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우리는 불패의 애국대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전신「전국 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결성 17돌을 맞는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청년학생들과 각계 민중은 한총련이 걸어온 자랑찬 투쟁행로를 감회깊이 돌이켜 보고 있다.

학생대중과 각계 민중이 사랑과 애정을 담아 「구국의 강철대오」로 불렀던 전대협은 지난 1987년 8월19일 충남대학교에서 전국 95개 대학 3만여명의 학생들의 참여하에 서울, 경기, 충청, 강원, 호남, 영남지역을 포괄하는 한국대학생들의 전국적 협의체로 발족되었다.

전대협의 결성은 1980년대 학생운동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로서 전국적 범위의 지도적 구심체로 학생투쟁의 산발성과 지역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량적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전대협은 80년대를 『학생운동의 역사시대』로 빛내였고 그러한 80년대 학생운동을 90년대로 이끌어간 견인차였다.

전대협의 건아들과 청년학생들은 한총련으로 발전하기까지의 6년간 자기의 헌신적인 투쟁을 통하여 한국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위에 빛나는 장을 아로 새기었다.

청년학생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변하는 내외정세에 대처하여 학생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전대협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한총련을 출범시켰다.

지난 93년 5월27일부터 29일까지 고려대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8만여명의 청년학생들이 한총련출범식을 가지고 자기의 결성을 선포함으로써 한총련은 명실공히 한국청년학생운동의 사령탑으로 우뚝 솟았다.

한총련은 전대협 6년의 자랑찬 투쟁행로를 바탕으로 하여 그리고 변화된 정세와 학생운동발전의 요구에 따라 출범한 학생운동조직의 대표체이다.

출범 당시 전대협에 전국 95개 대학이 참여했다면 한총련의 경우 전국의 1백 86개 대학이 참가했고 그 대의원수만도 1천6백여명에 이르는 등 한총련은 그야말로 전국적 규모의 대중적인 학생운동조직으로 발전하였다.

한총련은 17년간 당국의 가혹한 탄압과 분열와해책동 속에서도 추호의 동요없이 자주, 민주, 통일의 한길로 힘차게 전진해 왔다.

역대 정권들은 한총련을 「보안법」상의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끈질긴 수배, 체포, 재판, 처형을 다반사로 감행하여 정의로운 청년학생운동을 거세말살하려고 각방으로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그러나 한총련은 당국이 탄압을 강화하면 할수록 자기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보다 강화하는 것과 함께 학생운동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작업을 적극 벌여 청년학생운동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선도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하였다.

최근 수년간 한총련은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통일운동단체들과 연대연합, 공동투쟁을 힘있게 벌여 왔다.

통일의 1세대로 살려는 청년학생들은 지난 5월 제12기 한총련출범식을 성과적으로 치룬 자랑을 안고 61개 대학생단체들과 함께 『대학생 5월한마당』,『6.10전국대학생행동의 날』을 개최하여 청년학생들의 단결과 단합을 더 한층 공고화하였다.

또한 『6.12범국민행동의 날』등을 계기로 각계 민중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미자주화와 민족공조, 이라크파병반대투쟁을 범국민적인 투쟁으로 확산고조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지금 한총련은 미국의 6.15공동선언이행방해책동과 북침전쟁책동, 이라크파병강요책동을 반대하는 반미항전과 「국가보안법」철폐투쟁을 거세차게 벌이고 있다.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굳게 확신하고 힘차게 전진하는 한총련의 앞길을 가로 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으며 그들의 투쟁은 빛나는 승리로 역사에 아로 새겨질 것이다.

자주, 민주, 통일의 선봉장, 3백만청년학생들의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의 위업은 필승불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