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코리아연구소 2005.6.14

 

중립화는 자주적 통일정부의 유일한 외교노선

- 노무현정권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

 

21세기코리아연구소 소장 조덕원

 

필자는 5월 말 한반도중립화통일연구소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과 한반도 중립화’ 토론회에 참석하여 중립화통일노선과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 간단한 토론을 하였다. 6.15공동선언발표 5돌을 맞는 오늘 진보운동대오가 현 정세만이 아니라 통일 이후의 외교노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 때 토론한 내용을 보완해 보았다.

 

중립화외교노선이자 중립화통일노선이다


‘중립화’란 외교노선이다. 1차대전 직후 쓰이기 시작하고 2차대전 이후 널리 확산된 이 노선은 이념대립을 지양하고 반전평화를 지향하는 외교노선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북의 김일성주석이 1980년 조선로동당6차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외교노선으로 제출하고 1993년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으로 확인하여 유명해진 개념이다. 이 개념에 대한 논의도 참으로 무성하지만 대체로 좌우이념의 어느 한 측에 기울어지지 않고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외교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중립화노선은 곧 중립화통일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립화노선은 통일 이후에야 가능한 통일국가의 외교노선이기 때문이며 그런 전제에서 주로 연구되고 확산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중립화외교노선과 중립화통일노선은 동전의 양면처럼 변증법적으로 밀접히 연관된 하나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부연한다면 전자와 후자는 일반적인 것과 특수적인 것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중립화외교노선은 곧 연방통일정부의 유일무이한 외교노선인 것이다.


더 이야기해 보자. 중립화노선을 논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내용은 이념적 대립과 지정학적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이념적 대안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열강 들 사이에 있는 작은 우리나라가 살아나갈 길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란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이 냉전시기에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전혀 양상이 달라진 탈냉전시기에도 이런 식의 견해가 통하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코리아반도 주변에 사회주의열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사회주의나라가 아닌 것이야 자명하고 중국도 말로는 ‘중국식 사회주의’ 운운하지만 이미 자본주의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식 패권과 미국식 패권’ 사이의 중립이니 ‘중화패권주의와 일본군국주의 사이의 중립’이니 하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도 옹색하다. 이런 식의 패권적 대립을 이념적 대립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 동북아국가가 아닌 만큼 엄밀히 말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지정학적 대립이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의 중립화외교노선은 그 본질적 동인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과연 탈냉전시기에 우리가 중립화외교노선을 견지하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더 말할 것도 없이 조국통일에서 비롯된다. 왜 그런가. 우리의 통일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남과 북의 두 제도를 그대로 전제하면서 민족의 기치아래 단일국가를 건설하는 연방제뿐이다.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라는 정치통합방식만이 단 하나뿐인 통일방안이다. 따라서 그 외교노선도 사회주의 이북과 자본주의 이남의 어느 한 제도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의 위치를 견지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외교노선이 좌우이념 중 어느 한 이념에 치우친다면 그것은 이미 연방정부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방정부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한 제도로의 체제통합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한 외교에서의 중립노선은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 된다.


이렇듯 중립화통일노선이란 중립화외교노선이 연방제통일노선의 필연적 결과라는 의미로, 양자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중립화’란 외교노선과 연방제라는 ‘통일노선’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립화란 통일 이후에 제기되는 외교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맞다. ‘선통일, 후중립’이지 ‘선중립, 후통일’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통일이든 중립이든 자주가 전제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순서는 자주, 통일, 중립이 될 것이다. 자주 없이 통일 없고 중립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립화외교노선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자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유익하면서도 필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중립화란 외교노선인 만큼 정책적 연구과제이지 대중운동적 실천과제라고는 할 수 없다. 이를 테면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외교정책의 강령으로서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지 노동자, 농민이나 시민들이 대중운동으로 전개할 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대중운동은 본질에서 민중의 생존권쟁취운동과 민족의 자주권쟁취운동의 두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중립화가 민중의 생존권쟁취운동이나 미군철수운동의 일환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중립화란 미군이 철거된 이후에야 수립이 가능한 진보적 민주주의정권에서 실시하는 외교정책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중립화외교노선에 대한 연구의 의의가 삭감되는 것은 아니다. 연방제통일노선과 중립화외교노선이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고 있는 만큼, 중립화외교노선에 대한 연구는 곧 연방제통일노선에 대한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연방제통일노선에 대한 연구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연구가 없는 만큼 중립화외교노선도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반미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다른 친미보수정당들과 구별되는 대안적 외교정책을 연구하는데서 반드시 중립화외교노선을 참작해야 한다.


특히 6.15공동선언이 채택되어 5년 동안이나 낮은 단계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이라는 화해협력단계를 경유하며 전환적 계기에 이른 오늘, 중립화외교노선에 대한 연구사업이 질적으로 비약할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민족통일기구 수립이라는 낮은 단계 연방제가 실현되면 바로 이 중립화외교노선이 초미의 쟁점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가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외교노선을 제출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바야흐로 통일외교노선논쟁이 전면에 등장하는 대전환적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중립화외교노선은 선무장외교노선이다


중립화외교노선은 일반적으로 비무장외교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외교력이란 결국 무장력에서 비롯되는 만큼 비무장외교노선이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남과 북의 외교력이 땅과 하늘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것도 결국 무장력의 차이다. 즉 이남이 미국을 철저히 추종하는 친미예속적인 외교노선을 걷는 데 반해 이북이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걷는 것은 무장력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남의 군대가 지금처럼 미군의 총알받이 역할에 한정되고 작전능력도 지휘체계도 없는 오합지졸로 존재하는 한 어느 나라도 이남의 외교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정권이 ‘동북아균형자론’을 주창하며 이남이 동북아에서 균형자역할을 할 만큼 군사력과 외교력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에 대해 진보운동계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외교정치학계에서조차도 비웃고 있는 상황이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외교에서 균형자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군사, 정치, 경제적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사람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라들 사이에서의 관계에서도 결국 실력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런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며 미국에 철저히 예속된 이남, 미국과 일본의 이중 경제식민지인 이남이 미국, 일본을 한 축으로 하고 중국, 러시아를 한 축으로 하는 동북아에서 균형자역할을 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북이 핵미사일을 보유한 군사강국이 아니라면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능수능란한 외교적 공세를 벌일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눈 밖에 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 보유라는 거짓된 의혹만으로도 초토화되어 정권이 무너지는 판에 힘없이 말로만 맞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단순하지만 명쾌한 진리를 진작 깨달은 이북이기에 그 어렵다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절에도 허리띠를 졸라가며 군사력을 강화하고 힘을 키운 것이다. 북미 사이의 외교적 협상도 이북이 파키스탄에서의 지하핵실험과 8월 말 인공위성발사가 이루어진 후에야 성립될 수 있었다. 지금도 미국이 이라크와 달리 전쟁의 방법이 아니라 외교의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대하는 것도 다 군사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북은 올해 2월 10일 대담하게 핵무장을 선언하면서 연이어 3월 3l일 호기롭게 6자군축회담을 제안하였다. 이북은 이미 핵무장을 한 군사강국이니 이제는 핵개발 중단이 아니라 상호 군축을 하자는 뜻이고 그 범위 안에 미국만이 아니라 이남, 일본도 포괄하자는 뜻이다. 이로써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조건에서 주일미군을 강화하는 대안을 추진하던 미국으로서는 진퇴양난의 난국을 맞게 되었다. 2003년까지 경수로를 제공하며 군사외교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셈이다. 1994년 강석주부부장이 갈루치핵대사에게 했다는 말처럼 ‘조선문제’는 다룰수록 커지는 셈이다. 6자군축회담이라는 외교적 상황은 전적으로 이북의 핵무장선언이라는 군사적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이 6자회담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배경에는 클린턴정부의 양자정치회담방식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부시정부의 곤궁한 처지도 작용하지만, 무엇보다도 동북아 5자회담에 끼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21세기를 ‘태평양시대’, ‘동북아시대’라고 일컫는 데에는 동해선, 경의선과 연결된 ‘21세기 철의 실크로드’와 청진, 훈춘, 블라디보스톡을 잇는 ‘21세기 황금의 삼각주’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즉 우리민족과 중국, 러시아, 일본의 경제교류가 가져올 거대한 경제적 동반상승흐름에 편승하려는 미국의 경제적 속내가 숨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5자경제구도를 6자경제구도로 바꾸기 위해 경제교류의 바탕이 되는 군사외교구도를 6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북이 6자회담의 성격을 이전과 달리 군축회담으로 가져가겠다고 제안하고 선포한 상황에서 앞으로 이 문제가 초미의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에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6자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국면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북의 핵무장력을 축소하려는 협상을 전개하는 자리에서 그에 상응하는 반북국가들의 무장력 또한 축소하는 논의가 전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야말로 북미관계, 남북관계, 북일관계 개선이라는 3차원함수에 또다시 군사, 외교, 경제라는 3차원함수를 결합시키는 참으로 복잡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6자군축회담노선이야말로 당면해서 군사외교전문가들이 심층적으로 연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북이 핵무장선언을 한 후 6자군축회담안을 내놓고 동북아경제발전안이 동북아평화보장안을 기초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군사력이 외교력의 전제를 이룬다는 점과 군사문제를 앞서 해결하지 않고서는 외교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선무장후외교의 진리성이 충분히 입증된다. 연방통일정부의 기본외교노선인 중립화노선도 선무장노선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도 자명하다. 이라크전쟁을 통해 확인되었듯이 나라간 문제도 결국 총대로 해결되는 미제국주의시대에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외교력, 무장노선을 전제하지 않은 외교노선은 종이호랑이와 같은 것이다.


한편 조국통일의 3대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서 ‘평화’와 우리민족의 3대공조인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에서 ‘반전평화’, 그리고 통일정부의 3대성격인 자주성, 중립화, 연방제의 ‘중립화’는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통일정세는 통일원칙을 내놓고 통일정부의 상을 내놓는 단계를 지나 그 통일정부 수립에 근접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반전평화운동을 통해 연방통일정부 수립을 촉진하고 연방통일정부 수립 이후에는 반전평화의 중립화노선이 기본외교노선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립화외교노선을 수립하고 관철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자위적 무장력인 것이다.


‘동북아균형자론’을 이용해야 한다


노무현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동북아균형자론’이란 친미예속정권이 마지막 단계에서 비틀어대는 몸부림과 같은 것이다. 도대체 군사, 정치, 경제적으로 자주성을 완전히 상실하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정권이 그 어떤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협력적 자주국방론’과 궤를 같이하는 노무현정권의 이러한 노선이 ‘자주적’ 외피를 쓰고 제안되는데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천동설을 주장한다고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정권이 대체 무슨 꿍꿍이속으로 이러한 노선을 내놓으며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인가.


최근 설문조사에서 이남에 투자한 외국자본은 미국이 이북을 경제봉쇄하는 국면이 되면 63%가 이 땅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잘 알다시피 이 땅에 침투한 외국자본은 주식의 45%(이남기업의 내부거래를 감안하면 65%)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150조의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이남경제는 완전히 주저앉고 말 것이며 몇년 전 아르헨티나처럼 전민중적 항쟁이 촉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외국자본이 결정적인 철수시점으로 삼고 있는 ‘주한미군’의 철수시점이며, 그 시점이 ‘주한미군’재배치전략에 의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2005년 말까지 주한미군이 철수하며 그 완전한 철수까지 불과 몇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정권이 정치경제적 위기를 막기 위해 발버둥칠만한 정세변화인 셈이다.


그러므로 ‘동북아균형자론’이란 ‘협력적 자주국방론’과 같이 노무현정권을 떠받들고 있는 친미보수세력의 동요를 막기 위해 만들어낸 잔꾀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주한미군’이 나가도 동북아균형자 역할을 할 만큼 강한 ‘한국군’이 있는 한 끄덕 없으니 국내외 자본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간절한 호소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한국군’이 ‘주한미군’의 공백을 메꿀만큼 강하다는 소리에 귀기우릴 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그렇게 어리석은 자본이 존재한다고 해도 변혁의 결정적 시기가 다가올수록 불안에 떨며 결국 야반도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자은행거래가 발달한 오늘 이남에서의 금융경제공황은 번개가 번쩍 하듯이 한순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노정권의 허장성세하는 군사론, 외교론은 실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노정권의 ‘동북아균형자론’과 이북의 ‘중립화통일론(동북아중립화론)’의 대립은 결국 1970년대 이래 내내 남과 북의 두 대립된 통일외교노선 논쟁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즉 이남의 ‘두개의 코리아노선’과 이북의 ‘하나의 코리아노선’ 간의 대결이 오늘 ‘동북아균형자론’과 ‘중립화통일론’의 대결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즉, ‘동북아균형자론’은 그 기본전제인 ‘두 개의 코리아노선’에 기초하며 외세공조(방도)로 영구분단을 추구(목표)하겠다는 반통일외교노선인 것이다. 이에 비해 ‘중립화통일론’은 그 기본전제인 ‘하나의 코리아노선’에 기초하며 민족공조(방도)로 연방정부를 추구(목표)하겠다는 통일외교노선인 것이다. 연합제와 연방제만큼이나 ‘동북아균형자론’과 ‘중립화통일론’은 차이가 극명한 것이다. 따라서 ‘두 개의 코리아노선’처럼 ‘동북아균형자론’도 미국이 친미정권에 쥐어준 외교문서임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동북아균형자론’을 공격하는 친미수구세력과 우리 반미진보세력이 공조를 취할 일은 아니다. ‘동북아균형자론’의 반통일적이고 개량주의적인 본질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중립화통일론’자들이 친미수구세력과 한목소리를 내며 ‘동북아균형자론’을 공격할 일은 아니다. 여전히 친미수구세력이 살판 치는 이남사회의 현실은 반미진보세력이 친미개량세력과 전술적 공조를 취하며 친미수구세력을 최대한 고립시키는 전술을 구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전술적 공조의 관점이 없었다면 6.15공동선언도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며 그 이후 민족통일전선운동이 거족적으로 이루어지는 상전벽해의 정세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친미개량세력이 내놓는 ‘용미론’은 국민대중을 미혹시키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반미진보세력은 ‘용미론’을 철저히 반대하고 그에 절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용미론’을 주장하는 반미세력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미개량세력의 ‘동북아균형자론’을 반미진보세력이 추종한다면 명백히 우경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용미론’처럼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거짓된 노선이며 정세발전을 교란시키는 개량주의적 노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노선이 만들어놓은 환경에서 비롯되는 유리한 측면을 놓치는 것은 좌경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반미진보세력의 이용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개량주의노선이 만들어놓은 일정하게 유리한 환경이다.

 

‘중립화통일론’이야말로 진실로 동북아의 균형자를 지향하는 노선이다. 미국과 일본의 이중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에서 내놓는 허황된 사이비균형자론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자주성을 획득한 전제에서 내놓는 진짜균형자론이다. 우리민족이 통일국가를 형성하여 군사, 정치, 경제적으로 강성한 나라가 되면 동북아에서 충분히 균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주적인 연방국가의 중립화외교노선의 의미를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외교환경이 우리에게 불리하거나 전쟁징후라도 나타난다면 우리가 적극 나서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외교란 이런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친미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적 공세 속에서 연방제논의가 침체된 조건에서 중립화논의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마침 노무현정권이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되도 안되는 사이비노선을 제출하여 논쟁이 붙고 일정한 공간이 열리고 있는 상황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중립화통일론’의 정당성과 현실성을 설득하는 한편 ‘동북아균형자론’의 부당성과 비현실성을 날카롭게 폭로하여야 한다. 노정권은 지금 ‘균형자’를 ‘조정자’로 ‘동북아’를 ‘중국과 일본’으로 마구 말을 바꾸고 있다. 말을 어떻게 하든 이러한 외교노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조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조성된 환경을 노숙하게 이용한다면 ‘중립화통일론’을 대중화하는 전환적 계기가 열릴 것이다. (2005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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