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 국가보안법, 주한미군은 미국의 문제다

김삼석 (군사평론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성노예, 김구나 여운형 등 요인 암살사건과 여순사건과 같은 의문사건,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사건, 인혁당, 통혁당, 민청학련 등의 간첩조작사건, 유서대필 사건, 삼청교육대, 군의문사, 녹화사업, 실미도사건, 칼858기사건...”

일제 치하에서 반쪽해방을 한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과거청산이 화두다. 다룰 사건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만큼 먹고 살기 바빠 잘못된 역사를 묻어 둔 채로 그냥 살아온 것인가. 아니다. 역사의식 없이, 정체성이 없이 살아온 것이다. 이제 제대로 된 주인의식을 갖고 제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런데 단추가 잘못 끼워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습격사건(?)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하수인인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했다. 과거청산 제대로 한번 못해보고 지난 55년, 2004년 7월 1일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나라당이 중심이 되어 비전향장기수 의문사건에 대한 색깔론 공세와 조사관 전력을 문제삼아 제2의 반민특위인 의문사위원회를 습격했다.

색깔론 공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열린우리당이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습격(?)했다. 2004년 9월 22일이다. 과거청산 대상인 한나라당도 아니고, 과거청산을 반대하는 극우세력도 아닌 웬 열린우리당이냐고 할텐데.

최근에 국회내 1당인 열린우리당이 초안을 잡은 ‘과거사 기본법’을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과거청산을 생색내기로 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이럴 바에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비아냥까지 있다.

9월 22일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고인 등의 동행명령권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삭제, 3000만원의 과태료에 대한 상한액 대폭 삭감, 국가기관의 자료 제출 거부시 제재 조항 없음, 금융거래자료 제출요구권과 통신자료 제출요구권의 삭제, 공소시효 정지 삭제 등 대폭적인 조사 권한의 삭제” 등을 거론하였다.

이것은 지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가졌던 자료제출, 동행명령 등의 최소한의 조사권한마저도 스스로 포기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는 9월 22일, ‘열린우리당은 과거청산의 진정한 의지가 있는가’라며 “과거청산에 대한 철학이나 의지도 없이 정치적 부담으로만 회피하려는 태도, 야당의 정치적 공격에 타협적인 태도는 누더기 친일청산법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며 혹평했다.

국내 과거청산 관련 1000여 개 단체가 결집한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준)’는 9월 23일 ‘철저한 진상규명이 없는 과거청산은 또 다른 왜곡’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 조치가 없는 과거청산 기구는 과거의 인권침해 사건을 합법적으로 은폐시키는 결과를 낳을 개연성이 높으며 이런 무늬뿐인 과거청산 관련 법령의 도입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만큼 시민단체들이 최근 과거사 청산법안에 대한 성사의지가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는 점이다.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이 비협조한 점을 먼저 사과해야

이어 9월 30일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현 ‘과거청산’ 정국에 대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입장”이라는 담화를 통해 “이는 1,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가졌던 자료제출, 동행명령, 통신사실확인, 공소시효정지 등의 최소한의 조사권한마저도 포기하려는 것으로 과거청산의 목적과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의문사 위원회는 아울러 최근 “국정원.국방부.경찰청 등 국가기관이 자체에 특별기구를 설치하여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해서도 일단 찬성하지만 3년여에 걸친 의문사위의 조사활동에 비협조로 일관한 국정원.국방부.경찰청이 자체 내에 특별기구를 설치하여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것에 대해 그 진실성과 실효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며 “과거청산의 대상으로 의심받은 국가기관이 진정으로 의문사위 활동에 비협조한 점에 대하여 먼저 국민 앞에 사죄할 것”을 권고했다.

조사기구의 권한이 상당히 후퇴했다는 시민단체와 의문사위원회 등의 지적이 이어지자 열린우리당은 10월 1일 “관련기관이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검찰에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하고, 국가기관의 협조의무도 법안에 명시키로 했고 또한 조사기구가 필요할 경우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했다”고 오해하지 말라고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초 10월 5일께 발의할 예정이었던 법안 발의도 민주노동당 및 민주당과의 의견조율을 한다면서 연기해 버렸다. 친일진상규명법 처리 연기에 이어 과거사기본법의 발의도 늦춘 것이어서 한참을 주춤거리는 있는 셈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수구세력과 야당의 공세에 떠밀려 역사적인 과거청산 과제를 한낱 정치적 흥정의 산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다시 끼워야

“잘못된 역사는 이제라도 바로 세워야 한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다시 끼워야 다음도 올바르게 이어진다. 이것이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민족유산이다.”

1948년 제헌국회 당시 반민특위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한 정철용(79)씨의 '회고록'의 일부이다.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반역자들을 조사하고 단죄하고자 했던 유일한 기구였던 반민특위는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가 경찰에 의해 습격당했다. 한 달 뒤인 국회에서 특위의 공소시효 단축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그로 인해 특위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반민특위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구 선생이 6월 26일 낮에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1949년 9월 반민특위는 민족정기의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거두지 못한 채 '일시 중단'되었다. 이어지는 조사관 정철용씨의 회고다.

“나는 반민특위 업무가 종료된 것이 아니고, 일시 중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경찰의 총칼로 그 기능을 마비시키고 항거할 힘도 없는 상태에서 시효를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아직도 특위의 시효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성노예, 김구나 여운형 등 요인 암살사건과 여순사건과 같은 의문사건,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사건, 인혁당, 통혁당, 민청학련 등의 간첩조작사건, 유서대필 사건, 삼청교육대, 군의문사, 녹화사업, 실미도사건, 칼858기사건...”

일제치하와 분단독재시대의 잘못된 역사들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룰 사건들이 일부만 빼놓고는 모두 미국과의 관련성이 없는 것이 없다.

일제치하를 방조한 점, 한일협정을 지원한 점, 요인암살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 한국전쟁 전범국 미국, 두 세 번의 쿠데타를 지원하여 국내 통일 세력의 탄압에 일조한 미국, 군의 작전지휘권을 독점한 채 사병들의 인권 탄압을 방조한 미국, 칼858기 사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미국...

또 국가보안법과의 관련성도 빠지지 않는다. 미국(주한미군)의 힘을 등에 업고 전 사회를 국가보안법이라는 기제로 준전시상태를 만든 상태에서 고문.조작해 만든 사건이 과거청산차원에서 진상규명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분단시대의 과거청산의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다.

과거청산! 왜 미국의 문제인가

최근의 과거청산 논의가 미국의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고 국내문제로만 바라보면 올바른 과거청산의 단추는 또 다시 잘못 끼워질 수 있다. 분단시대의 잘못된 역사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주체의식, 역사의식을 갖고 바로 세워야 한다.

즉 한반도를 보는 세계적인 차원의 과거청산은 전후처리문제의 핵심인 한반도 분단이다. 분단시대의 잘못된 역사를 지탱하는 두 기둥은 분단을 유지.강화하는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정치 안보 경제 군사적인 장치인 주한미군과 그를 바탕으로 일상적인 준전시상태를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이 적대시하는 것은 이남의 통일.진보세력이자 동시에 이남의 동족인 이북인 점이다. 미국의 한반도 적대정책의 핵심에는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이 딱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놓고 적대시하는 점이 국가보안법 조항의 핵심이며 이북을 겨냥해 전쟁연습에 광분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그것이다.

이러할진대 진정한 과거청산의 대상은 분단의 피해자를 보듬고 진상규명해야 할 여러 사건과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동북아시아 차원의 과거청산은 정치.군사적인 관점에서 과거청산사건 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문제라는 세 가지 축을 같이 사고해야한다. 그래야만 수박겉핱기 식이 되지 않는다. 그래야만 미국의 간섭을 떨쳐버리고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올바른 과거청산을 할 준비는 되어있는가.

과거청산사건 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 철수라는 세 가지 축은 통일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통과해야할 지점이다. 과거청산사건 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 철수라는 세 가지 축을 어떻게 집중하여 미국을 압박하는 가가 주요한 요인이 된다.

이를 간과한 채 국내 문제로만 보면 우물 안의 개구리다. 보자, 미국의 간섭은 예로부터 끝이 없었다.

미국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청산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과거청산을 원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해.간섭한다는 것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첫째,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해서 70년대까지 자주 민주 통일사업을 위해 남으로 내려온 한반도 통일운동가들은 잡히자마자 일반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한미합동부대(538*미군특수부대)로 끌려가 북의 군사정보를 제일 먼저 요구받았다고 한다. 이때 한국 정보기관은 미군 수사과정에서 개입할 틈이 없다.

또 5.16 뒤 친구 동생인 박정희를 만나기 위해 남으로 내려온 황태성씨는 “미국 놈들에게 진공관 고문을 당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할진대 한반도 통일운동가들을 미국이 의문사 위원회가 인정한 것처럼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할리 만무하다.

둘째, 멀리 갈 것도 없이 92년 대선 당시의 민애전(민족해방애국동맹) 사건 당시 몇몇 중앙위원은 법정에서 이 사건은 ‘미 CIA와 한국 안기부의 합작품’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민족해방운동가들이 100여명 가까이 구속되고, 정권은 여당으로 넘어가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민애전의 주장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인 문제의 핵심인 북미평화협정문제, 주한미군철수문제,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방안이었음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이는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를 조직적으로 전개할 때 미국의 감시망이라는 촉수가 버티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셋째, 94년 3월 4일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잇따른 국무부 고위관리들의 ‘한국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이 있었고 또 그 해 8월 11일에는 미국무성이 ‘국가보안법’ 개폐를 요구하는 ‘특별성명’까지 발표했다. 이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즉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역사적인 제1차 북미회담이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제2차 북미회담은 7월 14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렸고, 미국은 이 회담에서 북한에 핵사용 위협도 하지 않으며 이북의 정치제도를 인정, 존중하며 남북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어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94년 3월 4일 이남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를 희망하는 것이 미국의 공식입장이라고 밝혔다. 1993년 6월 2일부터 열린 역사적인 제1차 북미실무회담이 시작된 뒤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북에 대한 적대시 정책의 완화효과를 노린 일시적인 발언일 뿐이었다.

폐지발언이 있은 지 두 달도 안되어 한총련의 1백명 가까운 간부들에 대한 검거령이 나오고 5공 때 나왔던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가 소환되기도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후 김영삼 정권 시절에 한총련의 선봉 남총련과 정치군사대오 ‘민족해방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96년 연세대 범민족대회에 대한 토끼몰이식 탄압에 이어 97~99년까지 계속된 범민족대회탄압과 함께 97년 동아대 간첩단 사건이 만들어 졌다.

김대중 정권도 이에 질세라 부산, 울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위원회사건을 조작해 부산.울산 지역의 노동운동에 빨간 덧칠을 해댔다. 이는 미국식 분할통치와 여론조작의 하나로 국가보안법을 노동운동이 활발한 지역에 이데올로기 공세를 휘두른 것이다.

넷째, 국가보안법은 동족에게 관대했고, 일본인에게는 적용조차 안되었다. 1993년 7월에 후지 TV 서울 지국장이었던 일본인 시노하라 마사토 기자가 90년 5월부터 3년 간 국군기무사 소속의 고영철 해군 소령한테서 38건의 군사기밀을 빼내 이중 27건을 일본대사관 무관에 정기적으로 넘겨준 사건이 보도된 일이 있다. 시노하라 기자는 ‘한반도내 지대공 미사일 배치현황’ 등의 2급 군사기밀 등을 넘겨받아 일본 군사전문지에 기고했으며 ‘걸프전과 한국 안보연구’ 등 3급 군사기밀을 등을 빼냈는데 그는 몇 달도 안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인 군사기밀 누설이다. 안기부(현 국정원)가 일본간첩, 미국간첩을 잡아 중형을 살렸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일본인 간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통일운동가인 노동자 민중인 동족을 잡는 게 고유 업무였다.

다섯째, “친일 세력의 과거를 파헤치는 게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다.”

2004년 9월 29일 경 투자설명회(IR)차 미국을 방문중인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에게 뉴욕 월가(Wall Street)의 투자자들이 내뱉은 한 질문이다. 과거사 청산과 주한미군 재배치 등 비경제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았던 것은 당연하다. 과거청산과 노무현 정권의 탄핵보복을 연결하는 미국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미국 눈치를 보며 과거사 기본법을 후퇴시키는 의도가 미국의 간섭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우리민족이 세 단추를 끼우는 방법

과거청산과 국가보안법철폐, 그리고 미군 철수라는 세 단추를 잘 끼우는 방법은 있다.

첫째 단추, 과거청산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국의 과거청산 시민단체 1,000여 군데가 힘을 모았다. 관련 피해자들도 정기국회 때 사활을 건 대회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 기본법은 미국의 눈치만 보는 줏대 없는 열린우리당이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둘째 단추, 국가보안법 폐지는 대세다. 통일.인권단체들이 이번만은 완전 철폐를 시킬 작정이다. 하지만 대체입법이라는 기만적인 연기를 피우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행태를 적극 저지해야한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눈치를 보면서 어영부영하면서 국가보안법의 이름만 일본식 ‘파괴활동 금지법’ 등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셋째 단추, 미군 철수는 시작되었다. 2003년 5월 주한미군 재배치계획을 시작으로 2005년 하반기 12,500명이 철군하는 등 주한미군 철수는 본격 시작되어, 2004~5년 주한미군의 중립화에 발동이 걸렸다. 하지만 예비역 대령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재향군인회 등 극우 반통일세력의 ‘주한미군 철수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 반대’를 외치며 사활을 걸듯 집회와 현수막을 전국 곳곳에서 전개하는 데 대해 통일세력의 조직적인 대응은 미흡한 편이다.

일제 식민지 피해자들을 껴안으며 2차 세계대전을 청산해야하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껴안으며 한국전쟁을 비로소 청산해야하며, 준전시상태 아래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을 껴안으며 국가보안법을 청산하고, 주한미군 범죄 피해자들을 껴안으며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폐시켜 주한미군을 철수해 정전상태를 끝내는 진정한 과거청산 국면이다.

미국이 우리민족에 대한 적대시 정책 포기해야

이 세 단추를 합치면 전쟁종식, 과거청산의 핵심인 미국의 우리민족(이북과 이남)에 대한 적대시 정책이 균열을 보이면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첫째,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화해.교류.협력이 이남의 반통일세력이 방해하고 난동을 피워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를 굳혀져 가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으며,

둘째, 역시나 세 단추를 끼우게 하는 밑바탕에는 이북의 `핵과 미사일`에 기반한 선군정치 중심의 강력한 대미압박과 이남의 효순이.미선이 투쟁에 기반한 대중적인 미군철수운동과, 전면적이고 대중적인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에서 알 수 있다.

9월 28일 미 상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안은 새로운 미국의 한반도 적대정책에 다름 아니지만 이 또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의 재물로 만들어야 한다. 이북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새로운 미국의 한반도 적대정책인 북한인권법안이 미 상원에서 통과되는 즈음인 2004년 9월 27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위협에 '핵억제력'을 갖출 수밖에 없다‘ 며 '정당방위 수단'임을 강조했고 “우리 공화국(북한)에 대한 핵위협을 포함한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가 실천적으로 증명되는 데 따라 우리도 핵억제력을 폐기하자는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를 전 세계에 밝혔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북의 핵억제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어서 시간은 미국에게 불리한 상태다.

결국, 미국은 국가보안법의 완전 철폐라기보다는 국가보안법의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으로 끝까지 이남의 자주적인 통일세력과 이북을 적대적인 분위기(북한인권법 추가)로 몰아 딴지를 부릴 것이다. 미국의 11월 대선을 앞둔 시점이지만 이북의 핵문제 미사일문제에 바탕을 둔 ‘이북의 무기화’에 직면한 미 군산복합체는 대선 전후에 미국의 모든 외교역량을 쏟아 이북과의 외교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다. 북한인권법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가지고 이북의 핵문제 미사일문제에 대응하려 하지만 시간이 없는 미 군산복합체에게는 이것조차 새로운 카드가 되지 못한다.

미국이 과거청산 대상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폐 투쟁은 이북과 미국 간의 힘의 대결과 전후청산 과정 속에 있는 이남의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남북해외 자주역량의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주한미군 철수 투쟁이 모아져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은 구멍이 날 것이다.

미 대선 전후로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한 대화는 불가피하며, 미국의 양보로 대화의 기초를 다시 튼튼히 하는 가운데 국가보안법이 균열을 보이면서 스스로 목숨을 다할 것이라 보여지며, 미군철수 일정도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더욱 많아진다.

그럼 노동자 민중들은 일단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각 지역과 부문에서 민주노총 통일위원회를 강화해 노동자 통일학교, 국가보안법 철폐 학교, 북한 바로알기 학교 등을 적극 열어 나가자. 아는 것이 힘이다. 악법을 알고 동족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실천하자. 동네에서 현장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대자보를, 서명대를 설치하자.

아파트에서 관련 영화.시사교양프로 상영회를 조직하자. 조립 라인에서, 공원에서, 산에서, 논에서, 역에서 국가보안법을 어긴 자들의 경험담도 들어보자. 지역에서 동네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삼보일배, 오보일배를 펼치자. 철폐될 때까지 말이다. 10월 23일 국보법 철폐 문화제에 힘을 모으자...

제 아무리 최첨단 미제 군사무기로 대북 선제공격 운운해도 최첨단 무기일수록 약점이 있고, 국가보안법과 북한인권법안, 탈북 공작으로 완전무장 한다 해도 한반도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해 한반도를 둘러싼 적대적인 환경은 뿌리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비로소 천추의 한을 담은 국가보안법과 미군치하의 한반도의 준전시상태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그것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힘보다 우리민족이 전쟁을 막는 힘이 더 세기 때문이다. 우리민족과 미국 간의 정확한 힘의 역학관계에 따른 것이다. 과거청산이 미국의 문제이며, 미국이 과거청산의 대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분단민족 피해자들의 눈물을 조금이나마 닦을 수 있다.

(통일뉴스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