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의 대중화를 위하여
- “대중화의 덫” 비판 -
 

준혁
 

 

차례
서론. 운동대중화는 왜 사활적 요구인가
본론  1. 주체적 관점에서 본 5월 한마당 평가
        2. 대중화의 덫 비판
        3. 학생운동 조직노선 정립
결론. 6.15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학생운동체를 건설하자
보론. 8.15 민족통일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자

 


서론. 운동대중화는 왜 사활적 요구인가

‘운동의 대중화’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운동대오에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현 시기 우리 운동은 얼마나 대중화되었는지, 왜 운동대중화가 사활적인 목표인지 다시 논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6.15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자주·민주·통일의 전망은 급격히 밝아졌다. 민간급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7천만 겨레의 통일의 염원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계기로 한 ‘광화문 촛불시위’는 우리 민중의 반미자주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하게 된 것은 민중의 힘이 모여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세가 급격히 호전됨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대오는 아직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0년대 이남사회의 학생운동을 이끌어왔던 한총련의 침체는 곧 전반 학생운동의 침체를 불러왔다. 한총련은 공안당국의 무차별적인 탄압이라는 외적요인과, 관료와 분파라는 내적요인에 의해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한총련은 자체의 혁신노력을 간과한 채 사분오열되어 자파세력 이익을 위한 싸움에만 매달렸고, 대중조직으로서의 위상이 무너지고 말았다. 전성기 때 10만 명의 대중동원력을 자랑하던 한총련은 이제 출범행사 때에도 몇 천 명만 모이게 되었고, 대중이 떠난 한총련은 허울만 남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학생운동대오는 침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운동대중화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록 운동대중화를 이룩하기 위한 원칙과 방법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굳이 성과라 한다면 운동대중화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운동대중화는 우리에게 요원한 일인가. 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우리나라가 4강에 든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 더 큰 감동은 그간의 분열과 대립을 뛰어넘어 우리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다는데 있다. 그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우리가 이기니까 좋은 것이고, 함께 응원해보니 좋은 것이다. 인위적으로 분리해 놓은 벽을 허물고 공통점을 중심으로 뭉칠 때 우리의 힘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꼭 경기장을 찾아서 ‘오! 필승코리아’를 외쳐야만 우리나라를 응원하는 것만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혹은 ‘TV'를 보면서 응원하는 것도 표현상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나라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운동대중화의 해답이 있다.
전국대학생 5월 대동한마당의 자리는 이러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큰 의의를 갖는다 할 수 있다. 5월 한마당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 자리였다.


본론 1. 주체적 관점에서 본 5월 한마당 평가

전국대학생 5월 대동한마당(이하 ‘5월 한마당’)의 전략적 의의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언급하자면 5월 한마당은 광범위한 대학생이 하나 될 수 있는 ‘운동대중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그동안의 새로운 학생운동을 위한 노력의 총화와 함께 향후 우리의 과제를 일깨워준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난 2년여 학생운동대오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위한 모색을 전개해왔다. 5월 한마당을 평가해봄으로써 성과와 부족한 점,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5월 한마당의 큰 성과는 이른바 ‘비운동권’ 대학생들의 참가라 할 수 있다. 28개 대학에서 300여 명의 ‘비운동권’ 학생들이 5월 한마당에 결합하였는데, 그리 큰 숫자는 아니지만 갈수록 참가인원이 줄어드는 학생단체 행사를 감안했을 때 신선한 충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어떻게 하면 많은 대중들을 모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가 되었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5월 한마당은 대학생들의 정치적 요구를 대중적이고 다양하게 풀어내는 공간이 되었다. 5월 한마당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구호는 ‘이라크 파병반대, 청년실업과 교육문제, 국가보안법폐지와 통일’ 등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물론 예전 한총련식의 전투적이고, 선도적인 실천투쟁을 전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대중적인 실천활동을 전개하면서 시민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킨 장점도 있다. 그리고 소위 ‘운동권’, ‘비운동권’의 차이를 극복하고 세 가지의 구호를 중심으로 공동의 목소리를 내었다는 것이 학생운동 대중화의 가능성을 높였고, 향후 전망을 밝게 하였다. 이후 꾸준한 노력이 전개된다면 더 높은 구호를 들고, 더욱 단결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에 5월 한마당은 우리 대학생들이 노력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 중 가장 큰 아쉬움은 여러 학생 단체를 하나로 아우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학생운동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다양한 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들을 통 크게 아우르지 못하고 ‘한총련’, ‘한대련’의 공동행동 정도로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를 통한 우리의 과제는 단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연대연합 차원이 아닌 다양한 운동 정파들이 모두 하나가 되고, 학생들 모두가 통 크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5월 한마당은 학생운동대오의 현재 수준과 향후 과제가 명확히 제시되었던 자리였다. 단결과 운동대중화는 구호만 높이 외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5월 한마당은 향후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과제를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5월 한마당의 평가를 진행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학교 내에서 혹자는 “너무 운동권 중심의 자리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반면 혹자는 “우리가 탭댄스나 보자고 거기에 갔나. 빡시게 투쟁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것이 학생운동의 현주소다. 운동대중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대중화의 구호를 든다고 한 순간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한 학교 내에서도 이렇게 평가가 분분한 것처럼 현재 우리 대학생들이 한마음으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힘들고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500만의 길거리 응원이 가능했듯 운동대중화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 하였던 것처럼 차근차근 노력한다면 우리의 생각이나 지향도 하나로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차이를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그것을 극복해내려는 결심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본론 2. ‘대중화의 덫’ 비판

일부에서는 5월 한마당의 부족한 점을 제기하며 새로운 학생운동을 위한 노력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5월 한마당에 많은 한계가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많은 한계 못지않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대중화의 덫’으로 대표되는 일부에서는 5월 한마당이 갖는 의의 전반을 부정하고 있다. 단지 그 뿐이 아니라 운동대중화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좌편향과 함께,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러한 글로 인하여 자칫 건강한 다수의 대학생들의 ‘운동대중화’를 위한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우려하며 ‘대중화의 덫’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대중화의 덫’은 5월 한마당 평가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학생운동에 대한 상이한 의견과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5월 한마당이 운동대중화라는 미명하에 대중추수주의의 오류를 범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에게 제기된 투쟁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는 것이 ‘대중화의 덫’의 주요 골자다. 그러나 개념의 모호함 등으로 인하여 그 필자가 주장하려는 의도에 대해 옳게 파악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한총련은 ‘운동대중화’의 실현을 위한 상징적 구호를 내걸었지만, 정작 필요한 대중 중심의 사고의 부재와 지속적인 정권의 탄압과 이념공세로 말미암아 심각한 난관에 빠지고 말았다. 학생운동은 대중조직이 아니라 일개 정파조직으로 전락해버린 한총련 대신하여 300만 대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안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학생운동의 조직노선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것이 새로운 학생운동, 새로운 조직건설의 시발점이었다.
‘대중화의 덫’은 이와 반대로 ‘한총련 사수강화’라는 기치를 들고 글을 써 나간 흔적이 엿보인다. 새로운 학생운동이라는 전반 학생운동의 흐름과 정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빈약하다 못해 궤변을 늘어놓고 개념을 왜곡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엄중한 문제이다.
대표적인 예는 ‘정치사업’과 ‘민주주의’를 ‘동전의 양면’이라 표현한 것이다. 정치사업과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왜곡하고 거기에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을 교묘하게 넣음으로써 ‘민주주의’의 참뜻을 흐리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명백히 오류이다.
‘민주주의’란 대중의 의사를 집대성한 정치이다. 이는 광범위한 대중들의 의사에 따라 정책을 세우고 대중에 이익에 맞게 그것을 관철하며 참다운 자유와 권리, 행복한 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 주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남의 학생운동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구현은 조직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기본 방식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조직건설과 활동에서 민주주의를 철저히 실시하여야 대중들에게 학생운동조직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원만히 보장할 수 있으며 자주·민주·통일의 길에서 학우대중들의 역할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은 대중추수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민주주의는 의견 수렴의 절차를 의미하는 것이고 대중추수주의는 대중의 그릇된 편견이나 견해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을 ‘앙상한 민주주의’라 곡해하고 이를 ‘대중추수주의’와 애써 접목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와 대중추수주의의 개념을 모르고 비난만을 목적으로한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5월 한마당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행사의 의의가 무엇인지 먼저 명확히 알아야 한다. 5월 한마당은 한총련과 한대련, 즉 소위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하나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러나 ‘대중화의 덫’에서는 대중추수주의에 빠져서 5월 한마당을 진행하였다고 비판하였는데, 이는 ‘한총련’식의 성격이 묻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말끝마다 투쟁을 외치고 근사하게 팔뚝질을 한다고 해서 한총련식은 아니다. 더욱이 한총련식의 성격이 묻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우경이 되고, 대중추수주의가 된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 2002년 광화문에서 진행된 효순이 미선이 추모촛불시위를 두고 대중추수주의라 할 사람은 없다. 앙마가 촛불시위를 제안한 것이 ‘앙상한 민주주의’며 그에 따라 10만 명의 대중이 광화문 앞에 모여 촛불시위를 한 것을 두고 ‘대중추수주의’라고 한다면 그런 운동이론에 동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대중화의 덫’ 필자는 6.15 시대를 들먹이면서 6.15 공동선언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5월 한마당에서 보았듯이 이른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차이는 존재한다. 우리의 단결의 원칙은 ‘구동존이’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낮은 수준에서의 공통점을 찾아 실천하면서 점차 높은 수준으로 끌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운동대중화인 것이다. 6.15 공동선언도 그런 의미를 내포한다. 공통점을 살리기 위해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 즉 ‘낮은단계의 연방제’를 이북에서 제시하였고, ‘연합제’와의 공통점을 살려 그동안 합의하지 못했던 ‘통일방안’을 기막히게 만들어내었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6.15 공동선언은 그리하여 정권간의 ‘상층통일전선’이 구축되었고, 6.15 공동선언에 합의하는 각계각층이 힘을 모아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6.15 시대란 이런 것이다.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공통점을 중심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것,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자주·민주·통일의 길로 내달리는 것. 이것이 6.15 시대의 참의미이다. 그러나 6.15 시대라 하며, 민중의 주체역량이 발전하였으니 한총련식을 고수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6.15시대의 의미에 대한 몰이해이다.

특히, 5월 한마당이라는 투쟁노선상의 문제를 두고 한대련의 조직노선을 비판하는 것은 ‘한총련 사수강화’라는 맹목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를 극명히 드러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애초 ‘대중화의 덫’에는 새로운 학생운동체 건설이라는 이남 학생운동의 화두와 운동대중화에 대한 사색은 없이, ‘한총련 사수강화’라는 정답을 구해놓은 채, 자신의 논리를 붙이다보니 이런 궤변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한대련’ 조직노선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근거를 찾았어야지, 대중투쟁 차원의 ‘5월 한마당’을 근거로 드는 것은 옳지 못하다. 더욱이 5월 한마당이 우편향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한총련 사수강화’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나 가능한 의견이다. 이처럼 ‘한총련 사수강화’라는 자신의 의견을 잣대로 5월 한마당을 우편향이라 비난하고, 그러므로 한대련 조직노선은 실패했다고 한다면 그 주장을 누가 옳다고 여기겠는가.

새로운 조직노선, 즉 ‘한대련’은 이제 시작이다. 한대련은 그 발기 의도처럼 아래서부터 상향식으로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혼란과 잡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있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차츰 그 부족함을 극복하며 이남 내 학생운동을 하나로 통 크게 묶어세우는 주체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본론 3. 학생운동 조직노선 정립

운동대중화란 운동을 추진하는 동력을 민중의 힘으로 보고 변화된 정세와 민중의 준비정도에 따라 민중을 주인으로 세워내는 과정이다.
한총련과 한대련의 운동대중화는 광범위한 학생들을 변화된 정세와 학생들의 준비정도에 따라 운동의 중심에서 주인으로 세워내기 위함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좌우경적 편향을 겪지 않는 것이다. 대중의 의식수준의 자연발생성만을 따르는 것은 대중추수주의적인 발상이고 이와 반대로 대중의 의식수준을 주관적으로 판단해 대중에게 맞지 않는 과격한 투쟁을 선도하는 것은 주관주의적 오류이다.

전국대학생 5월 한마당은 다양한 사상과 정견을 가진 광범위한 학생들을 넓은 품으로 끌어안기에는 부족한 지점들이 많이 나섰다. 운동대중화를 통해 300만과 함께 하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하겠다는 입장에서 시도된 첫 행사인 만큼 그 의의가 컸고, 한대련을 중심으로 한 소위 ‘비운동권’ 학생들이 참여하여 사회문제와 교육문제 등 대학생들의 공통의 문제를 함께 토론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새로운 학생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총련과 한대련은 조직노선이 서로 다르다. 한총련은 이미 분파, 비민주성, 폐쇄성 등으로 기간 학생운동의 선봉장으로써의 역할을 잃었다. 한총련의 고정된 조직의 틀은 의도하였던, 그러지 않았던 간에 광범위한 대중이 묶이기는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학생운동은 광범위한 학생대중 속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대중에게 외면당한 운동은 죽은 운동이다. 현 시기 학생운동에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운동대중화임에도 한총련은 운동대중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한총련 혁신과 새로운 학생운동 논의는 몇 해 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기간의 논의는 그리 발전적이지 못했다. 새로운 학생운동을 통해 대중을 투쟁의 주체로 묶어세우고, 더욱 광범위한 대중과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한총련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통 큰 단결을 위해서는 많은 부분 양보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함에도 한총련은 자신의 틀 안에 다른 사람들을 끼워맞추려고만 하였다. 이미 결정된 틀이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토론하며 새롭게 틀을 만들었어야 한다. 한총련처럼 이미 틀을 세운 후에 이 틀에 합의하는 사람만 들어와 한다면 누가 거기에 따르려 하겠는가.

새로운 학생운동을 담당해야할 조직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상향식 체계여야하고, 조직의 구성원이 될 다양한 생각을 가진 대중을 포괄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한다. 또한 합법적인 대중조직으로써 대중을 주체로 묶어세우는 데 있어 대중자신이 참여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투쟁의 목표와 방법, 형태, 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나서는 좌우편향들을 극복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올바른 노선이라 할지라도 쓰디쓴 비판과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단일학생조직 건설의 요구는 주어진 정세와 운동발전상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며, 전국의 300만 대학생들이 단일학생조직을 통해 사회변혁세력의 한 축으로써 건강한 진보의 숨결을 불어넣어야한다.
새로운 학생운동체 건설에 나서는 고민들은 철저히 대중중심의 관점으로 대중을 주인으로 세워내는 속에서, 6.15 시대에 맞고 통일전선운동에 복무할 수 있는 방향에서 논의되어져야한다. 더 이상 잘못된 사상과 비주체적인 관점, 편협한 시각으로 새로운 학생운동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한대련을 통한 새로운 학생운동의 대중적 실현에 더 이상 주저하지 말자.


결론. 6.15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학생운동체를 건설하자

6.15 공동선언 4돌. 자주·민주·통일의 새로운 전환적 시기를 맞는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하고 발전하였다. 이 같은 사회변화는 민족의 반제자주역량 성장과 6.15 공동선언이 열어준 위대한 생활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단결과 혁신의 행보를 하고 있다. 2000년 자주와 통일을 강령으로 한 통일연대 결성, 2003년 자주와 민주를 강령으로 한 민중연대 결성을 통하여 광범위한 민중들을 묶어세우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이 추진주체로 하여 더 큰 덩어리의 통일전선체를 건설하기 위한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이렇듯 진보적 지향을 가진 다양한 세력들이 공통점을 중심으로 한 데 뭉쳐 나아가는 것은 우리 민족의 요구이며, 정세의 요구, 운동발전상의 요구라 할 수 있다.

학생운동은 변혁과 통일의 길에서 언제나 최선두에 서서 민족의 요구에 화답해 왔었다. 정권의 모진 탄압 속에서도 주력군으로써의 임무를 다하고자 신념을 지키며 투쟁의 깃발을 놓지 않았다. 이제 조국통일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학생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300만 대학생들을 하나로 묶어세우는 운동대중화를 실현해야 한다.
운동대중화는 특정 정파를 중심으로 한 조직의 외연확대나 운동대오간의 정파 간 연합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며, 다양하고 참신한 방법으로 전반적 대중들이 참가하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총련의 한계를 포함하여, ‘민학련 노선’, ‘전학투련 노선’은 그 건설과정을 통해 이미 한계가 여실히 입증되었다.

6.15 시대, 300만 대학생의 운동대중화. 그것은 각양각색의 대학생들의 관심과 지향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하며, 300만 대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또한 대학생들의 참여의식을 진보적 지향으로 이끌어내는 방향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현재 많은 논의와 실천 속에 새로운 학생운동체 건설의 가능성과 구체적 방향들이 ‘한대련’으로 검증되고 있으며. 학생운동대오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욱 속도를 붙여 나가고 있다.

실천적인 활동을 통하여 새로운 학생운동체 건설에 모두 나서자. 현재의 논쟁과 진통을 실력으로, 실천으로 극복하여 명실상부한 300만 대학생들의 대중조직을 건설하자.


보론. 8.15 민족통일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

새로운 학생운동체 건설과 함께 광범위한 학우대중을 묶어세워 학생운동의 질적 도약을 이룩해야 한다. 학생운동의 질적 도약, 운동대중화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구체적 조직형태와, 건설경로에는 여전히 많은 논쟁과 진통이 따르고 있다.

한대련 노선은 아래에서부터 상향식으로 건설하는 원칙, 사상과 정견을 떠나 단결하는 원칙, 이른바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가르지 말고 단결할 것에 대한 원칙 등 이론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정당한 노선이다. 그럼에도 모든 학생운동세력들이 ‘한대련’을 중심으로 단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천적으로 충분히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5월 한마당을 통하여 상당부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학생운동 대중화와 전반적 혁신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대련 노선의 정당성을 입증받기 위해서는 실천적으로,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은 다른 것이 없다. 한대련 깃발 아래 수많은 대중을 묶어세우면 된다. 수많은 대중을 묶어세워 원칙적인 구호를 들고 투쟁할 때 논쟁과 진통은 사라지고, 한대련으로 집결하게 될 것이다. 물론 논쟁과 진통의 원인중 하나가 운동대오의 고질적 문제인 패권과 분파에도 있지만, 좀 더 본질적인 원인은 새로운 학생운동의 전망이 그만큼 실천적으로 검증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8.15 민족통일대회는 한대련에게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광범위하게 대학생들을 하나로 묶어세워 8.15 민족통일대회를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

또한 8.15 민족통일대회는 6.15 공동선언 발표 4돌이 지난 현재의 통일애국세력이 한 단계 비약된 통일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3차까지 진행된 6자회담에서 우리는 많은 성과를 얻었다. 우리민족과 미국의 대결전에서 연전연승하고 있고, 종국적 승리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단계적 미군철수가 진행되고 있고, 민중들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 갈수록 수위 높게 진행되고 있다. 변혁과 통일의 분수령이 될 2005년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의 단결과 연대는 더욱 광범위한 범위로 더욱 높은 수준으로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여 조국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모든 민중들의 단결력을 과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8.15 민족통일대회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처럼 8.15 민족통일대회는 주체역량을 강화하는데 있어서, 정세의 요구에 화답하는데 있어서 모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언제나 그러하였듯 청년학생이 역사발전의 선봉에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의 요구에 화답하면서 학생운동의 질적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 8.15 민족통일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자. 이것이 청년학생에게 주어진 당면 임무이다. 끝.