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새 아침에 정세와 운동을 생각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이 글은 일본 도쿄에 있는 조국평화통일협회 강민화 홍보국장이 보내온 질문에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차례>
1. '자주통일 원년'은 무엇을 뜻하는가?
2.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선 자주통일운동
3.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싸움
4. '가짜유골사건'은 누가 저질렀는가?
5. 새로운 단계의 자주통일운동에서 해외동포운동권이 맡은 역할
 

1. '자주통일 원년'은 무엇을 뜻하는가?
 

물음 -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자주통일 원년으로 하자고 했던 2005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해 6.15 공동선언 4주년을 맞아 인천에서 열렸던 '우리민족대회'에서는 2005년을 '조국통일 원년'으로 하자고 합의했었는데, 11월 금강산에서 열렸던 남, 북, 해외 실무회의에서는 '자주통일 원년'으로 하자고 다시 합의하였습니다. 2005년을 '자주통일 원년'으로 하자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변 - 조국통일 원년이라는 말이 자주통일 원년이라는 말로 바뀐 것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자주통일이라는 개념은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하나로 통일된 과정으로 보는 복합개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주통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반미자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이 결합되는 것입니다. 자주통일이라는 말에는 제국주의세력의 지배, 방해, 간섭을 물리치고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조국통일을 이루어내자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조국통일 원년이라는 말을 자주통일 원년이라는 말로 바꾼 것은,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하나로 통일된 과정으로 보는 민족주체적 관점을 한(조선)민족 전체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와 더불어 2005년을 주한미국군철군 원년으로 하자는 구호도 제기되었습니다. 나는 미군이라고 하지 않고 미국군이라고 부릅니다. 영국군대나 중국군대를 영군 또는 중군이라 부르지 않고 영국군, 중국군으로 부르는 것처럼 미국군대도 미국군으로 부르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남(한국)에 배치한 자국 군대를 거둬들인다는 뜻으로 철수라는 말을 쓰지만, 한(조선)민족의 시각에서 보면 다른 나라 군대를 자기 땅에서 거둬치운다는 뜻으로 철군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조국통일을 이루어내려면 무엇보다 먼저 남(한국)을 지배하고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방해하며 한(조선)민족의 내부문제에 간섭하는 제국주의 미국의 분단체제유지책동, 반통일책동을 막아내야 합니다. 제국주의 미국이 분단체제유지책동, 반통일책동을 저지르는 것은 미국군이 한(조선)민족의 영토에 버티고 있으면서 제국주의지배체제를 그대로 이어가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한(조선)민족의 영토에 버티고 있는 제국주의 군대를 그대로 둔 채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런 뜻에서 볼 때, 자주통일운동과 주한미국군철군운동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자주통일을 이루려면 주한미국군부터 거둬치워야 합니다. 주한미국군을 거둬치워야 자주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자주통일 원년은 곧 주한미국군철군 원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는 2005년의 역사적 의미를 말하려고 합니다.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2005년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또 다른 측면이 돋보입니다. 남(한국)의 일반대중에게는 별반 의미가 없겠지만, 북(조선) 인민들에게는 조선로동당 창건 60주년이 매우 커다란 정치적 의미를 갖습니다. 북(조선)은 1995년 당창건 50주년을 김일성 주석 서거 이후 '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련기에 맞이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당창건 60주년을 맞이하는 2005년은 북(조선)에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맞이하는 것입니다.

북(조선)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운동이란 무엇일까요? 북(조선)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들을 종합해보면, 그 새로운 운동은 선군혁명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선군혁명운동은 1995년 1월 1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박솔이 뒤덮인 인민군 부대의 초소를 몸소 찾아 인민군 병사들과 함께 선군장정을 시작하여 올해로 꼭 10년 동안 벌여온 높은 단계의 사회변혁운동입니다. 북(조선)에서는 선군정치라고 부릅니다. 선군혁명운동은 조선로동당이 혁명적 무력을 강화하는 국방부문에 그치지 않고, 혁명군대의 선진적 지위와 주동적 역할을 앞세워 반제투쟁역량을 튼튼하게 만들고 사회주의체제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주의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떠밀어가는 새로운 형의 사회변혁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선군혁명운동 10주년이 가지는 의의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화투쟁 1백년사를 돌아봄으로써 더욱 돋보입니다. 올해 2005년은 일제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했던 이른바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으로부터 꼭 1백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조선)민족에게 온갖 재앙과 고통을 들씌웠던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수탈은 지난 1백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제국주의 미국과 그 동맹국인 일본으로부터 전쟁도발위협과 경제봉쇄책동를 받고 있는 북(조선)에게 선군혁명운동 10주년은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제국주의지배세력의 정치군사적 예속과 제국주의독점자본의 경제적 이윤수탈과 제국주의사상문화의 동화책동에 의해서 짓눌리고 찢겨진 남(한국) 근로대중의 삶에는 한(조선)민족에게 1백년 동안이나 온갖 재앙과 고통을 들씌웠던 지배와 수탈의 역사가 피눈물처럼 진하게 응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일제식민지 시기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재일동포사회의 역사에도 한(조선)민족에게 1백년 동안이나 온갖 재앙과 고통을 들씌웠던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수탈의 역사가 응결되어 있습니다.

눈여겨보는 것은,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수탈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이루려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화운동이 지난 1백년 동안 좌절과 시련을 거치면서도 자라났다는 사실, 그리고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화운동이 오늘 북(조선)에서 선군혁명운동으로, 남(한국)에서 반미자주화운동으로 각각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조선)의 선군혁명운동은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수탈이 가중되어온 1백년이라는 기나긴 양적 시간에 견준다면 비록 1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졌으나, 그 운동을 벌인 지난 10년은 반제자주화운동이 한층 높은 단계로 올라서고 반제자주화운동의 새로운 국면이 열림으로써 북(조선)이 제국주의세력을 몰아내려는 힘을 가장 힘있게 떨쳐 드러낸 기간이었습니다. 제국주의 미국을 담판으로 끌어내서 근본문제를 풀어내는 사변이 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것은 선군혁명운동이 아니고서는 생각하지 못할 일입니다.
 

물음 - 재일동포들 속에서는 2005년이 자주통일 원년이라면 2005년 안에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어떤 획기적인 사변이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 조성된 정세로 봐서 과연 획기적인 사변이 일어날 수 있겠는지 믿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답변 - 옛날 봉건시대에 쓰였던 원년이라는 말은 임금이 즉위하여 나랏일을 새롭게 시작한 해를 뜻하였습니다. 그러한 말쓰임새에 따른다면, 자주통일 원년이라는 말은 자주통일운동을 새롭게 벌이는 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2005년 이전에도 자주통일운동은 벌어졌으나 2005년부터 자주통일운동을 새롭게 벌인다는 것이지요. 자주통일운동을 새롭게 벌인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나의 판단으로는, 자주통일운동을 새로운 발전단계로 끌어올린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자주통일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란 그 운동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발전시키는 단계를 뜻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주통일운동의 조직적 태세를 갖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주통일운동의 조직적 태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래에서 논하겠습니다.
 

물음 - 대다수 의견은 자주통일 원년이라는 말을 자주통일운동이 출발하는 첫 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장님이 이전에 일본에 오셔서 재일동포들에게 강연하셨을 때 "조국통일은 시작되었으며 현재진행형이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는 현재진행형인 조국통일운동에 대해서 자주통일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답변 - 자주통일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명백하게도, 지난 60년 세월 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온 자주통일운동은 현재도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주통일운동이 60년 전부터 벌어져 지금 이어지고 있으므로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 60년 동안 전민족적 범위에서 벌어진 자주통일운동을 대략 네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단계는 1948년 평양에서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열렸던 때로부터 1972년 7.4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던 때까지 24년입니다.

둘째 단계는 7.4 공동성명이 발표된 때로부터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되었던 때까지 28년입니다.

셋째 단계는 범민련이 결성된 때로부터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때까지 10년입니다.

넷째 단계는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로부터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공동기구가 결성되는 2005년까지 5년입니다.

눈여겨보는 것은, 단계를 거쳐온 기간이 24년→28년→10년→5년으로 나타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차츰 짧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로부터 그 선언을 이루기 위한 민족공동기구를 세우기까지 다섯 해가 걸렸으므로, 앞으로 펼쳐지는 다섯째 단계는 그보다 더 짧은 기간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자주통일을 이루어 가는 속도가 차츰 빨라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자주통일이 차츰 가속도로 이루어는 현상은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올해 2005년부터 5-6년이 지나는 2010년 이후의 통일정세는 지금과 견주어서 얼마나 달라지게 될지를 상상해보십시오. 현재 벌어지는 자주통일운동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일실현의 종착점을 향하여 가속도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통일시대 한 복판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음 - 북(조선)에서 발표한 새해 공동사설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공동사설은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올해에 조국통일위업 수행에서 새로운 전진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면서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가자"는 구호와 방향을 제기했습니다. 이미 작년에 올해 2005년을 자주통일의 원년으로 할 데 대하여 전민족적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만, 소장님은 이 목표와 이번에 제시된 3대 공조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 올해 공동사설에서는 3대 공조를 이루자는 구호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이전에 외세공조를 물리치고 민족공조를 이루자는 구호에서 쓰이던 민족공조라는 개념이 올해에는 3대 공조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나섰습니다. 3대 공조라는 개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공조라는 말은 서로 돕는다는 뜻이므로, 민족공조라는 말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돕는다는 뜻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기 이전에는 민족화해라는 개념을 썼는데,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는 민족공조라는 개념을 쓰고 있습니다. 공조는 통일전선을 일으켜 세우는 첫 걸음입니다. 민족통일전선 형성은 민족공조에서 출발합니다. 3대 공조는 민족통일전선(national unified front)을 일으켜 세우려고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돕고 힘을 합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돕는다고 했을 때, 무엇을 위하여 서로 돕고 힘을 합하느냐 하는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올해 공동사설에서 공조의 목표로 내놓은 것은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 세 가지입니다.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이라는 개념은 일반 대중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통속개념들입니다. 3대 공조는 남, 북, 해외의 민족 전체에게 내놓은 대중적 구호입니다. 3대 공조를 민족민주운동권에서 쓰이는 정치용어로 풀이하면, 반미자주화, 주한미국군철군, 연방제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족통일전선의 첫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대 공조를 이루는 것은 반미자주화운동, 주한미국군철군운동, 조국통일운동을 민족통일전선으로 모아내고 엮어내는 싸움입니다.

자주통일 원년은 우리 민족끼리 3대 공조를 이루는 해이며, 민족통일전선이 일으켜 세우기 시작하는 해입니다. 자주통일 원년의 역사적 의의를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보면, 1930년대 반일혁명과 조국광복의 깃발 아래 일으켜 세웠던 20세기 민족통일전선의 역사를 오랜 공백기를 넘어 계승·발전시켜 반미자주와 조국통일의 깃발 아래 21세기 민족통일전선을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2.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선 자주통일운동
 

물음 - 우리가 자주통일 원년이라는 전민족적인 목표를 내걸 수 있게 된 배경에는 6.15 공동선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선언 발표 직후에 도쿄와 뉴욕에서 소장님과 토론회에 출연하거나 말씀을 나눈 것이 엇그제 같은 데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물론 우리가 6.15 다섯돐을 뜻깊게 기념해야 되겠지만, 어느 의미로는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지 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사실 이제는 6.15 공동선언의 의의나 정당성을 강조만 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지적될 만큼 우리의 운동을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시킬 데 대한 요구가 나서고 있다고 보는데,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번 금강산 실무회의에서 이제는 행사 위주의 운동단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지금 각 지역에서 한창 발족 준비가 추진되고 있는 준비위원회를 실질적인 6.15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민간공동기구로 발전시킬 데 대한 문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주통일운동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것이 앞으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통일기구를 내오는 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답변 - 위에서 논했습니다만, 한(조선)민족의 자주통일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은 6.15 공동선언을 이루려는 조직적 태세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운동하는 실체는 조직이며, 조직이 없이는 운동을 벌일 수 없습니다. 자주통일운동을 떠밀어가는 조직이 있어야 자주통일운동을 벌일 수 있는 것이지요.

자주통일운동의 조직적 태세란 6.15 공동선언을 이루려는 민족공동기구를 세워 자주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현재로서는 남, 북, 해외의 여러 사회단체들이 6.15 공동선언의 깃발 아래 모여들어 운동주체를 꾸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준비위원회'라는 좀 어색한 조직명칭을 쓰게 되었지만, 오늘 '준비위원회' 결성은 내일 민족통일기구를 세우는 발전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을 이루려는 민족공동기구는 비록 '준비위원회'라는 이름을 쓰지만, 자주통일을 이루려는 민족통일기구의 초보적 조직형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눈여겨보는 것은, '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지는 6.15 공동선언을 이루기 위한 민족공동기구는 남북 정부당국이 참여하지 않는 민간통일기구라는 점입니다. 남북의 정당까지 포괄된다면 정당·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민간통일기구가 될 것입니다. '준비위원회' 결성의 역사적 의의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뒤로 끊겨졌던 민족통일전선운동사가 57년만에 계승·발전되는데 있습니다.

평양을 동서로 나누며 흐르는 대동강 한 복판에는 쑥섬이라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그 섬에는 사적지가 있습니다. 1948년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하였던 남북의 정치지도자 15명이 한 자리에 모여 진행하였던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를 기념하는 사적지입니다. 북(조선)은 범민련이 세워졌던 1990년에 쑥섬혁명사적지를 조성하였습니다. 쑥섬혁명사적지에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였던 56개 정당, 사회단체의 수를 상징하는 화강석 56개로 쌓은 높이 3.5m 되는 돌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탑신 정면에는 '통일전선탑'이라고 쓴 김일성 주석의 필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돌탑이 증언하는 것은, 1948년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자주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민족주의세력, 민주주의세력, 사회주의세력이 손을 잡은 전민족적 통일전선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한(조선)민족은 반통일세력의 방해장벽을 뚫지 못하였습니다. 그 방해장벽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낸 것이 바로 6.15 공동선언 발표입니다.

나는 오늘 민족통일기구의 초보적 조직형태가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자주통일을 이루려고 민족주체역량이 단결하는 것을 가로막는 제국주의 반통일세력의 방해를 뚫고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일으켜 세우는 역사적 임무가 한(조선)민족의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가졌습니다. 이제 한(조선)민족은 6.15 공동선언을 이루려는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일으켜 세워야 새로운 단계의 자주통일운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흩어져 있는 민족주의세력, 민주주의세력, 사회주의세력이 6.15 공동선언을 이루기 위하여 정치역량을 한데 모으는 통일전선노선이 한(조선)민족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명백하게도, 통일전선노선은 정치노선이므로 우연히, 또는 자연발생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전선의 역사를 계승·발전하는 강력한 주체의 정치사업에 의해서 추진됩니다. 통일전선의 역사를 계승·발전하는 정치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를 민족민주운동권에서는 통일전선체라고 부릅니다. 통일전선체는 통일전선노선을 지지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은 모두 통일전선노선을 지지하는 정당이 아닙니다. 한나라당은 드러내놓고 반통일책동을 저지르고 있으므로 그들에 대해서는 더 할말이 없고, 집권당인 열린우리당도 조국통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조국통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그 당의 정강에 조국통일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는 데서 입증됩니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그러한 실정이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도 똑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국통일이라는 말을 쓰는 것마저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으며, 통일부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개점휴업상태인 통일부는 조국통일방안을 연구·실천하기는커녕 6.15 공동선언을 이루어내는 민족공조의 길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통일부 장관은 틈만 나면 북(조선)을 개혁과 개방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제국주의 미국의 이른바 '체제변형론'을 앵무새처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통일은 남북의 현존체제를 그대로 두고 연방제 방식으로 평화통일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로 통합하겠다는 것으로서, 제국주의 미국이 북(조선)의 자주적 사회주의체제를 예속적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로 바꿔놓은 뒤에 결국 먹어치우겠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북(조선)의 자주적 사회주의체제를 예속적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로 바꿔놓은 뒤에 결국 먹어치우겠다는 제국주의 미국의 개혁·개방론과 체제변형론을 뒤따르는 정치세력이 남(한국)에서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자주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자주통일운동의 통일전선노선은 그러한 정권의 친미예속노선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조국통일은 통일헌법을 만들고 통일정부를 내오는 것으로 완전히 이루어지므로, 정당·사회단체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북의 정부,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한데 모여 통일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에 따라 통일정부를 내와야 통일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조국통일이 이루어지는 날은 통일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통일정부를 내오려면 그에 앞서 민족통일기구를 먼저 내오고 그 기구 안에서 통일정부 수립에 관련하여 나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정치협상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민족통일기구는 57년 전에 열렸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의 역사를 계승·발전하는 통일전선노선의 조직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펼쳐졌던 통일전선노선이 21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직적 결정체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려면 정당과 사회단체만이 아니라 정부도 그 기구에 들어서야 하고, 남북의 두 정부가 단지 들어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도·중심적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남북의 두 정부가 민족통일기구에서 주도·중심적 역할을 맡게 되려면, 남(한국)에서 통일전선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 집권해야 합니다. 남(한국)에서 통일전선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 집권하면 당장이라도 민족통일기구를 내올 수 있고 자주통일의 결정적 국면이 열리게 되겠지만, 그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으니 그것이 남북 최고위급회담입니다. 5년 전에 발표된 6.15 공동선언은 민족통일기구를 내오기 전에 거쳐야 할 필수과정을 뚜렷이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을 이루는 것은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것이며, 당면해서는 그 기구를 내오기 전에 거쳐야 할 필수과정인 남북 최고위급회담을 여는 것입니다.

남, 북, 해외의 사회단체들이 흩어져있는 힘을 한데로 모아 전민족적인 차원에서 '준비위원회'를 일으켜 세우는 근본목적이 6.15 공동선언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때, 그 위원회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들 가운데 하나는 남북 최고위급회담이 열리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북 최고위급회담이 6.15 공동선언에서 약속된 때로부터 다섯 해가 지나도록 열리지 못하는 까닭은, 국가보안법 처리문제와 '핵문제'가 그 회담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북(조선)을 반국가단체로 내몰고 북(조선)의 정권과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적의를 담은 반통일악법이 살아있는 조건에서 남북 최고위급회담이 열리기 힘듭니다. 또한 북(조선)을 '악의 축'으로 내몰고 무너뜨리려는 적의를 담은 미국의 대북(조선)적대정책이 '핵문제'의 해결이라는 명분을 쓰고 추진되는 조건에서 설사 국가보안법이 없어진다 해도 부시 정부는 남북 최고위급회담이 열리는 것을 반대할 것이 분명합니다.

국가보안법 처리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틀어쥐고 있고, 대북(조선)적대정책은 부시 정권이 틀어쥐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처리문제는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폐지안을 상정하여 처리할 수 있는데도 한나라당과 야합하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시간만 질질 끌고 있습니다. 미국이 물고 늘어지는 '핵문제'라는 것도 부시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시간만 질질 끌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시 정권에게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내던질 생각이 없음을 말해줍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남북 최고위급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통일정세의 교착국면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없애주기를 기다리거나, 부시 정부가 대북(조선)유화정책으로 돌아서기를 기다리는 피동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풀어 가는 열쇠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주체역량이 주동을 틀어쥐고 싸우는데 있습니다. 주체역량의 조직적 태세를 갖추는 것이 통일정세의 돌파구를 열어놓는 유일한 길입니다. 6.15 공동선언을 이루려는 민족통일전선체의 초보적인 조직형태인 '준비위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주체역량의 조직적 태세를 갖추어 통일정세의 돌파구를 열어놓는 역사적 의의를 갖습니다.
 

3.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싸움
 

물음 - 6.15 공동선언의 실현은 그것을 가로막는 반통일세력과의 투쟁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4년의 교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투쟁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변 -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통일정부를 내오는 원리는 정말 명백하고 간단하지만, 그러한 통일실현의 원리를 현실정치 속에서 이루어내는 것은 매우 힘들고 복잡합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통일실현의 원리를 이루어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세력이 강한 반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통일세력의 강한 반작용을 무력하게 눌러놓지 않으면 통일정부를 내오는 길로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반통일세력의 강한 반작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통일정부를 내오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세력이란 한(조선)민족의 사회역사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반동세력(reactionary force)입니다. 그 반동세력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과 그것을 뒤따르는 남(한국)의 친미예속세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국주의 미국이 반통일세력인 것은 명백하고, 극우반동세력의 소굴인 한나라당 역시 반통일세력인 것은 명백하지만, 노무현 정권을 반통일세력으로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지난 시기 김대중 정권은 6.15 공동선언에 합의한 당사자였으므로 그 정권을 반통일세력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과 달리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는 짓을 저지를 뿐 아니라, 김대중 정권보다 더 충실하게 미국의 반통일정책을 뒤따르면서 친미예속성을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로동신문』 2004년 12월 16일자에 실린 「미제와 그 추종세력의 반통일적, 반민족적 정체를 고발한다」는 제목의 기사는 "이 한해 동안 남조선당국은 유감스럽게도 공동선언을 부정하고 동족과 현 북남관계를 해치는 반민족적, 반시대적, 반통일적 망동을 수없이 저질렀다."고 지적·비판하였습니다. 북(조선)은 친미예속적인 노무현 정권 자체를 부정하여 남북 정부당국의 상호관계를 깨뜨릴 수 없는 조건에서 그 정권을 정치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수준의 비판에서 머물게 됩니다.

이처럼 북(조선)과 노무현 정권 사이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정치협상의 가능성이 있는 반면에, 해내외 민족민주운동과 노무현 정권 사이에는 그 어떤 형태의 협상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은 친미예속적인 노무현 정권을 언제나 변함없이 싸움상대로 보아야 하며, 친미예속정권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친미예속성은 반통일세력의 속성이고, 반미자주성은 통일세력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싸움은 반미자주적인 통일세력 대 친미예속적인 반통일세력의 싸움입니다. 반미자주성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일정하게 통일지향성을 가진 이른바 '중간세력'에 대해서는 조성된 정세와 국면에 따라 통일세력의 쪽으로 끌어가거나 반통일세력의 쪽으로 끌려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눈여겨보는 것은, 그러한 '중간세력'이 친미예속정권인 노무현 정권에게 포섭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중간세력'을 포섭하였다고 해서 조성된 정세와 국면을 생각하지 않고 그 정권을 무조건 협력대상으로 인정하려는 것은 친미예속정권에게 일종의 정치적 면죄부를 주려는 우경적 편향입니다.

반미자주적인 통일세력 대 친미예속적인 반통일세력의 싸움은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역량 대 제국주의 미국과 그를 뒤따르는 친미예속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자주통일을 이루려는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의 투쟁전술을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조성된 정세와 국면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이 투쟁대상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미국에 대한 투쟁전술, 한나라당에 대한 투쟁전술, 노무현 정권에 대한 투쟁전술은 언제나 똑같지 않습니다.

친미예속적인 반통일세력에 맞서서 싸우는 반미자주적인 통일세력의 투쟁전술에 관해서는 더 많이 연구해야 합니다. 반통일세력에 맞서 싸우는 투쟁전술로는 투쟁대상을 없애는 제거전술, 무력하게 만드는 무력화전술, 중립에 묶어놓는 중립화전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견인전술,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막아내는 견제전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권이 남북 최고위급회담에 나서는 국면에서 통일세력은 그 정권을 민족통일전선으로 끌어내는 견인전술로 나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면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친미예속책동, 반통일책동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력화전술로 나가야 합니다.
 

물음 - 반통일세력의 우두머리 미국이 이번 부시 재선으로 앞으로 더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는 견해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로 갈라져 있습니다. 물론 2기 부시 정권의 출범 이후를 봐야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즘 북에 대한 미국측의 유화적인 발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의 '체제전복'이 아니라 '체제변형'을 바란다느니, 북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느니 하는 발언들입니다. '체제전복'이든 '체제변형'이든 남의 나라 자주권을 침해하는 데서는 마찬가지이니 그들의 본성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발언들은 무슨 저의가 깔린 제스쳐로 보십니까?
 

답변 - 부시가 재선된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의 모순이 격화되는 일련의 현상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모순이 격화되는 세계지배체제를 제국주의 미국이 그대로 이어가려면 더욱 집요하게 힘의 정책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 미국이 추진하는 힘의 정책은 침략전쟁으로, 무력대치로, 정치대결로, 경제수탈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이 그러한 힘의 정책을 펼치는 적임자로 다시 등장하였으므로, 그 정권의 대외정책이 여전히 힘의 정책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그런데 눈여겨보는 것은, 부시 정권이 힘의 정책을 펼치는 수법이 언제나 어디서나 똑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조성된 정세와 국면에 따라서, 또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힘의 정책을 펼치는 수법이 달라집니다. 관심을 끄는 문제는 부시 정권이 한(조선)반도에 대해서 어떤 수법으로 힘의 정책을 펼칠 것인가 하는 데 있습니다.

제국주의 미국이 매달려있는 힘의 정책은 그에 맞선 반미자주적 대응력과의 관계에서 그 정책을 펼치는 수법이 결정됩니다. 만일 반미자주적 대응력이 약한 국면 또는 지점에서는 제국주의 미국이 힘의 정책을 펼치는 수법이 매우 파괴적이고 폭력적입니다. 그러나 반미자주적 대응력이 힘의 정책을 눌러버릴 만큼 강한 국면이나 지점에서는 힘의 정책이 제한적으로 작동하고 피동에 빠지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한(조선)반도는 전세계에서 반미자주적 대응력이 가장 강한 지역이며, 더욱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펼쳐진 국면에서는 그 대응력이 매우 강하게 떨쳐 드러나게 됩니다. 부시 정권이 2기에 들어서서 힘의 정책에 더욱 집요하게 매달린다 해도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적 대응력을 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핵문제'를 놓고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펼쳐진 지난 10년의 역사가 입증합니다.

눈여겨보는 문제는, 부시 정권이 한(조선)반도에서 힘의 정책을 어떤 수법으로 펼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민족이 반미자주적 대응력을 어떻게 한데 모아 싸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조선)반도의 전역적 판도에서 볼 때, 북(조선)의 반미자주적 대응력은 선군혁명운동으로, 남(한국)의 반미자주적 대응력은 주한미국군철군운동으로 각각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총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론에서 나서는 당면문제는, 남(한국)의 주한미국군철군운동이 아직 약하다는 점입니다. 주한미국군철군운동은 대중정치투쟁이므로, 대중정치투쟁이 일어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어야 그 싸움을 힘있게 벌일 수 있습니다. 주한미국군철군운동을 대중정치투쟁으로 벌일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무르익는 것은 광범위한 근로대중이 그 운동에 투쟁주체로 나선다는 뜻입니다.

근로대중의 싸움에서 주력은 노동계급이므로 남(한국)의 선진적 노동계급이 주한미국군철군운동에 투쟁주체로 나서야 대중정치투쟁의 결정적인 국면이 열립니다. 남(한국)의 선진적 노동계급이 주한미국군철군운동에 나서는 것은, 선진적 노동계급이 홀로 벌이는 싸움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근로대중이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일으켜 세워야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선진적 노동계급이 근로대중의 통일전선을 이끌어 가는 주도역량으로 나선 조건에서 통일전선이 주한미국군철군운동을 벌여야 미국군을 거둬치울 수 있습니다.

전망적으로 말하자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는 팽팽한 긴장상태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으나 한(조선)민족은 자기의 자주역량의 끈질긴 싸움으로 그 긴장상태를 깨뜨리면서 정치적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물음 - 지난해에 남녘동포들도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계속 높이 들고 반미반전투쟁과 자주통일투쟁을 과감히 벌여왔으며, '국가보안법'폐지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이 북녘동포들과의 민족공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소장님은 올해 남쪽 정세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답변 - 올해 남(한국)의 정세변화요인들 가운데 눈여겨보는 것은 경제난이 더욱 나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한국)의 경제성장이 멈추고 근로대중의 생존권이 짓눌리는 것을 뜻합니다.

문제는 경제난 악화와 통일전선운동 활성화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경제난 악화와 통일전선운동 활성화는 서로 무관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난 악화는 객관적 조건이고, 통일전선운동 활성화는 주체적 조건입니다.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조건을 변증법적 통일관계로, 변화·발전으로 이끌어 가는 연결고리가 있으니 그것이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입니다.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격화됨으로써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조건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되고 정세가 변화·발전하게 됩니다. 주객관적 조건이 통일되는 양상이나 변화·발전되는 방향은 주체역량의 주동적 작용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체역량이란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을 통일전선으로 이끌어 가는 핵심세력을 뜻합니다. 2005년 남(한국) 정세는 핵심세력의 전투지휘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음 - 금년에 미국과 그 추종세력과의 투쟁이 전쟁이냐 평화냐, 6.15 공동선언의 고수이행이냐 말살이냐, 자주냐 예속이냐 하는 매우 첨예한 투쟁으로 될 것이 예견되는데,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 속에서 그에 맞서온 우리가 이 투쟁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답변 - 대처하는 원리를 명백합니다. 물리학의 원리로 말하자면, 흩어져있는 힘을 한데로 모아내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고, 흩어진 힘을 한데로 모으지 못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흩어져있는 힘을 한데로 모아내는 것을 통일전선 형성이라고 합니다. 흩어져있는 힘을 모아내려면 구심력이 강하게 작용해야 합니다. 구심력이란 지도핵심을 말합니다. 통일전선의 지도핵심역량이 강할수록 정치적 구심력이 강해지고, 통일전선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지도핵심은 통일전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싸움 속에서 형성됩니다. 자주, 민주, 통일을 이루려는 싸움에서 오랜 기간 단련된 지도핵심이 정치적 구심력을 떨쳐 드러내어 흩어져있는 힘을 한데로 모아내는 것이 통일전선 형성입니다. 한(조선)민족의 싸움은 통일전선의 싸움입니다. 문제는 자주, 민주, 통일을 이루려는 싸움에서 누가 통일전선노선을 능동적으로 추진하고, 성과적으로 관철하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4. '가짜유골사건'은 누가 저질렀는가?
 

물음 - 요즘 일본 우익세력은 '납치자 유골문제'로 경제제재를 가해서 '북조선을 해방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겉으로는 유화적으로 나가는 척 하는 미국이 일본을 대변자나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도 생각되고 또는 일본이 '납치문제'를 구실로 독자적인 길, 다시 말해서 군국주의화를 다그치려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도 생각되는데, 소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 일본 정부당국은 북(조선)으로부터 넘겨받은 '납치자' 유골이 가짜라고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의 극우반동세력이 불을 지른 조·일 대결구도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습니다. 북(조선)은 '납치자' 유골이 가짜라는 발표가 조·일 대결구도를 극단적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일본측에서 꾸며낸 모략이라고 받아치면서, 감식자료를 내놓고 유골을 북(조선)에 있는 유족에게 돌려주라고 하였습니다.

조·일 대결구도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납치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 일환으로 유골을 돌려 받는다는 애초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유골반환문제가 조·일 대결구도를 더 나쁘게 만드는 악재로 되면서 조·일 평양선언을 이행하는 문제는 사라지고 말았고, 두 나라 사이의 적대적 모순관계가 더욱 날카롭게 되고 말았습니다.

북(조선)에 있는 유족이 일본 정부에게 넘겨주었던 유골은 오래 전에 화장해서 무덤에 묻었던 유골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넘겨받은 것이 두 사람 분의 유골이 섞인 것이며, '납치자'의 유골이 아니라 누군지 모르는 다른 사람의 유골이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북(조선)이 일본 우익세력을 자극해서 조·일 대결구도를 극단적으로 악화시켜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습니다. 또한 1996년부터 미군 전사자 유해 200여기를 발굴하여 미국에게 넘겨준 유해송환사업에 관한 경험이 많아 유전자 감식으로 유골의 진위여부가 금방 드러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북(조선)이 가짜유골을 진짜유골이라고 속여 넘겨주었다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의 유골로 바꿨다고 가정해도, 누구인지도 모르는 두 사람 분의 유골을 섞어서 넘겨주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일본 정부당국이 북(조선)에서 진짜유골을 넘겨받고서도 가짜유골을 넘겨받은 것처럼 사실을 날조하여 발표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힘듭니다. 만일 일본 정부당국이 그러한 악질적인 날조·모략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일본에게 조·일 대결구도를 극단적으로 몰아가야 할 충분한 까닭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북(조선)에게 경제제재를 들이밀겠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습니다. 일본이 북(조선)에게 경제제재를 들이미는 것은, 중국과 남(한국)의 반대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당연히 러시아도 반대할 것입니다. 일본의 대북(조선) 경제제재는 6자회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6자회담을 다시 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미국으로부터도 찬성을 얻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이 그러한 조건을 내깔기고 경제제재를 마구 들이민다고 해도 그것은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6자회담을 더욱 늦추는 역효과만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미국도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대북(조선) 경제제재를 일본이 미국의 의사를 거스르면서 중국, 남(한국), 러시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마구 들이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일본 정부당국이 조·일 대결구도에 매달려 있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질적인 날조·모략을 저지르면서까지 그 대결구도를 극단적으로 몰아감으로써 조·일 관계를 완전히 깨뜨려서 자기들에게 돌아갈 이익은 없습니다. 일본이 조·일 관계를 완전히 깨뜨리는 것은 6자회담에서 일본을 빼놓아야 한다는 명분을 북(조선)에게 준 것밖에는 일본 정부가 얻을만한 것이 없지요. 또한 일본이 조·일 관계를 완전히 깨뜨리는 것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안달이 나있는 일본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걸림돌을 하나 더 놓는 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제3의 세력이 유골의 유전자를 감식하는 과정에서 진짜유골을 가짜유골로 몰래 바꾸었을 가능성입니다. 조·일 관계를 완전히 깨뜨리고 대결구도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려는 극우반동세력, 조·일 평양선언이 발표되어 '납치문제'를 풀어내고 조·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결정적인 국면이 열렸을 때 '납치문제'를 조·일 대결구도의 발화점으로 조작해놓아 관계개선이 아니라 관계악화로 돌려놓았던 극우반동세력, 이른바 '북조선인권법'을 조작하려고 날뛰는 극우반동세력이 고이즈미 정권 안팎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음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바로 그 음흉하고 교활한 극우반동세력이 '가짜유골사건'이라는 악질적인 날조·모략을 저질렀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반동세력이 추구하는 목표가 군국주의 완성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들이 군국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군국주의에 대립하는 적대세력이 요구되는데, 그들은 북(조선)과 중국을 그러한 적대세력으로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군국주의 완성책동에 날뛰는 그들이야말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는 암적 존재입니다.

눈여겨보는 것은, 넘겨받은 유골을 감식하는 작업이 일본에서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일본 외무성은 넘겨받은 유골을 니가타현 경찰당국에 보냈고, 니가타현 경찰당국은 경찰청 과학경찰연구소와 데이쿄대학 의학부 연구실에 각각 유전자 감식을 나누어 맡겼습니다. 그런데 경찰청 과학경찰연구소는 유전자 감식에 실패하였고 데이쿄대학 의학부 연구실은 감식에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정부기관의 감식은 실패하고 사립대학 연구실의 감식이 성공하였다는 것부터가 뭔가 의심이 가는 일입니다. 감식작업이 사립대학 연구실에서 진행되었으므로, 극우반동세력이 침투하여 바꿔치웠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줍니다.

북(조선)은 유골을 북(조선)의 유족에게 돌려주라고 요구하였고, 유전자 감식자료를 넘겨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유골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면서 감식자료만 북(조선)에 넘겨주었습니다. 보나마나 그 감식자료에는 문제의 유골이 가짜유골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그 유골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객관적으로 가려내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당국이 이번 사건을 정밀하게 다시 조사해서 만일 북(조선)으로부터 넘겨받은 진짜유골이 유전자 감식과정에서 극우반동세력에 의해서 가짜유골로 바뀌었음을 찾아낸다고 해도, 극우반동세력의 편에 서 있는 일본 정부당국으로서는 진실을 밝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짜유골사건'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가짜유골사건'은 일본 정부당국이 정치적으로 푸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정부당국은 극우반동세력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것이 아니라 조·일 관계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려는 그들의 난동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조·일 평양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 정부당국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조·일 평양선언이 두 나라에게 모두 이익을 안겨주는 관계정상화의 이정표라는 점입니다.
 

5. 새로운 단계의 자주통일운동에서 해외동포운동권이 맡은 역할
 

물음 - 해외동포운동권이 노는 역할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누어 봅시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데서 해외동포운동권이 노는 역할이라고 할 때, 우선 매개 지역동포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자주통일운동에 결집시키는 일이 있고, 평양이나 서울에서 열리는 민족공동행사의 성공에 이바지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조선)반도의 자주통일을 지지하는 거주국의 진보적 인민들과 연대하는 일입니다.

나는 작년에 어떤 지방에 나가서 일본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듣고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한편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폭발적이어서 가정부인들이 미쳐버리다시피 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른바 '일본인 납치문제'를 대북공격의 수단으로 삼고 광기 어린 '북조선 때리기'를 자행하는 극우반동세력들이 민족배타주의를 선동하는 참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일본사람들에게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 잘 알려나가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연구활동뿐 아니라 통일운동도 정력적으로 벌이고 계시는 소장님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답변 - 재일동포사회에서 벌어지는 자주통일운동과 재미동포사회에서 벌어지는 자주통일운동은 상당히 다릅니다. 그것은 두 사회가 생겨난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사회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일동포사회는 크게 봐서 총련 및 총련계 동포들과 민단 및 민단계 동포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만, 재미동포사회는 여기저기 흩어져있습니다. 각 도시마다 한인회가 있지만 거의 모두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미동포운동권에는 군소단체들이 난립하였는데, 심지어 1명으로 이루어진 유령단체까지 있습니다. 재미동포운동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 진보운동권도 흩어져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는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을 미국사회에 알리고 미국의 진보적 운동역량으로부터 자주통일운동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이끌어 내는 정치사업이 중요하고 실효성이 있습니다. 주한미국군 장갑차가 여중생 두 사람을 깔아 죽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재미동포운동권이 남(한국)의 반미자주화투쟁에 결합하고 백악관 앞 시위투쟁을 조직하여 미국 여론을 뒤흔들어놓은 것,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부시 정권의 강요에 무릎을 꿇고 이라크 추가파병을 강행하였을 때, 재미동포운동권이 이라크 침략전쟁 반대투쟁을 벌이는 미국의 진보적 운동역량과 힘을 합하여 파병반대투쟁에 나선 것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에 맞서 싸우는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에서 재미동포운동권이 한 몫 해야 하는데도 수공업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근본원인은 고질적인 분산·난립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미동포운동권에게는 분산·난립상태에서 벗어나 단일한 투쟁대오를 갖추어야 할 과제가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해외동포운동권 전체로 보아서, 올해 중요한 것은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민족공동기구를 세우는 사업을 힘있게 내미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운동력을 한데 모아서 해외 각 지역에서 '준비위원회'를 세우면 6.15 공동선언을 이루는 데 한 걸음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물음 - 금년에 통일학연구소가 설립 10주년을 맞게 되는데, 이 기회를 빌어 축하를 드립니다. 동시에 우리 평화통일협회도 금년에 창립 15주년을 맞게 됩니다. 지금도 남측 당국의 인터넷 사이트 차단조치를 박차고 국가보안법을 함께 짓밟고 있지만, 우리의 연대와 연계가 보다 강화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우리 평통협 역원, 간사들, 나아가서 재일동포들에게 한 마디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답변 - 통일학연구소를 뉴욕에 세운 때가 1995년 3월 11일이었으니,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통일학연구소를 세운 1995년을 전후하여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은 혹독한 시련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1993년에 이른바 '문민'의 간판을 들고 김영삼 정권이 등장하자, 재미동포운동권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았던 핵심인물이 민족민주운동을 포기하고 김영삼 정권에 투항하여 귀국하는 바람에 운동대오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1994년 내내 나는 무너진 운동대오를 일으켜 세우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민족민주운동권이 흔들리는 까닭이 정세인식과 운동이론이 부실한데 있다는 것과 정세인식과 운동이론의 과학적 바탕을 착실히 다지는 일에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통일학연구소를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조국평화통일협회가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이하였는데,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국평화통일협회는 1990년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세워지면서 자주통일운동이 전민족적 범위에서 활발히 벌어지던 때에 세워졌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재일동포사회에서 자주통일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려고 정력적으로 일해오신 조국평화통일협회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회역사를 변화·발전시키려고 싸우는 선진적 운동력이 어떻게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강력한 대중적 운동력으로 성장·전화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해내외 선진적 운동단체들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 숙제를 풀어내면 자주통일을 이루는 지름길이 열리게 됩니다. 2005년 새 아침을 맞아 남다른 각오와 결심을 안고 전투화를 들메는 자주, 민주, 통일의 싸움꾼들은 자기의 실천 속에서 성장·전화의 숙제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찾을 것입니다. (2005년 1월 5일 작성)

*홈페이지 접속차단 즉각 철회하라!

통일학연구소 연결주소: onekorea.rules.it 또는 onekorea.blogsite.org

통일학연구소 홈페이지: one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