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관계로 분석한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와 한(조선)반도 정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드러난 모순관계
2. 북(조선)의 '핵문제'를 통하여 드러난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의 모순
3. 적대적 모순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4. 3대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될 2005년 새해

 

1.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드러난 모순관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부시가 재선되어 집권 2기에 들어섰다. 부시가 추진한 난폭한 대외정책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반부시 감정을 부시의 정적 케리에게 투사하였고, 그에 따라 케리를 지지하는 열기가 상당히 고조되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케리가 반부시 감정확산의 반사이익을 받으며 당선될 것으로 보았던 대중의 기대심리를 좌절시켰다.

미국 대통령선거 같이 매우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있는 정치현상은 대중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어설픈 상식으로는 분석할 수 없으며, 전문지식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백하게도, 정치현상을 분석하는 데 요구되는 전문지식은 진보적 사회과학에서 주어진다.

진보적 사회과학이 이룩한 성과에 비춰보면, 미국은 세계지배체제를 장악·주도하는 제국주의국가라는 사실, 그리고 제국주의국가가 직면한 두 가지 모순이 각각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제국주의국가 미국이 직면한 두 가지 모순이란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모순과 제국주의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모순이다. 그 두 가지 모순은 미국이 추진하는 여러 대내외정책에서 드러나는데, 특히 그 모순이 날카로운 쟁점으로 표출되는 계기는 대통령선거다.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드러난 쟁점은 미국의 경제에 관한 문제, 그리고 북(조선)의 '핵문제'와 이라크 전쟁에 관한 문제였다. 미국 경제에 관한 쟁점은 제국주의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모순이 표출된 것이며, 북(조선)의 '핵문제'와 이라크 전쟁에 관한 쟁점은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모순이 표출된 것이다.

이번 선거전에서 드러난 가장 주요한 쟁점은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제국주의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주목하는 것은, 그 두 가지 쟁점을 표출시킨 두 가지 모순은 하나의 연관관계로 통일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모순이 미국의 요구대로 해결하여야 미국 내부에서 발생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으며, 또한 미국 내부가 안정되어야 세계지배체제를 계속하여 장악·주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드러난 주요한 쟁점, 곧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쟁점은 이라크 침략전쟁과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련된 것이었다.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우선 이라크 침략전쟁에 관한 쟁점을 논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정치세력은 그 쟁점과 관련하여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대체로 세 갈래로 갈라졌다. 세 갈래란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지지세력, 비판적 지지세력, 반대세력으로 갈라진 것을 뜻한다. 그 가운데 이라크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진보적 정치세력은 선거진영을 형성하지 못하고 정치권 밖의 사회적 저항세력으로만 존재하였으므로, 반대세력의 목소리는 선거전에서 들리지 않았고 지지세력과 비판적 지지세력의 각축전만 요란하였다.

명백하게도, 부시진영을 형성한 정치세력은 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케리진영을 형성한 정치세력은 그 전쟁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비판적 지지란 전략적으로 지지하면서 전술적으로만 비판하는 것을 뜻한다.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케리의 전술적 비판은, 부시 정부가 이라크 침략전쟁을 독단적으로 밀어 부치는 바람에 프랑스, 독일, 캐나다를 비롯한 전통적 동맹국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맹국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 내는 외교전술을 선호한 것을 제외하면 부시와 케리의 차이는 없다.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전략적 지지와 관련하여 부시진영과 케리진영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은, 선거전에서 정적이 되어 싸웠던 그 두 세력이 실제로는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한 경제적 동기를 제공하였던 제국주의독점자본에 각각 의존하고 결탁되어있음을 말해준다. 부시진영과 케리진영이 의존하고 결탁되어 있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이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서 미국 경제를 마음대로 좌우하게 된 군수공업자본과 석유자본을 뜻한다.

이른바 '미국식 애국주의(American patriotism)'라는 현란한 깃발을 휘두르면서 대결했던 부시의 선거진영과 케리의 선거진영이 '미국식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대중선동의 막 뒤에서 벌였던 보이지 않는 암투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익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정치능력을 서로 과시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었다. 선거용지를 손에 쥔 미국 인민들은 '미국식 애국주의'의 대중선동에 현혹되어 열광하는 바람에 선거전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 채 투표소로 향했다.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쟁점은 제국주의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제국주의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모순이란 독점 대 경쟁의 관계에서 발생한 모순인데, 이번 선거전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정치세력은 그 모순을 해결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유달리 날카로운 충돌양상을 보였다. 제국주의국가 내부에 독점 대 경쟁의 모순이 존재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그 모순이 상당히 격화되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은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점 대 경쟁의 모순이 첨예하게 표출된 정치현상이었다. 그러나 대중언론은 제국주의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모순이 정치권의 대립으로 표출된 현상만 주목하면서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이 과열양상을 보였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묘사하였다.

국가기구의 경제관리기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은 부시진영을 형성하였는데, 그 세력은 대체로 금융자본, 군수공업자본, 석유자본과 결탁되었다. 그에 비해서 자본의 자유경쟁기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은 케리진영을 형성하였는데, 그 세력은 대체로 민수산업자본, 정보기술산업자본과 결탁되었다. 금융자본, 군수공업자본, 석유자본은 제국주의국가의 침략적 대외정책에 명운을 걸고 세계적 판도에서 축적되고, 국가기구의 경제관리(재정부의 금융감독, 국방부의 군비조달감독, 동력자원부의 동력자원수급감독)에 따라 독점적 지위를 차지한 자본들이므로, 당연히 국가권력에 대한 유착정도가 매우 강하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무기거래, 제국주의무력의 증강, 제국주의침략전쟁의 도발은 세계금융시장에 대한 지배, 세계석유자원에 대한 약탈과 더불어 제국주의국가의 침략적 대외정책에서 근간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이다.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부시진영이 승리한 것은, 제국주의국가의 경제관리기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한 정치현상이 뜻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금융자본, 군수공업자본, 석유자본에 대한 미국 경제의 의존도가 더 심화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둘째는 제국주의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독점 대 경쟁의 모순관계가 금융자본, 군수공업자본, 석유자본의 독점적 지위를 더욱 강화하고 경제에 대한 국가기구의 관리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부시 대 케리의 선거전에서 드러난 위와 같은 변화는 미국 경제가 통화수축(deflation)이라는 고질적인 경제난에 빠져들고 있음을 입증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경제난이 모두 그러하듯, 미국의 경제난 역시 도시중산층을 양극으로 분해하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극도로 심화시킨다. 계급모순의 격화가 빈부격차라는 현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미국 경제난의 원인은 이미 1990년대에 발생된 되었고, 약 10년 동안 수많은 계기를 통해서 누적되어왔다. 1990년대부터 국제전자통신망의 비약적 발달로 금융자본의 전세계적 인수합병이 가속화되고,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생산력이 크게 발전하면서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세계적 규모의 상품생산이 급속히 진전된 나머지 결국 축적과 생산의 포화상태에 이르러 과잉축적, 과잉생산의 위기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2000년 4월 14일 뉴욕증권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한 사태는 그러한 위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였다.

지금 미국의 도시중산층에게 퍼지고 있는 것은 경제난이 악화되므로 경제에 대한 국가기구의 관리기능을 한층 강화하지 않으면 결국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사회적 불안감이다. 이번 선거전에서 부시진영이나 케리진영을 가릴 것 없이 '강한 미국', '위대한 미국'을 외치는 대중선동에 줄곧 매달렸고, 그러한 선동이 먹혀 들어갔던 배경에는 경제난의 불길한 조짐을 목격하는 도시중산층의 불안감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국제사회의 호된 비판과 제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 침략전쟁을 일으킨 전쟁지휘관의 강한 모습을 부각시킨 부시의 선거전술은 경제난이 촉발한 불안감에 휩싸여 '강한 미국', '위대한 미국'을 찾는 대중심리에 적중하였다. 미국의 정치권이 이른바 '네오콘(neocon)'이라는 악명이 붙은 극우세력의 입김에 휘둘리는 특이한 현상은 그러한 대중심리를 배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의 경제난이 악화되어 파국으로 침몰하는 경우, 그러한 대중심리는 광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1929년 10월 28일 뉴욕증권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를 시작으로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를 강타한 대공황의 폭풍 속에서 경제파탄으로 무너지는 독일제국을 구하자는 반동적 민족주의가 독일인민의 불안한 대중심리에 파고들면서 파시스트 독재자 히틀러를 제국총리로 내세웠던 공포와 광란의 시대가 21세기에 미국에서 재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생긴다.

2. 북(조선)의 '핵문제'를 통하여 드러난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의 모순

북(조선)의 '핵문제'는 핵무기 개발사업을 어떻게 중단시키느냐 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주요모순의 표출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장악·주도하는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모순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통하여 드러난 것이다.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를 장악·주도하는 제국주의국가 미국과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를 단호히 반대·배격하는 사회주의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이 '핵대결'이라는 외피를 쓰고 전개되는 것이다. 따라서 '핵문제'는 현상이며,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의 모순은 그 현상의 본질을 이룬다.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하여 '핵대결'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주요모순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는 데, 북(조선)의 사회주의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의 모순, 그리고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의 모순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자주역량과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이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을 공동의 대립물로 인식할 때, 북(조선)의 사회주의자주역량과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은 제국주의 미국에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하나의 실체로 통일된다. 그 통일된 대립적 실체를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하여 '핵대결'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는 주요모순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의 관계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으로 규정된다.

그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서 대결과 투쟁은 전략이고 대화와 협상은 전술이다. 지난 10년 동안 조·미 관계에서 발생하였던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위기와 남(한국)에서 전개된 반미자주화투쟁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이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을 대상으로 벌여온 전략적 대결과 투쟁이었으며, 양자회담, 3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은 전술적 대화와 협상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부시가 집권한 뒤에 진행된 6자회담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의 관계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전술적 정치협상으로 인식된다. 6자회담은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타협이 아니라 전략적 대결과 투쟁의 전술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대결이 격화되면 그 대결은 군사적 대결로 전화되는데,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대결이 최고로 격화되어 군사적 대결이 벌어질 긴박한 전쟁위기가 조성된 때는 클린턴 집권기였다. 그러나 부시 집권기에는 그처럼 긴박한 전쟁위기가 조성된 적이 아직 없다. 그 까닭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 전쟁 쌍방이 모두 재앙적인 피해를 입고 공멸하리라는 점을 미국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부시 정부에게 남아있는 선택 가능한 대안은 클린턴 집권 초기에 한(조선)반도에서 긴박한 전쟁위기를 조성한 것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6자회담으로 시간을 끌면서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을 약화시키는 것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부시 정부는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이 약화되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이 이완될 것이며, 모순이 이완되어야 제국주의지배체제가 현재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6자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자꾸 공전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을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속셈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을 약화시키는 방도는, 사회주의국가 북(조선)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시장에 대한 개방과 시장경제적 개혁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북(조선) 사회 내부에서 개방과 개혁에 대한 인민의 기대와 요구가 제기되어야 한다. 개방과 개혁에 대한 인민의 기대와 요구가 제기되려면 북(조선) 인민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자본주의에 친화적인 의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한 의식전환에 요구되는 것이 바로 제국주의경제봉쇄와 제국주의심리전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은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외부에서 봉쇄하여 자립적 발전을 저해하고 곤궁에 빠뜨리는 한편, 북(조선) 인민의 '인권문제'에 관련한 심리전을 전개하면 북(조선) 인민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자본주의에 친화적인 의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이전에 미국이 추진하였던 대북(조선)적대정책의 내용은 경제봉쇄와 전쟁위협의 결합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전쟁위협이 북(조선)에게 압박효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북(조선)과 남(한국)의 대중들에게 격렬한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에 따라 군사적 대결을 유지하고 고조시키되 긴박한 전쟁위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은 자제하게 되었다. 그 대신 경제봉쇄와 심리전을 결합한 적대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대량파괴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다국적 해상합동훈련 실시와 '북(조선) 인권법' 제정은 그러한 적대정책에 의하여 생겨난 현상들이다.

명백하게도, 부시가 추진하는 6자회담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을 약화시키는 제국주의경제봉쇄와 제국주의심리전을 전개할 시간을 벌어보기 위해서 추진하는 책략이다. 부시 정부에게 있어서 경제봉쇄와 심리전은 전략이고 6자회담 추진은 전술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해서 부시진영이 지지세력으로, 케리진영이 비판적 지지세력으로 각각 갈라졌듯이, 북(조선)의 '핵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선거전에서 케리는 6자회담을 추진해온 부시와 달리, 자기가 집권하면 조·미 양자회담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케리의 머리 속에 구상되었던 조·미 양자회담은 공전하는 6자회담을 양자회담으로 대체하여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을 약화시키는 시간을 벌어보려는 책략이었다.

부시는 때로 북(조선)의 '핵문제'를 6자회담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을 '평화적으로', '외교적으로' 약화시키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말살을 궁극적으로 지향하되 현재로서는 점진적으로 약화시켜간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 정책은 소련과 중국에게 적용하여 결국 사회주의진영의 반제자주역량을 제거하였던 이른바 '냉전구도의 점진적 해체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선거전에서 승리한 부시가 대소련 외교정책 전문가로 통했던 콘돌리자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대결전략과 협상전술이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통일되어 있는 반미자주역량 약화정책이다. 미국의 대결전략은 반미자주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제국주의경제봉쇄와 제국주의심리전을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것이고, 미국의 협상전술은 반미자주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6자회담을 지속하는 것이다.

3. 적대적 모순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의 관계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은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의 모순구도에서 매우 중요한 측면을 이룬다. 진보적 사회과학의 시각에서 보면,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의 모순구도는 사회주의 반제자주역량 대 제국주의지배세력의 적대적 모순, 제3세계 민족주의세력 대 제국주의지배세력의 적대적 모순, 제국주의국가들 사이의 비적대적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가지 모순이 집중된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의 모순의 결절점이 바로 한(조선)반도다. 사회주의국가인 북(조선)은 명백하게 사회주의 반제자주역량의 범주에 속하고,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은 사회주의 반제자주역량의 범주와 제3세계 민족주의세력의 범주 사이의 폭넓은 중간지대에 걸쳐있다. 다른 한편, 북(조선)의 '핵문제'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각각 얽혀있으므로 한(조선)반도 정세에는 제국주의국가들 사이의 비적대적 모순도 존재한다.

주목하는 것은, 21세기의 한(조선)반도 정세에 얽혀있는 세 가지 모순이 오랫동안 이어진 상대적 불활성상태에서 벗어나 계속 격화되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모순이 격화되면 위기가 발생하고 심화된다. 한(조선)반도에서 모순의 격화는 피할 수 없으며, 따라서 위기의 발생과 심화도 피할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의 한(조선)반도 정세변화가 그것을 현실로 입증한다. 지금 조용하게 느껴지는 한(조선)반도 정세는 위기의 발생과 심화가 미국 대통령선거라는 계기 때문에 잠시 지체되는 현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의 해결이 제국주의지배세력의 요구대로 해결되어서는 안 되고, 또 그렇게 해결될 수도 없으며, 반드시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의 요구대로 해결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위기는 모순이 격화되는 것만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위기는 모순격화와 주체역량강화라는 양대 요인에 의해서 극복된다. 모순이 격화되어 위기가 발생했어도 강한 주체역량이 존재하지 않으면 위기는 극복되지 않는다.

북(조선)의 '핵문제'를 통하여 표출된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의 모순이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의 요구대로 해결될 것으로 전망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이 비상히 강화되어온 현실에서 발견된다.

한(조선)반도 정세에 얽혀있는 세 가지 모순이 격화되어 발생한 위기가 극복되는 시나리오는 북(조선)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북(조선) 대 미국의 정치대결이 날카롭게 전개되는 한편, 남(한국) 대중의 반미성향이 확산되는 가운데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이 비약적으로 강화·발전되어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 대 미국의 정치대결이 날카롭게 전개되고, 그와 더불어 6자회담에 참가한 남(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이해관계가 미국의 이해관계와 상충되어 미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세 가지 방향에서 한꺼번에 위기가 발생하여 한(조선)반도 정세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가장 극적인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극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남(한국) 대중의 사회적 의식이 이전에 비하여 미국을 비판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비판적 의식의 많은 부분은 아직 잠재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을 비판하는 사회적 의식이 잠재상태에 머물러 있는 조건이므로, 민족민주세력이 주도하는 반미자주화운동이 대중적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2년 6월 13일 주한미국군 장갑차가 여중생 두 사람을 깔아 죽인 사건에 격분한 수 십 만 명의 대중이 반미촛불집회에 나선 이후,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은 공세적 투쟁계기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적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의 격렬한 정치대결이 반드시 여중생 살해사건으로 촉발된 반미촛불집회 같은 직접적 계기에 의해서만 촉발되는 것은 아니며, 남(한국)의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이 된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 같은 간접적 계기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은 반미자주화 구호 아래 전개되는 직접적인 반미투쟁이 아니지만, 그 투쟁이 반미자주화투쟁으로 전화되는 계기를 지녔음은 명백하다.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반미자주화투쟁으로 전화되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한국)의 경제난 악화는 기층민중의 생존권을 더욱 가혹하게 짓밟고 있다. 남(한국)의 경제난은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의 내부모순으로 발생한 세계적 규모의 자본과잉축적과 상품과잉생산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의해서 악화되는 것이어서 노무현 정권과 예속자본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난은 기층민중에게 희생을 강요할 뿐 아니라, 기층민중을 투쟁으로 불러일으킨다. 조직화되지 못한 기층민중은 경제난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며 고통을 겪지만, 조직화된 기층민중은 투쟁의 길에 나선다. 경제난이 악화될수록 노동조합, 농민회, 각종 대중단체 등으로 조직된 기층민중이 전개하는 생존권쟁취투쟁이 날로 격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경제난이 악화되어 기층민중의 경제투쟁이 양적으로 폭발적 성장을 보이는 경우, 투쟁의 성격이 질적으로 변화된 대중정치투쟁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경제난 악화로 촉발된 생존권쟁취투쟁이 양적으로 폭발하는 것은 그 투쟁이 대중정치투쟁으로 전화되는 결정적 계기이다. 반미자주화투쟁은 남(한국)의 기층민중이 전개하는 대중정치투쟁에서 전략적인 구성부분을 이룬다.

둘째,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치명상을 입은 남(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편입된 이후, 제국주의독점자본은 남(한국) 예속자본의 수탈분량을 앞지르면서 기층민중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수탈해오고 있으며, 노무현 정권은 시장경제의 전면개방과 경제체질의 전면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남(한국) 기층민중의 이익을 수탈하도록 방치하거나 보장해주고 있다. 제국주의독점자본 대 기층민중의 적대적 모순은 여러 가지 복잡한 현상 뒤에 감추어져 전면에 뚜렷이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그 모순의 심화와 극복이 한(조선)반도 정세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제국주의독점자본 대 기층민중의 적대적 모순이 격화되는 오늘 남(한국)의 현실은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제국주의독점자본 반대투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기층민중이 전개하는 제국주의독점자본 반대투쟁은 반미자주화운동으로 직결된다.

셋째,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제국주의독점자본 반대투쟁으로 전개되고 더 나아가서 반미자주화운동으로 전화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은 반미자주화운동을 주도해오고 있는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의 투쟁에 의해서 성숙된다.

민족민주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세력과 진보적 대중역량의 집결체인 민주노동당도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을 자기의 투쟁으로 여기고 그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족민주세력과 민주노동당이 생존권쟁취투쟁에 결합하는 정도에 따라 그 투쟁이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성장·전화되는 가능성이 결정된다.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은 민족민주세력과 민주노동당이 기층민중과 결합한 대중정치투쟁으로 전개될 때 가장 위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4. 3대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될 2005년 새해

남(한국)에서 모순이 격화되는 것은, 진보세력 대 반동세력의 투쟁이 격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한국(조선)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남(한국) 정치권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권력을 독점적으로 장악해왔던 반동세력이 요즈음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한미국군 철군문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 노동자 총파업문제, 6.15 공동선언 실현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반동세력은 친미예속적이며 반민중적이며 반통일적인 소동을 벌이고 있다. 진보세력과 반동세력이 서울 도심에서 각각 대규모 정치집회를 동시에 개최하는 경우, 쌍방이 물리적으로 충돌하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반동세력은 몰락과 파멸로 밀려갈수록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칠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중산층의 지지를 받고 등장한 노무현 정권에게는 반동세력의 광란적 소동을 진압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원래 체질이 허약하고 지지기반이 협소하기 때문에 반동세력이 격렬하게 반발·저항하는 경우, 끝까지 투쟁하여 진압하려는 의지를 뒤로 물리고 그 세력과 적당히 타협·절충하여 자기의 정권을 안정화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이처럼 중산층의 기회주의적 속성이 중산층 정권에 그대로 전이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반동세력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은 그 세력과 적대적 모순관계에 있는 민족민주세력과 민주노동당과 진보적 대중역량이 맡아야 할 고유한 몫이다. 민족민주세력과 민주노동당과 진보적 대중역량은 오랜 세월동안 반동세력에 맞서 싸운 투쟁경험으로 강인하게 단련된 유일한 사회정치세력이며, 반동세력진압을 자기의 전략목표로 삼고 있는 유일한 사회정치세력이다.

2005년에는 한(조선)반도 정세에 얽혀있는 모순이 격화되어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 투쟁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세력 사이에서, 그리고 남(한국)의 진보세력 대 반동세력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다.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과 남(한국) 진보세력이 분산된 역량을 결집하여 투쟁하면, 사회역사의 발전을 앞당기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자주, 민주, 통일의 3대투쟁은 승리로 이어질 것이다.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는 반미자주화운동의 전술을 마련하고 역량을 조직·확대하는 것이며, 남(한국)의 진보세력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는 민중생존권쟁취투쟁과 대중정치투쟁의 전술을 마련하고 역량을 조직·확대하는 것이며,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세력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술을 마련하고 역량을 조직·확대하는 것이다. (2004년 12월 4일 작성)

* 이 글은 도쿄에서 일본어로 발행되는 월간지 『통일평론』 2005년 1월호에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