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민전 대변인 8.29 논평

 

일제가 총칼을 동원하여 강도적 방법으로 치욕의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고 「한일합병조약」을 공포한 때로부터 95년이 되었다.

일제에 의한 「한일합병」의 공포는 삼천리강토에 대한 날강도적이며 불법무도한 병탄행위로써 그것이 공포된 1910년 8월 29일은 우리 민족사에 다시없을 저주로운 「국치일」로 기록되었다.

이미 1905년에 「을사5조약」의 날조로 이 땅을 강점한 일제는 내각회의에서『한국을 병합하여 이를 제국판도의 일부로 하는 것은 반도에서 우리의 실력을 확립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라는 강도적 결정을 내리고 친일주구들을 조종하여 「한일합병운동」을 벌이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는 드디어 1910년 8월 22일 서울에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고 일제헌병들과 경찰들로 서울의 성문들과 왕궁, 「통감부」대신관저 등 주요거점들을 겹겹이 포위하고 매국역적들에 대한 회유와 기만, 위협공갈의 방법으로 비법적인 「합병조약」을 날조하였다.

일제는 저들의 범죄적 정체를 가리우기 위해 이 사실을 극비에 붙여두었다가 그로부터 일주일후인 8월 29일에야 불법무도한 「한일합병」을 세상에 공포하였다.

일제에 의한 「한일합병」의 공포는 우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무참히 짓밟은 날강도적 범죄행위이며 우리 민족말살정책의 노골적인 선포였다.

일제의 강도적인 영토병합책동과 식민지 파쇼통치는 우리 민족에게 전대미문의 재난과 고통을 강요하였으며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겨 놓았다.

일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하면서 불복하거나 반항하는 사람들은 물론 무고한 양민들까지 닥치는대로 체포, 투옥, 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일제는 강점통치기간 수백만의 우리 겨레를 잔인하게 학살하고 840만여명의 청장년들을 「징용」,「징병」으로 강제연행해갔으며 20만명의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어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는 특대형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일제는 우리의 말과 글,성과 이름을 빼앗고 민족의 넋이 깃든 지명들을 제멋대로 변경표기하였으며 민족문화유적들을 닥치는대로 파괴 약탈하였다.

실로 지난 세기 일제가 감행한 치떨리는 만행은 동서고금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악무도한 반인륜적 반민족적 반역사적죄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은 패망한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과거 우리 민족에게 감행한 치떨리는 범죄에 대해 사죄하고 보상할 대신 오히려 침략의 역사를 미화분식하고 군국주의망령을 되살리며 재침의 칼을 갈고 있다.

최근 일본반동들이 패망60돌을 계기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전후배상은 완전히 종료되었다』느니,『개인적인 청구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느니 『위안부배상문제는 이미 법적으로 해결되었다』느니,『독일과 일본의 전후배상처리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느니 하는 망발을 연발하고 있는 것은 그 집중적 표현이다.

일본의 독도강탈야망과 역사교과서외곡책동.식민지지배망언 등은 우리 민족의 존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고 도발이며 전체 우리 민족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포고이다.

각계 민중은 「대동아공영권」의 옛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쳐날뛰고 있는 일본의 무모한 재침책동을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하며 일제에 의해 시작되어 100년간 지속되고 있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민족의 자주권을 찾기 위한 반외세자주화성전에 더욱 과감히 떨쳐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