도세력으로서 가져야 할 이념과 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방침을 내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장활동가와 현장조직은 민주노총이 올바른 이념과 노선으로 무장하고 노동자계급과 전체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위한 투쟁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부터 뒷받침해 나가야 한다. 즉 민주노총이 노동자는 물론 전체 민중의 고통의 근본 원인인 제국주의 지배와 조국분단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통일조국을 이루는 활동에 적극 나서게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각계각층이 함께 참여하는 민중연대와 통일연대와 같은 연대연합체 활동에서 주도성을 발휘하여, 한국변혁운동에서 시급하게 나서는 강력한 통일전선조직과 합법정당의 대중적 토대를 밑으로부터 강화하는 일에도 현장조직이 조직역량을 배치해야 한다.

 

2) 사회변혁을 위한 현장활동가의 임무와 역할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과 전체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정치투쟁을 총파업으로까지 연결시켜 나갈 때, 변혁운동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농민과 학생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투쟁을 하나로 결집해 30만의 조직적 투쟁을 일상적으로 벌일 수 있는 주체역량이라면 변혁운동의 승리를 얘기할 수 있다. 관심과 요구가 집중되는 사안이나 국면에서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모아 100만의 대중적 정치투쟁을 만들어 내는 경험들을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구체적인 전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한국변혁운동의 전략 목표인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은 반미전선으로 결집한 압도적인 민중의 힘으로 가능하며, 그 힘은 민중의 정치투쟁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변혁운동의 전 과정에서 전위조직의 올바른 지도가 관철되는 속에서 광범위한 대중들을 결집해 위력적인 대중투쟁으로 만들어 나가는 전선운동이 힘있게 진행되고, 이를 밑에서부터 받쳐 주는 대중조직의 토대가 튼튼하게 꾸려지는 과정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장조직운동, 즉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지금 무엇을 중심으로 준비해 나가야 하는가?


 첫째,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을 강화하여 변혁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튼튼하게 세워나가야 한다.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사회변혁투쟁의 주체로 나서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자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을 변혁운동의 중심역량으로 세워야 한다. 자주ㆍ민주ㆍ통일의 사회변혁 과제를 자각한 현장활동가가 현장에서부터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사업을 창조적으로 벌여 나가는 것이 지금 시기에 가장 집중해야 할 사업이다.

 이를 위해 현장활동가가 속해 있는 현장조직부터 조직적인 정치투쟁 속에서 정치역량을 높여내야 한다. 이런 정치적 역량에 기초해 현장에서 노동대중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대안세력으로 인정받는 현장조직이 되어야 한다.


 둘째, 한국변혁운동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세우고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진정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현장활동가라면 변혁운동의 올바른 전략전술로 무장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서 강력한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일에 앞장서서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장조직운동은 사회변혁을 위한 조직적 무기인 통일전선의 중심성을 조직적으로 분명히 가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각 현장조직이 통일적인 정치방침을 갖기도 어렵고, 조직적 실천에도 어려움과 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통일전선운동은 노동자계급만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과 부문에서 농민, 빈민, 학생과 같은 다른 계급계층과의 연대사업과 공동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조직 차원에서 민중연대와 통일연대 사업에 책임성 있게 참여하는 것도 적극 고민되어야 한다. 특히 노농연대, 노학연대 투쟁을 강화해서 활동가들 사이에서부터 혈연적 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의 정치적 동맹을 내와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 지역에서부터 농민회나 학생회 활동가들과 낮은 수준에서부터 공동사업에 대한 정기적인 협의체계를 만들어 공동의 논의와 실천투쟁을 벌여나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셋째, 통일전선에 복무하는 합법대중정당을 튼튼하게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

 현장활동가와 현장조직은 민주노동당이 통일전선 강화에 복무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합법대중정당으로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통일전선운동을 중심으로 하면서 합법정당운동을 밀접하게 결합하여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합법대중정당에서 흔히 발생하는 개량주의나 출세주의를 비롯해 여러 잘못된 경향성과 사업기풍을 막고 운동성과 변혁성에 기초한 건강한 기풍을 세우기 위해서는 당 활동 전반에 걸쳐 노동자계급의 계급 중심성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현장활동가가 합법대중정당, 특히 민주노동당 사업에 참여하는 문제에 있어서 정당은 개별가입 형식이기 때문에 민중연대나 통일연대와 같은 공동투쟁체나 연대연합체에 조직 단위로 결의하여 가입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조직에서는 민주노동당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통일전선 활동 사이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대립되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 차원의 역량배치라는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장활동가는 노동조합 활동도 하고 상급단체 활동, 노농연대투쟁, 지역 사업, 정당 활동들과 같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활동을 잘 하려면, 조직 차원에서 각 사업들을 통일적으로 바라보고 성원들의 특성을 살려 알맞게 역량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보통 정당에 가입하게 되면서 말로는 통일전선운동도 하고 정당운동도 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정당 활동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당 사업이나 통일전선 사업 모두가 상당한 역량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정치활동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조직은 단순히 당원 가입으로 당원 수를 늘리는 관점이 아니라 각 현장조직이 민주노동당 활동을 어떤 체계와 방식으로 전개할 것인지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즉 전선운동과 정당운동의 관계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조직 안팎의 실정과 조건을 잘 파악하여 역량을 배치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참여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조직 차원에서 책임을 함께 한다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


 현장조직운동은 사업장과 지역에서 노동조합 사업과 지역연대 사업, 그리고 전선과 정당 사업을 모두 아우르고 가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통일적으로 바라보고 어떤 틀과 내용으로 묶어낼 것인가이다. 그리고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역량 배치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와 같은 사업들을 통일된 방향 속에서 진공적으로 준비해 들어가는 단위가 있어야 한다. 현재의 우리 실정에서는 현장조직운동, 즉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가 각 지역에서부터 이런 고민을 주도적으로 제기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지역본부가 중심이 되고 각 계급계층의 조직과 단체 그리고 정당이 함께 하는 연대연합을 통해 현장과 지역에 변혁운동의 튼튼한 기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민중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결심하고 나선 우리 현장활동가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는 막중한 책무이다.  (2006년 2월. 한 해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