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의 군축회담 제안과 한민전의 반제민전으로의 개칭

 

이북의 군축회담 제안과 한민전의 반제민전으로의 개칭

 - 통일혁명가 류락진선생을 추모하며

 

 21세기코리아연구소 연구소장 조덕원

 

 

호남의 류락진선생, 영남의 김용순비서

 

슬픔은 갈수록 더해간다. 4월 1일 저녁 11시경 류락진선생이 지병으로 별세하셨다는 날벼락 같은 비보. 으레 그렇듯이 이런 일은 그 상처가 얼마나 크고 오래 갈 것인가를 당장은 잘 모른다. 류락진선생. 지리산 빨치산 활동으로 1952년 구속되어 5년 수감, 통혁당(통일혁명당)사건으로 1971년 구속되어 20년 수감, 구국전위사건으로 1994년 구속되어 5년 수감, 그리고 1966년 방북... 이 간단하지만 치열한 생의 흔적은 우리로 하여금 류락진선생을 다름 아닌 통일혁명가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게 한다. 우리는 류락진선생을 통일인사, 민주인사가 아니라 통일혁명가라고 부른다.

 

4월 2일 오후에 이 비통한 소식을 접한 후 황황히 서울을 떠난 시각은 초저녁. 어둠 속을 달리는 차안에서 만가지 회억이 갈피갈피 예리한 칼날이 되어 가슴을 저민다. 선생의 고향 남원군이 있는 전라북도에 들어서는데 하늘도 슬픔을 이길 수 없는 듯 끝내 빗줄기를 뿌려댄다. 광주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11시. 불과 보름 전에 모셔다 드렸던 바로 그 현대병원에 이런 식으로 다시 찾아가게 될 줄이야. 아니 왜 그간 한번 더 찾아뵙지 못했는지, 회한으로 억장이 무너진다. 사진 속 선생은 너무나 밝게 웃고 계시고, 차마 더 바라보지 못하고 절을 하는 우리들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5일장 마지막 날 4월 5일 오전 8시에 발인하고 9시에 범민련남측본부 광주지부 앞에서 영결식이 치러진다. 광주만이 아니라 이남 아니 우리민족 전체의 민족통일장으로 해서 선생을 떠나보낸다. 장지는 예상을 깨고 광주 망월동 묘역이 아니라 경기도 파주의 보광사. 알고 보니 선생의 동지들이 특별한 유언을 남기며 묻혀있는 곳. 코리아(Corea)반도의 중심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조국통일의 유한을 달래시려는가, 그렇게 류선생은 우리의 곁을 웃으며 떠나가셨다. 못난 후배들에게 남겨주신 어서 빨리 통일위업을 이룩하라는 말씀, 그러기 위해서는 학습과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씀, 향기 있고 인간미 넘치는 운동가가 되라는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다. 밤새 올라오는 피곤한 여정에서도 이러저러한 생각이 갈마들어 잠들지 못한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자꾸 김용순비서가 떠오르는 것일까. 아마 최근에 읽은 민족21의 기사 때문일 것이다. 2003년 10월 26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69살을 일기로 별세.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지금도 그 자리가 비워져 있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은 인물. 그 김용순비서가 놀랍게도 대구출신이고 항일애국지사인 월관 김관제선생의 다섯째 아들 김병욱이라고 한다. 또 6.25전쟁 당시 형들과 함께 이북으로 넘어간 김비서는 오랫동안 대남사업을 비롯 조국통일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호남출신 류락진선생은 남에서, 영남출신 김용순비서는 북에서 통일사업에 한 생을 바친 셈이다.

 

김용순비서가 2000년 9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남쪽을 방문했을 때, 제주도를 방문하는 길에 굳이 대구의 동천비행장을 들러 잠시 비행기트랩에서 내렸다. 아버지가 옥사한 후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40년 간 살았던 곳이 바로 동천. 잠시나마 바람결이라도 어머니의 체취를 느끼려는 의도였는가. 이 찰라의 순간에 비낀 김비서의 비감한 심정을 이남에 홀로 남은 동생이 한두줄의 언론기사만으로 읽어내었다. 6.15통일시대에 조국광복 60돌이 되었건만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민족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 줄을 모른다. 과연 우리에게 조국통일 이상의 절대적 과제가 또 있겠는가.

 

주한미군철수를 향한 일보전진 : 이북의 6자군축회담 제안

 

광주행 고속도로를 쾌속으로 달리는 차안, 창문 너머 수려한 조국강산의 풍광이 획획 지나간다. 류락진선생의 평생 염원인 조국통일은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상념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시속 100킬로를 넘게 달리는 이 차보다 오늘 통일정세는 더 빨리 발전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이북의 핵무장선언이 있은 후 불과 한달 여 만인 3월 31일에 이북은 외무성대변인 담화로 새로운 군축회담안을 제시하였다. 코리아반도비핵화는 김일성주석의 유훈이며, 이북이 핵보유국이 된 조건에서 이제 6자회담은 과거와 달리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요지다. 이로써 2.10핵무장선언의 성격과 이북의 속내가 확연히 드러났다. 올해를 기어이 미군철수원년으로 삼겠다는 결의가 정말로 확고하다.

 

돌이켜 보건데, 이북의 대미 제안은 역사적으로 크게 평화협정, 불가침조약, 군축으로 변화해 왔다.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북 침략군적 성격과 대남 점령군적 성격을 동시에 띠는 주한미군을 반드시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북의 일관된 전략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1990년대까지는 정전협정을 근거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그 협정에 주한미군철수와 비핵지대화를 명문화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북은 인공위성(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미국본토를 보복공격 할 수 있게 되자 2002년부터 불가침조약 체결로 바꾸었다. 잘 알다시피 불가침조약은 수교 전단계의 공정으로서 주한미군철수와 경제봉쇄해제를 강하게 추동한다. 따라서 평화협정체결안보다 불가침조약체결안은 보다 진전된 제안이 된다.

 

한편 북미 사이의 문제를 대화로 풀자는 6자회담이지만 지난 기간은 그 취지와 성격상 주한미군철수를 의제로 제출할 수 없었다. 북미불가침조약은 주한미군철수보다는 북미수교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일괄타결의 원칙과 ‘동결 대 보상’의 방식으로 전개되는 조건에서 주한미군철수를 협상안건으로 올려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조미수교가 사실상 주한미군철수를 전제하는 만큼 내적으로는 관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이남에서의 반미대중운동이 가지는 의의가 매우 크다.

 

미국이 2002년 말에 중유공급을 끊으면서 북미기본합의를 완전히 파기하자 이북은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을 과감히 탈퇴하며 핵억제력을 가속적으로 강화시켜 왔다. 이북이 핵동결을 해제하며 2기의 대용량 원자로를 완공하고 가동했다면, 늦어도 2006년부터는 연간 270킬로그램 이상의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연간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북이 이미 1980년대 말에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과 1985년 북미대화와 이북의 동시사찰안을 통해 이남에서 핵무기철거와 팀스피리트중단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6자군축회담안이 향후 코리아반도정세를 급진전시킬 수 있는 전환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진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당연히 이북이 북에 있는 핵과 미사일,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는 만큼 미국과 이남이 남에 있는 핵으로 무장한 주한미군을 물러가게 하고 이남군대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이북을 위협하는 주변나라인 일본에서 핵으로 무장하고 있는 주일미군과 일본군도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 이런 식의 군축회담이라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북미 간 군사정치회담탁의 한 귀퉁이에 끼어들게 된 이남도 그간 소외된 것을 생각하면 만세를 부를 일이다. 그러나 핵무장과 군국주의화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일본은 닭 쫒던 개신세가 된다. 핵무장과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진출에 혈안이 된 일본제국주의는 이북의 배타적인 군축회담제안에 의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연합뉴스가 공개한 이북의 담화문에는 '경애하는 김일성주석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조선반도비핵화'라고까지 비핵화원칙을 강조하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남조선에서 미국의 모든 핵무기들을 철거시키고 남조선 자체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려야’ 한다고 나와 있다. 동시에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일체 핵전쟁연습을 중지하고 핵위협공간을 청산해야 하며 우리와 미국을 포함한 주변나라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밝혀져 있다. 한마디로 6자군축회담을 통해 코리아반도와 그 주변의 군사적 문제와 수교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이로써 미국 부시정권은 유치한 지연전술을 구사하며 시간을 질질 끈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정리하면 북미평화협정에서 북미불가침조약, 6자군축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북의 전략적 요구인 주한미군철수가 보다 직접적으로, 보다 철저히 관철되는 흐름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 결과 미국이 주한미군철수 대신 전략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주일미군과 일본군의 감축도 불가피하게 되었다. 1994년 당시 강석주부부장이 갈루치핵대사에게 조선문제는 다룰수록 커진다고 큰 소리를 쳤다는데, 과연 그 말대로 미국의 6자회담전술, 지연전술은 부메랑이 되어 미일호전세력의 목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또한 이 주동적이고 치밀한 군축회담제안으로 이남과 일본, 미국의 반전반핵 평화옹호세력은 2.10핵무장선언 이후의 양비론적 논쟁에서 벗어나 반미반일의 정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길지 않은 한 장의 담화문이건만 참으로 절묘한 시점에 발표되어 만가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미 미국으로부터 주한미지상군의 연내 철수완료를 통보받은 노무현친미정부는 불안감에 떨며 ‘동북아균형론’이니 뭐니 하면서 친미보수세력의 동요를 막으려고 매우 분주하다. 그러나 미국에 군사, 정치, 경제적으로 예속된 이남이 동북아에서 균형자적 역할을 한다는 분수 모르는 소리에 귀 기울일 나라는 없다. 자주성이 없는 나라에 그 무슨 외교력이 있겠는가. 민족공조라는 삶의 길이냐 반민족공조라는 죽음의 길이냐 하는 기로에서 번민하는 노무현정부에게 이북의 6자군축회담 제안은 어둠을 밝히는 한줄기 빛이다.

 

만약 부시정부가 이북의 합리적인 6자군축회담안을 거부한다면 두 가지 암초에 부딪혀 결국 자초하고 말 것이다. 하나는 미국 내 평화애호세력을 비롯한 국제적인 반부시반전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이북의 핵억제력 강화 및 일본의 핵무장이다. 잘 알다시피 미국이 시간을 끌수록 이북의 핵무기고에는 핵무기가 대거 쌓여가고 또 일본의 핵무장과 미일군사동맹 해체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이 미국의 불침항공모함으로 기능하는 조건에서 미일군사동맹의 해체는 미국의 동북아전략거점 상실과 세계경영전략 실패로 직결된다. 이는 미국이 이북의 핵, 미사일 개발을 절대로 수수방관할 수 없는 이유다. 주한미군철수운동은 이북의 핵무장선언에 이어 6자군축회담안으로 또 한번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이북의 2월 핵무장선언이 대미 군사적 공세라면 3월 6자군축회담안은 대미 외교정치적 공세, 2월 선군혁명총진군대회는 대미 대중정치적 공세라고 할 수 있다. 남과 북, 해외의 우리민족이 6.15공준위라는 상설적 통일공조체를 결성한 것도 대미 대중정치적 공세에 해당한다. 이남이 비록 군사적, 외교적 공세를 취할 수는 없으나, 미군주둔지에서 벌어지는 대중적인 반미운동은 미국과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데서는 대단히 위력적이다. 이런 견지에서 미국이 향후 신속기동군의 훈련거점으로 삼고 있는 지역에 조직된 평택범대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로 현재 모든 반미세력이 집결하고 있는 점은 아주 고무적이다. 현재 이남 진보세력의 준비정도가 미군철수공대위(미군철수남북공동대책위원회)를 바로 결성할 수 없는 조건에서 더욱 그러하다.

 

미군이 이남에서 주둔하든 훈련하든 반미진보세력을 반대하고 친미보수세력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물리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민족, 민중의 자주와 진보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반미진보세력은 무조건적으로 미군철수투쟁에 앞서나가야 한다. 미군이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순간이 되면 이남주식의 절반을 틀어쥐고 있는 외국독점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게 된다. 이 말은 초유의 금융대공황이 발생해 이남경제라는 함선이 여지없이 침몰한다는 뜻이다. 이 때가 바로 우리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과 우리민족의 자주권쟁취투쟁이 하나로 결합하며 준정치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비약하는 결정기이다. 류락진선생이 생전에 그토록 바라시던 자주, 민주, 통일 운동의 결정적 시기가 정녕 멀지않은 것이다. 광주톨게이트 푯말이 스쳐지나가자 해방광주의 숭엄한 야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2의 6월항쟁을 알리는 신호탄? : 한민전의 반제민전으로의 개칭

 

서울행 고속도로를 쾌속으로 달리는 차안. 밤하늘이 뿌려대는 빗줄기가 차창을 두드린다. 류락진선생은 과연 어떻게 한 생을 마감하셨는가. 운명을 예감하신 선생은 이미 총화를 마무리해 놓으셨다. 총화 이야기를 듣고난 우리들, 상경하는 내내 말을 잇지 못한다. 류선생의 남다른 인생에서 통혁당활동기는 중핵을 이룬다. 민족해방애국전선사건으로 구속되어 비전향선생들과 함께 생활하던 지난 7년 간의 감회가 교차된다. 수많은 변혁운동가들로 하여금 선구자의 시련을 달게 감수하도록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통혁당이라는 사색의 고리는 자연스레 한민전으로 이어졌다.

 

최근 연합뉴스는 3월 23일에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이 반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접한 한 언론사가 우리연구소에 그 배경에 대해 세가지 질문을 해 왔다. 첫째 질문은 명칭에서 ‘한국’이 빠지고 ‘반제’가 들어간 이유에 대한 것이다. ‘한국민족민주전선’에서 ‘한국’이 빠지고 ‘반제’가 들어가 ‘반제민족민주전선’이 된 데는 당연히 우리민족 대 외세의 대결구도를 부각하는 뜻이 담겨있다. 한편 ‘반제민전’의 역사관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의 조종 하에 수립되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신식민주의적 대리정권에 불과하다. 조국광복 60돌이 되는 올해 그런 ‘한국’ 명칭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민족의 정치사적 정통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우리민족’이라는 표현은 체계적으로 강화되었다. 6.15공동선언 1항에 명시된 ‘우리민족끼리’가 최대의 화제어가 되더니 연이어 ‘우리민족제일주의’가 나오고 올해에는 ‘3대 민족공조’까지 등장하였다. 6.15공동선언채택 5돌, 조국광복 60돌이 되는 2005년에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3대민족공조노선이 제출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에서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주적이고 중립적인 연방국가를 정확히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전평화 공조를 민족자주 공조에 포함시키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족공조가 민족통일전선을 대중적으로 풀어 쓴 말이라고 할 때 민족공조의 기치는 민족통일전선의 2대 강령인 자주와 통일이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반미민족공조와 통일민족공조, 이렇게 2대 공조면 되는데 굳이 반전평화공조를 넣은 까닭은 무엇인가. 2월의 핵무장선언과 3월의 6자군축회담안은 이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 된다. 그렇다면 ‘반제민전’에 ‘반제’가 들어간 이유도 분명해진다. ‘반제민전’의 정세관에 의하면 자주통일의 최대방해세력도 미일제국주의고 코리아반도의 최대호전세력도 미일제국주의다. 그런 미일제국주의에 맞서 코리아반도의 전쟁을 반대하고 자주통일을 앞당기겠다는 ‘반제민전’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라고 분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둘째 질문은 반일투쟁이 강조된 배경에 대한 것이다. 이 대목이 인상적인 이유는 반미를 가장 우선하고 가장 중시하면서 ‘반미전선’이 아니라 ‘반제전선’으로 개칭했기 때문이다. ‘반제’의 ‘제(제국주의)’가 미국제국주의만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도 포함한다는 것은 언론에 보도된 성명문에 아예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왜 반일이 이 시점에 이토록 중요한가이다. 우리가 보기엔 이것은 미일군사동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해 말 주한미지상군이 신속기동군으로 재편되어 이남에서 철거되는 조건에서 미국은 주일미군과 일본군을 보강하는 등 체계적으로 미일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은 이남이라는 전술적 거점은 포기해도 일본이라는 전략적 거점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동북아 아니 아시아에서 일본을 잃는다는 것은 아시아제패라는 제국주의적 야망을 꺾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트루먼시절 애치슨라인에서도 일본열도는 배제되지 않았던 것이고 전범국가인 일본을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에까지 밀어넣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서울을 방문한 라이스는 이남의 친미보수세력에게 일본의 이사국진출이 미국 정책이라는 ‘강령적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통일학연구소 한호석소장이 최근 논문에서 일본이 독도분쟁을 일으키는 이유가 통일 이전에 미일군사훈련의 동해상 거점인 독도를 쟁탈하려는데 있다고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군국주의가 미제국주의의 종속적 동맹군인 조건에서, 오늘 일본군국주의를 반대하는 반일투쟁은 본질에서 반미투쟁이나 다름이 없다. 마치 노동운동대오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중심성을 형성한 후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에 적극 뛰어드는 것처럼, 민족민주운동이 반미투쟁의 중심성을 형성한 후 반일투쟁에 적극 뛰어드는 것은 순리적이다. 반일투쟁은 반미투쟁을 대중화하는 가장 좋은 고리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민주노동당 내 일부 ‘좌파’당원들이 인터넷상에서 벌이는 ‘반국제주의론’은 황당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1차대전 시기 제국주의국가의 노동계급을 제국주의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반동적 민족주의론과 신식민주의 이남사회에서 일본군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진보적 민족주의론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조적인 자칭 ‘좌파’들은 혀끝으로만 ‘국제주의’를 부르짖을 뿐 국제주의의 요체인 반제투쟁과 반제투쟁의 요체인 반미반일투쟁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이런 사이비 좌파운동가들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남에서의 반미반일대중투쟁이나 국제적인 반미반일연대투쟁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셋째 질문은 1985년 통혁당에서 한민전으로 개칭한 후 1987년 6월항쟁이 벌어졌듯이 앞으로 2~3년 안에 무엇인가 이루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한달 전 이 비슷한 질문에 대해, 류선생은 그거야 연구소의 전공이 아니냐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지난 1월에 발표한 6개논문의 기본주제는 물론 지난해 운동을 총화하고 올해 노선을 제출하는 것이지만, 사실 초점은 이후 몇 년 안에 도래할 자주통일의 대격변기를 과학적으로 전망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 전망을 ‘준정치투쟁’이라는 종자개념을 동원해 역사적으로, 체계적으로 해설하였다.

 

3월 4일 금강산에서 6.15공준위(6.15공동선언실천을위한남북해외공동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6.15공준위는 1949년 6월에 결성된 조국전선(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이래 최대의 상설적 전역통일전선(민족통일전선)이다. 남과 북의 두 정권이 6.15공동선언 기치 아래 상층 통일전선을 형성한 조건을 통일운동세력이 십분 활용하며 꾸준히 노력하며 이룩한 빛나는 결실이다. 남과 북, 해외의 모든 통일애국세력을 망라한 6.15공준위 결성은 미일외세와 반민족세력을 타격하는 정치적 사변이다. 또 이남에서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의 지역통일전선 형성을 촉진하는 강력한 견인력이다. 6.15공준위 결성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농과 한농연, 한총련과 한대련이라는 진보개혁노농학단체의 통합흐름은 강한 탄력을 받게 되었다. 

 

6.15공준위가 이남정부의 6.15공동선언 준수 약속을 전제로 결성된 조직이 맞다. 그러나 이남정부가 6.15공동선언을 파기하는 순간 지체없이 반정부조직으로 전화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북이 핵무장선언과 6자군축회담안을 내놓으며 조만간 결판을 내자고 하는 상황에서, 노무현정부가 지금처럼 한미공조에만 몰두한다면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시정부가 이북의 군사외교적 공세에 무릎을 꿇고 대북정책을 전환하는 순간 노정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북미관계 개선과 6.15공동선언 실현으로 나아가는데, 대세를 거스르며 조문파동, 탈북사건이나 일으키는 노정부에게 미래가 있을 리 없다.

 

1987년에 비해 지금은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고, 민주노총과 전농, 한총련과 같은 진보적 대중조직이 개혁적 대중조직과 통합을 추진하고, 민중연대와 통일연대의 통합이 일정에 오르고, 상설적인 대규모 반미연대체를 결성하고 있는 국면이다. 여기에 주한미지상군철수가 임박해 있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 독점자본이 투자자본을 회수할 시점만 노리고 있다. 굳이 남베트남의 실례를 들지 않아도 현 이남정세는 미국과 친미보수세력에게 실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이 위태롭다. 노동자, 농민이 매년 광화문에 10만씩 모여 신자유주의와 미국을 반대하며 성조기를 불태우는 단계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정치적 대격변기가 멀지않았다는 정세전망이 결코 무리일 수 없는 주객관적 근거가 여기에 있다.

 

세가지 답변을 더듬다보니 문득 한호석소장의 논문내용이 떠올랐다. 2003년 10월 21세기코리아연구소 통일전선연속토론회에 제출된 한소장의 논문은 한민전을 ‘전위적 지역통일전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은 당시 우리운동대오에 적지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류선생의 견해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우리가 그 때 토론회에서 한소장과 다른 견해를 내놓았던 기억이 어제일 같다. 우리사회에 일본 수준의 부르주아민주주의라도 구현되어 있다면, 한민전의 실재성이니 합법성이니 하는 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은 취임 직후 방일과정에서 불쑥 일본공산당을 찾아가 이남에서도 공산당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김영삼이 취임사에서 민족보다 나은 동맹은 없다며 민중을 현혹시킨 수법을 노무현이 흉내낸 것인가. 그해 7월 한총련간부들을 상대로 한 강연회에서 노정부는 공산당 합법화보다 한총련 합법화부터 하라고 일갈했던 기억이 난다. 6.15공동선언 강령의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노정부가 ‘공산당 합법화’ 어쩌구 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실제로 노정부는 진보개혁세력을 등에 업고 국회과반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폐지 하나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진보개혁세력 1300여명이 참가한 장기단식투쟁에도 열린우리당과 노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2월폐지약속도 넘기고 4월에 접어든 지금 열린우리당정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사실 사상이 다르다고 류락진선생처럼 30년씩 구속하며 살인적인 전향공작을 가하는 중세기적 암흑사회는 지구상에 이남밖에 없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비전향장기수가 송환된 후에도 국가보안법의 사상억압, 조직탄압, 인권유린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남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임을 자랑하나 그 나라들이 수십년 전에 이룬 사상과 결사의 자유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고 있다. 이미 맑스레닌주의서적이 버젓이 팔리고 주체사상토론회가 공개적으로 열리며 누구나 금강산이든 개성이든 평양이든 방문하는 마당에,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이남식 민주주의를 국제적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생전에 국가보안법의 족쇄 때문에 금강산에도 한번 못 가보신 류선생의 유한이 가슴을 친다.

 

 

한달 전 우리에게 류락진선생은 지난 생을 총총히 들려주시면서 다시 태어나도 같은 조직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활동가들과의 간담회나 대중강연회에서 사회과학학습과 규율있는 생활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시던 분, 우리운동을 좀먹는 분파주의, 관료주의와 단호히 결별할 것을 역설하시던 분, 운동대오의 참다운 사상적 일치와 조직적 단결을 이루어낼 것을 절절히 호소하시던 분, 그리고 젊은 시절 목수일을 정말 맛나게 이야기해주시던 분, 그 분이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우리는 오늘 류락진선생의 육신과 영결하지만 그 뜻, 그 추억과는 영결할 수 없다. 통일혁명가 류락진선생의 한 생은 밤하늘의 별처럼 길이 빛날 것이다. (2005년 4월 5일)

 

 

 [21세기코리아연구소] <200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