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 10년, 자주통일운동이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


2005년 4월 7일
김영현


1. 1994년 남북최고위급회담 합의를 되짚어본다
2. 이북은 무엇을 위하여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였는가
3. 선군정치의 맥락에서 다시 읽는 '8.4노작'과 '4.18노작'
4. 민족 앞에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을 제시한 평양회담
5. 6.15공동선언이 가져온 변화, 그리고 우리민족제일주의
6. 선군정치 10년, 새로운 단계의 진입로에 선 자주통일운동


1. 1994년 남북최고위급회담 합의를 되짚어본다


1994년 7월 초 평양에서는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준비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김영삼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고, 김일성주석이 그를 만나 최고위급회담을 열기로 되어 있었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최고위급회담이 열렸다는 기록이 민족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1994년에 역사가는 그 기록을 남길 수 없었다. 7월 8일 김일성주석의 서거와 뒤이은 김영삼의 배신적인 반북책동으로 말미암아 회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4년 남북최고위급회담 합의는 그 자체로 민족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이 이후에 전개된 자주통일운동의 출발점이자 주춧돌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 회담이 어떤 배경 속에서 합의되었으며, 또 어떤 내용으로 준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1990년대 초엽, 국제정세는 반제자주세력에게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1989년부터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들이 연이어 무너졌고, 1991년에는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어 존재를 끝마쳤다. 진보적 인류는 그 붕괴를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제국주의자들은 '역사의 종언'을 운운하며 축배를 들었다. 거대한 정치지진이 지나간 뒤, 반제자주진영은 무너진 전열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고, 제국주의자들은 침략과 약탈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었다.
국제정세가 이와 같았던 1993년, 미국은 '핵문제'를 빌미로 이북에 전면적인 군사적 압박을 가하였다. 새로 미국 대통령이 된 클린턴은 백악관에 들어앉자마자 '대북선제공격'을 입에 올리며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나섰다. 전쟁의사를 밝히고 전쟁연습을 하는 것, 그것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미국의 이러한 군사적 압박에 이북은 더 강력한 군사적 압박으로 대응하였다. 3월초, 미국이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하려 하자 이북은 준전시상태선포와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로 맞섰고, 이북의 강경대응에 밀려 미국은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협상이 공방을 거듭하던 5월말, 이북은 하와이를 사정권으로 하는 중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하여 미국을 압박하였고, 미국은 더 견디지 못하여 이북에 두 손을 들었다. 1993년 6월 11일에 뉴욕에서 발표된 북미공동성명은 이 대결의 승패를 분명히 보여준 문서였다. 이 성명은 핵공격 및 핵위협 포기, 자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 조선의 평화적 통일 지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북의 정치적 요구가 관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명을 발표하고 돌아선 후 미국은 자신들의 외교적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1993년 7월에 있은 북미고위급회담은 성명의 원칙을 확인하고 흑연감속로를 경수로발전소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한 의견접근을 이루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8월부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핵사찰과 관련한 주권침해적 요구로 회담에 장애를 조성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남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하여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였다. 1994년 3월부터 북미대결은 더 심각해지기 시작해서 6월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세간에 '1994년 전쟁위기'라고 불렸던 국면이다. 그 국면의 마지막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6월 9일 카터의 방북계획이 발표되었다. 6월 10일 미국은 유엔안보리 대북경제제재를 위한 준비에 돌입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대북제재를 결의하였다. 6월 13일 이북은 IAEA를 탈퇴하며 유엔안보리가 경제제재조치를 취할 경우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하였다. 6월 15일 카터가 평양에 도착했다.
경제제재는 전쟁에 앞서 이루어지는 조치이므로 선전포고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1994년 6월의 상황은, 저쪽에서 선전포고에 준하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고 이쪽에서 그것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다. 이 위기상황은 김일성주석과 카터가 만난 담판자리에서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짐으로써 중단되었다. 그 자리에서는 미국이 대북제재 추진을 중단할 것, 이북이 흑연감속로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경수로발전소를 제공할 것 등의 사항이 합의되었다. 담판의 합의사항은 10월 21일 제네바에서 발표된 북미기본합의서를 통해 문서화되었다.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서의 핵심내용 중 하나가 북미관계정상화인 점으로 보아, 담판에서 그 내용도 논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미간의 관계정상화란 수교를 의미하며, 그 속에는 주한미군철수라는 정치과제가 내포되어 있다. 요컨대, 1994년 6월 중순의 담판에서 미국은 대북전쟁책동을 차단당하고 오히려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던 것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김일성주석과 카터 사이의 이 담판 자리에서 남북최고위급회담이 합의되었다는 점이다. 여러 정세분석가들이 밝힌 바와 같이, 이 시기에 이미 이북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이 이북과의 관계정상화를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핵무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북이 재래식 무기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미국은 이북과 협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3년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북이 핵무기 보유에 근접해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막아보려 하였다. 1993년 대결국면의 시작과 결말은 그들의 이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3년 말부터는 미국 당국자들 사이에서 이북이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설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4년의 어느 시점에 그들은 이북의 핵무기 보유를 확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94년에 미국은, 이북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침전쟁을 감행할 수 없었던 것이며, 이북의 핵무기 보유가 공인되어 NPT체제가 붕괴되는 사태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협상에 나섰던 것이다. 1994년 남북최고위급회담은 이러한 정세적 배경 속에서 합의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 때문에 남북최고위급회담에 합의했던 것일까. 미국이 제네바합의의 내용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들이 이북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고 이북과 평화공존하기로 하였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북미관계가 변화하면 그에 발맞추어 북일관계와 남북관계 역시 평화공존의 관계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동북아시아에서 자신들의 핵우산을 보존하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이북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려는 자신들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미국이 원했던 것은 남북관계가 평화공존의 분단상태로 관리되는 것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이북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여 '위험하지 않은 상대'로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이 김영삼을 남북최고위급회담으로 떠밀어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김일성주석은 남북최고위급회담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내려 했던 것일까. 1993년 4월 6일 김일성주석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강령은 민족대단결의 총적목표를 연방통일조국의 건설로 밝히고 있으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민족대단결의 이념적 기초와 원칙 및 방도를 종합적으로 밝히고 있다.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은 주체적 통일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강령이다. 민족대단결은 민족통일전선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10대강령은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기 위한 정치강령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93년 4월은 북미대결이 첨예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그런 때에 김일성주석이 민족통일전선건설을 위한 정치강령을 발표하였다는 점, 그리고 6월 북미공동성명에 조선의 평화적 통일 지지 원칙을 명시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4년에 또 한번의 북미대결을 거쳐 합의된 남북최고위급회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각도에서 1993년-1994년의 북미대결을 돌아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북은 북미대결을 우리 민족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제거하는 투쟁으로 보고 있었다. 둘째, 이북은 미국의 간섭을 제거한 후 민족통일전선건설을 통해 민족주체역량을 강화하려 하고 있었다. 셋째, 이북은 남북최고위급회담을 민족통일전선건설의 획기적 전환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넷째, 이북이 민족통일전선의 힘으로 전취하려 했던 것은 자주적평화통일이었다. 1994년 신년사에서 김일성주석은 통일문제가 더는 미룰 수 없는 민족지상의 과업임을 각별히 강조하였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회 소집과 단군릉 개건공사의 조기완공 등을 추진하며 민족대단결을 위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김일성주석은 남북최고위급회담을 통해 민족통일전선의 초석을 놓고 연방통일조국으로 가는 돌파구를 열어놓으려 하였던 것이다.
1994년 7월 초 김일성주석은 남북최고위급회담에서 내놓을 통일제안을 최종 검토하였다고 한다. 김일성주석이 서거하기 직전에 서명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에는 여러 가지 통일제안들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결정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아직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기초로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그 공개되지 않은 결정서 내용의 상당부분은 오늘의 시점에서는 현실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 문건에 남아 있는 김일성주석의 마지막 서명은 분단의 봉인을 제거하는 서명인 듯 지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새겨져 있다.


2. 이북은 무엇을 위하여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였는가


1994년 7월 8일 김일성주석이 서거한 이후, 조선반도의 정세는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7월 11일 이북이 "사정에 의해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일단 연기한다는"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이남에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은 '조문파동'까지 일으켜가며 반북책동에 열을 올려 회담을 무산시켰다. 미국과 이남 당국은 김일성주석 서거 이후 이북이 정치적 불안정에 휩싸일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봉쇄를 강화하여 그 불안정을 증폭시키면 이북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2만개가 넘은 핵무기를 가졌던 소련이 정치적 균열로 붕괴되었던 것처럼, 이북도 정치적 혼란 속에서 무너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바와 같이, 1994년 10월 21일에 제네바에서 북미기본합의서를 발표할 당시 미국은 그것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 합의서로 이북의 핵활동을 동결시켜놓고 그 체제가 무너질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 미국의 의도였던 것이다.
동구사회주의 몰락으로 조성된 불리한 국제정세,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봉쇄, 연이어 닥친 파국적인 자연재해는 이북에 심각한 경제적 난관을 조성하였다. 이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을 이북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렀으며, 그 시기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창시한 새로운 정치방식이 선군정치였다. 그렇다면 '고난의 행군'은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고 이북사회주의를 지키는 데에 그 근본목적이 있었던 것일까. 이북에서 출판된 도서들에 따르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여러 차례 "지금 단계에서는 모든 것을 조국통일위업에 복종시켜야 한다,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수행할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모진 고난과 시련도 뚫고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이북에서 '수령형상소설'이라고 부르는 '불멸의 향도' 총서 중의 하나인 "별의 세계"에는 그 모습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지금이 제일 어려운 때입니다. 그렇지만 기어이 뚫고 나갑시다. 일부 사람들은 경제형편이 악화되고 있는데 우리가 왜 인민군부대들에만 계속 나가는지 의아해 한다는데… 짧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상점에 나이론양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만 살피고 그것을 구하러 다녔더라면 벌써 망해버린지 오랬을것입니다. 총대가 기본입니다. 이 총대만 든든하면 무서울것이 없습니다. 경제도 살리고 인민생활도 높일수 있고… 또 수령님의 유훈인 조국통일도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 오는 문제도 다 이룰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단계에서는 높은 목표를 정하고 멀리 내다보며 전진해야 합니다. 잘 살겠다는 생각보다 조국통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앞세워야 하며 모든것을 바로 거기에 지향시켜야 합니다. 자, 그럼 요기를 했으니 또 달려 봅시다." (소설 "별의 세계" 중에서)

앞에서 볼 수 있듯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해서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였다. 김일성주석 서거 이전의 조선반도 정세에 비추어볼 때,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한다는 것은 다음의 과제를 실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첫째, 미국의 붕괴책동을 파탄시키고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의 보루인 이북사회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둘째, 북미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하여 민족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제거하고 주한미군철수의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셋째, 남북최고위급회담을 다시 열어 민족통일전선의 초석을 놓는 것이다. 넷째,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고 강화하여 민족주체역량으로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선군정치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이북에서 새롭게 창조된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에 대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우리 당의 선군혁명령도, 선군정치는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인민군대의 혁명적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사회주의건설을 힘 있게 다그쳐 나가는 혁명령도방식이며 사회주의정치방식입니다."

이북에서는 선군정치를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는 정치방식이며 인민군대를 핵심이자 주력으로 하는 정치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는 선군정치는 군사력을 강화하여 반제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국가의 최우선의 목표로 삼으며, 국방공업의 선도적인 역할로 국가경제 전반을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전략을 수행한다. 인민군대를 핵심이자 주력으로 하는 선군정치는 인민군대를 중심으로 혁명적 군인정신을 온 사회에 일반화하여 정치사회체제를 강화하며, 인민군대가 국방사업 뿐만 아니라 경제건설에서도 주력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이북의 평가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선군정치는 핵무장력을 중심으로 한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여 미국의 전쟁위협을 막아내었고, 군대에서 창조된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인민을 무장시켜 이북의 정치사회체제를 강화하였으며, 국방공업의 선도적인 역할과 인민군대의 실천적 모범으로 경제발전의 돌파구를 열었다고 한다. 선군정치가 수행한 이 모든 과업은 미국의 이북붕괴책동을 파탄시키고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하는 데로 귀결되는 것이다. 또,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하여야 민족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제거할 수도 있고, 주한미군철수의 길을 열어놓을 수도 있으며,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열 수도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선군정치는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향해 곧바로 전진해온 애국애족의 정치인 것이다.


3. 선군정치의 맥락에서 다시 읽는 '8.4노작'과 '4.18노작'


김일성주석의 3년상을 치른 직후인 1997년 8월 4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라는 제목의 노작을 발표하였다. 이 노작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이 제시한 조국통일 3대원칙,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식화하였다. 조국통일 3대원칙은 조국통일의 기본원칙이고,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은 주체적 통일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강령이며,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이다. 조국통일3대헌장의 정립으로 인해 조선민족은 가장 근본적인 통일원칙과 가장 설득력있는 주체적 통일역량 마련의 정치강령 그리고 가장 합리적인 통일국가건설방도를 가지게 되었다.
조국통일 3대헌장이 정립된 1997년 이북의 당보·군보·청년보 신년공동사설은 그 해를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한 최후돌격전의 해"로 규정하였다. 이듬해인 1998년에 발표된 신년공동사설은 그 해를 "우리 식 사회주의의 결정적승리를 이룩해 나가는 보람찬 투쟁의 해, 새로운 비약의 해"라고 규정하였다. 이 두 편의 사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북은 1997년을 '고난의 행군'을 마무리짓는 해로, 1998년을 '새로운 비약의 해' 즉 공세기로 넘어가는 해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8.4노작'이 발표된 이후인 1997년 가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강도 당위원회 연형묵 책임비서에게 "국내외의 중소형발전소 건설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할 데 대한 과업"과 "자강도가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는데서 선행단위가 되며 전국적인 방식상학을 조직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 그리고 1998년 1월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강도를 현지지도하면서 중소형발전소건설에서 자강도 인민들이 보였던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강계정신'이라고 명명하고 그것을 전 사회에 일반화하도록 하였다. 강계정신은 인민군대의 혁명적 군인정신이 노동계급 속으로 침투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강계정신이 정식화된 1998년 이후 이북의 경제상황은 급격하게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보면, 1997년 가을에 중소형발전소 건설과업을 자강도에 맡긴 것은 혁명적 군인정신을 노동계급 속에 구현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조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새로운 시대정신의 창조는 1998년부터 경제건설에서 일으킬 일대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행과정이었다.
1998년은 경제건설 뿐만 아니라 조국통일운동에서도 새로운 전환이 예견되어 있던 해였다. 1998년의 신년공동사설은 그 해를 "우리 민족이 자주적평화통일의 결정적국면을 열어 놓게 될 력사적인 해"로 규정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98년부터 시작될 조국통일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준비하는 조치로 1997년 8월에 조국통일 3대헌장을 정립하는 노작을 발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해 진행되었던 3년간의 '고난의 행군'을 마무리하고 조국통일운동의 공세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선행과정으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이 남긴 조국통일운동의 강령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립하였던 것이다.
1998년 4월 18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자"라는 제목의 노작을 발표하였다. 그 노작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제시하였다. 민족대단결 5대방침은 ① 민족자주의 원칙으로 단결하는 것, ②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단결하는 것, ③ 남북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 ④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반통일세력을 반대하는 것, ⑤ 온 민족이 서로 왕래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연대연합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노작이 발표된 1998년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월의 자강도 현지지도 이후 3월에는 성강에 있는 성진제강을 현지지도하였고, 5월에는 강원도 토지정리사업을 발기하였으며, 6월에는 자강도를 다시 현지지도 하였고, 10월에는 대홍단군과 자강도를 현지지도하였다. 3월의 성진제강 현지지도에서 창조된 혁신의 모범을 이북에서는 '성강의 봉화'라고 부른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1998년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로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이남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이북의 경제성장률은 1996년에 -3.6%, 1997년에 -6.3%를 기록하다가 1998년에 -1.1%로 나아지더니 1999년에 +6.2%로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1998년 8월 31일 이북은 인공위성 광명성1호를 발사하여 북미대결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인공위성을 발사하였다는 것은 곧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그 오차범위를 넘어서는 폭발반경을 가진 무기 즉 핵무기의 보유를 전제로 했을 때 의미가 있으므로 이것은 또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시위이기도 하였다. 이북이 붕괴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시간을 끌어오던 미국은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정치협상의 자리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98년 신년공동사설이 말한 "자주적평화통일의 결정적국면을 열어 놓게 될 력사적인 해"는 그렇게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북이 정치협상의 자리로 끌려나온 미국에게 요구할 것은 북미수교와 주한미군철수였으며, 그 요구가 관철되는 것은 곧 남북최고위급회담이 다시 열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었다. 민족대단결 5대방침은 바로 그 남북최고위급회담에서 관철시킬 정치방침이었다. 김일성주석이 1994년의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예견하며 전민족대단결 10대방침을 발표했던 것처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남북최고위급회담을 다시 열겠다는 결심으로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발표했던 것이다. 


4. 민족 앞에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을 제시한 평양회담


2000년 6월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최고위급회담은 북미관계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98년 이북의 인공위성발사 이후 미국은 기존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북이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졌고, 따라서 미국은 핵무기를 가진 이북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재검토의 결과는 1999년 9월에 '페리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페리보고서'의 골자는 미국이 고립압살정책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북미관계의 틀은 다시 정립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와 함께 남북최고위급회담도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북미관계의 새로운 틀은 2000년 10월 12일 북미공동코뮈니케를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북미공동코뮈니케의 핵심내용은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기로 한 것, 북미간의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한 것, 1993년 북미공동성명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특히 이 문서는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준비하기 위해 미국 국무장관이 이북을 방문한다고 하여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임을 공표하였다.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곧 북미수교로 이어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000년 평양회담은 평화적영구분단노선과 자주적평화통일노선의 대결이었다. 미국이 평양회담을 통해서 얻고자 한 것은 북미간의 평화공존관계에 조응하는 남북간의 평화공존관계, 즉 평화적 분단상태였다. 반면에 이북이 평양회담을 추진한 것은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인 관계로 만들고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여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였다. 평양회담은 평화적영구분단노선이 아니라 자주적평화통일노선의 승리로 마무리지어졌다. 평양회담의 성과로 세상에 나온 6.15공동선언은 김일성주석이 제시한 조국통일 3대헌장의 구현이었으며, 직접적으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민족대단결 5대방침의 구현이었다.
평양회담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침'에 의하여 추진되었으며, 6.15공동선언은 남북관계개선이 평화공존이 아니라 조국통일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여 그 방침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애국애족·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단결하는 방침'에 흐르고 있는 광폭정치의 사상은 6.15공동선언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6.15공동선언의 제1항은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단결하는 방침'과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반통일세력을 반대하는 방침'을 구현하고 있다. '온 민족이 서로 왕래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연대연합을 강화하는 방침'은 6.15공동선언의 교류·협력조항으로 구현되고 있다.
민족대단결을 실현하는 운동은 곧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는 운동이며, 이 운동을 민족통일전선운동이라고 부른다. 6.15공동선언이 세상에 나온 것으로 하여 민족통일전선운동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 새로운 단계란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들고 합법적이고 대중적으로 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전개하는 단계이다. 남과 북의 최고위급 사이에서 6.15공동선언이 합의됨에 따라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대부분 합법화되었다. 또한 평양회담의 파급력과 6.15공동선언의 생활력으로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의 대중적 지반이 획기적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6.15공동선언을 기치로 들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민족통일전선의 대중적 기초를 다져나가는 방식의 민족통일전선운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단계는 광범위한 민족통일전선의 기초를 다지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6.15공동선언의 핵은 제1항에 명시된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이다.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는 민족자주사상과 민족대단결사상이 담겨 있다.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은 우리 민족문제를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 해결하여야 한다는 이념으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배격하는 반미자주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그 이념이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민족자주의 내용이다.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은 우리 민족문제를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이념으로, 민족통일전선건설을 지향하고 있으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그 이념이 직접 표현하는 것은 민족공조라는 실천방도이다. 민족공조는 우리민족끼리 서로 돕고 공동보조를 취하는 실천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은 조선민족이 6.15공동선언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민족통일전선의 토대를 강화하고 그 내용적 수준을 민족자주에서 반미자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민족자주의 원칙,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일관된 선군정치와 그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정책과 주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고 6.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였으며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협력관계가 여러 분야에 걸쳐 심화발전되고있습니다. 오늘 남조선에서 반미, 반외세, 민족자주통일의 기운은 전례없이 고조되고있습니다."

처음 남북최고위급회담이 합의된 때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흐른 2000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로 미국의 이북붕괴책동을 파탄내고 그들을 협상자리로 끌어내어 항복을 받아내었으며, 남북최고위급회담을 다시 열고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강령을 관철하여 민족통일전선의 초석을 놓았다. 그 6년의 세월 동안 이북의 자주통일역량은 더욱 강해졌으며, 2000년 6월 이후 조선민족은 6.15공동선언의 기치아래 민족통일전선운동으로 전민족적인 자주통일역량을 형성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 새로운 단계는 아마도 김일성주석이 1994년 최고위급회담을 통해 열어놓으려 했던 바로 그 단계였을 것이다.


5. 6.15공동선언이 가져온 변화, 그리고 우리민족제일주의


2000년 연말의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은 재선에 실패하였으며, 그의 임기 중에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지지도 못하였다. 2001년에 새로 들어선 부시행정부는 북미정상회담합의를 무시해버렸다. 부시는 집권 이후 계속 대북적대정책을 고집하여 6.15공동선언의 원만한 실현을 가로막았으며, 그에 비례하여 이남 민중들 속에서는 대미적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또, 반공반북의식이 허물어진 환경 속에서 양민학살문제, 미군기지문제, 여중생살인사건 등이 불거져 대미적대의식을 싹트게 하였다.
2000년 6월 이후 조선민족은 6.15공동선언을 기치로 들고 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전개하여 왔으며, 그것을 발전시켜왔다. 모든 계급과 계층을 망라한 교류와 협력사업이 진행되었고, 그것이 일회적인 수준을 넘어 조직적 성과를 낳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괄목할만한 것은 남북의 노동자·농민이 전개한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조직적 성과를 낳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남북 기층민중이 조직적으로 단결하는 것은 민족통일전선의 계급적 기초가 축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민족끼리'의 이념 속에 내포된 민족자주의식과 민족대단결의식이 심화됨에 따라 새로이 등장한 정치구도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민족 대 미국'의 대립구도였다. 이북의 신년공동사설에서 이 대립구도가 처음 언급된 것은 2003년이었다. 이 새로운 대립구도의 형성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이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2004년 1월 1일 이북은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우리민족제일주의 기치 밑에 민족공조로 자주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자!"라는 구호를 제출하였다. 여기서 각별히 눈에 띄는 것은 신년공동사설이 민족공조의 기치로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제출하였다는 점이다. 민족공조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한 형태이고 현 단계에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은 민족공조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므로, 사설에서 우리민족제일주의를 민족통일전선운동의 기치로 제기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는 이미 1980년대에 이북에서 제출되었던 개념이며, 2000년부터 2003년까지의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매년 쓰여왔다. 그러나 우리민족제일주의가 신년공동사설을 통하여 민족통일전선운동의 기치로 제기된 것은 2004년이 처음이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의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이 개념이 사용되었다.
우리민족제일주의란 무엇일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우리민족제일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은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여나가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숭고한 사상감정입니다."

이북에서 출판된 도서는, 우리민족제일주의가 우리 민족이 남만 못지 않다는 높은 민족적 자존심이며 우리 민족의 운명을 남만 못지 않게 개척해나가려는 굳은 각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설명에 비추어 보면, 우리민족제일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사대주의사상과 외세의존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없으면 사대주의에 빠지게 되고, 자기 민족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하려 하지 않으면 남에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2004년 신년공동사설에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의 기치로 제출된 우리민족제일주의는 우리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사대주의사상과 외세의존사상을 뿌리뽑는 사상적 무기이다. 사설에서는 특히 미국에 대한 환상을 뿌리뽑을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아 숭미·공미사대주의를 뿌리뽑는 사상적 무기로 우리민족제일주의가 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민족적 자부심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근거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이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현실적 근거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2004년 신년공동사설은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오랜 세월 하나의 혈통을 가지고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꽃피워온 자랑할만한 단일민족이며 지혜와 재능, 슬기에 있어서 남다른 우수성을 가진 민족이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오늘 우리 민족에게는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할수 있는 위대한 선군정치가 있고 자주적으로 살려는 강한 의지가 있으며 단합과 통일의 리정표인 6.15북남공동선언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우리민족이 역사적으로 가져온 우수성과 함께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키고 있는 선군정치와 6.15공동선언으로 단결된 민족역량이 그 자부심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사대주의사상과 외세의존사상을 완전히 극복하게 되면 민중의 대미적대의식은 반미자주사상으로 발전한다. 미국을 적대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반미자주사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민족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하여 미국의 식민지지배를 끝내겠다는 사상이 들어섰을 때 반미자주사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제일주의는 이남 민중이 사대주의사상과 외세의존사상을 완전히 극복하고 반미자주사상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사상적 무기인 것이다.
한편, 민족이 역사적으로 가져온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빛내려는 의지는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공통된 사상감정이므로 민족대단결의 사상적 기초가 된다. 우리민족이 역사적으로 가져온 우수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지금 전민족적 단결의 사상적 기초가 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단결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단결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단결이 된다는 것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단결에는 핵이 있게 마련이며, 거꾸로 말하면 핵이 없는 단결이란 허약하고 산만한 단결이다.
이북에서 출판된 도서는 선군시대 우리민족제일주의의 내용이 "위대한 령도자를 높이 모시고 위대한 선군정치의 빛발아래 사는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며, "강력한 국방력, 무비의 전쟁억제력을 낳은 선군정치에 대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인데, 전자가 핵심이며 후자도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선군시대 우리민족제일주의는 수령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핵심으로 하고 선군정치에 대한 자부심을 중요한 내용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우리민족제일주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하고 선군정치를 지지옹호하는 전민족적 단결을 이루도록 하는 사상적 기초가 된다. 핵이 있는 단결이 더 강하고 공고한 단결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요컨대, 우리민족제일주의는 이남 민중이 숭미·공미사대주의를 완전히 극복하고 반미자주사상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사상적 무기이며,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선군정치를 중심으로 전민족적 단결을 강화하도록 하는 사상적 기초이다. 우리민족제일주의는 반미자주화를 강령으로 하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선군정치를 중심으로 단결된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기 위한 사상적 기치인 것이다.


6. 선군정치 10년, 새로운 단계의 진입로에 선 자주통일운동


선군정치가 시작된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05년 2월 2일, 평양에서는 선군혁명총진군대회가 열렸다. 이북은 2005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올해를 "사생결단의 의지로 다져놓은 정치사상적, 군사경제적 위력을 총발동하여 우리 혁명발전의 일대 앙양기를 열어나가는 장엄한 력사적 시기"로 규정하고 "선군혁명총진군을 힘차게 다그쳐나가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는데, 선군혁명총진군대회는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북의 공식문헌이 선군혁명총진군을 "사회주의강성대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에서 심원하고도 근본적인 전변을 가져오게 하는 위대한 대중적혁신운동"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반미대결전을 총결산하고 사회주의수호전의 최후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혁명적총공세"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북은 올해 사회주의건설과 반미대결전에서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선군혁명총진군대회가 끝난 일주일 뒤인 2월 10일, 이북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 및 증산과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지난 3월 31일 이북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북이 핵무기보유국이 된 이상 6자회담의 의제는 비핵화·군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이북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으로 하여 미국의 핵무기독점체제는 결정적인 위기에 처하였다. 지금 미국은 핵무기독점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이북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이북의 제안은 비핵화·군축회담이다. 비핵화·군축회담이란 이북의 핵무기 포기 및 군축과 동시에 주한미군철수와 '한국군'감축이 논의됨은 물론, 주일미군감축과 일본군감축까지 논의되는 회담이다. 주한미군철수문제가 회담테이블에 올라 미국을 압박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주한미군철수 이후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던 '한국군'증강 및 미일군사동맹강화까지 가로막히게 되었다. 이북에게는 최선의 상황, 미국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어졌던 북미대결은 이제 최종결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틀어 북미대결이 일단락되었던 국면은 두 번 존재했었다. 한 번은 1994년의 국면이었고, 다른 한 번은 2000년의 국면이었다. 그 두 번의 국면과 2005년을 비교해 보았을 때 차이점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2005년의 국면이 주한미군철수를 직접적으로 논의하는 구도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조선민족의 민족통일전선운동이 반미자주의 내용을 합의해가며 조직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과 2000년의 반미대결전이 민족통일전선의 초석을 놓고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시작을 떼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면, 2005년에 조선민족 앞에는 그동안 구축된 민족통일전선의 기초를 발전시켜 반미자주화를 강령으로 하는 공고한 민족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는 새로운 목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지금 조선민족의 민족통일전선운동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2004년 11월 24일에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해외 사회단체대표 실무접촉에서는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으로 정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자주통일원년이란 조선민족의 자주통일운동이 새로이 시작하는 해, 즉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해라는 의미이다. 자주통일운동은 반미자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을 하나로 결합한 조선민족의 사회역사적 운동이다. 자주통일운동에는 자주통일의 보루인 이북사회주의를 강화하는 운동, 자주통일을 위한 민족주체역량인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는 운동, 반미대결전을 전개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운동이 모두 포함된다. 자주통일운동의 목표가 민족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으로 정하는 것은, 2005년에 조선민족의 자주통일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주통일운동은 이미 새로운 단계의 입구에 서 있다.
그렇다면 자주통일운동의 새로운 단계에 민족통일전선운동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우선 그동안 다져온 민족통일전선의 기초를 조직적 틀거리로 묶어세운 민족공조기구를 세워야 한다. 앞서 언급한 2004년 11월 24일 금강산실무접촉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6.15공준위)'의 결성이 합의되었다. 이 합의에 따라 지난 3월 5일 금강산에서는 남북해외의 사회단체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6.15공준위 결성식이 열렸다. 지금 자주통일세력 앞에는 이 조직을 반미자주화를 강령으로 하는 공고한 민족통일전선조직으로 발전시켜야 할 임무가 놓여있다.
6.15공준위를 그러한 민족통일전선조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내용의 활동을 벌여야 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이 2005년 이북의 신년공동사설에서 제출된 3대공조라는 개념이다. 사설은 2005년 조국통일운동 앞에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기발을 높이 들고 나가자!"라는 구호를 제출하였다. 민족자주공조·반전평화공조·통일애국공조를 묶어서 3대공조라고 부른다. 민족공조라는 개념은 '우리민족끼리 서로 돕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표현하고 있지는 않은데, 민족공조의 내용을 분명히 밝힌 개념이 3대공조인 것이다.
민족자주공조는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우리민족끼리 서로 돕는 것이다.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자주적민주정권을 수립하며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이다. 반전평화공조는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투쟁에서 우리민족끼리 서로 돕는 것이다.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투쟁이란, 조선반도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을 막고 전쟁의 근원인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투쟁이다. 통일애국공조는 민족 공동의 이익과 조국통일을 위해 우리민족끼리 서로 돕는 것이다. 민족 공동의 이익과 조국통일을 위해 서로 돕는 과정에서 전민족적 단결이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자주·반전평화·통일애국이라는 민족공조의 세 가지 영역은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에서 도출된 것으로 하여 과학적이며, 지난 5년 동안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전개한 실천 속에서 검증된 영역들인 것으로 하여 실천적이다. 민족자주·반전평화·통일애국을 내용으로 하는 민족공조를 실천해나가면 민족대단결을 강화하며 그 속에서 반미자주화의 내용을 합의할 수 있게 된다. 민족공조기구를 반미자주화를 강령으로 하는 공고한 민족통일전선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방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선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민족제일주의는 반미자주화를 강령으로 하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선군정치를 중심으로 단결된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기 위한 사상적 기치이다. 지금 건설되어 있는 민족공조기구는 그러한 민족통일전선의 모체가 되는 조직이다. 민족자주공조·반전평화공조·통일애국공조의 3대공조는 그러한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기 위한 실천방도이다. 여기서 우리민족제일주의와 민족공조기구 그리고 3대공조가 사상·조직·실천의 유기적 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새로운 단계는 우리민족제일주의의 사상적 기치를 들고, 민족공조기구의 조직체계를 건설하고 강화하며, 3대공조를 실천하여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는 단계라고 이해될 수 있다.
자주통일운동의 보루인 이북사회주의를 강화하고,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며, 민족통일전선을 건설하여 자주화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는 전략은 지난 10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자주통일운동의 기본전략이었다. 이 전략의 원천이며 그것을 밀어나간 원동력은 다름 아닌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였다. 요컨대, 지난 10년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에 의해 자주통일전략이 수행된 10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1995년 1월 1일 선군정치가 처음 시작된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이북사회주의도 새로운 발전단계로 들어서는 중이고, 반미대결전도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민족통일전선운동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요컨대, 자주통일운동은 지금 새로운 단계의 진입로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단계의 임무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실현경로와 실천계획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안목, 시대는 자주통일일군들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