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공세와 반제투쟁, 그 격돌의 의미를 생각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제국주의세력의 광란적 공세와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생존파탄
2.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본 반동적 인권공세의 역사와 구조
3. 제국주의세력의 인권공세와 사이비진보세력의 정치적 배반
4. 반제투쟁의 전개양상과 반제투쟁의 4대 축
5. 반제자주의 기치, 남(한국)의 진보정치와 북(조선)의 선군정치
6. 한(조선)반도에서 격돌하는 사회변혁운동과 제국주의전쟁연습


 

1. 제국주의세력의 광란적 공세와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생존파탄

오늘 제국주의세력의 공세는 가히 광란적이다. 각국 언론은 제국주의세력이 세계적 범위에서 침략과 예속, 지배와 수탈을 자행하는 현장소식을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하고 있다. 
아시아,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자본주의로 복귀한 이전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수 십억 명에 이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이 틀어쥔 대량수탈의 올가미에 묶여 신음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러한 나라들의 중소자본마저도 연쇄파산으로 무너지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이른바 '외국계 투기자본'이 시세차익을 노리고 국내시장에 침투하여 거액을 챙기기가 무섭게 빠져나가는 사실만 지적하고 있으나, '외국계 투기자본'의 전술적 금융수탈보다 더 악질적인 것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아예 국내금융시장을 타고 앉아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는 전략적 대량수탈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대량적으로 수탈하려면 개별나라들이 자국의 자본계급의 시장지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일련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세계화의 이름으로 낱낱이 파괴해야 한다. 요즈음 제국주의지배권력이 부쩍 다그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 등은 그러한 파괴공작이 어떻게 추진되는지를 드러내주는 현상들이다.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이 일차적으로 식민지예속국들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실업과 비정규직의 올가미를 씌워 결국 생존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남(한국)의 노동계급이 처한 현실은 하나의 전형으로 된다. 지금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을 보장하는 비정규직법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킴으로써 남(한국)의 노동계급을 생존파탄으로 마구 떠밀고 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통계자료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4년 12월 7일에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14억명의 노동자가 하루 2달러도 벌지 못하는 절대빈곤상태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5억5천만명은 하루에 1달러 이하의 돈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반면에, 2004년 말 현재 연간매출이 5억 달러가 넘는 미국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얻은 연간평균보수는 미국 대통령이 받는 연봉보다 30배나 많은 215만달러이다. (『연합뉴스』 2006년 1월 23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자 14억명이 하루에 1달러로 살아가는 고통스런 현실의 반대쪽에서는 미국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하루에 5천890달러씩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1달러의 소득과 5천890달러의 소득 사이에서 드러나는 극단적인 차이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깃발을 휘두르는 자본주의체제의 대량착취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이 몰고 온 중세기적 야만 그 자체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과 동반적으로 자행되는 또 하나의 만행은 제국주의지배권력의 정치군사적 공세이다. 제국주의지배권력은 가공할 무력수단을 총동원하여 반제투쟁에 나선 저항세력을 살육파괴하면서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길을 터주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이 침략전쟁을 도발한 뒤 1천일이 되는 2004년 12월 13일 현재 제국주의침략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희생된 이라크 인민은 저항세력이 5만3천470명, 민간인이 약 3만명이다. (『연합뉴스』 2005년 12월 14일) 이라크의 현실은 제국주의지배권력이 저지르는 살육과 파괴의 만행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그 만행은 이라크 국경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체제의 지배와 수탈에 반대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압살제거하려는 광란적 공세로 준비되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미 8만5천명 이상의 이라크 인민을 살육한 제국주의 미국은 그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이란 인민을 살육하려는 무력침공을 준비하는 중이다.
요즈음 언론에 자주 나오는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강화에 따라 남의 나라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신속기동군의 침략적 동원체계 수립, 지구전역을 뒤덮는 공습타격체계의 개발, 반테러를 빙자한 침략전쟁연습 실시, 침략전쟁의 돌격대인 특수부대 창설, 다종다양한 첨단무기의 개발과 실전배치, 제국주의동맹국들과의 침략동맹 형성, 대량파괴무기(WMD) 확산을 방지한다는 구실 밑에 추구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확산, 그리고 장기적 경제제재조치 강화 등이 눈에 띄는데, 이것이 모두 제국주의지배권력의 정치군사적 공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국주의세력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수 십억 명에 이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대상으로, 평화와 안정을 갈망하는 인민들을 제국주의침략무력의 대량살육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로써 21세기의 제국주의세력은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파괴하는 범죄자로 되었다. 
명백하게도, 제국주의세력의 공세가 집중되는 지역은 한(조선)반도와 중동이다. 제국주의침략무력은 한(조선)민족을 대량살육대상으로 삼은 핵전쟁 선제타격전략을 작동하면서 신속기동군 배치, 공습타격체계 및 미사일방어체계 보강, 첨단무기를 동원한 합동군사훈련 실시, 미일 침략동맹 강화, 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조치 강화를 광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에 발맞추어 제국주의독점자본은 남(한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피와 살을 쥐어짜는 대량수탈의 강도를 끊임없이 높이고 있다. 
요즈음 라틴아메리카에서 자주적 민주정권이 연이어 등장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반제자주의식으로 무장한 그 지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하여 얻어낸 정치적 승리인 것이 분명하지만, 제국주의세력이 한(조선)반도와 중동에 공세를 집중하는 사이에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공세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제국주의 미국이 중동에서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정치군사적 공세를 집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조선)반도에서는 북(조선)의 강력한 압박공세를 받으며 곤경에 빠졌다.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및 증산에 관한 폭탄선언으로 제국주의 미국을 결정적으로 곤경에 몰아넣은 북(조선)은 계속하여 일면타격, 일면협상의 변화무쌍한 압박전술을 취하면서 이미 곤경에 빠진 부시정부를 연속적으로 강타했다. 연속강타를 받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제국주의 미국은, 오랫동안 집요하게 들이대었던 '선핵포기'의 요구를 포기하고 마침내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였다. 6자회담에서 그 성명이 채택된 것은 북(조선)이 반제자주적 비핵화를 실현할 정치적 돌파구를 열어놓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으로부터 연속강타를 맞고 복수심에 불타오른 부시정부가 생각해낸 것은 9.19 공동성명에 대한 합의와 그 성명의 실질적 이행을 전연 별개의 문제로 분리시키는 반격전술이었다. 실제로, 부시정부가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까닭은, 그 성명을 이행하려고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북(조선)의 연속강타를 우선 급한 대로 피하고 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는 부시의 정적들과 공화당정권 반대파들이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나 9.19 공동성명 채택을 부시정부의 정책적 실패로 규정하고 부시정부의 무능을 비난공격하기 시작하였다.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지 않으려는 부시정부의 본래 의도, 그리고 미국 내부의 정적들과 반대파가 터뜨린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그들의 비난을 피해보려는 부시정부의 의도가 합성되는 시점에 출몰한 것이 북(조선)에 대한 새로운 유형의 반동적 정치공세이다.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제국주의 미국이 '위폐문제'와 '인권문제'를 들고 나와 반동적 정치공세를 개시한 배경에는 그러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었다. 
제국주의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이른바 '인권문제'를 제기한 까닭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부시정부가 '인권문제'에 목청을 높이면서 북(조선)에 대한 반격공세를 취하는 한,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다른 한편, 제국주의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이른바 '위폐문제'를 제기한 까닭은, 부시정부가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을 비난하는 미국 내부의 정적들과 반대파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위폐문제'는 미국 내부의 정적들과 반대파들이 부시정부에게 퍼붓는 비난공격이 수그러들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출 수 있는 전술공세이지만, '인권문제'는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여 공모결탁한 제국주의연합세력이 가하는 반사회주의 압박책동의 전략공세이므로 쉽사리 꼬리를 감추지 않을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 천명된 반제자주적 비핵화의 과제는 제국주의세력의 인권공세라는 암초를 만나게 되었다. 9.19 공동성명 이후 조미관계에서는 북(조선)의 반제자주적 비핵화공세와 미국의 제국주의인권공세가 충돌하게 되었다. 9.19 공동성명은 제국주의인권공세의 암초 때문에 당분간 순항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제국주의세력의 광란적 공세 가운데서도 특히 제국주의인권공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본 반동적 인권공세의 역사와 구조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초역사적이고 초계급적일 수 없듯이,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도 초역사적이고 초계급적일 수 없다. 모든 가치는 역사적이고 계급적이다.
자유(freedom)와 인권(human right)이라는 가치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자유와 인권은 역사를 초월하여 영원하고 사회계급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그런 가치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회계급에 의해서 형성되고, 특정한 시대의 산물로 존재하는 그런 가치일 뿐이다. 자유와 인권을 초역사적, 초계급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적 가치라고 강변하는 것은 궤변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는 역사적으로 자본계급에 의해서 형성된 가치이며, 자본계급이 자기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해온 가치이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정치적, 법적 개념으로 정립한 역사의 첫 자취는, 프랑스에서 부르주아혁명을 주도한 프랑스의 자본계급이 1789년에 '인권선언'을 발표하고 뒤이어 미국에서 부르주아혁명을 일으킨 미국의 자본계급이 1791년 미국헌법과 버지니아 권리장전을 채택하였던 18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본계급과 대립하는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와 인권은 자본계급의 출현과 함께, 그리고 자본주의체제의 형성과 함께 생겨났다가 그 계급 및 그 체제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 가치이다. 자본계급이 더 이상 노동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지 않는 시대, 자본주의체제가 사라진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면, 자유와 인권이라는 오래된 가치도 그 사회계급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자본계급과 자본주의체제가 사라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낡은 가치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이것은 사회체제의 교체에 따라 낡은 가치도 새로운 가치로 대체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실제로, 사회주의나라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개념이 쓰이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이 자본계급에 의해서 형성되고 자본주의체제의 산물로 존재하다가 그 사회계급 및 그 사회체제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 그런 가치임을 현실로 입증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 자유와 인권이 자본계급에 의해서 형성되고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가치라는 말은 정확성이 떨어지는 표현으로 보인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19세기 이후에는 자본계급이 노동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하여,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본주의체제에 적대적인 사회주의체제를 반대하기 위하여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사용해왔다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와 인권이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계급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정치적으로 기만하고, 더 나아가서 제국주의세력이 사회주의노동계급과 그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하여 고안하고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온 자본주의체제의 고유한 가치인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의 고유한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국제정치의 규범으로 조작해놓은 장본인은 제국주의 미국이다. 제국주의나라들 사이의 모순이 격렬하게 폭발하고, 그 때문에 미국 자신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고 있었을 때, 미국의 지배계급은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 곧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스트세력이 재기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미국의 지배계급이 영구히 틀어쥔 평화로운 제국주의세계체제(이른바 Pax Americana)를 세우려는 그야말로 야심에 찬 국제정치공작에 달라붙었다. 제국주의나라들끼리 싸우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세계대전을 피하고, 미국의 지배계급이 요구하는 것을 고분고분 따르는 제국주의동맹국들이 정치적으로 상호협력하는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수립, 이것이 미국의 지배계급에게 절실히 요구되었다. 제국주의 미국이 주도장악하게 된 전후의 국제정치질서를 그 요구에 따라 하나의 공고한 국제정치기구로 만들어낸 것이 유엔(United Nations)이다. 
제국주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45년 6월 26일 자기의 동맹국 43개국을 동원하여 유엔헌장(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을 서둘러 채택하였다. 그 헌장의 제1조는 명백하게 인권과 자유의 증진, 옹호를 강조하면서 그것을 하나의 국제규범으로 인정하고 있다. 당시 유엔을 쥐고 흔든 제국주의 미국은 유엔회원국들을 상대로 정치공작을 벌여 자본주의체제의 고유한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전후 국제정치의 규범으로 둔갑시킨 유엔헌장을 채택하도록 획책하였다. 유엔헌장에서 국제정치의 규범으로 규정된 자유와 인권이 1941년 1월 6일 워싱턴의 상하양원 합동연설에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가 내놓았던 네 가지 자유에 관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은 미국은 이듬해에 자기의 동맹국들을 동원하여 유엔 안에 인권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제기구 곧 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를 내왔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제국주의 미국에 협조적이거나 추종적인 나라들이 미국의 주도에 따라 결성한, 역사상 처음으로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로 등장하였다. 제국주의 미국이 유엔인권위원회를 결성하는 데 협조적이거나 추종적이었던 나라들은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대만, 칠레, 레바논이었다. 
1948년 10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채택되었다. 세계인권선언은 자유권(rights to freedom)을 규정한 부분과 평등권(rights to equality)을 규정한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앞의 것을 공민적, 정치적 권리(civil and political rights)라 하고, 뒤의 것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라 한다. 자유권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의해서 보장되는 인민대중의 형식적 권리이고, 평등권은 실질적 민주주의에 의해서 보장되는 인민대중의 실질적 권리이다. 비유로 말해서, 자유권이 껍데기라면 평등권은 알맹이라 할 수 있다.
자본계급과 그 정권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의해서 보장되는 자유권을 내세우면서 평등권을 짓밟는 반면에, 자본계급과 대립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실질적 민주주의에 의해서 보장되는 평등권을 요구한다. 평등권이 보장되지 않고 자유권만 주어지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며, 심지어 정치적 배반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본계급과 그 정권은 자기의 지배와 착취 아래서 생존파탄에 허덕이는 노동자의 손에 투표용지를 나누어주고 나서 자유권이 실현되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지배와 착취 아래에 있는 노동자의 손에 주어진 투표용지는 만인의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의 도구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현실과는 무관한,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의 현실을 정치적으로 배반한 기만의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그들의 계급적 현실과 무관한 자유를 나누어줌으로써 만인을 위한 공민적,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장막 뒤에서 저질러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자본계급의 계급적 지배와 착취를 은폐하는 것이다. 극소수의 자본계급이 절대다수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사회에서 자유권은 계급적 현실을 은폐하는 지배착취계급의 권리로 변질된다. 공민적, 정치적 권리는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을 필수적 전제로 할 때, 오직 그러할 때에만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는 자본계급의 형식적 민주주의에 의해서 '만인의 보편적 권리'로 위장된 그 어떤 '초계급적 인권'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실질적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인민대중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인권개념을 형식적 민주주의의 자유권과 실질적 민주주의의 평등권으로 나누어놓는 분할규정이 아니라, 그 개념을 실질적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인민대중의 권리로 보는 포괄규정이 정당하였는데도, 유엔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이 마치 두 종류의 권리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분할규정을 택하고 말았다. 
그나마 미국은 공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만 비준하였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은 5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아마도 영구히 거부할 것이다. 그것은 제국주의 미국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실질적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인민대중의 실질적 권리를 부정하고 있음을 명백히 말해준다.
이처럼 나누어질 수 없는 인권개념을 두 갈래로 나누어놓은 분할규정의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것, 그리고 제국주의 미국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평등권에 관한 규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인권에 대한 계급적 관점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있음을 웅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1948년의 국제정세를 되돌아보면, 유엔을 장악주도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형성한 제국주의진영과 당시 유일한 사회주의나라로 유엔에 가입하였던 소련 사이에서 인권개념에 대한 두 갈래의 계급적 관점이 양측의 불안정한 정치적 타협으로 귀결된 가운데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따라서 세계인권선언에는 당시 유엔 안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던 제국주의진영의 정치적 요구와 자본계급의 계급적 관점이 명확하게 반영되었다. 
그에 비해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관점을 옹호대변한 것은 당시 유엔에 가입한 유일한 사회주의나라 소련밖에 없었으므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와 계급적 관점은 세계인권선언에 상대적으로 모호하게 반영되었다. 
그나마 소련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권리를 옹호대변함으로써 세계인권선언에 실질적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인민대중의 권리가 포함되기는 하였으나, 인권개념에 대한 두 갈래의 계급적 관점은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가 융합될 수 없는 것처럼 서로 융합될 수 없는 것이다.
인권개념에 대한 두 갈래의 계급적 관점과 관련하여 자유권과 평등권을 절충하여 하나의 인권개념을 정립하려는 시도는 1968년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제1차 국제인권회의에서 있었다. 1968년에 이르러 그처럼 불완전하게나마 자유권과 평등권의 절충을 시도하게 된 까닭은,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생독립국들이 유엔에 밀고 들어가 다수를 차지하였고 사회주의나라들이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사회주의진영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유엔인권위원회가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권리를 외면하고 피학살자의 권리(1948년), 난민의 권리(1961년), 소수인종의 권리(1965년), 여성의 권리(1979년), 정치적 피억압자의 권리(1984년), 어린이의 권리(1989년), 이주노동자의 권리(1990년) 등에 관심을 집중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처럼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에 불리하게 마무리된 정치적 타협의 결과였다. 그 위원회가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수탈, 국내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 아래서 자기의 권리를 가혹하게 짓밟히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수 십억 명에 이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제국주의진영의 반사회주의 인권공세가 벌어지는 장소로 종종 변질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뒤, 제국주의세력은 인권이라는 가치를 공격무기로 하는 반동적 정치공세를 주저함 없이 가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냉전시기 제국주의세력은 자유라는 가치를 공격무기로 하는 반동적 정치공세에 매달렸으나, 냉전체제가 사라진 뒤에는 자유라는 공격무기와 더불어 인권이라는 공격무기를 마치 양날이 선 칼처럼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냉전시기에는 국제정치질서가 사회주의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립구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제국주의세력은 유엔에서 인권이라는 공격무기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대립구도가 사라지자 유엔이라는 정치공간에서는 제국주의세력의 정치공세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그로써 제국주의세력은 유엔을 인권이라는 공격무기를 사용하는 정치공간으로 변질시키려고 획책하게 되었다. 

3. 제국주의세력의 인권공세와 사이비진보세력의 정치적 배반

제국주의세력의 광란적 공세 가운데 특히 주목하는 것은, 제국주의지배권력의 반사회주의 압박책동이다. 제국주의전략가들이 봉쇄 또는 포용이라는 색깔이 서로 다른 두 개의 간판을 상황변화에 맞춰 교묘하게 바꿔 달면서 추진하는 모든 정책은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노리는 집요한 압박이다. 제국주의지배권력이 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추진하는 모든 정책은 결국 사회주의체제의 목을 졸라 죽이려는 그야말로 흉악하고 반동적인 교살정책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한 교살책동에 합세하여 난동을 벌이는 것이 이른바 '비정부기구(NGO)'라는 간판을 내건 일부 반동세력들이다. 제국주의지배권력의 비호와 조종을 받는 돌격대로 자처하고 나선 그들은 제국주의지배권력이 던져주는 몇 푼의 달러를 받아 물고 나서, 교살정책을 고무찬양하는 난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던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최근에 있었던 대표적인 난동사례이다.
제국주의지배권력의 반사회주의 압박책동 가운데 눈여겨보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의 '인권공세'이다. 특히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인권공세'는 반사회주의 압박책동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제국주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른바 '북(조선)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2003년 4월 16일, 2004년 4월 15일, 2005년 4월 14일이었다. '북(조선) 인권특별보고관'으로 나선 비팃 문타본(Vitit Muntarbhorn)은 2005년 1월 10일 유엔인권위원회에 '북(조선) 인권상황보고서'라는 것을 내놓았고 8월 29일에는 유엔총회에 '북(조선) 인권보고서'라는 것을 내놓았다. 2004년 4월 제60차 유엔총회에서 미국, 유럽연합, 일본, 호주가 공모결탁하여 '북(조선) 인권결의안'을 발의하고 그것이 채택되도록 책동하였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제국주의인권공세가 오죽 노골적으로 자행되었으면, 남(한국)정부가 파견한 인권대사조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조선)의 인권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개탄하였겠는가. (『연합뉴스』 2006년 1월 19일)
이처럼 유엔을 통하여 제국주의인권공세를 발기하고 주도하는 것이 제국주의 미국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다. 미국은 유엔총회에서 '북(조선) 인권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에 발맞추어 2004년 10월 18일 이른바 '북(조선) 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이라는 것을 채택하고 제국주의인권공세를 다그쳤다. 미국 국무부의 '민주주의, 인권, 노동국(Bureau of Democracy, Human Rights, and Labor)'은 해마다 탈북자들이 날조왜곡한 엽기적인 체험담에 기초하여 그 무슨 '나라별 인권현황보고서(Country Reports on Human Rights Practices)'라는 것을 만들어 국제사회에 내돌리면서 제국주의인권공세에 나서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가 '북(조선) 인권특별보고관'을 임명하는 것에 발맞추어 '북(조선) 인권특사'를 임명한 것도 제국주의 미국이었다. 2005년 3월 28일 미국 국무부는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북(조선)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북(조선)과 외교관계가 있는 제3국이나 북(조선)에 접근할 수 있는 비정부기구를 이용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3월 29일)
제국주의 미국은 2001년 5월 유엔인권위원회 회원국 선거에서 탈락하면서 1946년 이후 줄곧 지켜온 유엔인권위원회 회원국 자격마저 잃어버렸으나, 그 위원회에 들어앉은 자기의 동맹국들과 공모결탁하여 제국주의인권공세를 계속 추진하는 한편, 기존 인권위원회의 권한과 임무를 보강하고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를 창설하려는 유엔 내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면서 방해하더니, 요즈음에는 태도를 바꿔 그 이사회의 회원국으로 들어앉으려는 파렴치한 책동을 노골적으로 벌이는 중이다. 그 파렴치한 책동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자는 유엔주재 미국대사인데, 그가 바로 반사회주의 압박책동의 돌격대원으로 국제사회에 악명이 높은 존 볼튼(John R. Bolton)이다. (『연합뉴스』 2006년 1월 4일자 보도 참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반미테러에 나선 외국인들을 불법적으로 납치해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영토에 불법적으로 세워둔 30여 개나 되는 비밀수용소들(『연합뉴스』 2004년 6월 18일)에 감금하고 고문하는 극악한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으면서, 사회주의건설대오에서 낙오한 범법자들을 노동생활을 통해 개조하는 북(조선)의 교화소를 그 무슨 '정치범수용소'라고 걸고넘어지면서 교화소의 교정사업을 '인권탄압'으로 왜곡하고 떠들어대는 것은 길을 지나는 소가 들어도 웃을만한 유치한 공세이다. 
제국주의세력의 반사회주의 압박공세가 주로 옛 소련이나 중국에 집중되었던 냉전시기에도 '철의 장막 안의 시베리아정치범수용소'와 '죽의 장막 안의 정치범수용소'들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조작과 악선전에 목청을 높인 것은 반사회주의 압박공세에 매달린 제국주의 미국의 소행이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중남미계 불법월경자들이 한 해에 460명이나 목숨을 잃는 참혹한 처지에 대해서(『연합뉴스』 2005년 10월 3일), 또는 미국에서 들어와 살면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는 1천1백만 명에 이르는 중남미계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인권이 짓밟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으면서, 워싱턴으로부터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남의 나라 국경선을 넘은 북(조선)의 불법월경자들에 대해서 그 무슨 '인권옹호'를 떠드는 것은 이성을 잃어버린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 농무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가구 가운데 11.2%에 이르는 1천2백만 가구가 식량부족으로 끼니를 거르는 절대빈곤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데도(『연합뉴스』 2004년 11월 20일), 미국 노동계급 가운데 20%가 빈곤선 이하의 저임금을 받고 있어서 어린이 2천만명을 포함하여 미국인 3천900만명이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데도(『연합뉴스』 2004년 10월 12일), 미국의 90개 도시에서 강제노동을 당하는 현대판 노예가 1만명 이상이나 되는데도(『연합뉴스』 2004년 9월 24일), 미국 의회에는 백만장자들이 넘쳐나는 반면에(『연합뉴스』 2004년 6월 30일) 미국 어린이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굶주리고 있으며 한 해에 90만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학대를 당하는데도(『연합뉴스』 2004년 7월 14일), 제국주의지배권력이 자기 나라 인민들이 겪는 가혹한 생활을 외면하고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떠드는 것은 저들의 의도가 반사회주의 압박책동에 있음을 뚜렷이 입증한다. 
미국의 말을 잘 듣는 정치난장이라고 조롱을 받는 일본의 지배계급도 미국의 제국주의인권공세에 발맞추어 덩달아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들먹이고 있다. 2006년 2월 16일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의 '북조선납치문제대책본부'가 이른바 '북조선인권법안'을 내온 것(『연합뉴스』 2006년 2월 16일)은 그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그런데 미국의 제국주의인권공세에 발맞춰 덩달아 날뛰는 일본의 지배계급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은, 남(한국)에서 그 무슨 '진보적 성향'을 가졌다는 사이비진보세력이 '인권의 보편성'을 들먹이면서 제국주의지배권력의 꽁무니를 따라 반동적 인권공세를 거드는 꼴이다. 사이비진보세력은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인권침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제국주의인권공세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사이비진보세력이 진보세력에게 북(조선)의 '인권문제'에 침묵하지 말 것을 설교하는 것은 제국주의세력의 반사회주의 교살정책에 편승하는 적대감의 표출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사이비진보세력은 평소에 아끼던 진보의 장식품마저 팽개치고 인권의 초계급적 보편성을 희롱하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사이비진보세력이 제국주의인권공세에 편승하는 것은 제국주의세력에 대한 투항과 공조이며, 동시에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투쟁에 대한 배반이며 도전이다.
   
4. 반제투쟁의 전개양상과 반제투쟁의 4대 축

그것은 불과 불이 맞부딪치고 철과 철이 맞부딪치는 격렬한 싸움이다. 그것은 화해할 수 없는 두 세력, 제국주의세력과 반제자주세력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운명적인 격돌이다. 지축을 흔드는 대중투쟁의 함성 속에서, 천지를 뒤집는 전쟁의 포성 속에서 21세기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지난 시기 제국주의세력이 지구표면을 파괴와 살육으로 갈래갈래 찢어놓으며 분할강점을 자행하던 때, 변변한 총 한 자루 들지 못하고 반제투쟁에 나섰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인민들은 전략전술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세한 제국주의세력의 공격 앞에서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초기에 그들의 반제투쟁은 그 투쟁이 승리한 뒤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사회역사적 발전전망을 갖지 못한 채 안개 속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반제투쟁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사상투쟁, 정치투쟁, 경제투쟁, 그리고 무장투쟁으로 조직전개되고 있다. 또한 반제투쟁의 역량편성도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반제투쟁에 결집하는 것은 자주의식으로 무장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투적 역량이며, 반제투쟁의 전초선에 나선 것은 사회주의나라의 혁명무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 각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투쟁에서, 그리고 사회주의나라 혁명무력의 반제투쟁에서 무진장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 것, 곧 반제자주역량의 분출이다. 제국주의지배권력의 살육파괴의 만행이 지속될수록, 그리고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수탈만행이 강도를 높일수록 그에 대응하여 반제자주역량도 더 강하게 분출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제자주역량의 분출이 분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이후 '고난의 행군'을 헤쳐온 사회주의나라들은 자기의 반제투쟁에서 사회주의의 자주적 발전을 밀고 나가는 추동력의 거대한 원천을 찾았으며,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식민지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적 민주정권을 세운 나라들은 자기의 반제투쟁에서 진보적 민주변혁을 완수하는 무궁무진한 동력을 공급받고 있다.
명백하게도, 세계 곳곳에서 반제투쟁의 창끝은 언제나 제국주의 미국의 지배계급을 향한다. 그 까닭은 제국주의세계체제가 미국의 주도력, 장악력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가장 강대한 제국주의나라인 미국이 빠져나가면 제국주의세계체제는 곧바로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전세계 반제투쟁역량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지배력을 봉쇄하고 제거해야 미국의 주도력, 장악력으로 유지되는 제국주의세계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 반제투쟁의 전략적 중심은 반미투쟁에 있고, 반제투쟁의 전략적 의의도 반미투쟁에 있다. 
반제투쟁의 관점에서 국제정세를 읽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사회주의나라들의 반제투쟁, 세계 여러 나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들의 반제투쟁,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한 자주적 민주정권들의 반제투쟁, 중동지역 비사회주의나라들의 반제투쟁이다. 오늘의 국제정세는 세계적 범위에서 반제투쟁의 4대 축이 형성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반제투쟁은 세계적 범위에서 확대강화되고 있다.
오늘 반제투쟁의 또 다른 전개양상은 그 투쟁이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쟁과 결합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반제투쟁에 나섬으로써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 전체가 노동계급과 정치적 연합을 형성하게 되고, 그에 따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결합된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 전선에서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은 전선형 대중투쟁으로 결합되고 더욱 강력한 폭발력을 갖게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기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또는 '지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벌이는 자연발생적 저항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주도력에 의해서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결합된 전선형 대중투쟁으로 전화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하나의 대중투쟁으로 결합한 전선의 견지에서 보면, 노동계급의 사회변혁역량은 근로대중 전체로 이루어진 반제투쟁역량에서 핵심역량으로 되며, 노동계급의 조직적 단결력은 반제전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전선의 견지에서 보면, 계급투쟁을 조직전개하는 노동계급의 단결은 곧 반제투쟁을 조직전개하는 근로대중 전체의 단결인 것이다. 
반제투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전체의 단결을 흔히 민족적 단결이라 한다. 반제투쟁의 4대 축은 각 나라의 민족적 단결을 기본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5. 반제자주의 기치, 남(한국)의 진보정치와 북(조선)의 선군정치

세계적 범위에서 반제투쟁이 확대강화되는 정세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곳은 한(조선)반도이다. 한(조선)반도는 반제투쟁의 진격로를 열어놓게 될 세계반제전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거가 있다. 
첫째 논거는 한(조선)반도에서 두 세력이 자기의 반제자주노선을 관철하고 있다는 사실 위에 성립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진보정치의 깃발 아래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반제자주노선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선군정치의 깃발 아래 단결하여 반제자주노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진보정치와 선군정치는 성격과 임무가 서로 다르고 실현방식도 서로 다르지만, 반제자주노선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오늘날 한(조선)반도에서 관철되는 것과 견줄 만큼 위력적이고 철저하게 반제자주노선이 관철되는 다른 곳을 지구 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둘째 논거는 한(조선)반도에서 두 세력이 반제투쟁의 진격로를 열어놓을 투쟁력을 축적강화하고 있다는 사실 위에 성립된다. 남(한국)에는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시키고 있는 수백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력을 축적강화하고 있으며, 북(조선)에는 언제든지 반제항전에 나설 수 있는 사상적, 조직적 준비를 갖춘 수백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력을 축적강화하고 있다. 
남(한국)의 진보정치와 북(조선)의 선군정치는 21세기 세계반제전선의 중심지에서 수행되는 반제자주정치의 두 유형이다. 자본주의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러한 것처럼 진보정치의 깃발 아래 단결하여 반제자주노선을 관철하게 될 것이며, 사회주의나라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러한 것처럼 선군정치의 깃발 아래 단결하여 반제자주노선을 관철하게 될 것이다. 진보정치와 선군정치는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반제자주노선으로 이끌어 가는 21세기 사회변혁의 기치이다. 
이처럼 한(조선)반도가 세계반제전선의 중심지로 떠오르기까지 남북(북남)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험난한 투쟁의 길을 헤쳐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먼저 살펴보는 것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의 험한 길을 헤쳐 나아가 마침내 진보정치의 기치 아래 결집하게 된 과정이다. 그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뒤,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남(한국)의 사회변혁을 지향하여 투쟁해오던 진보세력들 가운데 일부는 사상적 동요와 정치적 좌절을 겪었다. 남(한국)의 진보운동대오에는 이탈과 낙오의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1980년대에나 통했던 낡은 방식으로 규정하고 사회변혁 자체를 청산하려는 사상적 혼란이 소용돌이치며, 진보세력의 혼란과 변절을 부채질하였다. 진보운동대오 일각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적 관점, 계급적 관점이 실종되고, 사회계급적 현실과 무관한 시민적 관점, 지역주민의 관점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한국)의 진보운동대오가 그처럼 사상적 동요와 정치적 좌절을 겪고 있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투쟁의 깃발을 들고 전진한 세력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남(한국)의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은 자본계급의 지배와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한 시도 멈출 수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진보적 지식인계층과 진보적 청년학생계층이 동요와 좌절로 어려움을 겪을 때, 노동계급은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총파업투쟁에 나섰다. 노동계급이 밀고 나간 조직건설과 총파업투쟁을 전환점으로 하여 대중투쟁의 계급적 기반이 진보적 지식인계층과 청년학생계층으로부터 민주노조로 조직화된 노동계급으로 옮겨가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대중투쟁의 계급적 기반이 그렇게 변화되는 것은,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하나의 전선으로 결합되기 시작하였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전선체의 건설이 추동되기 시작하였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상적 동요와 정치적 좌절을 돌파하고 다시 일어선 진보운동대오가, 민주노조건설과 총파업투쟁을 밀고 나가면서 정치적 진출을 모색하던 노동계급의 선진대오와 손잡고,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하나의 전선으로 결합시키고, 그 결합 위에서 전선체를 건설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진보정당이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세워지기까지에는 그처럼 적어도 5년 이상 지속된 치열한 투쟁과정이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반제자주적 관점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하나의 정당을 창당하였다는 의의를 훨씬 뛰어넘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자주노선을 관철하는 진보정치의 전략거점을 일으켜 세웠음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반제투쟁의 진격로를 열어놓을 투쟁력을 당적 체계 안에서 축적강화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사에서 진보정치가 가지는 운동사적 의의는, 지난 시기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사에서 오랫동안 두 갈래로 나뉘어졌던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진보운동대오와 노동계급의 선진대오가 손잡고 건설한 진보정당에 의해서, 그리고 진보정치의 기치 아래 결집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적 투쟁력에 의해서 마침내 하나의 전선으로 일치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다음으로 살펴보는 것은,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투쟁의 험한 길을 헤쳐 나아가 마침내 선군정치의 기치를 들고 일어서게 된 과정이다. 그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이후 가장 험난한 '고난의 행군'을 헤쳐온 사회주의나라는 북(조선)이다. 같은 시기 쿠바도 '고난의 행군'을 헤쳐가면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그 시련은 북(조선)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조선)이 얼마나 시련을 겪었으면, 워싱턴의 제국주의전략가들이 북(조선)사회주의체제의 붕괴가 임박하였음을 확신하였겠는가. 남(한국)의 케이비에스(KBS) 텔레비전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1997년 3월 한(조선)반도 상황과 관련된 컴퓨터모의실험(simulation)을 실시하고 북(조선)의 '급격한 붕괴'를 예상하였으며, 1998년에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북(조선)이 5년 안에 붕괴할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6년 1월 20일) 
그러나 제국주의전략가들이 5년 안에 북(조선)이 붕괴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은 북(조선)에 대한 무지와 정보부족이 빚어낸 한 편의 촌극이었다. 그들의 정보망에는 북(조선)이 겪는 혹독한 시련만 비쳤을 뿐, 그 시련을 뚫고 나갈 힘의 원천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인민군대의 혁명적 군인정신이었다. 1994년 12월 31일 밤, 군부대 사격장을 찾아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총탄이 가득 장전된 자동소총과 기관총을 연이어 사격하면서 "나는 최고사령관으로 사회주의도 지키고 주체혁명위업도 완성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12월 21일) 그는 자신이 다짐한 바대로 1995년 1월 1일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북(조선) 각지에 있는 인민군대를 끊임없이 찾아가 그들을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불러일으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혁명과 건설을 밀고 나가도록 이끈 자신의 정치경험을 정식화하여 선군정치라는 새로운 사회주의정치방식을 정립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북(조선)에서는 선군정치가 인민군대만이 아니라 인민의 사회주의생활 전반에 혁명적 군인정신을 파급하고 있다.
혁명적 군인정신과 선군정치가 무엇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극적인 사변들은 1998년 3월부터 8월까지 연이어 일어났다. 그 첫 번째 사변은 1998년 3월 함경북도에 있는 무재봉에서 일어났다. 
초속 20m의 건조한 바람이 몰아친 그날, 무재봉 산자락에서는 뜻하지 않은 불길이 치솟았다. 산불은 바람을 타고 매우 빠르게 번져갔다. 무재봉에는 항일혁명투쟁시기 항일선열들이 혁명구호를 새겨 넣은 구호나무들이 보존된 항일혁명사적지가 있는데, 사나운 불길은 그 구호나무들을 향하여 무서운 소리를 내며 밀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불바다 속에 서슴없이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무재봉에 주둔하는 인민군부대에서 달려온 20명의 지휘관과 병사들이었다. 평소에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구호나무 부근에 마련해둔 진흙과 물병 덕분에 그들은 진흙을 물에 이겨 구호나무마다 급히 바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길은 불과 몇 초 사이에 그곳으로 밀려왔다. 구호나무에 불길이 닿는 위급한 순간, 진흙을 물에 이겨 바를 겨를조차 없게 되자 그들은 진흙덩이를 구호나무의 글발에 붙이고 가슴으로 그 나무를 끌어안았다. 진흙덩이를 손에 잡지 못한 여성군인들은 자기 군복 윗도리를 벗어 구호나무 글발을 덮고 겹겹이 끌어안았다. 그 순간, 타래 치는 불길이 사정없이 덮쳤다. 그들은 온몸이 타버리고 살점이 익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견디며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구호나무들이 서있는 곳 아래쪽 골짜기에는 개울물이 있었다. 그 골짜기로 몸을 굴렸더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이 타들어 가면서도 그들은 누구도 불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구호나무를 겹겹이 끌어안은 채 혁명적 군인정신을 끝까지 지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불타버린 자리에서 뜻밖에도 세 사람의 가느다란 숨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17명이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을 때 기적적으로 소생한 세 사람은 너무 심한 화상을 입어 자신마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제 모습을 잃었다. 그 세 사람 가운데는 당시 스물 한 살 꽃다운 나이의 단발머리 여성군인도 있었다.
2004년 12월 무재봉 혁명사적지를 찾아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7명 불사조들이 목숨을 바쳐 구원한 구호나무들을 돌아보고, 불구덩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세 사람을 직접 만났다. 그들은 얼굴의 상처를 지우기 위한 수술을 이미 10여 차례나 받았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본래의 얼굴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한 국가적 대책을 취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그들 세 사람은 중국 의학과학원 정형외과병원 최고급호실에서 11달 10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중국 의료진도 그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지성으로 치료하였다고 한다. 
2005년 12월 22일에 발행된 『로동신문』에는 환한 얼굴을 되찾아 귀국한 그들의 모습이 실렸다. 선군정치와 혁명적 군인정신에 관한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1998년 3월 무재봉에서 시작되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선군정치와 혁명적 군인정신이 무엇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극적인 사변들은 1998년 5월과 8월에도 연이어 일어났다. 5월에 일어난 사변은 북(조선)이 파키스탄에서 실시한 지하핵폭발실험을 뜻하는데, 나는 2004년 3월 3일에 발표한 글 「제2차 6자회담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을 것인가」, 그리고 2004년 3월 19일에 발표한 글 「핵문제와 탄핵문제로 본 한(조선)반도 현 정세」에서 그에 관해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또한 8월에 일어난 사변은 북(조선)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린 실험을 뜻하는데, 나는 2001년 2월 28일에 발표한 글 「북(조선)이 보유한 익명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조·미·일 삼각전략균형의 형성」에서 그에 관해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다만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선군정치와 혁명적 군인정신의 과학적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고난의 행군'과 같은 혹독한 시련이 닥쳤을 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겠지만, 북(조선)은 혁명적 군인정신을 발휘하여 난관과 역경을 뚫고 나가 기어이 핵억제력을 보유하였다. 6.25전쟁 시기 옛 소련이 핵억제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국주의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차마 핵무기를 쓰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조선)은 핵억제력을 보유함으로써 제국주의 미국의 핵전쟁위협으로부터 자기의 사회주의를 지키고 더 나아가서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고 한미동맹체제를 해체하는 선군정치의 길을 열어놓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전략가들의 지능으로는 혁명적 군인정신이 무엇인지, 선군정치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선군정치가 다른 나라들에서 시행되는 무력증강정책 정도로 짐작되었을 것이다. 제국주의 미국의 북(조선)정책이 실패하는 까닭은 그들이 선군정치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정치의 깃발 아래 투쟁하는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그리고 선군정치의 깃발 아래 투쟁하는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주어진 과업은 하나의 민족단위로 통합된 반제전선의 기치 아래 전민족적 반제자주역량을 결집하는 것이다. 그것의 실현가능성은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북남)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교류와 협력에서 찾을 수 있다. 

6. 한(조선)반도에서 격돌하는 사회변혁운동과 제국주의전쟁연습

오늘 제국주의전쟁위협이란 단순한 무력시위나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제국주의침략전쟁의 실전체계를 실제로 가동하면서 전쟁연습을 실시하는 것이다. 전쟁연습은 군사훈련과 다르다. 군사훈련이 군사력을 키우는 것이라면, 전쟁연습은 전투동원태세에 있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전쟁도발을 연습하는 것이다. 
미국군이 한국군 또는 일본자위대와 함께 실시하는 이른바 '합동군사훈련'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한 통상적인 군사훈련이 아니라, 전투동원태세에 있는 군사력을 들이밀어 제국주의전쟁도발을 연습하는 것이다. 
미국군의 선제타격훈련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한 군사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전투동원태세에 있는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하여 선제타격을 가하는 전쟁도발을 연습하는 것이다. 미국군의 선제타격훈련에 동원되는 각종 전술핵무기들과 그것의 첨단타격체계는, 실제 전쟁에서 쓰지 못하는 전시용품들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선제타격으로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하는 가공할 실전무기들이다. 
2006년 1월 23일 『디펜스 뉴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가 최근에 작성한 4개년 국방전략보고(QDR)의 내용도 대체로 위와 같은 기조 위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06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동맹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대화(일명 한미장관급전략회의)'는 그러한 제국주의군사전략을 추진하는 준비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주시하는 것은, 전술핵무기를 동원한 선제타격으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중투쟁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그 전선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국주의전략가들의 전략적 사고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그렇게 굳힐 수밖에 없는 까닭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막아내고 제국주의체제를 지킬 수 있는 폭력적 방도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하는 선제타격전략 이외에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기할 것은, 제국주의 미국의 선제타격전략이 노리는 대상이 한(조선)반도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미국 국방부의 공공연한 군사비밀이다. 그와 관련하여 생각할 것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하는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전략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과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연습이 어떻게 맞서는지를 인식해야 할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8년 전 러시아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짜르전제정권이 제국주의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허우적거리는 정세를 이용하여 사회변혁의 돌파구를 열어놓은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20세기초 제국주의세력이 오늘의 현대적인 군사전략에 비하면 원시적으로 보이는 군사전략밖에 알지 못했던 옛날 이야기이다. 1917년 10월 25일(신력으로 11월 7일) 볼쉐비키가 이끄는 노동자무장대와 병사들이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Petrograd)에서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전략거점인 겨울궁전을 점령하면서 사회변혁의 돌파구를 열었던 10월 혁명의 역사적 경험을 교조적으로 대하면서, 21세기 사회변혁의 일반적 경로를 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21세기에 현대화된 제국주의군사전략은 20세기 전반기에 일어났던 양차 대전에서 통용되었던 제국주의군사전략과 질적으로 다르다. 20세기말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지고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완성된 이후에 세워진 새로운 제국주의군사전략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혁명적 진출이 제국주의체제를 위협하게 될 때, 그들이 혁명적으로 진출하는 진격로를 전술핵무기를 동원한 선제타격으로 파괴하는 군사전략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제국주의군사전략은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한 신속기동군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적 투쟁력을 파괴하는 군사전략이다.
혁명적으로 진출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전쟁공포로 몰아넣고 그들의 변혁적 대중투쟁을 좌절시키는 제국주의군사전략이 한(조선)반도를 가장 주요한 타격대상으로 하여 수립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주한미국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여 배치하는 제국주의군사전략이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공격하는 전략일 뿐,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것은 오판이다.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제국주의군사작전의 기본임무는 모든 형태의 사회변혁운동을 침략무력으로 파괴하는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남(한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투쟁이 격렬한 형태로 전개되면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전략거점이 공격을 받게 될 때, 워싱턴과 도쿄의 제국주의전략가들은 남(한국)에 있는 자국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신속기동군을 사회변혁의 투쟁현장에 들이밀 것이다.
반미테러와 사회변혁투쟁을 구분하지 않는 제국주의전략가들에게 있어서 신속기동군이 수행하는 반테러전쟁의 군사작전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투쟁을 진압파괴하는 반혁명전쟁의 군사작전인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전략가들이 세워놓은 한(조선)반도 전쟁계획에는 남(한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될 때, 신속기동군을 투입하여 그들의 투쟁을 진압파괴하는 반혁명전쟁 시나리오도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평택기지에 순환배치될 신속기동군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투쟁을 진압파괴하는 특수한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은 국내지배계급에 맞서는 계급투쟁전략과 더불어 제국주의전쟁연습에 맞서는 반제투쟁전략을 가져야 한다. 제국주의전쟁연습에 맞서는 반제투쟁전략은 두 갈래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제국주의군사전략가 추진되는 '동맹체제'를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을 조직전개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지배권력은 자기의 정치적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른바 '동맹체제'를 세워놓고 그 체제를 통해서 제국주의군사전략을 추진한다. 그러므로 동맹체제가 없는 제국주의군사전략은 힘을 쓰지 못한다. 한(조선)반도를 겨냥한 미국의 제국주의군사전략은 한미동맹체제와 미일동맹체제를 통해서 추진된다. 
우선 한(조선)반도의 반제자주세력이 제국주의군사전략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려면 한미동맹체제를 해체하는 정치투쟁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전제해야 하는 것은, 한미동맹체제 아래서 사회변혁의 승리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점이다. 한미동맹체제가 유지되고 주한미국군이 존재하는 한, 남(한국)의 사회변혁이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남(한국)의 사회변혁이 주한미국군 철군과 한미동맹체제 해체를 전략으로 하는 반제자주적 성격의 사회변혁이라는 점을 강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남(한국)의 사회변혁에서 반제투쟁이 승리하지 못하면 계급투쟁도 승리할 수 없으며, 그 반대도 진실이다.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은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동반적으로 상호연관되어 일어나고 진전되며 승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남(한국)에서 한미동맹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투쟁은 여러 가지 전략전술에 따라 조직전개될 수 있다. 남(한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형성한 전선은 생존권사수투쟁을 계급투쟁으로 전화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주한미국군 철군투쟁, 평택 군사기지화 저지투쟁,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 저지투쟁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은 미일동맹체제를 통해서 제국주의군사전략을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한 행동 가운데서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지배계급이 북(조선)의 핵억제력에 대응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추진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 관한 최근 동향은 2006년 2월 1일 『워싱턴타임스』의 인터넷 시사주간지 『인사이트』가 보도한 바 있다. 
일본의 독자적인 핵무장 추진야욕은 지난 1970년대 이후 일본이 핵무기 개발능력을 가진 때로부터 미국이 가장 염려하고 가장 민감하게 주시해온 동아시아전략문제이다. 제국주의 미국이 북(조선)의 핵억제력 보유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고 움직였던 까닭은 여러 가지였지만, 북(조선)의 핵억제력 보유가 일본의 핵무장 추진야욕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작용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조선)이 핵억제력을 보유하기 훨씬 이전 시기인 1970년대부터 일본은 핵무장 추진야욕을 강하게 품었고 그 준비를 체계적으로 진척시켜왔다. 일본의 핵무장 준비는 중국이 1964년 10월 고비사막에서 지하핵폭발실험에 성공하고, 1967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1970년 4월 인공위성발사에 성공하여 장거리 핵공격 능력을 입증한 것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지, 북(조선)의 핵억제력 보유에 의해서 촉발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지배계급은 북(조선)의 핵억제력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제국주의침략동맹을 신속기동군 동원체계로 개편하는 것이나, 일본이 핵무장 추진야욕을 숨기지 않는 것은 제국주의전쟁연습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일동맹체제의 제국주의전쟁연습이 노리는 목표들 가운데 하나가 남(한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변혁투쟁에 나섰을 때 그 투쟁을 진압파괴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것은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이 나아가는 앞길에 커다란 장애가 조성되는 것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을 진전시키기 위해서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한(조선)반도를 겨냥한 침략동맹체제인 미일동맹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전개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제정세를 이용하여 제국주의군사전략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는 투쟁을 조직전개하는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유럽과 북미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제자주세력들과 연대협력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의 투쟁대상인 제국주의세계체제를 반대하는 투쟁대오에 합류하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간판을 들고 세계적 범위에서 대량수탈을 자행하는 제국주의독점자본에 맞서 싸우는 전세계 진보적 인민의 투쟁대오에 합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제국주의세계체제를 반대하는 전세계 진보적 인민의 반제투쟁대오의 선봉에서 용감하게 싸울 때, 세계반제전선역량을 한(조선)반도의 반제전선으로 힘있게 조직동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반제자주세력 대 제국주의세력의 대결이 가장 첨예하게, 가장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반제전선이 한(조선)반도에 형성되어 있음을 전세계 진보적 인민의 투쟁대오에 알리는 국제선전사업도 중요하다. 
얼마전 남(한국)의 한 연구가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영국 신문 『맨체스터 가디언』의 모스크바 주재 특파원이 런던의 본사에 보낸 1918년 10월 4일자 전보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우랄전선에는 상당수에 달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일본이 시베리아를 침공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수개 연대를 형성해서 붉은 군대에 가담했다. 이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지배계급에 반대하는 감정이 매우 드높다."
그들 조선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해서 한(조선)반도로부터 그토록 멀리 떨어진 우랄지역까지 갔는지, 또한 그들의 반제투쟁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기록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우랄산줄기 어느 이름 모를 능선에서 쓸쓸히 최후를 마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이 먼 나라의 항일전선에서 목숨 바쳐 싸웠건만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하고 반제투쟁사에서 영영 잊혀진 것은, 일제강점시기 조국을 떠나 낯선 산천을 떠돌던 식민지노동계급이 뼈저리게 겪어야 했던 고통과 비극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과 비극은 오늘 남(한국)의 노동계급에게 되풀이되지 않는다. 진보정치의 깃발 아래 결집한 남(한국)의 수백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반제투쟁의 길에서 승리의 미래를 만날 것이며, 100년을 헤아리는 한(조선)민족의 반제투쟁사는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전략적 승리의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이다. (2006년 2월 2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